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장영우_평론가,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56년생
저서 『이태준소설연구』 『중용의 글쓰기』 『소설의 운명, 소설의 미래』 『거울과 벽』 등
1. 소설 속 ‘엄마의 신화’
한국 근대소설사의 주요한 흐름을 요약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술어는 아마도 ‘아비 부재’와 ‘아비 찾기’일 터이다. 외세의 강압에 의한 근대와 식민지 체험, 그리고 동족상잔과 군부독재정권이란 험렬한 역사의 전개과정을 거치는 동안 문학 작품 속의 ‘아비’는 조선조 가부장사회에서 누렸던 권위와 위엄을 상실한 채 가족과 이별하거나 소외되어 왔다.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서 실질적 가부장의 역할을 한 이는 맏아들이 아니라 어머니였다. 아들은 아직 어리거나 장성하였어도 경제적 능력이 없어 가장의 역할을 떠맡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6·25의 상흔을 다룬 「오발탄」이나 「이단부흥」 「생명연습」에서의 어머니는 치매를 앓거나 남편의 친지와 통정을 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지만, 현대소설사에서의 어머니는 대체로 아버지와 남편을 대신하여 자식을 양육하고 가정을 지키는 성모(聖母)의 이미지로 자리매김되어 왔다.
「이단부흥」(김문수, 1961)과 「생명연습」(김승옥, 1962) 등 1960년대 벽두에 발표된 두 편의 신춘문예 당선소설이 아버지가 부재하는 집안에서의 어머니의 외도를 다루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단부흥」은 아버지가 보국대로 징발되어간 뒤 소식이 돈절되자 아버지와 팔촌간인 권씨와 불륜관계를 갖고 낙태한 어머니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고, 「생명연습」은 남편을 잃고 불륜을 저지른 어머니와 그녀를 살해하려는 형의 갈등을 다룬 소설이다. 이들 작품이 전후 서구 물질문명이 무차별적으로 유입되면서 전통적 윤리의식이 파탄의 징후를 드러내던 시점에 쓰여진 점을 감안하더라도 소설 속 어머니의 부정(不貞)은 충격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의 작품은 그 후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여전히 소설 속 어머니는 철저한 금욕과 자기희생으로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는 여성상으로 각인되어 왔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 엄마에게서 태어났다. 종교의 절대적 성자는 어머니 옆구리에서 태어나기도 하고 처녀 어머니에게 수태되기도 했다지만, 우리는 열 달 동안 엄마 자궁 속에서 지내고 산도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모든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시공간을 초월해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며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절대적 의존의 느낌 feeling of absolute dependence’을 주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러한 인식은 문학 장르에서 신화화되며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어머니상으로 구축되는데, 서구의 성모 마리아와 조선의 신사임당 이미지가 그 대표적 사례에 해당한다. 신화화된 어머니상은 시공간과 무관하게 공통된 특징을 보이지만, 최근 들어 과거와 다른 어머니가 소설 속에 등장해 주목을 끈다. 이 글은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이하 에미』)』(윤흥길), 컬러 오브 워터』(제임스 맥브라이드),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등 세 편의 소설 속에 나타난 엄마의 모습을 대비하여 시공간의 차이에 따른 어머니상의 변화와 그것의 문학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쓴다. 『에미』는 표제에서 어머니의 신격화를 거부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보편적인 한국의 모성상을 형상화한 점에서, 컬러 오브 워터』는 두 명의 흑인남성과 결혼하여 열두 명의 아들딸을 기른 유태계 백인여성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데다 100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꼽히고 미국의 주요 고등학교와 대학교 교재로 선정된 책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엄마를 부탁해는 최근 발표된 한국소설 가운데 어머니를 본격적으로 독자의 큰 공감을 받은 데다 기존 소설 속의 어머니상과 차별된다는 점에서 좋은 대비가 된다고 보았다.
2.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 동물적 모성과 종교적 화해
『에미』는 다소 특이한 사정과 경로를 통해 발표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82년 일본의 ‘신초샤(新潮社)’가 윤흥길과 전작 출판계약을 맺어 한국방송사업단 출판국과 ‘신초샤’에서 동시에 출간했고, 안우식 번역의 일어판 소설 母エミ는 제19회 일본번역문화상을 수상했다. 에미는 결혼 초야에 남편에게 소박당한 뒤 두 아들을 혼자 키워낸 억척스런 어머니의 신산스러운 삶의 역정(歷程)이 주변 사람들의 증언과 기억을 통해 밝혀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어려서 열병을 앓아 사팔뜨기가 된 탓에 큰오빠 친구와 정략결혼을 했으나 초야를 지낸 뒤 남편이 집을 떠나고 아들과 함께 친정에 의지하려 해도 출가외인이라 배척당한 이 소설의 여성 주인공의 삶은 근대 한국여성이 겪어야 했던 간난고초가 거의 총망라된 기구(崎嶇)함 그 자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녀는 열병을 앓아 육체적 장애를 지녔고, 남편과 친정에서 소박맞아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으며, 6·25 동란 중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흉한(兇漢)에게 겁탈 당하는 등 반평생을 오욕과 억압 속에서 보내면서도 남편의 생명을 구하고 씨 다른 두 아들을 번듯하게 길러내는 등 ‘에미’로서의 역할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다. 한 여성으로서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운 핍박과 고난을 이겨내고 주변의 칭송과 부러움을 받을 만큼 집안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바탕은 그녀의 동물적 모성에서 비롯된 강인한 생존력이다. 그녀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친정 오라비에게 의지하려다 그마저 거부당하자 “이놈아, 이 웬수놈아, 오날날 내 신세를 요지경 요꼴로 맨든 사람은 바로 너다. (……) 이 천벌을 받을 놈아!”라고 욕설을 퍼부은 뒤 친정과 절연하고 혼자 힘으로 아들을 기르며 재산을 형성해 나간다. 천애고아나 다름없는 처지가 된 그녀는 “탐욕덩어리”, “야차”가 되어 먹을 것 가지고도 아들과 다투면서 세상과 “목숨을 건 외로운 싸움”을 벌여 마침내 집안을 일구어낸 것이다.
이 소설은 화자인 큰 아들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귀향한 뒤 그동안 불투명했던 어머니의 행적과 비밀을 하나씩 밝혀가며 마침내 화해에 이르는 구성 방식으로 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밝혀지는 비밀은 어머니가 아버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깍짓동만한 몸집의 거한”에게 겁탈을 당했고 그 씨앗이 바로 동생 기춘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일에 대한 어머니의 기억이 철저하게 미륵신앙과 연결되어 있고 주변 사람들도 거기에 추호의 의심을 품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혼 첫날밤 자신을 버린 남편이 인민군에게 전주형무소에 수감되자 그를 구하기 위해 어머니는 야간공습도 아랑곳 않고 형무소로 향하다 능욕을 당하는데, 그 순간 “그는 다름 아닌 미륵님, 인간의 몸으로 현신하여 도솔천으로부터 구세주로서 이 세상에 내려온 미륵존불 바로 그 분”이라 합리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원에 출마한 남편을 은근히 압박하여 기춘을 그의 호적에 올림으로써 둘째 아들의 출생과 현존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이 비밀을 어렴풋이 알고 있던 이모가 화자에게 발설하고, 어머니의 혼불이 빠져나갔다는 소문에 이성을 잃은 기춘이 아버지를 찾아가려하자 화자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형제간이다. 허지만 너하고 나는 아버지가 달라”며 형제관계마저 위태롭게 할지 모를 출생의 비화를 들려준다.
이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밝혀지는 사실은 단순히 기춘의 출생과 관련된 비밀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녀는 새끼를 보호하려는 ‘어미’처럼 동물적인 삶을 살아온 듯하지만, 화자에게 사람의 도리를 지켜 동생을 보살필 것을 다짐받고 평생 정절을 지키며 남편이 돌아오기를 바란 것으로 드러난다. 그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달구지 바퀴에 자신의 머리카락 두 올을 걸어 남편과 다시 맺어지는 민속 종교적 의례를 치러왔던 것이다. 화자는 어머니와 기춘이 대신 그 의식을 치르며 그것이 “이해타산을 훌쩍 뛰어넘는 무상(無償)의 행위”였고, “어머니는 기춘이와 나의 어머니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대목에 이르러 『에미』의 어머니는 동물적 어미의 일차원적 단계에서 한국의 전형적 어머니, 또는 대지적 모성으로 신격화된다.
3. 컬러 오브 워터, 엄마의 권력과 가족의 질서
이 소설에는 두 명의 화자 ‘나’가 등장하는데, 한 화자는 작가의 분신이고 다른 화자는 어머니다. 다시 말해 이 소설은 나(작가)와 어머니의 이중시점에 의해 어머니의 과거와 나를 비롯한 형제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정상적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밝혀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첫 문장이 “난 죽은 사람이란다”란 충격적 고백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유태계 백인여성이 두 명의 흑인남성과 결혼하여 친정 집안에서 축출되지만 아들의 도움으로 과거와 화해하는 이야기가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인 화법으로 진술된다. 그녀가 흑인남성과 결혼한 것은 처음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고 임신시킨 남성이 흑인이고, 친정에서 탈출하여 할렘에서 위험천만한 삶을 살고 있을 때 정신적으로 구원해 준 이 또한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의 삶을 험난하게 이끌고 간 근본적인 원인은 지독히 인색하고 몰인정한 데다 어린 딸에게 성추행까지 일삼았던 친정아버지에게서 탈출하려는 내적 욕망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은 가족끼리 ‘사랑한다’는 말도 주고받지 않고 가게에서 점원처럼 일만하는 삭막하고 황량한 풍경이다. 하지만 그녀의 친정어머니는 소아마비로 왼다리를 절고 왼손은 아예 쓰지도 못하며 왼쪽 눈 또한 거의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져 남편에게서 가혹한 학대를 받으면서도 자식에게나 주변사람에게 따뜻하고 부드러움을 잃지 않은 전형적인 어머니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소설의 엄마(루스 맥브라이드 조던)가 스스로 “최악의 주부”라 자인할 만큼 요리나 가사에 젬병이면서도 자식을 성공적으로 길러낼 수 있었던 것은 친정어머니에게서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따뜻한 심성과 두 명의 남편에게서 받은 절대적 사랑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컬러 오브 워터』의 엄마는 유태계 백인여성으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지만 흑인남성과 결혼하여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철저히 이웃과 단절한 채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다스린다. 그녀가 첫 남편이었던 앤드루 맥브라이드와 함께 확립한 자식교육의 원칙은, “아이들은 다섯 시까지 집에 들어와야 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하지 말아야 하며 군중을 따르지 말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단순하고 원론적인 생활 규칙에 불과하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학교 숙제는 반드시 해야 하고 거짓말을 하거나 비속어를 쓰지 않도록 가르친다. 그녀의 자식들은 “엄마가 음식 대신 준 생각과 책과 음악과 예술을 먹고” 자라면서도 스스로를 가난하거나 불우하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는 엄격한 규율과 질서로 자식을 지배하면서 큰아들과 딸에게 권력을 일정부분 이양하여 자신의 성채를 공고화하고 형제간의 위계를 유지하는 대가족제도의 자녀교육 방식을 적절히 활용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열두 자녀 중에는 열다섯에 가출해 몇 년 뒤 미혼모가 되어 돌아온 딸도 있고, 사춘기를 마리화나로 보낸 아들(작가)도 있지만 결국은 모두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직에 종사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마지막 장에 소개된 열두 자녀의 사회적 성취는 작가의 집안 자랑이 아니라 존경하는 어머니에게 바치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헌사다.
이 소설의 엄마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어머니상과 다소 거리가 있다. 그녀는 어려서 친아버지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사춘기 시절 흑인남자의 아이를 낙태했으며 할렘에서 방황하다 하마터면 창녀가 될 위기마저 있었고 친정에서 완전히 배척당하는 등 여성으로서는 기억하기조차 싫은 젊은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두 명의 흑인남성의 사랑과 신뢰를 받으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동안 엄마의 신화를 완성한다. 첫 남편은 그녀에게 종교를 믿게 인도하였고 자식교육의 원칙을 세웠으며 두 번째 남편 역시 성실하고 선량한 성품으로 아내와 자식들을 포용한 남성이었다. 덕분에 그녀는 집안의 “대통령 겸 CEO이자 군사령관”으로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며 “열두 명의 매우 창의적이고 재능 있는 자녀를 길러냈”던 것이다. 그녀가 이룩한 신화와 권력의 절정을 작가는 작품 말미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내 아내 스테파니는 처음으로 나와 같이 크리스마스를 지내러 우리 집에 가서 가족들을 만났던 일을 두고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유잉의 엄마 집에 둘러앉은 열두 명의 형제들 모두가 의사니 교수니 하는 멀쩡한 사람들인데 집 안은 우리가 어렸을 때 늘 그랬던 것처럼 난장판이고 애들은 제정신이 아니고 배우자들은 다 얼이 나가 있더란다. 그런 와중에 엄마의 직계 자식 열둘은 심리학자들을 절망적으로 두 손 들게 만들 다음과 같은 정신 나간 행돌 패턴으로 퇴행하더라는 것이다. 누군가 한 명이 귀가 멍멍할 정도의 소음을 누르며 “영화관에 가자!”고 소리 질렀다. 그러자 온 방의 사람들이 벌떡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엄마는 커피 탁자에 발을 올린 채 거실 의자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하품을 하며 조용히 “나 뭐 좀 먹고 싶구나”라고 말했다.
영화관 얘기는 순식간에 잊혔다. “그래! 뭐 좀 먹자.” “나 진짜 배고파!” “배달시키자!” 옆방에서 다시 소리쳤다. “나 온종일 먹을 때만 기다렸어……” 자, 바로 이런 걸 두고 권력이라고 하는 것이다.(『컬러 오브 워터』, 305-306쪽)
『엄마를 부탁해』는 지금까지 2백만 부 가깝게 팔린 베스트셀러인 데다 영어로 번역되어 미국에서도 호평을 받았고 최근에는 ‘2011 맨 아시아문학상(Man Asian Literary Prize)’ 최종후보로 선정될 만큼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모두 5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각 장마다 다른 화자가 등장(1장과 5장의 화자는 ‘너’로 동일)하여 실종된 엄마의 과거를 복원하면서 남편과 시누이, 아들과 딸의 신분으로 얼마나 그녀에게 못되게 굴었는가를 반성하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한국 어머니의 희생과 고통을 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문체로 직조하여 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이 작품을 읽은 많은 독자(전문 비평가를 포함하여)가 가슴이 “먹먹해 몇 번이나 읽다 덮었다 다시 펼치기를 반복했다”고 고백하는 것만으로 이 소설의 파장력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엄마는 우리 기억 속에 고착된 전형적인 엄마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이질적 요소가 존재한다. 말하자면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자식들의 절대적 존경을 받으며 자식을 기르고 가정을 지켜왔던 전통적 엄마 신화와 다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다.
“엄마를 잃어버린 지 일주일째다”란 문장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생일상을 받기 위해 서울에 올라온 엄마가 지하철에서 실종된 뒤 가족이 모두 나서 찾아 헤매지만 9개월이 되도록 찾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큰딸, 큰아들, 남편, 그리고 엄마 자신의 시점으로 진술하는 특이한 양식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다중시점은 하나의 고정된 관점만으로 규명하기 어려운 사건의 전모를 입체화하고 종합하는 데 기여하는 것 같지만, 엄마가 새[鳥]로 환생하여 등장하는 4장은 다소 뜬금없다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환상적 서사방식은 가족의 기억으로는 도저히 재구성할 수 없는 엄마의 비밀이나 속내를 독자에게 알리는 데 다소 효과적인지 몰라도, 작품의 전체 구성이나 미학적 완결성을 고려할 때 필수적 요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엄마의 시점으로 진술되는 4장 ‘또 다른 여인’에서 엄마는 둘째딸 집과 고향집에 새의 형상으로 나타나 이제까지 가슴 속에 담아왔던 속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그녀에겐 남편 이외에 “행복할 때보다 불안할 때 찾아갈 수 있어서 내 인생을 건너올 수 있었”던 한 남성이 존재했음이 드러나면서 독자에게 큰 파장을 남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충격적인 장면은 시어머니같이 어려웠던 시누이에게 “선산의 가묘로는 안 갈라요”, “오십년도 넘게 이집서 살았응게 인자는 날 쫌 놔주시오”라고 말하고, 남편에게조차 “잘 있어요…… 난 이제 이 집에서 나갈라요”라며 시집과 인연을 끊겠다고 단호히 선언하는 대목이다. 전통적 유교사상에서 여성의 운명은 아버지와 남편, 아들에게 종속되는 것[三從之道]으로 규정되며, 시집의 선산에 묻히고 제사로 모셔지는 것을 당연한 권리이자 영예로 여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엄마는 그러한 전통관습을 부정하고 죽어서라도 시집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되겠노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식과 남편, 시집을 위해 한평생 자신을 희생해왔던 여성이 죽은 영혼이 되어 시집과 인연을 끊겠다고 하는 서사는 한국 현대소설사에서 거의 유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시집으로부터의 자유선언이 어떤 정신적 배경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좀 더 면밀히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엄마를 부탁해의 또 다른 문제는 살아 남아있는 형제들끼리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불화하다가 급기야 오빠가 여동생의 전화를 받지 않는 상황으로 치달아 가족 붕괴의 조짐까지 보인다는 점이다.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 역시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생한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그녀의 시집살이는 “먹고사는 일이 젤 중했어”라는 말로 요약될 만큼 가난하고 궁핍한 것이었지만, 문맹인 그녀가 자식교육을 위해서는 그 무엇도 아끼지 않는 극성을 보인 덕분에 자식들 모두 대학을 마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가족의 식량을 가로채려던 남성의 딱한 처지를 목격한 뒤 젖어멈 역할을 자청하기도 하고, 젊어서 죽은 시동생의 이름과 같은 보육원 아이에게 남다른 애정을 보이는 등 한국 어머니의 전형적 행동을 그대로 따른다. 하지만 그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식들에게 소외되고 무시당하면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린다. 남편이 외도를 하는 동안에도 가정을 지켜왔던 그녀가 서서히 약해지다 느닷없이 실종되면서 형제간에 균열이 생기고 가족이 붕괴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엄마를 부탁해가 던진 가장 근본적인 문제의식과 문화적 충격이 이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버지가 부재하던 시대에 엄마는 자식을 보살피고 집안을 지키는 기둥역할을 했지만, 엄마가 실종된 현대사회에서는 가정과 가족관계가 해체되는 판이한 양상이 빚어진다. 이 작품 속의 아들, 딸이 엄마를 찾기 위해 벌이는 온갖 노력과 수고는 매우 감동적이며, 엄마의 실종기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의 책임을 묻는 장면은 대단히 핍진스럽지만, 그들의 언행에서는 엄마의 신화와 권력에 대한 이해와 존경심이 별로 감지되지 않는다. 특히 작가인 큰딸은 “엄마는 나쁜 딸 낳아서 좋겠다! 그래! 나는 나쁜 년이야!”라고 막돼먹은 듯이 소리를 지르거나 “시골 사람들이 정말 더한다니까. 개가 불쌍하지도 않아요?”라고 엄마를 모질게 닦아세운다. 엄마가 실종된 지 9개월이 지난 시점에 작가인 큰딸은 바티칸에 가 시스티나 예배당의 피에타상을 보고 나오면서 “엄마를, 엄마를 부탁해?”라고 중얼거리는데, 그것조차 자신의 책임을 신에게 떠맡기려는 이기적 행위로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5. 엄마 신화의 변화와 그 의미
『에미』·『컬러 오브 워터』·『엄마를 부탁해』는 모두 엄마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삶을 다룬 소설로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에미·컬러 오브 워터의 엄마는 육체적 결함을 갖고 있고 친정과 불화하는 데다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 않은 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식을 기르며, 에미·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남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근대 교육제도의 혜택을 거의 받지 않은 것으로 그려진다. 이 세 작품의 엄마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미), 6·25 이후(엄마를 부탁해), 1930년대 경제적 공황기(컬러 오브 워터) 등 가난과 궁핍을 뼈저리게 겪으면서도 자식의 교육에 전력하여 인텔리계층으로 키운다. 또 에미·컬러 오브 워터의 엄마는 남에게 털어놓고 싶지 않은 과거 때문에 평생 고통스럽게 살아오다가 마지막 순간 그 사실이 밝혀지면서 정신적 억압과 구속에서 해방된다. 하지만 엄마를 부탁해의 경우는 엄마가 정신적으로 의지하던 한 사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독자만 알 뿐 가족은 모르며 그 고백으로 해결되는 문제도 없다. 에미·컬러 오브 워터의 엄마의 과거는 어쩔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과 관습 때문이어서 가족과 자식을 위한 행위로 이해되지만, 엄마를 부탁해의 사건은 남편의 외도에 대한 반발로까지 오해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에미』·『컬러 오브 워터』의 엄마는 때로 괴팍하고 막무가내에 가까운 고집을 부려도 자식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는다. 그들은 엄마의 신화와 권력을 수긍하고 거기에 기꺼이 복종함으로써 엄마의 신화와 권력을 완성시킨다. 그러나 엄마를 부탁해의 자식들은 엄마가 큰 희생과 사랑을 베풀어준 것은 인정하면서도 엄마도 “엄마가 필요”한 가녀리고 나약한 여성이었음을 환기시킴으로써 엄마의 신화를 부정한다. 그러한 인식은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는 동서고금의 오래된 ‘엄마 신화’를 거부하는 것이어서 많은 논의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엄마의 권력(권위)을 인정하지 않는 자식들이 엄마를 믿고 따르기는 어려울 것이고, 따라서 엄마의 존재는 위축되고 소외되다 버려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우연히 실종된 게 아니라 교묘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유기(遺棄)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만큼 현대 한국사회에서 엄마의 위상과 권위는 절대적 자리에서 밀려나 마침내 입지마저 소멸될지 모를 위기에 놓여 있다. 에미의 아들은 엄마가 배우지 못하고 사팔뜨기라 하여 무시하지 않지만 엄마를 부탁해의 큰딸은 대놓고 엄마를 괄시한다. 그 대목에 이르면 마치 막장 드라마의 한 장편을 보는 것 같아 거북하고 불쾌한데, 명색이 소설가인 큰딸은 그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절대권력자로 군림할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으며 그 신화와 권력은 시대나 공간에 따라 달라지거나 변해도 무방한 게 아니다. 에미의 화자는 엄마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엄마를 미워하거나 배척하지 않고 그녀의 평생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버지와 동생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컬러 오브 워터의 열두 자식은 나이가 들어서도 엄마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모습을 연출함으로써 엄마를 자랑스럽게 하고 독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힌다. 늙고 쇠잔해진 엄마 옆에서 재롱을 떠는 듯한 그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언제까지라도 잊지 않고 버리지 말아야 할 아름다운 풍경이다. 엄마를 부탁해가 수백만 독자의 마음을 울리고 효심을 부추긴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엄마를 신화적 위치에서 끌어내린 문제점은 지적되어야 한다. 엄마 신화와 권위는 종교의 그것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