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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이 젊어지는 방법 - 젊은 소설가가 바라본 젊은 소설

  작년에 웹서핑을 하다가 박민규의 「조까라, 마이싱이다!」를 읽게 되었다. 제목부터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의 물결이었는데, 과연 내용도 훌륭하였다. 그래서 나도 『대산문화』 같은 진지해 보이는 잡지에 그런 섹시한 제목과 내용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다고, 상당히 진지하게 그것도 꽤 오랫동안 소망했었다. 그때 나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시시하게 빈둥대던 시시한 대학생이었는데, 박민규의 글에서는 시시함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대산문화』에서 청탁 전화를 받자 자연스럽게 그 글이 떠올랐다. 나는 나의 소박한 꿈 한 가지를 이루는 순간이 왔구나, 하고 흥분했다. ‘꿈을 이룬다’는 말은 나 같은 인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새 나 자신이 대단히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내가 그렇게 괜찮은 사람일리가 없잖은가? 그런 괜찮은 글을 쓸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그렇다면 어쩌나? 청탁을 거절할까? 그랬다가는 한국문학계로부터 버림을 받지 않을까? 하는 식의 시시한 걱정에 빠져들었다.

  나는 연구를 시작했다. 논술경시대회에 출전한 기분이었다. 일등을 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 기획특집의 제목은 ‘한국소설, 다시 젊어지는가’였다. 곧바로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지금 현재 시점, 한국소설은 늙었단 말인가? 어느 정도나 늙은 걸까? 갱년기문제를 고민해야 할 정도? 아니면 이미 중증 치매인가? 아니면 고혈압이나 당뇨, 협심증을 고민해야 하나?

  한편, 소설이라는 게 늙어졌다가 젊어졌다가 다시 또 늙어지기도 하는 성질을 지닌 ‘무언가’인지도 궁금해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젊어지는가’라는 문장이 몹시 웃기게 느껴져서 어디가 웃긴지 고민하기도 했다. 이렇게 고민하기를 몇 시간, 나는 메일함을 열고 대산문화에서 온 메일을 찬찬히 읽어보았다. 논술경시대회에 출전한 고3 학생 정도의 집중력으로.

  메일을 읽자 내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문제를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내가 써야 하는 것은 ‘젊은 소설가가 보는 젊은 소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젊은 소설을 읽으면 되는 거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젊은 소설인가? 나는 별로 고민하지 않고 대충, 80년대 생이 쓴 소설 정도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스24, 네이버지식인, 알라딘, 구글, 기타 등등을 이용해서 소설을 쓴 80년대 생을 찾았다. 그리고 읽었다. 재밌는 것도 있고 재미없는 것도 있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싶은 것도 있었고, 과연 그렇군 베이비 싶은 것도 있었고, 멋져요 언니 싶은 것도 있었고, 집어 치우고 욕실청소나 하시게 싶은 것도 있었다. 다른 모든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그 소설들에 대해서 별로 할 말은 없고.

  열심히 쓰고 계십니까, 저는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당신들도 열심히 쓰십시오, 우리 모두 열심히 씁시다, 라는 정도로 적당히 비굴하고 비겁하게 넘어가겠다.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평론가 선생님들도 많이 계시고, 세련된 순수 문학 독자들도 많이 계시니까,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어도, 뭐,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나는 하고 싶은 말이나 하겠다.

  어떤 사람들은 나를 보면 젊은 소설가라고 한다. 그리고는 “한국 소설도 드디어 젊어지는가” 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자꾸 젊다, 젊다, 하니 오히려 “죄송해요, 중3 쯤에 등단했어야 하는데” 하고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어서 사람들에게 젊은 소설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 같다. 물론 나는 좋다. 나도 젊음이 좋고, 그래서 이렇게 젊은 내가 좋고,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젊은 소설가로 봐주는 것도 좋고, 영원히 젊었으면 좋겠고, 주름살도 안 생긴다면 좋겠고, 흰머리도 안 났으면 좋겠고……

  하지만 이건 좀 호들갑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처음에는 이런 젊은 소설 논의가 출판사들의 마케팅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그냥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분류를 해서 통 속에 집어넣고, 이 통이랑 저 통이랑 어떻게 다른지 흔들어보는 것을 즐기는 것뿐일는지도 모른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초등학교 6학년 때도 친구들과 모여서 4학년, 5학년, 6학년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통점은 하나도 없고 차이점만 엄청나게 많았다. 중학교에 와서도 그랬고, 고등학교에 와서도 그랬고, 대학에 와서도 그렇다. 날이 갈수록 차이점만 엄청나게 쌓여갔다.

  그러고 보면 80년대 생들은 온갖 세대 논의의 중심에 있다. 이해찬이 교육부 장관일 때 학교에 다녔다고 ‘이해찬 세대’, 월드컵 때 응원 했다고 ‘월드컵 세대’, 핸드폰 가지고 있다고 ‘M(mobile) 세대’, 인터넷 한다고 ‘N(net) 세대’, 그리고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P 세대’도 있다. 지금 그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이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솔직히 이제는 누가 너는 무슨 세대다, 하고 외쳐도 “그래 그러니? 만나서 반가워” 하는 식으로 밖에 생각이 안 된다.

  그러니까 내 말은, 팔십 년대니, 구십 년대니, 칠십 년대 생이니, 팔십 년대 생이니 하는 이야기가 별로 재미없다는 말이다.

  솔직히, 한국 소설의 어디가 어떻게 젊어지고 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일본처럼 열아홉, 스무 살짜리 작가가 연달아 소설을 펴내며 큰 상을 타거나, 아니면 한 해 등단 작가의 절반 정도가 80년대 생이라거나 하는 정도는 되어야 한국 소설이 젊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현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팔십 년대 생은 기껏해야 네댓 명 밖에 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근근이 먹고 사는 수준이다. 그나마 단행본을 낸 작가도 두 명 밖에 없다. 다이어트 하는 여성의 저녁식사만큼이나 보잘 것 없다.

  이런 식으로 젊은 소설가들이 근근이 등장하는 것은 이슈가 될 필요도 없이 자연적인 일이다. 우리는 그저 글을 쓸 만큼 충분히 나이를 먹은 것이다. 기성세대들이 해독 가능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즉, 우리 자신이 기성세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혹은 그렇게 되기 위해 애를 쓰고 있거나.

  아무튼 이렇게 몇 안 되는 사람들 사이에 어떤 경향이 생겨날 리가 없다. 아니, 이렇게 몇 안 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확실한 경향이 생겨난다면 오히려 무척 이상해 보일 것이다. 80년대생 소설가들의 특징을 굳이 찾아보자면 아무런 경향도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를 포함한 80년대생 소설가들은 자신의 세대적 경향을 그다지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지 않으며, 억지로 드러낼 생각도 없어 보인다. 그렇다. 솔직히, 굳이 왜 그래야 하나 싶다. 드러날 뭔가가 있다면 억지로 드러내려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드러날 것이다. 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을 대표하겠다는 큰 꿈을 품고 소설가가 된 것이 아니다. 그냥 쓰고 싶어서 쓴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나? 그냥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 하는 것뿐이다.

  사람들은 지금 자신들이 찾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을 젊은 소설 안에서 억지로 찾고 있을 뿐이다. 왜 그렇게 찾고 싶은가? 왜 그렇게 보고 싶은가? 나는 모르겠다. 뭐 각자의 사정이 있겠지.

  몇몇 80년대 생들의 등장에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을 보면, 분명 한국 소설은 젊지 않다. 이렇게 젊어지고 싶어 하는 것을 보면, 확실히 늙었다. 그런 식으로 노력해봤자 젊어질 리가 없다. 방법이 틀렸다. 안타깝다. 그러느니 차라리 요즘 젊은이들처럼 적당히 무기력하게 빈둥대는 편이 낫다. 젊은 소설가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도 ‘귀찮으니까 오늘은 밖에 안 나가겠다’는 식의 정신을 가지고 시니컬하게, “니들이라고 별 수 있겠냐……” 하고 말하는 거다. 그게 한국 소설이 조금이라도 젊어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