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가들은 셰익스피어가 1610년부터 1612년 사이에 썼을 것으로 추정하는 일련의 작품을 비극, 희극, 역사극과 구분하여 다른 장르로 불러 왔다. 셰익스피어의 말기에 쓰여 졌기 때문에 말기 극이라고도 불리는 이 작품들에는 일반적으로 「페리클리스」, 「심벌린」, 「겨울이야기」, 「폭풍」이 포함된다.
학자에 따라서는 「헨리8세」(추정 저작연대 1613년)와 드물게 「두 귀족 사촌형제」(추정 저작연대 1613-1614년)를 추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네 작품이 처음부터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취급을 받은 것은 아니다. 에드워드 다우든(Edward Dowden)은 1877년도에 출판한 그의 저서 『셰익스피어 : 그의 사상과 예술에 대한 비평적 연구』(Shakespeare: A Critical Study of His Mind and Art [London: Macmillan])에서 「페리클리스」, 「심벌린」, 「겨울이야기」, 「폭풍」을 로맨스라는 장르로 분류하였다.
이후로 많은 학자들은 위의 작품 군에서 다양한 로맨스 전통을 찾아내었다. 대표적으로 페팃 (Ernest C. Pettet)은 로맨스 전통을 변장, 사람 잘못 알아보기, 목가적 배경, 화해와 용서 등으로 보았다.
로맨스 전통이 독자들에게 낯설기도 하거니와 비평가들이 로맨스 극에 편견을 가지고 대한 결과로 종래 비평에서 이 말기 극들이 비극과 희극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로맨스 극에 대한 관심 부족은 영미에서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런 시대적 맥락을 살펴볼 때 최근 이상섭 교수가 번역한 『셰익스피어 로맨스 희곡 전집』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번역서가 한국에서의 로맨스 극에 대한 새로운 평가를 활발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리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위의 번역서에는 통상 로맨스 극이라고 불리는 네 작품 외에 「두 귀족 사촌 형제」가 들어 있다. 책의 말미에는 번역자의 로맨스 극에 대한 해설과 작가 연보가 첨부되어 있다.
이상섭 교수의 번역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셰익스피어 로맨스 희곡 전집』이 기존에 출판된 몇몇 번역과의 차별성을 가지게 된 이유도 바로 이러한 특징에 기인한다.
첫째, 번역자는 바탕본문으로서 스탠리 웰즈와 게리 테일러가 편집한 『옥스퍼드 판 셰익스피어 전집』을 사용하였다. 셰익스피어 본문비평에 대하여 실험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위의 편집자들은 「페리클리스」를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작가 조지 윌킨스(George Wilkins)의 공동작으로 생각하여 기존의 본문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본문을 제시하였다. 둘째, 『셰익스피어 로맨스 희곡 전집』은 영어의 운문을 한국어의 전통적인 율격으로 표현하였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이 산문과 운문으로 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운문을 우리말로 번역할 때 영어의 ‘약강오보 격 무운시’(blank verse)를 어떻게 우리말의 운율로 표현하는가는 지금까지 숙제거리였다. 그런데 번역자는 우리의 가사문학이나 판소리문학에서 볼 수 있는 4·4조의 운율로 셰익스피어의 운문을 번역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였다. 예를 들어 「심벌린」의 4막 2장에서 심벌린 왕의 잃어버린 아들 귀디리어스가 부르는 청춘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무상함에 대한 노래를 번역자는 다음과 같이 4·4조의 율격으로 번역함으로 이 시의 감동을 한국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귀디리어스 뜨거운 햇볕도 무서워 말고
겨울의 모진 바람 겁내지 마라.
세상의 힘든 일 모두 끝내고
삯돈 받아 집으로 돌아갔으니
황금부자 아이나 굴뚝 쑤시게,
누구나 꼭 같이 흙이 된단다. (260-265행)
셋째, 셰익스피어 번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초기 현대영어로 된 원문을 정확하고도 시적으로 옮기는 일일 것이다. 흔히 우리말 어휘와 표현의 어색함과 부족함으로 인하여 무리가 따르기 쉬운데 번역자는 이를 극복하고 때로는 토속적인 표현을 때로는 일상적인 표현을 찾아내어서 원문의 의미를 우리말로 살리는 데 성공하였다.
이 번역서가 한국에서의 로맨스 극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공연의 진작에도 지대한 공헌할 것을 생각할 때 이 번역서의 출간은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셰익스피어 로맨스 희곡 전집』은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대산세계문학총서 77권으로 출판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