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기획특집 ｜ 가깝고도 먼나라, 새로운 한국과 일본 ①열 채의 이불까지는 준비하지 못하더라도 ②진짜 자기문제로 돌아가는 순간은 타자의 인생을 통해 자신을 발견할 때 ③차이와 상호 무지에 대한 인정 ④독재가 통하지 않는 외교무대

들녘의 하루

코로나19, 딥체인지 그리고 문학

조선 여자로서의 삶을 벗고 자신으로 살다

다섯달밖에 안된 첫 아들에게 보낸 첫 시집

①고모의 흉터,포옹 ②Pierrot,검은 서사

①기러기가 남긴 말 ②언니의 일

①어느 한 詩人의 음악사랑 ②잠시 기다려주세요, 신호가 끊겼습니다 ③지도와 여행

수능이 벼슬

①한국문학은 여전히 건재하다 ②제2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리뷰 ③영역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미국 《퍼블리셔스 위클리》 ‘올해의 책 톱 10’ 선정

우리 문학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진짜 ‘나’를 찾기

‘대전환’ 시대의 미래 읽기

사연 많은 인물들에게 대사를 만들어주다

서구의 예수가 일본의 예수가 되다

정지용의 『향수』와 베트남 정서

10년 공들인 소피아대 한국학과 학생들의 『한국전래동화』

대산창작기금 등

3강 조천호 교수, 4강 민은기 교수 편 개최

글밭단상

①어느 한 詩人의 음악사랑

한상완
시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1941년생
시집 『편지』『그대는 나의 별』『불꽃』『환생』, 수필집 『105가지의 향기로운 이야기』 등

2016년 8월 어느 날,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예술가곡 연주회가 열렸다. 서희태가 지휘하는 밀레니엄심포니오케스트라의 반주로 한국 예술가곡이 연주되었다. 막을 여는 첼리스트 김영은의 이안삼 곡 「금빛날개」 협주곡을 시작으로 6명의 성악가들이 두 곡 혹은 세 곡씩 연주하였다. 이 날 가장 많은 곡이 연주된 작곡가는 첼로 협주곡 두 곡을 포함하여 9곡이나 연주된 이안삼 작곡가였다.
심상(心象)문학회에서 함께 활동하는 서영순 시인이 초청하여 음악회에 참석하였는데 그의 작시곡도 두 곡이나 연주되었고 모두 이안삼 작품이었다. 예술의전당 대극장을 가득 매운 청중들은 서희태 지휘자의 유려하고 깔끔한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성악가들의 연주가 끝날 때마다 아낌없는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우리나라의 리트(lied)로 불리는 예술가곡을 듣고 감상하는 이렇게 많은 애호가들이 열광하는 모습에 가슴이 뿌듯해져 음악회장을 나오고 있는데, 서 시인이 내 가까이에 다가와서, 오늘 꼭 이안삼 작곡가를 만나보시고 가라고 했다. 평소에도 그의 가곡을 즐겨 듣고 참 예술적인 곡을 쓰시는 분이라는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던 나는 유명 작곡가를 만나보는 기쁨이 있으리라 속으로 생각했으나 굳이 만나 뵐 것까지야 있겠나 싶어 사양했다. 그래도 서 시인은 꼭 만나시면 좋을 것이라며 나를 데리고 가 로비에서 기어이 만나게 했다. 그의 첫인상은 올백한 머리에 서글서글한 얼굴의 미소가 인상적인 멋쟁이였다. 한눈에 ‘예술가’란 인상이 두드러졌다. 우린 악수하고 서로 통성명하고 웃으며 잠시 얘기를 나누다 헤어졌다. 그런데 2~3일 지난 뒤 서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작곡가 이안삼 선생이 나의 시를 작곡하고 있다는 전언이었다. 나는 뜬금없는 얘기에 어안이 벙벙하였다. 내가 그를 잘 알아서 내시를 작곡해 달란 얘기를 한 적도 없고 음악회에서 처음 뵌 것이 전부인데…… 서 시인은 내가 얼마 전에 있었던 심상시인회 주최 해변시인학교에서 증정한 나의 세 번째 시집 『불꽃』을 이안삼 작곡가에게 보여드렸더니, 그가 시집을 들춰 보다가 제일 첫 번째 수록한 「여름 보름밤의 서신」이란 시를 보더니 대뜸 필(feel)이 꽂혀 작곡을 시작하였다고 했다. 이런 사연을 지닌채 나의 詩가 처음으로 예술가곡으로 작곡가 이안삼에 의하여 탄생된 것이다.

이렇게 내 시가 우리가곡으로 작곡되기 시작한 이래로 예술가곡연주회에서 연주되고 있는 곡은 4년이 지난 지금 15곡에 이르렀다. 이안삼 작곡이 2곡, 임긍수 작곡 3곡, 박영란 작곡2곡, 김광자 작곡 2곡, 김은혜 작곡 2곡, 이재석 작곡 1곡, 김성희 작곡 1곡, 박경규 작곡 1곡, 정덕기 작곡 1곡이 그것이다.
난 일생 예술가곡을 비롯하여 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였다. 내가 교편을 잡고 있던 대학의 연구실에는 언제나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 지인들이나 제자들은 아예 음악을 전공하는 게 어떻겠냐고 농담 반 진담 반 얘기했다. 클래식 음반도 LP판과 CD 등 거의 2천여 장 가깝게 사들여 듣고 있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고 스스로 생각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사실은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년기나 청소년기 삶이 음악을 전공할 수 있는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농촌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3학년에 6·25 전쟁의 격동 속에서 피난 다니며 여러 번 죽음의 고비를 겪으며 생존의 문제가 늘 나의 앞에 전개되었던 삶의 여정과, 치열한 학문의 길에서 음악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했었다고 고백할 수 있다.
69세에 시인으로 등단하고, 그 10년이 지난 지금 나의 시가 예술가곡으로 15곡이나 작곡되어 전문 성악가들이 연주해 주는 것을 음악회장에서 듣고 있는 이즈음에 난 참 행운을 타고난 축복의 주인공이라 홀로 미소 지을 때가 많다. 한 시인의 음악 사랑이 이렇게 연계되어 생애 여년(餘年)의 기쁨일 수 있음을 감사해 하고 있다. 유감스러운 일은 이 나라의 저명한 예술가곡 작곡가인 이안삼 선생이 지병으로 지난 8월 18일에 하늘나라에 간 일이다. 내게 시와 음악의 아름답고 감사한 인연을 맺어 준 벗과의 이별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