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거창하게 말하면 비평이 무엇인지 막막해질 때라든가, 그보다는 덜 거창하게 어떤 시인이나 소설가를 이해하기 위한 지침을 얻기 위해서라든가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1992년에 간행된 전집을 들추기 시작한 이래로 선생님의 글이 열여섯 권 전집이 갖는 무게 이상으로 다가왔음은 틀림없는 것 같은 데도 불구하고, 저에게 김현 하면 여전히 『한국문학의 위상에 나오는 그 유명한 글귀들로 기억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너무도 범상하지만 제대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에 거침없이 육박해 들어가는, 한국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장면에서 번져 나오는 선생님의 열정을 조금이나마 엿보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기서 선생님의 어린 시절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아니 훨씬 오래전부터 하나의 상징이 되었던 선생님을, 주위에서 때때로 볼 수도 있을 법한 어떤 아이의 얼굴을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어떤 이유에선지 저의 마음을 좀 더 푸근하게 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서두를 떼셨습니다. “어쩌다가 유년 시절을 회고할 때마다 생각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맨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국민학교 일학년 때의 내 짝이었던 고깃집 아이의 혈색 좋은 두툼한 얼굴이고, 그 얼굴에 겹쳐서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과 싸우다가 내가 머리를 거꾸로 하여 처박혔던, 내 집 앞의 개울이다. 그 개울이 끝이 남직한 저 먼 곳에서 춘원의 무정을 읽다가 어머니에게 들켜서,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얘기책만 읽고 있다는 꾸지람을 듣고 훌쩍거리는, 어깨가 좁고 얼굴이 창백한 소년이 떠오른다. 국민학교 오학년 때의 일이다.”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얘기책만 읽는다는 어머니의 꾸지람에 집 앞 개울가에 앉아 혼자 훌쩍거리던 어깨가 좁고 얼굴이 창백한 소년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는 것은 비단 저뿐만은 아닐 것입니다. 선생님과 어떤 경험을 공유한다는 사실에 감격해 한다면 그건 과장된 반응일 것이고, 실은 어머니가 얘기책을 읽는 아들을 꾸짖는 장면은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지극히 평범하고 전형적인 기억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의 어머니도 이야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꽁꽁 언 겨울밤, 어머니는 고구마나 감, 하다못해 동치미라도 꺼내놓고 아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시길 즐겼다고 했습니다. 당신도 이야기를 즐겼던 분이 판사나 검사가 되지 않고 문학 나부랭이를 한다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아들을 꾸짖었다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라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지, 아니 그러는 게 당연하지 라는 반응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일 것입니다. 사실, 어머니의 꾸지람을 딱히 반박할 이유를 찾기도 쉽지 않을 터입니다. 가족을 데리고 진도에서 목포로 이주한 선생님의 아버지는 공설시장 앞에 약국을 열어 양약 도매업을 시작했고 충청도 이남의 약품 공급을 장악할 만큼 사업에 크게 성공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유복한 중산층 가정이자 부친이 목포 중앙교회 재정 담당 장로로 재직할 만큼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한 선생님에게 얘기책이란, 문학이란 어떤 것이었을까요? 유소년 시절에 대한 기록을 그리 풍부히 남기지 않은 편에 속하는 선생님이지만 어떤 이유에선지 한국문학의 위상 곳곳에는 그 시절의 기억이 남겨져 있습니다. “시골에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뱃속까지 뜨거워지도록 가차없이 내리퍼붓는 여름날의 땡볕과 저녁 어스름이 내릴 무렵, 평상을 내놓거나 멍석을 펴놓고, 모기를 쫓기 위해서 쑥불을 피우면서 잘 보이지도 않는 된장 종지며 반찬 그릇을 어림잡아 찾아다니며 저녁을 먹은 후에, 어머니와 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얘기의 재미를 거의 모를 것이다. 내가 아버지에게 들은 옛날 얘기의 대부분은 성경 얘기였다. 선악과를 따먹고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얘기에서부터, 구약성서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를 나는 처음에 얘기로서 받아들였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그것들은 세계의 원초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얘기로 생각되었다. 성경을 하나의 역사적인 저술물로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나 그럴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난 뒤에도, 그것은 글로 씌어진 것 이상의 의미를 내 속에서 갖고 있었다. 그것은 성스러운 것이었고, 다시 말해 세속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들려주던 얘기가 대부분 성경 얘기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성경 얘기는 곧 신의 말씀이고 또한 율법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모종의 금기와 관련된 담론일 것입니다. 아버지가 들려주던 성경 얘기뿐만이 아닙니다. “나직한 목소리로 아벨과 카인의 얘기를,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수절 과부의 얘기를, 도적질하다가 벌을 받은 그녀의 친지 중의 한 사람의 얘기를 어머니는 내가 잠들 때까지 계속하신다. 그때에 내가 느낀 공포와 아픔, 고통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선생님의 부모님은 얘기를 통해 아들에게 어떤 금기와 그 금기에 대한 태도, 그리고 그 금기를 위반했을 때 맞게 되는 처벌 등의 문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얘기 밑에 깔린 법은 말 그대로 “성스러운 것이었고, 다시 말해 세속적인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었고, 따라서 왜 그것을 지켜야 하는지와 같은 외설적인 질문은 허용되지 않는 절대적인 법일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일종의 사회화 과정을 동반하리라고 추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부모의 가르침을 통해 아들은 공포와 아픔, 고통 등을 내면화합니다. 그 내면화는 금기를 위반해서는 안 된다는 초자아를 형성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화 과정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될 때 아들은 곧 초자아 자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 선생님의 어머니가 아들이 문학 나부랭이를 하기보다 판사나 검사가 되기를 바랐다면, 그것은 아들이 법을 집행하는, 법의 대표로서의 초자아가 되기를 바랐던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성경 얘기로 대표되는 금기와 위반, 처벌의 담론을 접했을 때 “그때에 내가 느낀 공포와 아픔, 고통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라고 말한 바로 다음에 “그러나 그 아픔이나 고통 밑에 있는, 어머니의 나직한 목소리가 주는 쾌감을 내가 얼마나 즐겨했던가! 무서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는 즐기기 위해서 이야기를 듣는다”라고 상반된 느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공포와 아픔, 고통에 대해 쾌감과 즐거움을 내세우는 것은, 그 내적 논리를 떠나 어떤 점에서는 지극히 전형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잘 알려진 현실원칙과 쾌락원칙의 관계에서처럼, 금기나 억압이 고통스럽고 불쾌한 것이라면 그 반대편에 억압된 것을 풀어냈을 때의 쾌감과 만족이 있겠지요.
한 쪽에 억압이 있고 다른 한 쪽에 쾌감이 있을 때, 비로소 얘기는 문학이 됩니다. “유년 주일 학교에서 공포와 경외심을 가지고 성서를 마치 교과서를 배우듯 배우면서, 그와 비슷한 시기에 나는 소위 세속적인 얘기를 적은 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저 질투심 많고 잔인한 신의 이야기와는 다른 여러 얘기들을 읽을 수가 있었다. 그것들을 나는 경외감이나 공포심을 갖고 읽지 않았다. 나는 그것들을 호기심과 감각적 쾌락을 만족시키기 위해 읽었다. 그리고 상당한 시일이 흐른 뒤에, 나는 사람들이 내가 읽은 것을 시니, 소설이니, 수필이니 하는 따위의 문학적 장르로 구분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문학이라고 흔히 부르는 것 속에는 성경이나, 고등학교 시절에 그토록 탐독한 뜻으로 본 한국 역사나 김교신(金敎臣)의 수필집 같은 것은 끼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생님에게는 문학이 먼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얘기가 있었고, 그런데 그 얘기는 억압의 얘기일 뿐 아니라 쾌감의 얘기이기도 했고, 그걸 깨달은 순간 문학이라는 이름이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얘기책을 읽었다고 어머니에게 꾸지람을 듣고 눈물을 훌쩍이던 어깨가 좁고 얼굴이 창백하던 소년이 비로소 문학에 이른 어떤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소년에게 문학이란 무엇일까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억압 : 쾌감’이라는 대립구도는 어떤 점에서는 지극히 전형적인 이분법입니다. 그렇다면 문학이란 억압이 아닌 쾌감 쪽에 속한 것일까요? 그러나 선생님의 논리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꿈이 없을 때, 인간은 자신에 대해 거리를 가질 수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 갇혀버려 자신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사춘기 때에, 나는 나와 잠자리를 같이할 수 있는 여자란 여자는 모조리 마음속으로 간음하였다. 그녀들은 그때의 나에게는 단순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사랑을 이해하게 되자마자, 여자는 먹히기를 기다리는 고깃덩어리이기를 그치고, 장미꽃 핀 화원을 드나드는 천사들이 되었다. 문학은 그 고깃덩어리와 천사 사이를 왔다갔다하게 만드는 매개체이다. 문학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춘기 소년이 있습니다. 그 소년은 현실에서는 간음하지 말라는 것을 비롯한 이런저런 금기들 밑에서 욕망이 억압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소년은 마음속에서는 주위 모든 여성들을 간음함으로써 억압된 욕망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쾌감을 좇고 있습니다. 문학은 어느 편일까요? 문학이 단순히 쾌감에 봉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소년에게 성적 판타지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현실에서 억압된 성적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문학이 아니라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서의 고깃덩어리에서 장미꽃 화원을 드나드는 천사로 변화시키는 것이 문학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문학이란 현실에서 억압된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충족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억압되고 있는 현실 자체를 문제 삼게 만들며, 나아가 억압되고 있는 욕망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켜 주는 것이겠지요. 마치 선생님이 D. 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처음 읽었을 때 받았던 충격과 같이 말입니다. “어떤 통속소설에 그려진 성애 장면을 머리에 그리고 있었던 나에게, 채털리 부인과 산지기의 사랑은 진실한, 자기 기만적이 아닌 사랑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쳐줌과 동시에 이효석의 백치와 같은 사랑이나 통속소설의 성애가 사실은 나의 의식을 얼마나 억압하고 있었는가를 절실하게 깨닫게 해주었다.” 말하자면, 현실에서 억압된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은밀하게 충족하는 행위는 현실의 억압에서 그리고 욕망을 억압하는 현실의 논리에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전적으로 종속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통속소설에서 충족될 수 있는 욕망이란 결국 현실에서 억압된 욕망일 텐데, 그 욕망이란 실은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저열한 것으로 왜곡된 산물일 뿐입니다. 채털리 부인과 산지기의 관계가 불륜이기 때문에 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쾌감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억압에 종속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륜 자체가 억압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억압에 의해 불륜으로 왜곡된 것에 사랑이라는 정당한 이름을 붙여줄 때, 그것은 비로소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이제 선생님의 저 유명한 “문학은 억압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억압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라는 명제에 이를 때인 것 같습니다. “남은 일생 내내 나에게 써먹지 못하는 문학은 해서 무엇 하느냐 하는 질문을 던지신 어머니, 이제 나는 당신께 나 나름의 대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써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유용한 것이 결핍되었을 때의 그 답답함을 생각하기 바란다. 억압된 욕망은 그것이 강력하게 억압되면 억압될수록 더욱 강하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억압하지 않는 문학은 억압하는 모든 것이 인간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여 준다.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억압하는 것과 억압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부정적 힘을 인지한다. 그 부정적 힘의 인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한다.” 선생님의 어머니는 판사나 검사가 되지 않고 문학 나부랭이를 한다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아들을 꾸짖었습니다. 어머니의 꾸지람에 집 앞 개울가에 앉아 혼자 훌쩍거리던 어깨가 좁고 얼굴이 창백한 소년은 시간이 흐른 뒤 문학은 써먹지 못하기 때문에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진실의 한 끝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단순히 억압 반대편에 있는 쾌감을 제공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억압을 의식하게 만들고 나아가 그 억압과 맞서 싸우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어느덧 선생님에게는 얘기를 들려줄 부모님이 생존해 있지 않지만, 문학이 존재하는 한, 문학을 통해 당신의 깨달음을 확인할 수 있는 한 결코 외롭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떤 글에선가 선생님은 한 소설가에 대해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20여 년간 그와 사귀어 오면서, 아니 그와 술을 마셔 오면서, 내가 언제나 그의 의견에 승복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와 여러 번 다투고 그 다툼은 때로는 절교 상태까지 우리의 관계를 몰고 갔다. 그때마다 그는 작품으로써 다시 그의 의견을 나에게 되물었다. 때로 그 작품들은 나를 감동시키기도 하였고 때로는 나를 더욱 실망시키기도 하였다. 한 호로써 창간과 동시에 종간이 되어 버린 《68문학》을 내놓고 그것의 앞날의 방향에 대해 심한 논쟁을 한 끝에 너는 내 친구가 아니다라는 말을 서로 퍼붓고 헤어진 후 거의 1년이 넘어서 그는 나에게 소문의 벽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읽고 나는 감동했다. 우리의 우정은 그때 다시 살아났다. 나는 그와 같은 작가를 친구로 갖고 있는 게 즐겁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은 다음과 같은 문학이다. 문학은 언제나 자유롭고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의 삶과 세계를 편견과 아집에 사로잡힘이 없이 총체적인 넓이로 바라보고 경험하게 함으로써 모든 사람의 삶을 그 삶의 본래의 모습으로 자유롭게 되돌아가 살게 하여야 한다.” 『한국문학의 위상』제2장이 『소문의 벽』의 한 구절을 경구처럼 인용하면서 시작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테지요. 비단 그 작품뿐 아니라, 현실의 억압에 종속되지 않고 억압을 의식하게 하며 그리하여 마침내 자유를 갈망하게 하는 문학과 영원히 함께 했던 선생님은 당신이 원했던 대로 즐겁고 또 행복한 사람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