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이하 『촌킨』)Жизнь и необычайные приключения солдата Ивана Чонкина』(1975)은 소련·러시아 작가 블라디미르 N. 보이노비치(1932~)의 대표작이다. 보이노비치는 1961년 문예잡지 《신세계Новый мир》에 집단농장 젊은이들의 삶을 진솔하게 그린 중편 「우리는 여기에 살고 있다」를 발표하여 문단에 데뷔했다.
《신세계》는 당의 기본 예술노선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틀을 거부하고 ‘해빙기’의 지식인층, 이른바 ‘60세대шестидесятники’의 자유주의적 성향을 적극적으로 표방하는 잡지였다. 그러나 1964년 흐루시초프 실각에 이어 ‘시냡스키-다니엘 재판’(소련 체제를 비판하는 작품들을 가명으로 서방에서 출판한 두 작가에 대한 재판. 두 명 모두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대한 작가 ‘63인의 탄원서’(보이노비치도 이에 서명했다), 솔제니친의 작가동맹 제명에 대한 항의 표명, 스탈린 체제의 거짓과 위선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한 『촌킨』의 서방 출판으로 보이노비치 또한 작가동맹 제명(1974), 국외 추방(1980), 소련시민권 박탈(1981)의 순서를 밟고 10년 간에 걸친 망명길에 오른다.
『촌킨』의 주인공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모범적 영웅들과는 달리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생아에 외모 또한 볼품없다. 그런가하면 제대를 코앞에 두고 경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주제에 스탈린 동지한테 정말 마누라가 둘 있느냐는 천연덕스러운 질문으로 정치교관을 혼비백산하게 만드는 팔불출이다. 그가 우여곡절 끝에 고장난 군용기 초병 임무를 띠고 도착한 집단농장 마을의 이름은 크라스노예, 그러니까 ‘아름다운 마을’ 혹은 ‘붉은 마을’이다.
헌데 ‘네 것 내 것 모두 우리의 것’(집산화 시절의 슬로건)이 된 이 ‘아름다운’ 집단농장 주민들은 전쟁 소식을 듣자마자 생필품을 사재기하려고 난투극을 벌인다. 알콜중독자인 집단농장 회장은 도저히 완수할 수 없는 중앙의 생산계획에 맞추어 거짓 보고서를 꾸미고 촌킨의 이웃인 아마추어 육종학자는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이름붙인 감자와 토마토가 한데 열리는 신품종 작물을 만들기 위해 제 집안을 온통 역겨운 거름 천지로 만든다.
마을출신의 노동영웅은 기자들을 대동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생산성 증대를 역설하느라 이제 정작 소젖을 짤 사람은 찾을 수가 없다. 그 이름을 들으면 우는 아이도 울음을 뚝 그치는 비밀경찰 ‘엔카베데’ 지부장은 거듭되는 오해 끝에 실수로 ‘히틀러 만세’를 외치고 아군의 손에 총살되고 만다. 소설의 결말은 아마추어 육종학자의 꿈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고된 노동의 결과로) 집단농장의 거세마가 시체로 발견되고 그 아래에서 “제가 죽거든 저를 공산주의자로 여겨 주세요” 라는 내용의 쪽지가 발견되자 과학의 신봉자였던 육종학자가 엉겁결에 가슴에 성호를 긋는 것으로 끝난다. 이러한 연이은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에 대한 연민을 잃지 않는 것은 다름 아닌 촌킨이며 그는 다시 돌아올 것을 약속한다.
세상에 발표된 후 보이노비치에게 새로운 고골의 출현이라는 찬사를 부여한 『촌킨』에 이어 그 후속편인 2권이 1979년, 3권이 2007년에 출판됨으로써 근 반세기에 걸친 촌킨 모험3부작이 완성되었다. 1987년에는 독일에서 근무한 KGB 요원이 미래 전체주의 국가의 권력자가 되는 디스토피아 소설 『모스크바 2042』를 발표했는데 새삼 소설 속 독재자의 과거와 푸틴 총리의 유사성이 흥미를 끌고 있다. 1991년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 시민권을 되찾았으며 그 후 러시아로 영구 귀국해 현재 모스크바 교외에 거주하고 있는 보이노비치는 러시아 부커상 심사위원장을 지내는가하면 자신의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하여 80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국내 정치, 사회 현안들에 대하여 왕성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반민주적인 푸틴 정권이 앞으로 채 2년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 『병사 이반 촌킨의 삶과 이상한 모험』은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출간될 예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