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영문학관’을 지키는 명예관장 김수명 선생과의 대화
기획의 말 ①사야(買) 살(住) 수 있는 집 ②2013년과 2021년, 그들도 다른 그들처럼 ③집을 쫓는 모험 ④잠시 중지된
①의심을 품자, ②명품 위에 쓴 시,우리가 웅덩이를 안다 해도 갈 데가 없다
①강물을 읽다 ②누가 길 위에서 우는데 ③이게 내가 하는 일이에요
②무급휴가
최은영
소설가, 1984년생
소설집 『쇼코의 미소』 『내게 무해한 사람』 등
1.
현주는 그 방을 미리의 방이라고 했다. 그런 현주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미리가 그린 그림이 표구되어 벽에 걸려 있었다. 현주와 현주의 고양이 올빼미를 그린 그림이었다. 그 그림을 다시 보기 전까지 미리는 자신이 그걸 그렸다는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그걸 그렸던 때가 떠올랐다. 창문으로 가로등이 가까이 보이던 언덕 위 현주의 방, 휴일이 되면 그곳에서 잠을 몰아 자곤 했다.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자던 올빼미의 감촉과 올빼미의 부드러운 발바닥에서 나던 따뜻한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한국에 들어와 자가격리를 해야 했던 십오 일 동안 미리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생각이 많아졌고 마지막 사흘은 밤마다 울었다. 미리는 생각을 줄이려고 십 년 전에 봤던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시 몰아 봤다.
그러고도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어서 작은방을 불안하게 왕복했다. 현주는 이런 시간을 어떻게 견디는 걸까. 미리는 창밖으로 내리는 장맛비를 바라보며 현주를 생각했다.
현주는 미리의 격리가 끝나는 날 검은색 아반떼를 몰고 와서 미리를 자기 집으로 데려왔다. 육 개월 전에 다시 연락을 시작했지만 실제로 얼굴을 본 건 삼 년 만이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현주는 짧은 머리에 깡마른 모습이었는데 그사이 얼굴에 살이 붙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 하나로 묶고 있었다. 눈가에 예전에는 없던 잔주름이 보였다. 시력이 나빠졌는지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들은 삼 년 전에 크게 싸웠다. 그간 크고 작게 싸웠지만 그때의 싸움은 달랐다. 현주는 그 이후로 미리에게 연락하지 않았고 미리도 그런 현주에게 복수라도 하듯이 현주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그 시간 동안 미리는 진심으로 현주를 미워했다.
어느 날 같이 사는 언니 중 한 명이 미리에게 그런 말을 했다.
부부 싸움하고 매번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먼저 죽는대.
그 말을 듣고 미리는 열 번을 싸우면 여덟 번은 먼저 사과하던 현주를 떠올렸다. 미리야, 미안해. 마음 풀어. 미리는 먼저 죽는 사람은 현주가 아니라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잠이 든 날 꿈에 현주가 나왔다. 꿈에서 현주는 춥고 어두운 밤에 외투도 없이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꿈을 꾸고 일어난 곳은 비행을 마치고 잠시 눈을 붙인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이었다. 미리는 호텔 로비에 무료로 비치된 엽서에 미안하다고, 네가 보고 싶다고 적어서 현주에게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리가 브라질 상파울루의 한 호텔에 도착했을 때 현주가 스카이프로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현주는 미리가 바로 전화를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지금 한국은 새벽 세 시라고 했다. 그날 미리와 현주는 오랫동안 통화했다.
현주는 미리의 엽서를 받기 며칠 전에 일 년 동안 투병하던 올빼미가 죽었다고 했다. 현주는 올빼미를 데리고 병원을 옮겨 다니며 처치를 받아야 했던 일, 어렵게 약을 먹여야 했던 일을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그전에 미리 울어두고 마음의 준비를 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했다. 우리는 모든 게 꼭 당연하고 영원하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살지만 그런 건 아무것도 없다고.
아마도 몇 개월 안에 휴가가 나올 것 같으니 그때 한국에서 보자고 말했을 때만 해도 미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두바이 공항이 폐쇄될 줄 몰랐다. 동료들이 권고사직을 당하고 자신도 불안하게 대기하다 기약 없이 한국으로 보내지게 될 줄은 몰랐다. 그사이 현주는 서울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의 주택을 매매하여 그곳으로 이사 갔다. 미리가 당분간 한국에서 지내야 한다고 하자 현주는 집으로 오라고 했다. 여기에 미리의 방이 있다면서.
미리는 현주의 제안이 고마웠지만 선뜻 그러겠다고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예전에 같이 일하던 언니가 광주에서 식당을 열었다면서 연락을 줬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면 광주로 내려오라고 말하며 팔월 첫째 주까지 답을 달라고 했다. 격리가 끝난 건 칠월 셋째 주였다. 미리는 격리 기간 동안 고민을 하다가 현주에게 연락을 했고 격리가 끝나자마자 현주의 집으로 왔다. 무엇보다도 현주와 이야기 나누고 싶은 마음이 커서였다.
* 계간 <대산문화> 2021 봄호(통권 79호)에 전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