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21세기의 첫 십년을 보내며 우리 문학계는 2000년대 문학의 변화와 성과를 정리하는 작업들로 분주했다. 자세한 내용은 많은 문학잡지와 저널에서 다루었으므로 접어두고, 조금 다른 측면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2000년대는 문학이 소통하는 방식과 가치관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시기이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대중화’라고 할 수 있고, 부정적으로 표현하면 ‘이벤트화’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벤트는 진정한 의미의 ‘사건’이나 즐거운 ‘잔치’가 아니라, 품격과 감흥이 없는 소모적인 ‘행사’를 의미한다.

‘대중화’와 ‘이벤트화’는 유사해 보이지만, 성격이 좀 다르다. 대중화는 소통의 목적이고, 이벤트는 소통의 수단이다. 문학 소통의 대중화 수단으로 흔히 이벤트가 동원되지만, 이벤트가 대중화의 만능열쇠인 것은 아니다. 어떤 이벤트는 ‘문학’은 사라지고 적잖은 돈을 들인 팸플릿과 시설들만 남아 오히려 문학의 본질과 존재 이유를 무색하게 한다. 내용 없는 이벤트, 다른 목적이 있는 이벤트, 너무 많이 열려 식상한 행사가 되어버린 이벤트들이 그러하다.

현재 우리 문학의 소통 현실은 ‘대중화’와 ‘이벤트화’의 중간지대에 있는 듯하다. 다양한 공공단체에서 기획하는 문학 강연과 작가와의 만남, 문학작품을 주제로 한 여행, 전국의 지자체들이 경쟁하듯 벌이는 문학 축제와 문학관?문학마을 건립, 문학상 제정, 번듯하게 새로 지은 작가의 생가, 지하철 안전 유리벽에 빼곡히 새겨진 시들, 문학평론가와 다를 바 없는 수준 높은 독자들에서 악플을 서슴지 않는 독자들까지를 다양하게 거느린 문학웹진들, 경제논리에 무심한 듯 점점 더 많이 생겨나는 문학잡지들과 문학상들……

가치평가를 제쳐두고 외형으로만 보면 가히 ‘문학의 천국’이라고 할 만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 천국은 지금 자본의 논리와 정치의 논리, 탁상행정적 발상과 어설픈 대중화의 논리들이 끼어들어 그리 행복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다. 작가들은 훨씬 더하겠지만, 문학 소통의 대중화가 문단을 넘어 일종의 사회적 아젠다가 되면서 문학평론가인 내게도 글을 쓰는 일 외의 다른 활동의 기회들이 주어졌다. 문학 강연과 낭독회, 문학 콘서트의 사회를 보기도 했고, 문학의 밤이나 작가 추모제에서 시나 소설을 낭독하기도 했다. 그 중 어떤 시간은 훌륭했고, 어떤 시간은 지리멸렬했다. 어떤 시간은 생각을 깨우고 가슴을 울렸으며, 어떤 시간은 그저 안타까웠다. 참여한 사람들이 문학에 대해 진심 어린 감동과 열정을 안고 돌아간 자리가 있는가 하면, 지루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간신히 앉아 있다 떠난 자리도 있었다.

문학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과 비용이 문학의 소통에 바쳐지고 있는 것에 대해 일단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정말, 오늘 우리의 문학은 우리 사회가 들이고 있는 비용만큼, 끊임없이 열리고 있는 축제만큼 더 잘 소통되고 있는 것일까? 비슷비슷하게 중복되는 행사들, 상상력과 진정성과 깊이가 부족한 행사들이 오히려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0년대에는 우리 사회가 문학의 목적과 본질, 소통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문학의 대중화를 위한 좋은 방법들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근본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사실 문학은, 특히 훌륭한 문학작품은 그 자체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사건, 즉 이벤트이다. 가장 훌륭한 이벤트는 ‘훌륭한 문학작품’ 자체인 것이다. 문학이 이벤트 자체이거나 적어도 이벤트의 주인공인 만큼, 문학을 ‘거리’와 ‘광장’과 ‘무대’로 초대하기 위해서는 그에 어울리는 품격과 감동, 깊이를 갖추어야 한다. 단기간의 효과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까지를 갖춘다면 더할 수 없이 빛나는 ‘이벤트’가 될 것이다. 소통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고,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