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꽃대가리

오후 다섯 시의 로르카 도서관

문학작품은 사랑 아니면 전쟁에 대한 이야기

기획의 말 ①알지 못했던 세계에서 ②레트로토피아, 혹은 세트장으로서의 ‘과거’ ③어느 시대에 살고 싶은데요? ④시인 소호씨의 일일(一日)1)

실패한 사람

국가적 기억상실을 거부한다

튀는 퀴어, 나는 퀴어

“꽃은 지더라도 또 새로운 봄이 올 터이지”

그런 때가 있었다

나를 소설가로 만든 요소들

『칼라 명작 - 소년소녀 세계문학』을 읽는 매혹의 시간

김사량, 사선을 넘어 태항산에 들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1969년 베트남 어느 산기슭에서

가장 독창적인 동아시아의 도원도

그들의 땅, 거기에 깃들기

백화점에서 쇠스랑 닮은 포크로 먹는 ‘난찌’

①20 02 02 14,소녀 가장 ②실물,형식

①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②새 식구

흰 눈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①『논어』 읽고 듣기 ②아바나 항구에서 ③양파를 까는 마음

①새롭고 대담한 질문을 향하여 ②바이러스 갱단의 유쾌한 언어 사전

‘알아서 기지 않는 문학’

‘지혜가 있는 폰’이 일으킨 시장혁명 그리고 새로운 문명

동화가 된 소설, 영화가 될 수 없는 소설

신화의 땅에서 일어난 민족 수난사

사랑을 담아줘

대하소설을 외국어로 번역한다는 것

전후 한국문학 대표작의 사변성과 사회성을 읽다

대산창작기금,대산청소년문학상 등

2020 대산창작기금 및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공모 등

인문에세이 - 길을 묻다

실패한 사람

- 내가 경험한 중국과 문학

옌롄커(閻連科)|중국 소설가, 1958년생
소설집 『연월일(年月日)』, 장편소설 『사서(四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 『풍아송(風雅頌)』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 『빨리 함께 잠들 수 있기를(速求共眠)』, 산문집 『나와 아버지(我與父輩)』 등



실패한 사람

- 내가 경험한 중국과 문학


  얼마 전에 겪은 일입니다.
지난 10월 12일, 중국 허난(河南) 제 고향의 작은 마을 마당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가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거리는 무척이나 조용했습니다. 저는 어머니, 형님과 함께 그 조용함 속에 한가로이 앉아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뤄양(洛阳)에 가서 병원에 입원해야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와 형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병을 몸에 달고 사는 누나가 옆에 있다 설명을 해주더군요. 때로는 병원에 입원해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더 안전하고 확실하다고 말입니다.
  그리하여 어머니는 오래된 도시 뤄양과 인근 지역에 널리 알려진 인민병원에 서둘러 입원하셨습니다. 당일로 검사를 받으신 어머니의 몸에서는 오래 앓고 계시던 아주 귀찮은 만성 폐쇄성 폐질환 외에 심장 쇠약과 심방세동, 혈전 등 여러 가지 무서운 노년의 복합증상들이 한꺼번에 발견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연세가 여든 여섯인 데다 천식과 다리 부종을 오래 앓아오셨습니다. 삶의 질이 시간의 검증을 이겨내지 못하는 중국의 온갖 부실공사와 다르지 않았지요. 때문에 저와 형은 새로 추가된 이 증상들 때문에 몹시 불안해졌고, 어머니가 이어오신 노쇠하고 황량하고 썰렁한 생명에 직면하여 진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무력감 때문에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 자체가 생명이 쇠퇴하는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지요. 생명의 쇠퇴는 모든 사람의 시작과 끝을 결정합니다. 어떤 길을 걸어가든 종점은 똑같습니다. 그래서 그 순간부터 저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저 자신도 이미 상당히 쇠락하고 황량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분야에서 필연적으로 실패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의 운명에 개선과 승리가 결정되어 있는 것처럼 실패 또한 제 운명으로 결정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그리고 인생에서 배불리 먹고 따스하게 입는 것, 그리고 이른바 작가로서의 명예와 지위는 저로 하여금 이처럼 운명으로 결정된 실패를 잠시 잊은 채 쉬지 않고 분투, 노력하게 만드는 아편이자 양귀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는 인간으로서 제 인생의 득과 실을 반추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사상이란 여과기가 어떤 물질을 통과시켜 유용과 무용으로 구분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이런 여과기를 거쳐 한 가지, 또 한 가지 사건들이 제 눈앞에 반듯이 놓이고 나서야 비로소 저 자신이 이 세상에서의 실패로 인해 두 손이 텅 비어 버린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젊었을 때는 언젠가는 국가 관료가 되어 현장이나 국장, 청장, 시장까지 직위가 올라가고, 기침 한 번만 해도 담당 주치의가 달려와 체온을 재는 환상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병원에 진료 한번 받으러 가려면 인맥의 줄을 대지 않는 한 아들에게 새벽 세 시에 일어나 줄을 서고 등록을 하게 하는 수고를 끼쳐야만 합니다. 한때는 책상을 내려치면서 고위 간부들과 말다툼을 벌이고, 그 결과 그 고위 간부가 제게 사과를 하며 자기반성을 하는 환상을 갖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40여 년이 지나도록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위 간부 앞에서 사과를 하는 사람은 매번 저였습니다. 한때는 깃발을 들고 궐기하여 군중을 이끌고 거리에 나가 시위를 벌이면서 환호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 가두시위 대열에 참여한 적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10여 년 전에 중국이 아닌 한국에서 제 작품의 역자인 김태성 선생과 함께 광우병 쇠고기 수입과 이명박 정권에 반대하는 한국 국민들의 가두시위에 참여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차들이 사라진 서울의 대로를 천 걸음 넘게 걸었습니다. 또 언젠가는 진정한 민주와 공정의 투표함 앞에 서서 선거든 주민투표든 여론조사든 간에 저의 신성한 한 표를 투표함의 작은 구멍에 밀어 넣는 상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60년을 넘게 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투표함 앞에 서서 제 눈빛과 손가락으로 그 투입구의 따스함을 재보거나 만져본 적이 없습니다. 제게는 투표함의 투입구가 천국의 창문과 같아서 너무나 요원하고 희미하기만 합니다. 꿈속에서나 보고 만질 수 있을 뿐이지요.
  남아있는 그 어떤 시간에도 투표함은 저를 향해 굳게 닫혀 있고, 영원히 닫혀 있을 것입니다. 카프카의 소설 『심판』에서 K를 향해 영원히 닫혀 있던 법의 문과 같다고 할 수 있지요.
  저는 19세기의 디킨스나 위고, 투르게네프 같은 작가들이 자신들이 처한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고 노래를 불렀던 것처럼, 20세기의 헤밍웨이와 사르트르, 카뮈, 그리고 그 뒤를 이은 미국 작가 헨리 밀러, 조지프 헬러,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 윌리엄 버로스, 남미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작가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주제 사라마구, 훌리오 코르타사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영국 작가 이언 매큐언,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저와 친했으나 이미 고인이 된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와 미국 작가 필립 로스, 독일로 이주한 작가 도리스 레싱, 프랑스로 이주한 밀란 쿤데라와 이스마일 카다레, 전 세계를 격동케 했던 살만 루슈디와 여전히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는 오르한 파묵, 존 맥스웰 쿠체, 그리고 한국의 수많은 작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상과 행동으로 깊이 있게 자신이 처한 세계와 현실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때로는 이런 참여가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더라도 그렇게 하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이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널리 알려진 페터 한트케를 책망하지만, 저는 어떠한 참여와 표현이라도 침묵과 냉담, 그리고 진상을 알면서도 잘 모르는 척하는 중국식 태도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속한 세계와 현실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행동과 마음을 적극 칭송하다 보면 저 자신도 그저 허구에 의지해 글을 쓰는 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 세계와 수천수만 갈래의 관계와 인연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임을 깨닫게 됩니다. 설사 독립적인 의혹과 견해를 가진 지식인으로 칭송되지 못하고 그저 소설가라는 직함에 그친다 해도, 적어도 자신이 황당무계하고 부조리하며 복잡하고 어지러운 생활 속에서 살아 있는 송장이요 걸어 다니는 고깃덩이 혹은 숨 쉬는 미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이자 현실 속에 ‘멀쩡하게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지요. 중국에서는 자신의 길을 걸어가려는 사람에게 자기 신발을 신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노래를 부르려는 사람에게 항상 타인의 악보를 눈앞에 들이밉니다. 큰소리로 자신의 말을 하려고 하면 입을 막아버리거나 누군가 이미 써 놓은 원고지를 손에 쥐여 주지요. 중국의 장구한 역사에서 권력은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밥이요 옷이요 호흡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치는 현실 속에서 민중의 밥그릇에 담긴 쌀이요 잔에 든 물이며, 갓난아기의 젖이요 노인의 약이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정치는 인간의 존재이자 살아 있음이고, 모든 사람이 살기 위해 갖춰야 할 일상의 필수여야 하지요. 작가가 되면 정치와 권력을 완전히 초월하고 탈피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한 개인으로서는 현실에서 숨 쉬고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초월하거나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존의 곤경이지요. 저는 바로 이런 곤경의 기초 위에서 작가가 하나의 개체적 인간이라는 현실로 나타날 때, 그 역시 ‘생명을 지니고’ 살고 있고 현실의 삶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현실과 세계를 대하는 데 있어서 앞에서 거론한 위대한 작가들은 하나의 개체적 인간으로 사는 동시에 사회 현실 속에 개인으로 존재하고 생존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앞에서 거론한 위대한 작가들과 함께 반성적 사유를 진행할 때, 그것도 문학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만을 얘기할 때, 저는 저 자신이 중국에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게 됩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았거나 오래전에 이미 세상을 떠난 것과 마찬가지지요. 중국에서 저는 무수하고 무수한 중대한 일들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침묵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러쿵저러쿵 방관자로서 지껄일 수 있는 말조차 뱃속에 꾹 담은 채 토해내지 못합니다. 시대의 중대한 전환 속에서 저는 한 무리의 구경꾼들 가운데 맨 뒷줄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열차의 철로를 수리하거나 파괴하고 있을 때 아주 멀리 숨어서 그 건설과 파괴의 먼지가 제 앞으로 날아올까 봐 두려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수한 중국의 지식인들이 시대의 현실에 직면하여 이성과 질의의 외침을 쏟아낼 때, 저는 멀리서 확성기를 바라보고 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무수한 중국의 인민들이 생존의 곤경 속에서 왜곡되고 매일 예측이 불가능한 운명과 조우하고 있을 때 저의 반응은 침묵뿐이었습니다. 강가에 서 있다 발을 헛디뎌 급류 속으로 떨어진 미세한 먼지 같은 생명을 바라보며 뭔가를 찾는 듯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다가, 누군가 용감하게 물속에 뛰어들어 그 생명을 구해내고 난 뒤에는 마치 저 자신도 그 구조에 참여한 영웅이자 온몸이 도덕으로 가득한 정의로운 인물인 것처럼 착각하곤 했습니다.
  저는 제가 허위 덩어리인지 아니면 허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에 살아가는 아주 유약한 사람이요 방관자이자 침묵자라는 사실은 잘 압니다. 한 인간으로 존재하는 실패자인 것이지요. 생활 속에 살아 있는 사망자인 셈입니다. 제게 근근이 붙어 있는 숨은 가을 들판의 그 황량한 밭머리에 선 농부가 자신을 원망하는 서글픈 탄식 소리입니다. 그렇게 무의미한 탄식 소리는 바로 저의 생명이자 수확이 되고 하나의 버젓한 개인이지만 살아 있는 송장임을 보여주는 자본이자 증명이 됩니다. 1년 전 저는 한국 광주에서 자유를 위해 희생된 열사들을 기리는 ‘자유광장’을 찾아 깊은 생각에 잠겼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금세 현실로 돌아온 저는 여전히 침묵과 비어있는 두 손으로 사람들 사이를 걸어가는,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현실에 침묵함으로써 현실에 존재하는 사람입니다.
  유약함으로 모든 것을 대하는 사람입니다.
  탄식과 원망으로 행동을 대체하는 사람입니다.
  지난달 어머니가 당신의 몸을 검사하기 위해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여러 가지 병증을 발견했을 때, 저는 한 인간으로서 저의 존재가 실패와 공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저 자신이 살아 있는 사망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대한 사람들의 흐름 속에서 가물거리는 영혼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국의 현실 속에서 저는 풍차와 싸우려 덤비던 돈키호테의 용기도 힘도 의지도 없고, 하루 또 하루 반복하여 산꼭대기에서 굴러 내려오는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집착과 끈기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돈키호테나 시시포스에 비하면 저는 그저 무릎을 꿇고 삶을 향해 엎드려 절을 하며 기도를 올리는 유약한 신자에 더 가깝습니다. 하늘이 저의 운명에 복을 내려주고 저를 보호해주는지의 여부는 이미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향을 올리고 머리를 땅에 대어 절을 하는 것이 이미 저의 생활과 살아 있음의 중요한 부분이자 생명 그 자체가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관이 사망자의 존재 그 자체인 것과 마찬가지지요.
  확실히 그렇습니다. 저는 이미 묘당에서 향을 올리고 머리를 땅에 대면서 절을 올릴 줄만 알았지, 도대체 세상에 신이 있는지 없는지, 도대체 묘당 밖의 세계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향을 올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묘당 밖의 세계는 제가 향을 올린다고 하여 눈곱만큼도 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루쉰의 작품에 나오는 상린 아주머니(祥林嫂)1)처럼 매일 묘당에 가서 끊임없이 향을 올리고 울면서 “나는 그저 눈이 내리면 깊은 산이나 들판의 야수들이 먹을 것이 떨어져 마을로 내려올 수도 있다는 것만 알았지, 봄에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몰랐단 말이에요”라고 하소연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나약하고 서글픈 외침은 이미 상린 아주머니의 살아 있음에 대한 증명이자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세상을 대하는 저의 유약함과 침묵, 회피가 저의 살아 있음에 대한 증명이자 그 자체인 것과 같습니다.
  인간으로서, 상린 아주머니의 일생은 실패였고 죽음이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저의 일생도 실패이자 죽음입니다.
  인간으로서, 상린 아주머니의 일생은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될 만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저의 일생은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상린 아주머니는 백 년 전 중국의 현실에 살았지만 저는 백 년 뒤 중국의 현실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각 구간은 저의 글 속에만 있습니다. 시대의 각 구간이 역사의 하늘 아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시대와 현실 안에서 살아갑니다. 게다가 상린 아주머니는 화라오쉬안과 아Q, 쿵이지와 같은 필부일 뿐이지만 저는 이 시대에 나름대로 명예와 위신을 갖고 글을 쓰는 사람이고 사람들에게 흔히 유명 작가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작가로서는 실패자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해볼 수도 있을 겁니다. 상린 아주머니처럼 울면서 향을 태우는 것 말고는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제가 최근에 가장 자주 생각하는 문제이자 사유의 과제입니다. 저는 최근에 작가인 그 사람, 옌롄커라고 불리는 그 사람과 대면하여 질의를 던지곤 합니다. 자주 그와 함께 아무도 없는 찻집에 앉아 담론하고 논쟁하고 말다툼을 벌입니다. 옌롄커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그 옌롄커가 끊임없이 이 옌롄커에게 질의를 던집니다. 당신의 글쓰기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건가요? 당신은 예술과 심미, 시간에 부끄럽지 않은 문학작품을 쓰고 있나요? 그렇다면 그런 작품들을 써서 뭘 하겠다는 건가요? 또 그런 작품들을 써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이런 문제와 의혹들이 하나 또 하나 이어지면서 한 가지 질의가 또 다른 질의를 압박합니다. 그 옌롄커가 끊임없이 이 옌롄커에게 질의를 던집니다. 두 옌롄커의 논쟁은 마치 쌍둥이 형제가 싸우는 것처럼 서로를 무시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완전히 다른 두 사상과 영혼이 논쟁하고 말다툼을 벌이다가 치고받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 옌롄커와 마주 보고 서 있는 그 옌롄커가 우세를 점하면서 이 옌롄커를 압도하고 말지요. 이 옌롄커를 제압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두 옌롄커의 논쟁이 끝을 맺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간 이 옌렌커가 어머니의 병상 옆에 앉아 있을 때, 세상이 더없이 고요해졌을 때 가볍게 묻는 것입니다. 당신은 방금 자신이 열거한 그 위대한 작가로 존재하는 사람들을 그토록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인간으로서 세계와 자신들이 처한 환경, 현실을 직시하고 평생 질의하며 항쟁하고 지혜를 다해 항변하는데, 당신은 인간으로서 당신이 처한 세계와 현실을 직면하여 어떤 일들을 했나요? 어떤 질의와 주장과 행동을 시도했나요? 인간인 동시에 작가로 존재하면서 그들은 그들 개인과 언어, 민족에만 속한 독특하고 위대한 작품을 써냈는데 당신이 쓴 작품들은 어떤가요? 당신의 작품을 그들의 작품과 나란히 놓고 논할 수 있나요? 당신의 작품이 그들의 작품에 형편없이 뒤떨어지는 건 아닌가요?

 

  저는 그 옌롄커가 깊은 밤에 던진 질의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얼른 답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깔깔하고 메마른 모래가 목구멍을 가득 메우고 있기라도 한 듯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옌롄커는 그렇다고 자신의 질의를 거두지 않고, 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질의로 계속해서 저를 압박했습니다. 당신의 작품이 앞에서 거론한, 깊이 있게 역사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옛날 『변신이야기』를 썼던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나 『변신』과 『성』을 써냈던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역사의 격동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로 망명했지만 잔혹한 역사의 기억을 피할 수 있었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나 요세프 브로드스키, 20세기 역사의 불안 속에 살았던 남미 작가 후안 룰포와 호르헤 보르헤스 등 역사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거나 현실과 역사를 초월한 작가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하나요? 그 옌롄커는 깊은 밤에 제 앞에 서서 역사의 기억을 피하거나 초월했던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중국 작가 선충원(沈从文)과 샤오훙(萧红), 장아이링(张爱玲) 등을 거론했습니다. 그는 너그럽게도 저로 하여금 자신을 외국 작가들과 비교하지 않고 중국 작가들하고만 비교하게 하는 아량을 베풀면서 끊임없이 질의를 이어갔습니다. “당신의 작품이 장아이링이나 샤오훙, 선충원 같은 작가들보다 더 큰 심미적 가치와 역사를 초월하는 의미를 갖고 있나요?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감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습니까, 아니면 고개를 가로저을 겁니까?”
  그 옌롄커의 질의는 저를 미치게 했습니다. 저를 절망의 상태로 내몰았습니다. 그는 저로 하여금 말문이 막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굴복하고 절망하게 했습니다. 그가 제 앞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습니다. “당신이 말했잖아요. 당신 평생의 노력이 오로지 자신의 창조에 속하는 소설을 쓰기 위한 것이라고 말이에요. 그렇다면 당신의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어떤 작품이 그런 소설인가요?”
  긴 시간 동안 이어진 저의 더듬거림과 침묵 가운데 모든 질의를 마친 그는 오랫동안 차가운 시선으로 저를 바라보다가 결국 멸시하는 듯한 비웃음을 던지고 가버렸습니다. 수시로 제 눈앞에 나타나곤 했던 또 다른 옌롄커가 가버렸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아주 길고 차가운 의문과 질의 속에 홀로 남게 되었습니다. 캄캄하고 견고한 시간의 우리에 단단히 갇힌 것 같았습니다. 어두운 우리 속에서 저는 계속해서 반성하고 사유했습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성실한 태도로 자신과 독자, 그리고 여러분을 대해야 했습니다. 확실히 필생의 노력을 경주하고도 완전히 자신만의 창조에 속한 소설을 써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결국에는 오늘 이후의 세월에도 ‘완전히 자신의 창조’에 속한 소설을 써낼 수 있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슬픔이 조수처럼 밀려와 제 온몸을 적셨습니다. 제 나이 이미 60이 넘었습니다. 저는 삶의 끝이 지금 빠른 속도로 서글픔과 이별의 방향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당신의 질병들을 예지하는 것처럼 저도 한 인간으로서 실패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도 실패한 작가라는 것도 잘 압니다. 평생 글 쓰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면서 했던 노력을 결국에는 두 소매의 시원한 바람과 바꿀 수 있을 뿐입니다.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장차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날 밤, 저는 어머니의 병실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정신이 맑기만 했습니다. 다음 날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아래 잠에서 깨신 어머니가 저를 곁으로 불러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난 그래도 한평생 참 가치 있게 산 것 같구나. 네 아버지가 일찍 먼저 가시면서 모든 복을 내게 남겨주신 것 같아. 우리 가족이 너의 글쓰기 덕분에 큰 재난이나 어려움 없이 잘 먹고 잘 입으면서 걱정 없이 살고 있으니 말이다.”
  어머니의 얼굴에 위안의 미소가 번졌습니다.
  제 얼굴에도 큰 위안의 미소가 걸렸지요.
  하지만 이 미소 뒤에서 저는 여전히 제가 실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영원히 다 먹지 못할 곡물 통가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평생 공부를 하지 못해 일자무식인 것을 한탄하는 농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살아 있는 것이 배불리 먹고 따스하게 입기 위해서만이 아니라는 것, 배불리 먹으면 곧 잠이 드는 한 마리 돼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확실히 갈등과 신경질로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저는 중국 베이징에 살 집도 있고 먹을 양식도 있고 안정된 일과 수입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의 가난함을 생각할 때면, 평생 열심히 노력하면서 게으름 피우지 않고 독서와 글쓰기에 전념해왔고 출판되었든 출판되지 않았든 그런 작품들에게 어떤 행운과 액운이 있었든 간에 필생의 노력으로도 아직 ‘자신만의 독특한 창조’가 될 작품을 써내지 못한 것을 생각할 때면, 이중의 실패와 인생의 비애가 저의 가슴과 온몸을 휘감아 적시고 차가운 냉기가 상한증(伤寒症)처럼 제 영혼을 엄습합니다.
  지금, 저의 어머니는 병세가 다소 좋아져 병원을 나오셨습니다.
  지금, 제 영혼의 학질도 이미 그렇게 위급하고 복잡한 상태는 아닙니다. 이미 “나는 실패한 인간이다”라는 운명으로 정해진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생활의 통속적인 부분에 관해 말하자면, 저의 글쓰기로 인해 저희 일가는 ‘먹을 것 입을 것 걱정하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이는 저의 글쓰기에 대한 가장 큰 보답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어머님께서 병으로 입원하게 된 상황이 “인간은 일단 세상에 태어나면 죽음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라는 잔혹한 진실과 존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존재 때문에 우리가 태어나서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에 이를 때까지, 그 사이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그래도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이런 시각에서 글쓰기에 관해 언급하자면, 정말로 일생의 글쓰기가 전부 실패이고 또 그렇게 두려운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이 ‘걸어간다’는 것 자체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이것이 생명의 정벌전쟁이자 변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설사 글쓰기가 실패하도록 정해져 있고, 백 퍼센트 실패라고 할지라도 저는 하루하루 글을 쓰면서 ‘최대한 나만의 창조’의 방향으로 걸어갈 것입니다. 저의 모든 작품이 글쓰기의 실패와 무의미를 반복적으로 증명한다 해도 그럴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살아 있는 것이 생명의 무의미를 증명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살아 있는 것이 생명의 의미 있음을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누군가에게는 글을 쓰는 것이 글쓰기의 무의미를 증명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천재의 글쓰기가 글쓰기의 의미 있음을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이 두 가지 중에서 저는 전자의 운명을 택하겠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실패한 사람임을 인정합니다. 저의 글쓰기가 저의 실패를 반복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수많은 작가들이 가치로써 자신의 위대한 존재를 증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렇다면 저는 무가치와 무의미, 그리고 실패로 저의 삶과 인생이 예술과 함께 구름처럼 사라지고 안개같이 흩어지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2019년 10월 18일 베이징에서 씀
[번역 : 김태성]




1) 루쉰의 유명한 소설 『축복』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대단히 연약하고 무지하며 우매하다. 게다가 매일 몹시 슬프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자신의 고된 운명을 하소연한다. 중국문학에서 가장 가련한 인물의 전형으로, 아큐(阿Q)나 쿵이지(孔乙己), 화라오쉬안(华老拴) 등과 마찬가지로 중국문화의 코드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