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앞에서 소주 마시다 ‘글 쓰는 사람 중에도 야구광 좀 있겠지?’ 하며 창단한 문인야구단 구인회(球人會)가 벌써 2년째를 맞이했소. 땡 겨울에 코 찔찔거리며 서너 명이 공놀이하던 수준에서 무려 26명의 단원을 가진 건장한 야구팀으로 성장했소. 이젠 선수가 많아 주전 경쟁이 치열하오. 글러브 달랑 두 개, 공 하나로 시작했던 장비도 급격히 늘어 배트만 여섯 자루에 헬멧이 열 개도 넘는다는 게 자랑이오. 구단주인 파란미디어 박대일 대표가 그간 돈 많이 썼소. 그리고 글쟁이들이 야구 한다니까 명예 구단주 박범신 선생님이 무려 한국야구위원회 유영구 총재님과 다리를 놔줘 장비 일체를 지원 받는 쾌거도 있었소. 돈 많이 드는 사회인 야구를 가난한 작가들이 남부럽지 않게 하고 있는 게 유쾌하오.
매번 파주, 이천, 연천, 횡성 등의 장거리로 야구하러 가곤 했었는데 올해부터는 서울 시내 한 복판에서 벌어지는 야구 리그에 당당히 가입했소. 자립을 위해 선수들끼리 야구 에세이집도 열심히 만들고 있소. 콜드게임이 기본이고 패배에 유려하던 우리들이 벌써 4승째를 거두면서 실력과 정신력도 진화하고 있는 게 참 꿈같소.
술자리에서만 보던 작가들이 슬금슬금 그라운드에 모여 캐치볼을 하는 모습이 처음엔 퍽 그로테스크했소. 하지만 글을 쓸 땐 강한 개성을 떨치는 사람들이 야구할 땐 팀에 융화되어 완전한 유기체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놀랍소. 우리들은 마감을 펑크 낼 기세로 야구하고 있지만, 야구는 술이나 원고지와 싸울 든든한 체력을 선사하니까 상관없소.
우리 26인의 아해들은 이렇게 막 그라운드를 질주하기 시작했소. 그런 우리가 야구하는 모습을 아래에 그려보겠소. 그동안 잘했던 플레이만 뻥튀기 짜깁기로 묘사한 것이니 ‘좀 하나보다’ 하고 오해 말기 바라겠소.
마운드에 서 있는 좌완 선발은 감독 박형준. 시인이 가슴의 환한 고동으로 구사한 공은 무려 절묘한 변화구. 그것은 스트라이크 존 구석의 폐부를 찌르며 타자를 황망한 삼진으로 떡실신 시켜버리오. 다음 이닝엔 젊은 시인 정영효가 마운드를 이어받소. 포수 서효인 시인이 내는 사인을 노려보던 그는 높은 키에서 찍어 누르는 일품의 직구를 던져 상대에게 시심을 강요하오. 그러나 상대도 만만치 않소. 실투 하나를 놓치지 않고 때려내, 타구가 투수 옆을 사정없이 스치오.
그때 또 다른 젊은 시인 유격수 박준 선수가 어느새 날다람쥐처럼 공을 건져내더니 정확히 송구하오. 1루수 고운기 시인은 자전거 타고 노래 부르듯 그걸 편안히 잡아내오. 안타성 타구를 때린 타자는 감동적인 시를 읽은 듯 입을 벌리고 아웃. 그렇게 시인 4명이 한 타자를 쌈 싸먹어 버렸소. 공수교대. 비쩍 마른 소설가 한 명이 낯설게 하기 타법으로 타석에 섰소. 매니저인 아내가 응원을 시작하오. ‘박상~ 박상!’ 아내 목소리를 들으면 힘이 나는 그는 3루 선상을 타고 흐르는 안타를 때려내고 키스 세리머니를 날리오. 다음 타자 백가흠 소설가가 사비를 털어 과감히 지른 오렌지색 ‘불빠따’를 휘둘러 박상을 홈에 불러들이고, 느린 발로 도루까지 성공하오. 선수들이 술 덜 깬 그의 파이팅에 박수를 보내오.
2루수 박성원 소설가도 잇따라 안타를 때려내고 2루까지 내달려 슬라이딩 세이프. 유니폼에 ‘얼룩’이 생기고 응원하던 아들 예준이가 소리치며 아빠를 자랑스러워하오. 그리고 코치인 여태천 시인이 타석에 들어와 그동안의 부상을 극복하는 ‘스윙’으로 아주 큼지막한 자축포를 발사하오. 뒤이어 심보선 시인이 슬픔이 없는 타구를 때려내 주자를 싹 불러들이오. 은희경 매니저가 사구에 맞은 유망주 김문식 에디터 대신 대주자로 나가 꿈처럼 2루와 3루를 훔쳐내고 빠른 발로 득점까지 성공하오. 분위기가 넘어오자 다음은 평론가가 수비할 차례. 조강석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 특유의 통찰력 있는 직구를 미트에 꽂아넣소. 그런데 어설프게 빗맞은 타구가 텍사스 지역으로 날아가는 게 아니겠소. 아무래도 못 잡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센터필더이자 주장인 평론가 서희원이 ‘마이 볼!’ 하고 달려와 문학의 정수인 듯 그 어려운 타구를 멋지게 건져내오. 뒤를 이어 에이스인 시나리오 작가 윤형식 선수가 강속구를 박음질하며 경기를 깔끔하게 ‘크랭크 업’ 하오.
경기가 끝난 뒤 하이파이브를 할 땐 머리가 희끗한 시인도, 팀의 막내인 시인도, 전날 술을 많이 마신 소설가도 모두 웃으며 즐거워하오. ‘즐겁지 않으면 야구가 아니다.’ 우리 야구단의 구호는 오늘도 살아있는 언어가 되어 우리 26인의 아해 사이를 즐겁게 질주하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