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쉰 살에 중학교에 들어갔다. 어릴 때 공부를 그만둬야 했던 아줌마 아저씨들이 가는 학교였다. 물론 정식 교육기관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생이었다. 게을렀다. 아홉 시 수업은 늘 지각을 하거나 안 들어갔다. 여덟 시 반쯤 눈을 떠, 아, 나는 왜 이렇게 살까, 한숨을 쉬고 있으면 방문 밖에서 분주한 소리들이 들려오곤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학교에 가고 나는 집에 있다. 내가 학교에 가고 집에 엄마가 있던, 그 어떤 시절처럼. “국민학교가 집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몰라. 갈 때마다 산을 넘어야 했어.”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 다리가 두껍구나.’ “바람이 엄청 분 날도 있었어. 그땐 높은 건물도 없었으니까 바람을 피할 수도 없었지. 학교 가다가 멀리 날아가는 건 아닐까 무서웠어.” 하지만 엄마는 중학교도 가지 않고 어른이 된 현실이 더 무서웠을 것이다. “어느 날 할아버지가 말했어. 순옥이 이제 학교 그만 다녀라. 중학교는 안 가도 된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아,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학교에서 가정생활기록부 같은 걸 나눠주며 엄마는 뭐 하고 아빠는 뭐하는지, 두 분은 학교를 어디까지 다녔는지 적어오라고 했다. 그걸 뭐하는 데 쓰는지 나는 똑똑한 어른이 된 지금도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때마다 “중졸이라고 적을까?” 내게 물었다. 그리고 그렇게 적었다. 아빠는 고졸. 엄마도 아빠도 국민학교를 나온 게 전부지만. 학교에 가면 나는 늘 놀랐다. 친구들 엄마 아빠는 정말 다들 고등학교도 나오고 대학교도 나왔다고 했다. 엄마는 아들을 선비로 키우고 싶었다고 했다. 장남인 형이 열 살도 되기 전에 과외를 시켰다. 계획대로라면 형은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을 졸업했어야 한다. 하지만 결국 형은 2년 만에 졸업하는 학교에 갔다. 게다가 그 학교는 서울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4년을 다녀야 졸업하는 학교에 가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학교가 서울에 없었다. 그래도 엄마는 아들 둘을 대학에 보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들이 어느 대학에 다니냐고 누군가 물어볼 때마다 약간 머뭇거리긴 하지만. 중학생 엄마는 대학생 막내아들에게 밤마다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언제 와?” 이 말은, 빨리 와서 일찍 자고 내일은 지각하지 말고 학교가, 의 의미가 아니었다. 집에 가면 엄마는 늘 작은 상을 하나 펼쳐놓고 눅눅한 김처럼 상 앞에 앉아 있었다. 나를 보면 쌓아둔 질문들을 엄마의 늦은 생애처럼 펼치곤 했다.
“예쁜 꽃들의 모임이 왜 집합이 안 되지?” “기준이 없다고, 기준이. 도대체 몇 번 말해야 알겠어.” “예쁜 꽃은 예쁘고 못 생긴 꽃은 못 생겼잖아.” 예쁘고 못 생긴 게 어떻게 기준이 돼, 라고 답하면서도 속으론 나도 이해가 안 됐다. 사실 그건 명백한 기준이 되고 있지 않나? 아무튼 엄마는 같은 얘기를 열 번 해줘도 금방 잊었다. 내가 공부를 왜 못 했는지, 명백히 알게 됐다. 엄마가 학교에 가고 나는 또 늦게 일어난 아침에 베란다에서 창밖을 내려다보면 땅엔 온통 초등학생뿐이었다. 엄마가 그 틈에 끼여 학교에 간다고 생각하니 어떤 슬픔과 어떤 기쁨이 동시에 밀려왔다. 이젠 내가 우주에 있지도 않았던 어떤 날처럼 바람이 엄청 세게 불 일도 없고 그렇게 바람이 불어도 엄마는 무거워서 날아가지 않는다. 신발장 옆에 도시락이 놓여 있던 날도 있었다. 옛날의 엄마처럼, 내가 저걸 들고 학교에 가져다주고 와야 하나, 고민한 기억이 있다. 물론 훌륭한 대학생이 되기 위해 나는 서둘러 학교에 갔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그 도시락은 거대한 은유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엄마는 고등학교에 간다. 엄마의 수학 문제를 나도 풀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엄마는 겨우겨우 그걸 풀어가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끝내 대학에도 간다. 국어국문학과. 엄마는 아들이 선비가 되기를 바랐으니까. 방송통신대학교에 들어갔으니, 어찌됐건 엄마는 큰 아들도 작은 아들도 못 간 4년제 대학을 서울에서 다닌 셈이다. 엄마가 학교에 다닌 십여 년의 시간동안 나는 학교에 늦고 회사에 늦으며 시를 썼다. 아주 아주 옛날엔 선비들만 시를 쓰지 않았나? 아닌가? 시를 쓰는 건 취직과 아무 상관이 없다며 엄마는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결국 내가 시를 쓰는 건 엄마 때문이 아닐까 종종 생각한다. 아들이 선비가 되길 바랐으니까. 그리고 쉰이 넘은 나이에 그녀가 선비가 됐으니까. 그리고 삶이라는 붓으로 스스로 시를 썼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