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인연 덕택에 김치수 선생을 가까이서 뵐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아무튼 덜컥 대담의 진행을 맡고 나서는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새삼 선생의 책들을 꺼내 읽던 중에 말 그대로 동고동락을 함께 해 온 동료 문인들이 쓴 인상기에 저절로 눈이 멎는다.
어떤 글에서 선생은, 웬만해선 화를 잘 내지 않고 오히려 상대방의 장점을 잘 찾아주는 시골의 형님 같은 타입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서 “그에게는 영 ‘시골 형’답지 않은 면모가 있어 사람을 한 면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주기도 한다.” 또 다른 글에서는 이렇게 묘사되기도 한다. “가까운 친구로 오랜 시간을 두고 사귀었어도 그 속을 좀체 알 수 없는 난해한 사람이 세상에는 가끔 있다. 김치수가 바로 그런 난해한 사람인데, (……) 그 외모에서 풍기는 수더분한 인상과 달리 감각적으로 매우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다.” 수십 년을 사귀어 온 지인들의 말에 어찌 거짓이 있을쏘냐. 인왕산 자락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뵌 선생은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시종일관 자상하고 친절하게 이야기를 이어나갔지만 때로는 날카롭고 직정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0년 단위로 굵직굵직한 역사적 격변들이 잇따랐던 탓에 2010년 올해는 기억해야할 사건이 많다.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보다 분명히 느끼기를, 선생의 비평은 한국근현대사 혹은 근현대문학사에 대한 대단히 명징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씌어졌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역사의식의 기원에 대학 신입생 때 겪은 4·19가 놓여 있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4·19 50주년이 되는 해 벽두에 선생을 뵈었으니 자연스레 이야기가 그쪽으로 흘렀다.
얼마 전 <한국일보>와 문학과지성사가 함께 마련한 최인훈 선생과의 대담에서 “4월 18일 고려대 학생들이 시위 도중 깡패들의 습격을 받은 것에 격분한 서울대생들이 이튿날 오전 시위에 나섰고, 나도 대학 동기인 고(故) 김현과 대열에 합류했다. 광화문 중앙청 앞은 서울 지역 대학생들로 인산인해였다. (……) 당시엔 우리가 뭔지 모르고 했던 일이 그토록 엄청난 결과를 낳으리라곤 생각 못했다”라는 말로 당시를 회상했던 김치수 선생에게 4·19란 무엇보다 체험의 직접성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에 대한 역사적 접근의 첫번째 단계는 ‘왜 우리가?’라는 질문이 아니었을까? 선생은 그 ‘우리’의 기본적인 특징을 해방 후 우리말로 된 교육을 최초로 받은 세대에서 찾는다. 이는 한국어라는 매체를 통해 배우고 사유했다는 것뿐 아니라 식민지 교육과는 전혀 다른, 세계사적이고 보편적인 전망 안에서 배우고 사유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보편적인 이념을 배우고 이를 실천한 4·19 세대가 우리나라의 현대화에 있어 중요한 기점을 마련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5·16 쿠데타로 들어선 군사정부에 의해 4·19 정신 혹은 자유민주주의가 억압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전적으로 부정될 수는 없었고, 또 비판세력으로서의 4·19 정신 때문에 경제개발이 보다 성실히 수행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서의 4·19와 경제발전에 대한 열망으로서의 5·16의 길항이 우리나라의 현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선생의 견해를 경청하지 않을 수 없다.
4·19 세대의 역사적 위치에 대한 자각은 1960년대 내내 국사학계에서 활발했던 식민사관 극복을 위한 작업의 성과와 발맞추어 진행되었던 바, 이는 곧 자기 세대의 문학 정신을 규명하고, 나아가 자기 세대의 시선으로 본 문학사를 정립하려는 의욕적인 활동으로 이어진다. 대학 시절부터 <산문시대>와 <6·8문학>의 동인으로, 1970년부터 <문학과지성>의 동인으로 활동했던 김치수 선생은 동세대 작가의 작품을 정확하게 읽고 이해함으로써 그 문학적 가치를 평가하는 데 힘쓰는 한편, 평론 등단작인 「염상섭 재고」(1966)를 필두로 하여 사조사와 문단사 중심으로 재단된 식민지 시기 작가들에 대한 올바른 재평가를 위해 노력했다. 아마도 이러한 의욕적인 작업의 성과가 김병익, 김주연, 김치수, 김현 4인 공저의 『현대한국문학의 이론』(1972)으로 가시화되었을 것이다. 이런 작업은, 어떻게 보면 전공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자신의 전공 이외의 영역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요즘 사람들에게는 엄두가 안 나는 일로 다가오기 쉽다. 그 성과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후학들의 몫일 것이나, 아무튼 김치수 선생을 비롯한 그 세대의 작업은 어떤 시대의 앞줄에 섰던 사람들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하겠으니 참 아득하기도 하고 존경스럽기도 하다.
이야기가 좀 딱딱한 방향으로 흘렀지만, 대담 내내 선생에게서 가장 뚜렷이 발견할 수 있었던 면모는 진정한 문학 애호가로서의 그것이었다. 『문학의 목소리』(2006)의 저자 서문에 씌어진 다음과 같은 구절, “동시대의 많은 작가와 시인들 그리고 비평가들과 문학을 함께하는 것이 내게는 행복이었다. 그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과 함께 상상하고 그들과 함께 괴로워하고 그들과 함께 느끼고 그들과 함께 표현할 수 있을 때 나는 즐겁고 행복했다”라는 말 자체는 누구나 할 수 있겠으나 실로 반세기에 걸쳐 그 말을 실천에 옮긴 사람의 입을 통해 확인하는 것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삶 자체일 것이다.
『문학의 목소리』를 출간하던 해 오랫동안 몸 담았던 대학에서 정년을 맞은 선생은 스스로에게 두 가지 약속을 했다고 한다. 첫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지 않는 것이고, 둘째는 마감이 정해진 원고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물론 혼자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위한 약속이었다. 그 두 가지 약속은 어떻게 되었을까? 첫 번째 약속은 결연히 지켰지만, 두 번째 약속은 어쩔 수 없이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두 번째 약속을 어기는 것이 글을 마무리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고 하니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을 터이다. 아무튼 그렇게, 읽고 싶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쓴 글들이 어느새 다시 책 한 권 분량이 되어 이번에 『상처와 치유』(2010)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그런데 반세기 이상을 읽고도 더 읽을 문학작품이 있는 것일까? 아니, 이제는 새롭게 출간되는 작품을 읽는 대신 문학에 대한 보편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렇게 우문을 던져 본다. 사실 선생은 비평가이지만 동시에 불문학자이고, 로브-그리예의 『누보로망을 위하여』(1981), 토도로프의 『러시아 형식주의』(1981),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1997), 『모드의 체계』(1998), 마르크 로베르의 『기원의 소설, 소설의 기원』(1999) 그리고 르네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2001) 등과 같은 주요한 문학이론을 번역하고 우리 문학 분석에 도입해 문학 비평 및 연구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또 한국기호학회를 창립하기도 했다.
학자로서의 선생의 업적을 꼽자면 여러 개의 손이 더 필요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은 이른바 ‘현장’ 비평가로 남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왜 그럴까?생각해 보면, 선생이 번역한 책 중에는 구조주의나 기호학과 관련된 것이 적지 않지만 비평에서는 여전히 문학작품 읽기를 통해 새로운 정신을 만나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작업이 수행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학 공부는 결국 삶과 하나로 연결되어야 하며, 또 올바른 문학 공부는 삶과 연결되기 마련일 것이다. 문학을 통해 배우는 삶은 나 자신의 삶이면서 동시에 나를 비롯한 다른 모든 사람의 삶, 나아가 세계 전체가 아니겠는가? 선생은 아마도 그런 취지에서 “나에게 있어서 문학은 나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그것은 세계와 삶이 어떤 것이고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내게 질문하게 만들고 상상하게 만듭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다시 한 번 질문해 보자. 선생은 왜 여전히, 그것도 행복해하며 문학작품을 읽는 것일까?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하자면, 선생이 정년퇴임 후에 문학작품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유일한 계획으로 삼았다는 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기도 하고, 아마 선생 또한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직업이니만큼 경제적인 문제가 걸려 있기도 하고 또 하기 싫은 일을 얼마간 감수해야만 하는 것도 당연지사다. 정년을 맞아 직장에서 물러나 유일하게 하고 싶은 일이 문학작품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라면, 그것은 문학작품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년퇴임을 한다는 것이 교수로서의 은퇴를 의미하지 문학인으로서의 은퇴를 의미하지는 않으며, 앞으로도 문학이 삶의 중심이 될 것임을 힘주어 강조했던 것이리라.
아닌 게 아니라 선생은 『광장』을 말하고 『보바리 부인』을 말할 때, 그런 소설들을 읽으면서 얼마나 즐겁고 귀한 경험을 했는지를 말하지 않고는 못 참겠다는 듯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것은 옛 성인의 말대로 잘 아는 것을 넘어 정말로 좋아하고 즐기는 자의 태도이다. 이렇게 문학작품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진정 좋아하고 즐기는 일이라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단지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에 문학작품을 읽고 글을 쓴다면 그것은 대단히 자유로운 활동일 것이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원래 일회적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을 넘어 다른 사람들의 삶을 통해 다시 살고 달리 살아볼 수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대단히 너그러운 활동일 것이다. 선생은 여러 자리에서 자신의 비평을 포함한 4·19 세대의 비평이 네거티브한 비평이 아니라 좋은 작품을 발굴하고 그것이 왜 좋은지를 밝히는 포지티브한 비평이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실은 4·19 세대 비평가의 특징이 아니라 문학을 좋아하고 즐기는 비평가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불행히도 요즘 사람들은 책 읽기를, 문학작품 읽기를 적어도 선생만큼은 즐기지 않는 모양이다. 우선 나부터도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즐기는 일이 문학작품 읽기일까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 문학을 덜 즐길까, 혹 세상이 변했다는 근본적인 원인 때문은 아닐까라는 우문을 다시 한 번 던져 본다. 선생은 다시 한 번 삶과 하나로 연결된 문학을 강조하는 것으로 대답을 시작한다. 고등학교 때까지 어떻게든 문학작품을 접하게 되지만, 그것을 지식으로서만 이해할 뿐 자신의 체험과 연결하지 못하고, 따라서 삶과 분리된 문학만을 배운다. 그것은 시험 문제에서 정답을 골라낼 수는 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이 왜 좋은지 그 이유를 제대로 답하지는 못하는 절름발이 문학 교육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학을 이해하는 데 정답이 있을 리 없다. 그것은 삶 자체가 원래부터 정답이 있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문학작품을 꼼꼼히 읽는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허황되지 않게 사는 것이며, 또 문학작품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 역시 그러하다는 것이다. 선생은 모든 근대소설의 주인공이 불행한 인물이며, 법률적으로는 범죄자, 도덕적으로는 타락한 자, 윤리적으로는 패륜아인 이유를 생각해 보자고 한다. 왜 그럴까? 삶의 답이 정해져 있다면, 굳이 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울 필요가 없지 않은가?
아마도 문학이 제시하는 답이란, 누구의 삶이 옳고 누구의 삶이 그른가를 판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삶을 이해하려 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어수룩하고 평범한 시골 의사를 배신한 보바리 부인을 부도덕하다고 단죄만 할 것이 아니라 그녀의 욕망이 실은 우리 모두의 것임을 깨달을 수 있고, 또 그렇게 다른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삶은 일회적이지만, 문학을 통해 타인의 선택을 따라가 그 결과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여러 번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렇게 우리의 삶과 타인의 삶은 함께 사는 삶이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형편과 사정을 이해하는 너그러운 관용의 태도를 배울 수 있으며,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과도 함께 살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물론, 문학작품이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독자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 두드러진 디지털 문명의 발전은 삶의 양상을 지난 한 세기 동안의 변화를 능가할 만큼 급변하게 했으며, 이 때문에 삶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의 문제 역시 훨씬 어려운 것이 되었다. 근대문학이 애초에 불행한 주인공과 함께 출발했다지만, 개인과 집단 간의 불화를 넘어 이제는 대문자로 쓴 인간을 과연 인정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현실적으로 다가올 만큼 불행의식 자체가 심화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불행의식은 도덕이나 법률을 포함해 인간이 만든 모든 문명적인 것을 부정하려고 들 것이다. 문학의 기본적인 속성을 인간이 만든 도덕, 법률, 제도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문제 삼고 이를 통해 그 부당성을 확인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데서 찾을 수 있겠지만, 선생의 말마따나 그것이 단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감각만을 겨누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감각의 문턱은 점점 높아지게 마련이고, 따라서 자극적인 것만을 추구하다 보면 끝내는 일말의 죄의식까지도 없어지는 최악의 상황에 이를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의 극복은 결국 독자가 아니라 작가의 몫이다. 자극의 강도를 최대한도로 높여 대중에게 충격을 주려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아닌 다음에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망이나 꿈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고 그것이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 검토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문학의 몫이고 작가의 몫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가의 고민으로부터 독자는 자신이 아직 인간적인 사회에 살고 있다는 환상에 빠져 욕망조차 간접화되고 사물화되어 버렸음을 잊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반성을 읽어냄으로써 작가의 노고에 보답해야 하지 않을까? 선생이 바라는 작가와 독자의 관계가 보다 확산되기를 기대해 본다.
문학이 어려운 상황을 맞았다는 풍문에도 불구하고, 문학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론적으로, 혹은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주어진다”라는 믿음을 지니고 있는 선생은 문학작품을 읽을 시간이 더 많아졌음을 고마워한다. 그리고 우리 문학이 좀 더 풍요로워진 것에 기뻐하면서도, 조급하게 서둘러서는 안 되겠다는 조언을 잊지 않는다.
새로 나온 평론집의 교정을 보면서 선생은 요즘 우리 문학의 주요한 흐름의 하나가 개인이 체험한 역사적 상처의 기록인 것을 재발견하고, 삶의 양상은 바뀌어도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음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그 상처를 보편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 치유의 가능성에 도달할 수 있을까? 값싼 화해나 손쉬운 해피엔딩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수준에서 상처와 고통의 정체에 대해 반성하고 그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할 때 문학은 우리에게 타인의 상처에 공감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할 것이고, 또 우리 삶에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 것이다. 1940년생으로 올해 일흔을 맞았으면서도 여전히 행복한 책 읽기에 빠져 있는 선생의 모습에서 그러한 문학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담을 마치고 선생의 작업실을 나서면서 문득 자전 에세이에서 읽은 한 구절이 떠올랐다. 결국 또 문학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해묵은 질문에 대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자신의 무력감과 싸워야 했는지 모른다. 그때마다 이건 위선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나를 지탱하는 데 힘들게 했다. 나는 ‘굶어죽은 어린아이 앞에서 문학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굶어죽는 어린아이가 있는 사회가 얼마나 추문인가를 보여주는 것이 문학이다’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하며 문학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자 했고 문학을 붙들고자 했다.” 대담을 통해 좀 더 가까워진 선생의 삶에서 이 말의 진정한 무게를 확인한 덕분에 한편으로 위안을 얻었지만, 또 한편으로 나의 무력감과 위선은 과연 무엇으로 구원받을 수 있을지, 어두워져가는 거리를 지나는 내내 생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