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찬란한 문명과 반인류 범죄의 사이에서

‘기억 속의 들꽃’이 피었던 길을 걷다, ‘황혼의 집’에 이르렀다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기획특집 | 가깝고도 먼나라, 새로운 한국과 일본 ①열 채의 이불까지는 준비하지 못하더라도 ②진짜 자기문제로 돌아가는 순간은 타자의 인생을 통해 자신을 발견할 때 ③차이와 상호 무지에 대한 인정 ④독재가 통하지 않는 외교무대

들녘의 하루

코로나19, 딥체인지 그리고 문학

조선 여자로서의 삶을 벗고 자신으로 살다

다섯달밖에 안된 첫 아들에게 보낸 첫 시집

데뷔작이 두 편이라니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경계를 넘고 근심을 지우는 망우리공원

바람이 바람을 만나 서로 따뜻해질 때

시인의 말은 곧 시가 되어야 한다

지하철 여행자의 일일

서얼 지식인의 내면 풍경

①고모의 흉터,포옹 ②Pierrot,검은 서사

①기러기가 남긴 말 ②언니의 일

①어느 한 詩人의 음악사랑 ②잠시 기다려주세요, 신호가 끊겼습니다 ③지도와 여행

수능이 벼슬

①한국문학은 여전히 건재하다 ②제2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리뷰 ③영역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 미국 《퍼블리셔스 위클리》 ‘올해의 책 톱 10’ 선정

우리 문학은 어디쯤 가고 있을까?

진짜 ‘나’를 찾기

‘대전환’ 시대의 미래 읽기

사연 많은 인물들에게 대사를 만들어주다

서구의 예수가 일본의 예수가 되다

정지용의 『향수』와 베트남 정서

10년 공들인 소피아대 한국학과 학생들의 『한국전래동화』

대산창작기금 등

3강 조천호 교수, 4강 민은기 교수 편 개최

문학현장

②제28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리뷰


부문

따뜻한 우울의 최면
- 김행숙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성민엽
평론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1956년생
평론집 『지성과 실천』 『문학의 빈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학술서 『현대 중국의 리얼리즘 이론』 『동아시아적 시간으로 보는 중국문학』『언어 너머의 문학』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 등

2005년에 미래파라는 이름이 제출된 이후, 정확하게 말하면 그 몇 년 전부터 등장한, 서로 다르면서도 비슷한 새로운 젊은 시인들 여럿의 활동이 개별적인 것들이 아니라 집합적인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부터 한국 문단에는 미래파에 대한 비판이 쏟아져 나오며 소위 미래파 논쟁이 전개되었다. 미래파라는 명칭의 적합성 여부는 차치하고 거시적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보자면, 이는 한국문학은 물론 세계문학사에서 많이 보아온 바, ‘새로 나타난 난해시’에 대한 기성 문단의 반응 양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하다.
이것은 일종의 산통일 수 있는데, 대체로 산통을 거친 뒤 그 ‘새로 나타난 난해시’, 즉 감각과 사유와 어법이 새로워서 난해하게 느껴지는 시가 시의 현재를 구성하는 스펙트럼을 더 넓히며 그 일부가 되는 것이고, 또 그중 일부는 높은 성과로서 인정받게 되며 적지 않은 경우 그 후의 시를 주도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미래파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쳤다. 그리하여 이제 미래파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는, 붙이지 않고 봐야 더 좋을 김행숙이라는 이름의 개별 시인은 그 과정의 생산성을 입증해주는 한 좋은 예가 된다.
김행숙은 4년 전에 「유리의 존재」라는 작품으로 미당문학상을 받았었고 이제는 그 작품이 수록된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로 대산문학상을 받게 되었다. 시보다 더 어려운 해설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먼저 「유리의 존재」를 소박하게 읽어보자.
화자가 유리창에 손바닥을 대고 있다. 유리창은 단절과 연결이라는 두 가지 상반되는 속성을 동시에 갖는다. 화자가 ‘보이지 않는 벽이란 유리의 계략’을 깨달으며 비로소 꿈을 깰 수 있었다는 진술은 연결인 줄로만 알았는데(보이지 않아서) 실은 단절임을(막혀서)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유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유리를 마치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음을 느끼게 된 화자는(화자가 ‘유리의 존재’, 즉 유리 같은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 그 유리가 통과할 수 있는 것임을, 즉 연결일 수 있음을 발견하지만, 창밖에 있던 네가 햇빛처럼 비쳐 창 안으로 들어오면 이제는 내가 창밖에 서 있다.

이는 단절을 알면서도 연결을 열망하는 것일까? 필자는 아니라고 느낀다. 그건 너무 도덕적인 사고방식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 반대, 즉 연결의 시도가 단절을 더욱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것이 아닐까.

‘너’가 햇빛처럼 비쳐 창 안으로 들어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고(‘너’는 햇빛이 아니라 사람, 즉 물리적 실체이니까) ‘나’ 역시 그 순간 창밖으로 이동되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에 주목하면 이 대목은 강력한 부정의 수사적 표현이고 상상이라 해야 할 것이다. 시의 앞부분에서, 넘어져서 깨지고, 포옹하다 피가 나는 것은 유리의 존재를 모른 채 연결하려다 그랬던 거다. 그때 유리도 깨졌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유리는 깨졌다고 없어지는 유리가 아니다. 돌을 던져서 깰 수 있을까? 설사 깨더라도 그 유리는 여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그 유리는 죽음처럼 항상 껴입고 있는 유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박한 필자는 이 시를 유리창의 단절에 대한 절망의 인식으로 읽는다. 가령 선배 시인들 중 정지용의 「유리창」과 최두석의 「성에꽃」을 보라. 그들은 유리창을 통해
연결을 꿈꾸고 이룬다. 정지용은 ‘물 먹은 별’을 보고 최두석은 ‘푸석한 얼굴’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 김행숙의 특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 시집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인유이다. 인유의 시집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대다수의 시편들이 인유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인유에는 일정한 방향성이 나타난다. 특히 카프카가 많이 인용되는 바(카프카의 재발견일 것이다), 그중 하나인 「변신」을 보면, 그레고르 잠자의 흔적이 남아서 가족들이 잠자인 줄 알아볼 수 있는 벌레가 아니라 아무도 알아볼 수 없게 정말로 완벽한 벌레로 변신하는 것을 상상하고 있다. 이것이 김행숙의 방향성이다. 표제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의 소문자 k(대문자 카, 즉 K는 카프카의 『성』과 『소송』의 작중인물이다)가 말을 전달하는 시인의 비유라고 하더라도 그 전달자가 안개가 걷히자 마주치는 것은 시체, 그것도 두 눈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시체이다. 「검은 숲」에서는 아이들은 사라지고 멀리 숲만 남고, 안개를 헤치고 눈꺼풀이 없는 눈동자만 남는다. 유리의 존재를 알게 되자(안개가 걷히자, 안개를 헤치고) 남는 것은 보이지 않는 벽(시체의 활짝 열린 눈, 눈꺼풀이 없는 눈동자)이듯이.
이 방향성에 무어라 이름을 붙일까. 「유리의 존재」 세 번째 연으로 돌아가 보면 "그것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을 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라는 진술이 나오는데 이 진술이 필자에게는 매우 심상치 않게 느껴진다.
여기서 필자는 깊은 슬픔을 느끼고, 절망과 슬픔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우울을 느낀다. 흔히 거론되는 김행숙의 다감한 어조는, 그것이 바로 절망과 슬픔과 우울의 신체가 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불길하고 비관적이고 비극적인 세계를 이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다감한 어조는 여전히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것 같다. 따뜻한 우울이라니, 치명적인 따뜻함이라니, 이 무슨 최면이란 말인가.


 

소설 부문

부끄러움은 나의 몫”
- 김혜진 장편소설 『9번의 일』

서하진
소설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60년생
장편소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나나』, 소설집 『책 읽어주는 남자』 『사랑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라벤더 향기』 『비밀』 『요트』 등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던 26년 차 기술자인 ‘그’가 ‘78구역 1조 9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길고 안타까운 사연. 김혜진의 『9번의 일』은 읽는 내내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이미 두번의 교육대상자가 된 바 있는 그에게 부장은 정리해고를 들먹이며 퇴직금으로 임대수익이 괜찮은 오피스텔 하나를 사도 좋을 것, 이라 제안하지만 그는 거부한다.
저 하나쯤은 무한 지원해 줄 거라 믿는 고등학생 아들, 손목터널 증후군을 견디며 마트에서 일하는 아내, 오랜 목수 일로 지병을 얻어 입원 중인 장인, 농사에 지친 형과 형수, 그의 도움을 간절히 바라는 조카, 허물어져가는, 그의 손길(그의 돈)이 닿아야만 하는 고향의 낡은 집, 이 모든 것을 수시로 하소연하는 늙은 어머니가 있으니. 천만다행히도 그에게는 보장된 정년이 10년이나 남아있으므로 그는 세 번째 교육대 상자가 되는 편을 택한다.
누군가는 나가야만 하는, 다 같이 죽어라 버티면 다 같이 죽자는 것일 뿐인 상황에서 그의 결정은
사내 동료와 후배들의 경멸을 불러오고 믿고 있다고 여겼던 사람들, 계절이 겹치고 겹쳐 길들여졌다 생각한 관계는 한순간에 무너진다. 왕복 세 시간 이상의 교육장을 오가는 힘겨운 교육을 마쳤지만 그의 평가서에는 “보고서 제출 기한 2회 지연, 분량미달, 도서미지참 2회, 눈가 문지름, 눈을 감고 하품을 함, 휴대폰을 확인함, 발을 주무름……” 등의 반박할 수 있으나 그럴 수 없는 사유와 함께 최하위 평점이 기록된다. 아내의 수술로 인한 월차나 오랜 동료의 뜻하지 않은 사고와 부음으로 장례식에 참석한 일 따위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며 『불황의 경제학』, 『성공하는 대화법』. 『자유와 행복에 이르는 길』, 『지구화 시대의 네트워킹』처럼 제목조차 낯선 책을 보듬고 무진 애를 썼으나 효율적인 보고서 작성법을 알아내지 못한 건 전적으로 그의 불찰일 뿐이다.

26년간 통신주를 매설하고 인터넷 케이블을 연결하던 그는 타지역 판매부서로 발령이 나고 이제 길고 고달픈 그의 여정이 시작된다. 비닐하우스, 공장, 빈 벌판이 전부인 지역을 돌며 무선인터넷을 판매하고, 몸이 얼어붙는 창고에서 한잠을 자며 버티는 동안 그를 향한 주변의 시선은 점차 차가워지고 부장은 더욱 집요하게, 아내와 친구들은 조심스럽게 퇴직을 권하지만 그는 끝끝내 응하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오래 버티게 했을까. 그 모멸을 견디면서, 스스로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는 걸 명백히 인지하면서도 그는 왜 그 일을 그만두지 않는 것일까. 철도청으로의 이직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아내의 조언을 그는 어째서 무시하는 걸까. 부당한 처우에 화가 나는 건 당연하지만 그의 선택, 그의 태도에 갑갑해 미칠 것 같을 즈음 그는 마침내 노조에 가입하고 교육과 시위에 참여하고 본사 앞에서 농성을 벌인 끝에 소설의 마지막 일터, 78구역으로 발령을 받는다.
그의 임무는 78구역에 송수신용 대형 철탑을 세우는 일. 산골마을 사람들이 거대한 철골 구조물을 반길 리 만무하니 그 비난과 원성을 넘어서는 것 또한 그의 일이다. 시위, 경찰, 사고, 엄청난 적대감……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서 그는 점차 괴물이 되어가고 소설은 끝을 향해 내닫는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 본다. 그는 왜 그리도 오래 버텨야만 했을까. 오랫동안 시간을 나누고 추억을 공유한, ‘실체에 가까웠던, 그의 일상이자 삶이라 해도 좋았던’ 그의 회사는 어째서 한순간 얼굴 없는 한낱 명령체가 되었을까. 뛰어나지 않았으나 근면했던 그. 만족을 꿈꾼 적 없고 행복을 욕심내지 않았던 사람.
사소하고 단조로운 작업에 대한 그의 자부심을 수치라 모욕한 건 누구일까. 『9번의 일』을 읽으면 우리가 사는 세상, 지금 여기가 대체 어떤 곳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먼저 분노가, 뒤이어 부끄러움이 조용히 찾아와 오래 머문다.

 

 

평론 부문

문학/사의 현장과 소통하는
심미적 비평의 구축
- 유성호 평론집 『서정의 건축술』

김진희
평론가,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교수, 1966년생
평론집 『시에 관한 각서』 『기억의 수사학』 『미래의 서정과 감각』 등

유성호 비평가의 『서정의 건축술』은 변화하는 사회문화적 장(場) 안에서 서정의 의미와 가치를 묻고, 작품의 언어와 상상력의 개성을 정치하고 심미적으로 밝힘으로써 독자와 작품 사이에 존재하는 비평가의 역할을 충실히 보여준 평론집이다. 서정과 비평에 대한 유성호의 체계적인 문제의식과 감각은 작품 분석과 이해를 넘어 비평집의 구성과 배치 등에서도 잘 구현되고 있는데, 이는 특히 비평가 자신이 진술한 바, 서정시의 ‘단단하고 창의적인 언어’를 지향하는 ‘서정의 건축술’을 통해 가시화된다. 비평집 전체로는 비평가의 사유가 서정에 대한 원론적인 성찰과 문단의 동향, 개별 작품론 등으로 차근차근 심화, 축조(築造)되어 나가며, 개별 작품 분석과 평가에서는 언어구조물로서의 심미적 특성이 분석되고, 이 작품들을 당대 문학 장과 문학사의 시·공간의 텍스트들과 관련지어 연립(聯立)시켜봄으로써, 총체적으로 오늘의 문학 장에서 서정의 언어가 갖는 위상과 그 의미를 탐구하고 있다.
비평집의 구성을 따라 살펴보면, 우선 서정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비평가의 주요 문제의식과 비평의 역할과 기능 등에 대한 논의와 연결됨으로써 본 비평집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오늘의 비평 상황을 조망하면서 서정시의 윤리, 서정의 시간형식, 서정의 양식과 원리 등에 관한 비평적 의견을 개진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 상상력과 문학의 언어가 만나는 지점에서 서정의 윤리성을 사유해볼 수 있다는 제언은, 최근 한국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와 서정시의 정체성을 사유한다는 점에서 시의적이다. 뿐만 아니라 시의 난해성을 중심에 놓고, 어려운 시와 쉬운 시를 문제 삼고, 디지털 시대의 서정양식으로 제안된 극서정시의 가능성을 살피는 시도 등은 시인과 독자, 작품과 독자, 그리고 독서 대중 간의 소통 형식으로서의 문학-언어에 주목하는 비평의 역할을 보여준다.
이어지는 비평집의 2부는 큰 틀에서는 1부의 서정에 대한 원론적인 사유와 맞닿아 있는 평문들로 문학사적 맥락에서 서정시의 위상과 개념을 살피고 있다. 특히 20세기와 21세기 서정시에서 여전히 화두가 되는 ‘모더니즘’이나 ‘시와 정치’ 등, 당대성을 넘어 문학사에서 역사적 기원과 그 함의 등을 추적하는 비평의 논리에서는 유성호 비평가가 겸비한 문학사적 소양과 현장 비평의 감각이 융합한, 입체적인 비평의 언어가 탄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시단의 원로 및 중진 시인들의 시 세계에 대한 평문으로 구성된 3부와 4부는 작품 분석과 평
가를 위해 담론이나 방법론을 내세우기보다는 정확성과 심미성을 중심에 놓고 텍스트로부터 비평을 이끌어내는 유성호의 해석적 역량과 비평적 강점을 보여준다. 그의 비평은 진지하면서도 어렵지 않다. 그의 비평은 텍스트에 대한 정확한 읽기에서 시작하여, 늘 시가 말하게 하는 비평, 시로부터 출발하는 비평을 견지하면서 궁극적으로 작품의 의미를 최대한 섬세하고 풍부하게 발견하고, 독자에게 전달한다. 이런 의미에서 유성호가 제안하는 서정의 건축술이란 심미적 언어의 구조물로서의 각 작품이 가진 창의성과 개성을 이끌어내는 비평적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글쓰기의 특성은 유종호 선생과 김준오 선생의 이론을 고찰하는 것에서부터 한국 시단의 원로 및 중진 시인들을 비평하는 데까지 일관된 비평적 태도라고 할 것이다. 그는 허만하, 황동규, 김종철, 조재훈, 최승호, 이재무, 송찬호, 장석남, 정끝별 등의 시를 비평하면서 각 시인들의 시가 거쳐 온 역사적, 문화적 삶과 언어의 시간을 기억하고, 이를 그들의 독자적 시간으로 재구함으로써 개별 시인의 시력(詩歷)을 우리 시단의 시사(詩史)로 자리매김하는 문학사적 감각을 발휘한다. 또한 나
희덕, 이정록, 이대흠, 곽효환, 신용목, 최금진 시인 등 시단의 중견 시인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찾아냄으로 써 현 시단의 미래 지형을 풍요롭게 제시하기도 한다.
이상에서와 같이 이번 수상집 『서정의 건축술』에서 유성호는 문학 작품에 대한 엄정한 독서와 섬세하고 풍부한 해석, 한국 문학 전반에 관한 문학사적 안목, 그리고 현 시단의 변화와 다양한 경향에 대한 유연한 비평적 태도를 통해 비평가 자신의 개성과 덕목을 뚜렷하게 구축하는 문학적 성취를 충분히 보여주었다.

 

 

번역 부문

단순하고 명쾌해 보이지만,
번역은 절대 단순하지 않은 ‘김지영’
- 주하선 스페인어역 Kim Ji-young, nacida en 1982 (82년생 김지영)』

송병선
번역가, 울산대학교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 1962년생
역서 『이상 단편선』 『영원한 제국』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 등

일 년 전, 그러니까 2019년 9월에 스페인의 알파구아라(Alfaguara) 출판사에서 출간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민음사, 2016) 스페인어 번역본이 제28회 대산문학상 번역 부문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공포, 피로, 당황, 놀람, 혼란, 좌절의 연속에 대한 인생 현장 보고서”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소설의 스페인어판은 우선 배급과 수용 측면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동안 스페인어권에서 번역되어 출간되는 한국문학의 경우,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배급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스페인어 사용국가가 20개국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제 배급망을 갖추지 못한 중소형 출판사에서 출간될 경우,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로 배급되지 못하고 한 나라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고, 그로인해 수용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82년생 김지영』이 유명 문학 출판사인 ‘알파구아라’에서 출간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런 문제는 다소 해결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신문 기사나 서평은 스페인이라는 국경을 넘어, 멕시코부터 칠레까지 매우 다양하다. 한 예로 스페인의 문학 평론가 안드레아 타마요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평범한 여성에 관한 이야기 중에서 어떤 것이 전 세계 독자의 감성을 건드릴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불평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또한 칠레의 문학 비평가 곤살로 레타말은 이렇게 평한다. “이 소설은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가부장제의 모순과 혐오를 전개한다. (……) 이 소설의 힘은 현재의 정치구조를 의문시하고, 우리가 정치적·사회적 주체로서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수탈과 맞서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데 있다.”
이제 이 소설의 번역에 대해 알아보자. 원문 소설의 문체는 짧고 정확하며 단순하다. 다시 말하면, 너무나 투명해서 그리 어렵지 않다. 하지만 번역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는 달라진다. 우선 문체의 문제가 등장한다. 이 작품의 화자는 정신과 의사이며, 이 작품은 그의 고백이다. 김지영은 그의 환자이기에, 처음부터 소설의 주인공을 ‘김지영’이 아니라 ‘김지영 씨’라고 서술하고 있으며, 김지영 씨의 내면 묘사는 충실하지만,타인의 생각이나 관점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럴 때 번역자는 등장인물과 세계와의 거리감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는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김지영 씨’라는 단순한 말을 어떻게 번역해야 작품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화자의 신원을 감출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또한 원작에서는 ‘김지영 씨’가 반복되지만, 스페인어에서 그 고유명사를 그대로 반복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기에,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 번역자는 ‘씨’를 생략하여 친근감을 주면서도 주인공과 거리를 유지하는 문체를 구사하고, 주어를 적절히 생략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한국의 토착 음식이 자주 등장하는데, 스페인어권 독자에게 그것을 각주로 설명하는 순진하고 소극적인 번역을 넘어, 적절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번역을 시도하는데, 이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리고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말투도 눈에 띈다. 대표적인 예가 ‘장모와 사위의 관계’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사위가 ‘백년손님’으로 처가에서 대접받는 관계이지만, 스페인어권에서는 심각한 갈등 관계라는 점을 고려해 거리감이 느껴지는 어법을 구사한다.
최근 들어 번역본이 원작을 능가한다, 혹은 새로운 창작품으로 멋지게 재탄생했다 같은 호들갑이 상투적인 평이 된 것 같다. 그렇기에 이 번역을 그렇게 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번역에는 기술적인 단어 교체,구문 변화,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인 화법의 변화를 비롯해 오역까지 수반하고, 문학 텍스트의 속성상 그런 것이 결코 완벽하게 구사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 『82년생 김지영』의 스페인어 번역본은 그동안 고질적이었던 배급과 수용의 문제를 해결했고, 소설 번역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보여주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