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서연호(徐淵昊) 저, 이토 요시히데(伊藤好英)·무라카미 쇼코(村上祥子) 공역의 『한국연극사-전통과 현대(韓國演劇史-傳統と現代)』가 일본의 아사히출판사(朝日出版社)에서 간행되었다. 이 책은 2006년 출판된 『한국연극전사』(연극과인간)를 원본으로 해서 일본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부분적으로 수정을 가한 원고를 대산문화재단의 해외 한국문학 연구지원을 받아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
『한국연극사-전통과 현대』의 간행을 통해 비로소 한국연극사의 전모를 일본어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기회에 일본에서 오늘날까지 한국연극사 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져왔는지, 기존에 간행된 단행본들을 중심으로 개관해 보고자 했다.
일본의 연극사와 한국의 연극사는 역사적으로 매우 깊은 관계에 있지만, 현재 일본어로 읽을 수 있는 한국연극사 관련 서적은 번역서를 포함해도 그리 많지 않다. 그 중 주된 책들과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명(書名)에 ‘예능’이란 용어가 쓰인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일본에서 ‘예능’이란 말은 공연예술(performing arts)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무대연극뿐만 아니라 마당에서 이루어지는 연희(演戱), 축제에서의 민속연희도 포함된다. 이처럼 협의의 연극사를 내포하는 연희사(演戱史)를 연구하는 학문을 일본에서는 ‘예능사(藝能史)’라 부른다. 이하에 개관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의 한국 연극사 연구(한국 예능사 연구)이다.
1970년대까지 일본어로 읽을 수 있는 한국연극사 책은 인나미 코이치(印南高一)의 『조선의 연극(朝鮮の演劇)』(홋코쇼보北光書房, 1944) 한 권뿐이었다. 이 책은 고악(古樂)·가면극·인형극·판소리에 관한 기술을 중심으로, 근대연극에 관한 약간의 기술이 덧붙여져 있었다.
1980년대에 들어와 양민기(梁民基)·구보 사토루(久保覺) 편역의 『가면극과 마당극(面劇とマダン劇)』(쇼분샤晶文社, 1981)과 김양기(金基)의 『한국가면극의 세계(韓面劇の世界)』(신진부쓰오라이샤新人物往社, 1987)가 간행되었다. 전자는 1970년대에 민중적 에너지의 개방으로 일어난 가면극의 부흥을 다룬 여러 저자들의 논고를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고, 후자는 한국의 가면극과 인형극의 표박성(漂泊性)과 풍자성을 논하며 그 매력을 전달하는 내용이다.
1990년에 이두현(李杜鉉)의 『조선예능사(朝鮮藝能史)』(동경대학출판회東京大學出版會)가 간행되었다. 이 책은 한국에서 1973년에 출판된 『한국연극사』(민중서관) 중에서 조선시대까지의 연희와 가면극·인형극 전승에 관한 중요부분을 발췌하여 일본어로 옮긴 것으로, 이후 일본에서 예능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필독서가 되었다. 1993년에 상영된 영화 <서편제>의 인기에 의해, 일본에서도 광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기 시작한 가운데 1995년에 노무라 신이치(野村伸一)의 『무와 예능자들의 아시아(巫と藝能者のアジア)』가 출판되었다. 이 책은 광대들의 생활을 통해 한국예능의 기층을 새롭게 인식하고, 나아가 그 시선을 아시아 다른 지역의 예능으로까지 돌리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자, 이상과 같은 한국의 전통연희에 관한 연구를 한층 더 세밀화한 번역서와 연구서들이 간행되었다. 2002년에는 설성경(薛盛璟) 저, 오타니 모리시게(大谷森繁) 감수, 니시오카 겐지(西岡健治) 역 『춘향전의 세계(春香傳の世界)』(호세대학출판국法政大出版局, 원본은 『춘향전의 통시적 연구』）가 출간되었고, 2004년에는 전경욱(田耕旭) 저, 노무라 신이치 감수, 이미강(李美江) 역 『한국가면극(韓國面劇)』(호세대학출판국)이 출판되어, 한국의 전통연희에 대한 일본인들의 이해가 큰 폭으로 진전되게 되었다. 또한 2006년에는 이토 요시히데(伊藤好英)의 『오리쿠치학으로 풀어보는 한국예능(折口學が讀み解く韓國藝能)』(게이오기쥬쿠대학출판회慶應義塾大學出版會)이 간행되었다. 이 책은 오리쿠치 시노부(折口信夫)의 ‘마레비토’, ‘요리시로’라는 독자적 종교학 이론을 동원해, 광대의 활동 등 한국연희의 역사적 현상을 일본의 민속연희와 비교하면서 풀이해 낸 것으로, 최초의 본격적 한일비교연희사 연구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연희·연극에 관한 이와 같은 책들에 이어 이번에 『한국연극사-전통과 현대』가 가세함으로써,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연희사를 포함한 한국연극사의 전모를 비로소 일본어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에 간행된 책들의 내용들을 보더라도, 지금까지 일본 학자들의 관심은 주로 한국의 전통연희에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류 붐 이후 일반인들의 관심은 드라마나 영화에 대한 관심에서,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고자 하는 형태로 한국의 현대연극 분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국연극사-전통과 현대』는 바로 그와 같은 관심에도 부응할 수 있는 내용까지 담고 있는 종합적인 연극사인 것이다. 이 책은 한류 붐을 불러일으킨 한국 드라마나 영화의 힘이, 그 원천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를 일본인들에게 실감케 해주는 책이 될 것이다. 이 책의 간행을 통해 앞으로 일본에서 한국연극과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리란 것을, 역자의 한 사람으로서 확신해마지 않는다.
※ 『한국연극사-전통과 현대(韓國演劇史-傳統と現代)』는 재단의 해외 한국문학 연구지원을 받아 이토 요시히데(伊藤好英)·무라카미 쇼코(村上祥子) 공역으로 일본의 아사히출판사(朝日出版社)에서 출판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