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진달래꽃

호놀룰루로 쓰는 편지

‘김수영문학관’을 지키는 명예관장 김수명 선생과의 대화

온몸의 존재 : 바람과 양극의 긴장

기획의 말 ①사야(買) 살(住) 수 있는 집 ②2013년과 2021년, 그들도 다른 그들처럼 ③집을 쫓는 모험 ④잠시 중지된

지키는 일이다. 지켜보는 일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역사하는’ 작은 역사가들

코로나 시대의 희망

저항은 살아가는 일이 어떤 의미인지 묻는 것

미신(未神)

맹인 김씨 아저씨와 국어선생과 아, 이성복 시인

그 날의 초상(肖像)

팔레트, 늪, 사랑 - 지구 반대편에서

그림 속에 펼쳐진 창덕궁과 창경궁의 장대한 경관

①의심을 품자, ②명품 위에 쓴 시,우리가 웅덩이를 안다 해도 갈 데가 없다

①제천 1907 ②무급휴가

체험 학습

①강물을 읽다 ②누가 길 위에서 우는데 ③이게 내가 하는 일이에요

①매혹과 응답 ②새로운 풍경과 감각으로 우리 문학의 가능성을 열다

역병의 시대, 한국소설을 호출하다

영웅은 그대 품 안에

아궁이샘물 시인과 《작가세계》 탄생

내 생애를 지시하는 나침반

풍경이 있는 단 하나의 길

눈물을 연기하는 눈물 없는 신파극

비극은 누가 만드는가?

첫 역주본 한국한문소설

한국판 ‘백년의 고독’에 함께 울다

초학자와 어린이를 위한 당송시(唐宋詩) 입문서

대산창작기금 등

2021 대산창작기금 및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공모 등

문학현장

①매혹과 응답

- 장-클로드 드크레센조의 『다나이데스의 물통』

이광호
평론가, 1963년생
저서 『익명의 사랑』 『시선의 문학사』 『너는 우연한 고양이』 등




장-클로드 드크레센조(Jean-Claude De Crescenzo)의 『다나이데스의 물통』은 번역과 비평 사이의 중첩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저서이다. 한국어 문학으로서의 이승우 소설이 존재했고, 그것의 불어 번역본이 있었으며, 프랑스 학자의 불어 비평에세이가 쓰였고, 이 비평에세이에 대한 한국어 번역서가 만들어졌다. ‘창작-번역-비평-번역’의 순환 과정은 한국어 문학이 서구의 비평적 관심이 될 수 있는 가능성, 한국문학과 프랑스 문학이 수평적으로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사례이다. 프랑스어의 비평적 글쓰기가 한국문학 텍스트와 교호하여 미지의 비평언어가 생성되는 장면은 희귀하고 소중하다. 장 벨맹-노엘의 『충격과 교감-한 프랑스 비평가의 한국문학 읽기』(2010) 같은 의미 있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다나이데스의 물통』은 이승우라는 한 작가에 집중한 비평에세이라는 측면에서 각별하고 새로운 사건이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 대학교에서 한국학을 창설하고 주임교수를 역임했던 저자는 아시아학연구소 IRASIA의 일원이며, 프랑스에 한국 문학 웹진 《글마당》과 한국 문학 출판사 드크레센조를 창립하여 한국 현대 작품들을 알리는 데 헌신한 연구자이기도 하다. 우선 저자의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왜 이승우라는 작가에게 집중되었는가를 질문해볼 필요가 있다. 저자와 작가 이승우와 개인적인 만남이 이루어진 시간들이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비평적 글쓰기를 유도한 ‘이승우’라는 텍스트 자체의 특이성이다.
저자는 이승우의 소설에 대해 “감각, 욕망, 그리고 결핍된 것에 대해 캐묻고 그 실효성을 확인하는 작품, 다시 말해 자아의 물질성에 만족하지 못하는 내면성의 글쓰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가의 고유성은 우리가 소유한 감각의 보편적 특성 쪽으로 독자를 끌어당기는 데 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1)라고 밝힌다. 내면성의 글쓰기라는 이승우의 고유성이 닫힌 고유성이 아니라 감각의 보편적 특성 쪽으로 독자를 이끌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의 작품 속에 웅크린 이미지와 상징체계들은, 먼저 우리의 의식 표면에 저절로 스며들다가 파괴의 작업을 시작하고, 다시 텍스트로 돌아갔다가 이내 우리 자신에게 되돌아갈 것을 강요한다.”2) 보편적인 감각과 만나는 이승우 소설의 내면적인 고유성은 독자의 고유성을 충격하고 응답을 이끌어낸다. 이승우 소설은 개별적이고 창의적인 독서의 보편적인 차원을 끌어낸다는 측면에서, ‘다시 읽기-쓰기’를 유도하는 매혹적인 텍스트인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이승우의 텍스트는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그곳이 어디든』, 『지상의 노래』, 『한낮의 시선』, 『욕조가 놓인 방』이다. 책의 각 장들은 각각의 텍스트에 대한 비평적 에세이에 해당하지만, 저자는 이 작품들을 닫혀 있는 텍스트로 보지 않는다. 1장에서 제시된 이승우 소설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키워드들, “어둠과 고독, 방황, 아버지, 방, 산, 내적 경험과 성경” 등은 이들 작품들을 연결 지어주는 주요 요소들이다. 저자는 한 작품 안에 나타나는 모티브들과 다양한 요소들을 단일하고 선형적인 서사로 수렴하지 않고 그것들을 병렬적으로 제시한다. 각 작품의 요소들은 서로에게 조응하며 다른 작품 속에서 반복되고 변형된다. 이 요소들은 더 넓게는 성경과 신화의 세계, 바슐라르, 쇼펜하우어, 니체, 키르케고르, 파스칼 등의 텍스트와 불현듯 접속된다.
이 접속을 드러내는 글쓰기는 객관적인 ‘논증’의 방식이 아니다. 저자는 이승우의 텍스트에서 직관적인 방식으로 성경과 신화의 세계로 건너간다. 그의 읽기-쓰기는 텍스트를 통해 보편적 상징과 언어들과 만나고 독자의 내적 세계로 다시 되돌아오는 도약의 과정을 포함한다. “연관관계를 애써 주장하지 않아도 그의 소설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응답하고 있었다. 나는 하나의 총체적인 작품 앞에 놓여 있었다.”3)라고 저자는 쓴다. 저자는 그 연관관계를 “애써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입증’하지 않고 ‘응답’한다. 혹은 그 응답의 지점들을 드러낸다. 그 응답의 지점들을 통해 이승우라는 텍스트는 “하나의 총체적인 작품”이 된다. ‘총체성’은 닫혀있는 거대한 완결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각 요소들이 서로에게 조응하는 관계들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발견은 이미 구조화된 전체성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 텍스트의 ‘미지의 길’을 찾아가는 비평의 수행성이다.
저자는 이승우를 통해 성경을 다시 읽고, 성경을 통해 이승우를 다시 읽는다. 유년의 기억 속에서 첫 번째 ‘문학적 매혹’의 대상이었던 성경을 끊임없이 소환하는 것은, 최초의 ‘문학적 사건’에 대한 일종의 ‘충실함’이다. 이승우에 대한 매혹이 성경의 매혹과 겹쳐지는 것은, 이승우 소설의 보편적 기반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시에 성경이라는 저자의 ‘원체험’이 이승우를 통해 재발견되는 경험이다. “종교 텍스트는 단순히 삶의 의미를 읽는 데 도움이 되는 믿음의 지지대가 아니다. 그것은 작가가 자기 작품에서 전개하는 신화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언어의 원천이다.”4)
저자는 “나는 결코 여기에서 다루는 작품들의 해석을 두고 불장난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의미 체계를 수집하거나 상징들을 하나하나 분석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5)라고 단언한다. 비평은 작품의 궁극적인 의미체계와 전체성을 분석하는 데 소모되지 않으며, 하나의 상징을 집요하게 분석하는 데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저자는 살아있는 문학적·신화적 요소들이 상호작용하는 이승우 소설의 매혹에 대해 다만 응답한다. 그것은 ‘꿈틀거리는 작가의 자유’가 매혹된 독자의 자유와 마주치는 흥미로운 장면이다.
외국인인 저자가 이승우 소설의 텍스트에 대한 내재적인 비평에만 치우쳐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그건 오해일 것이다. 저자는 이승우 소설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구성하는 군부독재 시절의 한국 현대사와 이승우 소설의 알레고리들을 날카롭게 연결시킨다. 여기에는 두 가지 계기가 포함된다. 이승우 소설의 닫힌 공간에 있는 고독한 인물들이 “세상사로부터의 후퇴라기보다는 쉼 없이 사회적 공간을 재결합 시키는 데 들어가”6)게 만들어준다는 것이며, 저자의 한국문학의 콘텍스트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성실한 이해를 또한 말해준다.
이 책의 제목인 다나이데스의 물통의 비유는 이승우의 글쓰기와 창작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다나이데스의 물통은 “채울수록 점점 더 비워지는 물통. 열린 상태를 메우겠다는 개인의 노력들은 정녕 부질없”7)음을 상징한다. 그것은 오히려 이승우라는 텍스트에 대한 ‘다시 읽기-쓰기’의 과정이기도 하다. ‘심오하고 풍요로우며 불안정한 작품’은 끝내 채워지지 않는 물통처럼 독자를 매혹하고 응답을 요구한다. “하나의 읽기는 배반이다. 이미 씌어진 텍스트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고백과 함께 독자는 비로소 이승우의 작품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8) 문학의 공간은 쓰기와 읽기의 배반이 벌어지는 자리이며 그 배반은 채워질 수도 완결될 수도 없다.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저자는『욕조가 놓인 방』에 대한 섬세하고 신화적인 독서를 통해 연인들의 몸과 물의 공간에 대해 쓴다. 첫 키스가 이루어진 바다의 장면으로부터 발레리의 “언제나 다시 시작하는 바다”9)를 연결시킨다. 물에 잠긴 몸으로서의 연인들의 욕조는 ‘무한보다 깊은 바다’이다. ‘어느 순간 사랑이 시작되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불가능은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생각을 ‘단죄한다’. 그런데 ‘다시 시작하는 물’이 있다. 물의 세례가 ‘죽음-다시 태어남’의 제의라면, 문제는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죽음’으로서의 ‘시작’이다. 시작되는 바다와 욕조는 다나이데스의 물통을 또다시 연상시킨다. 물통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혹은 계속된다. 다르게 말한다면, 물통이 영원히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매혹은 지속된다. 한 번의 매혹과 응답 뒤에도, 매혹은 새로운 죽음을 향해 다시 시작된다.

1)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이현희 역, 『다나이데스의 물통-이승우의 작품 세계』, 문학과지성사, 2020, 6면.
2)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위의 책, 5-6면.
3)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위의 책, 7면.
4)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위의 책, 32면
5)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위의 책, 16면.
6)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위의 책, 20면.
7)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위의 책, 61면
8)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위의 책, 25면.
9)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위의 책, 17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