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꽃대가리

오후 다섯 시의 로르카 도서관

문학작품은 사랑 아니면 전쟁에 대한 이야기

기획의 말 ①알지 못했던 세계에서 ②레트로토피아, 혹은 세트장으로서의 ‘과거’ ③어느 시대에 살고 싶은데요? ④시인 소호씨의 일일(一日)1)

실패한 사람

국가적 기억상실을 거부한다

튀는 퀴어, 나는 퀴어

“꽃은 지더라도 또 새로운 봄이 올 터이지”

그런 때가 있었다

나를 소설가로 만든 요소들

『칼라 명작 - 소년소녀 세계문학』을 읽는 매혹의 시간

김사량, 사선을 넘어 태항산에 들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1969년 베트남 어느 산기슭에서

가장 독창적인 동아시아의 도원도

그들의 땅, 거기에 깃들기

백화점에서 쇠스랑 닮은 포크로 먹는 ‘난찌’

①20 02 02 14,소녀 가장 ②실물,형식

①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②새 식구

흰 눈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①『논어』 읽고 듣기 ②아바나 항구에서 ③양파를 까는 마음

①새롭고 대담한 질문을 향하여 ②바이러스 갱단의 유쾌한 언어 사전

‘알아서 기지 않는 문학’

‘지혜가 있는 폰’이 일으킨 시장혁명 그리고 새로운 문명

동화가 된 소설, 영화가 될 수 없는 소설

신화의 땅에서 일어난 민족 수난사

사랑을 담아줘

대하소설을 외국어로 번역한다는 것

전후 한국문학 대표작의 사변성과 사회성을 읽다

대산창작기금,대산청소년문학상 등

2020 대산창작기금 및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공모 등

특별기고

국가적 기억상실을 거부한다

-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확산에 부쳐

옌롄커(閻連科)|중국 소설가, 1958년생
소설집 『연월일(年月日)』, 장편소설 『사서(四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爲人民服務)』 『풍아송(風雅頌)』 『딩씨 마을의 꿈(丁莊夢)』 『빨리 함께 잠들 수 있기를(速求共眠)』, 산문집 『나와 아버지(我與父輩)』 등

편집자 주 l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비판적 지식인인 옌롄커가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와 관련하여 중국 과거 역사에 대한 기억과 인식이 심각하게 결여되어 있는 중화권 젊은이들에게 호소하는 글을 보내왔다. 이 글은 홍콩 과기대 교수이기도 한 작가가 개학이 미루어지면서 진행된 온라인 수업의 첫 번째 강의록이기도 하다.


국가적 기억상실을 거부한다
- 중국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 확산에 부쳐



  제가 어렸을 때, 저는 똑같은 실수를 두 번, 세 번 반복하곤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저를 앞으로 불러 손가락으로 이마를 누르면서 물으셨지요.
  “너는 기억력이 없는 게냐?”
국어수업 시간에 몇 차례에 걸쳐서도 암기를 하지 못하면 선생님은 저를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고는 여러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물으셨습니다.
  “너는 기억력이 없니?”
  기억력은 기억의 토양이고 기억은 이 토양 위에서의 생장과 확장입니다. 기억력과 기억을 갖는다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류가 다른 동물이나 식물과 다른 근본적인 차이점이지요. 우리가 성장하고 성숙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구이기도 합니다. 저는 대부분의 경우 기억력과 기억이 밥 먹고 옷 입고 호흡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억력과 기억을 잃었을 때, 우리는 밥을 짓거나 땅을 일굴 도구와 기술도 잃게 됩니다. 밤새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어도 옷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게 되고, 정말로 임금님이 옷을 입지 않은 것이 입은 것보다 훨씬 더 멋지다고 생각하게 될 겁니다.
  오늘 왜 이런 얘기를 하냐고요? 신종 코로나 감염증(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이라는 질병이 나라와 세계 전체에 번지고 있지만 제대로 통제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거나 소멸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후베이(湖北)의 우한(武汉), 그리고 중국 전역에서 사람이 죽고 가정이 파괴되어 귓가에 사람들의 곡소리가 그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미 통계 숫자의 호전으로 인해 위에서 아래로, 전후좌우로, 경축을 준비하는 북소리와 가공송덕(歌功頌德)의 노랫소리를 듣고 보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시신이 채 식지 않고 곡소리가 멈추지 않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영명함과 위대함을 외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합니다.
  신종 코로나 감염증이 한 걸음 한 걸음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뒤로 오늘까지 우리는 이 질병으로 인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병원에서 죽은 사람과 병원 밖에서 죽은 사람이 몇 명인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조사나 질의조차 시작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조사와 질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종결되고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후대 사람들에게 남겨야 할 한 무더기 기록되지 않은 삶과 죽음이 삭제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병이 지나간 뒤에 루쉰의 소설에 등장하는 상린 아주머니(祥林嫂)처럼 매일 “나는 눈이 내리면 산에 사는 야수들이 먹을 것이 없다는 것만 알았지, 그놈들이 마을에 나타나리라는 것은 몰랐고, 봄에도 나타나리라는 것도 몰랐어요”라고 중얼거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더 이상 아Q처럼 죽도록 구타와 굴욕을 당하고서도 여전히 자신은 사내대장부이고 자신이 승리한 것이라고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과 우리가 처한 역사와 현실에서는, 개인이나 가정이든, 아니면 사회와 시대, 국가이든 간에, 왜 서글픈 비극과 재난이 계속 반복되며 이어지는 걸까요? 왜 역사와 시대의 함정과 슬픈 재난을 항상 우리 수천, 수만의 백성들의 죽음과 생명으로 감당하고 채워야 하는 걸까요?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묻지도 않는, 묻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물을 수조차 없는 수많은 원인들 가운데 하나는 인간으로서의 우리에게, 수천수만의 백성이자 개미인 우리에게 기억력이 너무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의 기억들이 규제되고 대체되고 말살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사람들이 기억하라는 것만 기억하고 잊으라는 것은 잊어 왔습니다. 침묵하라고 할 때는 침묵하고 노래하라고 할 때는 노래했습니다. 개인의 기억은 시대의 도구가 되고 집단과 국가의 기억이 개인의 기억과 기억상실을 대신하고 결정했습니다.
  한번 생각해볼까요. 이미 표지를 바꾸고 분류번호마저 지워버린 역사와 먼 과거는 일단 거론하지 말기로 합시다. 바로 직전 우리가 겪은 20년의 시간만 놓고 보더라도 여러분처럼 80년대와 90년대에 출생한 사람들 모두 전국적인 에이즈 전염과 사스, 그리고 지금의 신종 코로나감염증을 경험하고 기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재앙들이 천재였습니까, 인재였습니까? 탕산(唐山) 대지진이나 원촨(文川) 대지진처럼 인간의 힘으로 막기 어려운 하늘이 내린 재앙이었습니까? 앞에서 말한 전국적인 재난에 작용했던 인위적인 요소들이 어째서 계속 반복되면서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는 걸까요? 특히 17년 전 사스와 지금의 신종 코로나 감염증의 만연과 피해는 동일한 감독이 연출하는 동일한 비극의 재연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지나 다름없는 우리로서는 감독이 누구인지 따져 물을 수도 없고 시나리오의 취지와 구상, 창작을 환원할 수 있는 전문지식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또다시 재연되는 죽음의 슬픔 앞에 서서 적어도 우리는 지난번의 비극이 남긴 기억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볼 수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기억력을 누가 말살하고 누가 파내 가버리는 걸까요?
  기억력이 없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들판이나 길 위의 흙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구두로 우리를 밟아서 어떤 모양이든 다 만들어냅니다. 구두의 자국이 모든 걸 결정해버리는 것이지요. 기억이 없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과거의 생명과 단절된 나무나 합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미래에 어떤 형태의 어떤 물건이 될지는 톱과 도끼가 결정합니다.
  우리처럼 문학과 창작을 뜨겁게 사랑하고 이를 통해 생활이 의미를 갖게 하면서 일생을 문자에 의지하여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홍콩 과기대 대학원 학생들과 중국 인민대학의 문예창작 대학원을 거쳐 간 젊은 작가들이, 자신들 개인의 피와 생명에서 오는 기억과 기억력에 속하기를 포기한다면, 그런 글쓰기가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문학은 또 어떤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요? 우리 이 사회는 작가들이 무엇을 해주기를 요구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열심히 펜을 놀리고 분투노력하여 써낸 책이 자기 키만큼이나 높이 쌓이는 것이 줄에 매달려 조종되는 꼭두각시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기자가 자신이 눈앞에서 본 것을 쓰지 않고 작가가 자신의 기억과 느낌을 쓰지 않을 때, 사회 여론에서 말을 할 수 있고 말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항상 순정한 국가의 목소리로만 읊조리고 읽고 낭송한다면 누가 우리에게 이 세상에 살아가는 개인적 진실과 진상, 존재와 생명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을까요?

[출처 : 질병관리본부]

 


  생각해봅시다. 오늘의 우한에 팡팡(方方)1)이란 작가의 존재와 기록이 없다면, 팡팡이 자신의 기억과 느낌을 문자로 써내지 않았다면, 팡팡 같은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없다면, 휴대폰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삶과 죽음의 울음과 구조를 갈구하는 외침이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들을 수 있을까요? 또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개인의 기억은 종종 남아도는 시대의 거품이나 물보라, 소란으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시대의 잉여로 간주되어 한쪽에 던져지는 것이지요. 개인의 기억이 소리 없이 말도 못하고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 되어 시대의 수레바퀴에 실려 지나가버릴 때 거대한 망각이 도래하게 됩니다. 영혼을 가진 피와 살이 없어지는 것이지요. 모든 것이 조용하고 평안해져 지구를 움직일 수 있는 아주 작은 지렛대마저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역사는 곧 근거 없는 전설이 되고 망각과 상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각도에서 볼 때 우리가 항상 기억력을 유지하는 것, 개인이 변하지 않고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 바른말이 최소한의 진실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절대다수가 평생을 기억을 통해 글을 쓰고 진실을 추구하고 말을 하도록 운명으로 결정된 사람들이 아닌가요? 어느 날 우리에게마저 그 가련한 진실과 기억이 남아 있지 않게 된다면, 도대체 이 세상에 개인과 역사의 진실과 진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가 개인의 기억력과 기억을 갖는다고 해서 세계와 현실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통일되고 규획된 진실 앞에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상황이 이런 게 아닌데!”라고 중얼거리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신종 코로나 감염증의 전환점이 다가올 때, 거대한 승리의 환호와 북소리 속에서 우리는 개인과 가정, 주변의 슬픈 탄식과 울음소리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개인의 기억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로 하여금 진실한 내면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지요.
  개인의 기억이 반드시 현실적 역량으로 변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황당한 거짓말이 다가올 때, 우리가 마음속에 의문부호를 찍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적어도 어느 날 또다시 대약진운동과 강철제련운동의 시대가 찾아올 때, 우리는 모래로는 강철을 제련할 수 없고 한 무(亩, 약 666.5㎡)의 땅에서 10만 근에 달하는 작물을 수확할 수 없다는 것이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 중에서도 상식이라고, 의식으로 물질을 창조하고 공기로 식량을 생산하는 기적은 불가능하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적어도 어느 날 10년 대동란으로 규정된 문화대혁명 같은 혁명이 재현된다면 우리는 자신의 부모를 또다시 감옥이나 단두대로 보내지 않으리라 굳게 맹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는 평생을 언어에 의지하여 현실과 기억을 상대로 소통해야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제가 말하는 기억은 수천수만의 개인의 기억 즉, 집단의 기억이나 국가의 기억, 민족의 기억이 아닙니다. 중국의 역사에서 국가의 기억과 집단의 기억은 항상 우리 개인의 기억력과 기억을 가리고 왜곡시켜 왔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로 지금, 신종 코로나 감염증이 아직 기억으로 응결되지도 않았는데 우리의 주변, 사방에서 이미 드높은 가공송덕과 찬미의 노래와 경축의 북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저는 신종 코로나 감염증의 재난을 겪은 사람들이나 겪지 않은 사람들 모두 이 재난을 통해 기억력을 갖는 사람, 기억력이 기억을 생산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 후 신종 코로나 감염증이라는 이 국가적 전쟁에서의 승리를 경축하는 북소리가 하늘을 울리고 가공송덕의 시문이 난무하기 시작할 때, 여러분 모두 그 공허한 시문의 작가가 되지 말고 야무지게 기억만 유지하는 실질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과 땅을 울리는 거대한 공연이 펼쳐질 때, 여러분은 무대 위의 출연자나 낭송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공연을 위해 박수치는 사람이 아니라 무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서서 공연을 보면서 말없이 눈물짓고 침묵하는 나약하고 무력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재능과 용기, 마음의 힘으로 팡팡 같은 작가가 될 수 없다면 적어도 팡팡을 조롱하고 비방하는 사람들 틈에 우리의 그림자와 목소리가 섞여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것이 조용하고 평안한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바다 같은 노랫소리 속에서 신종 코로나 감염증의 발생과 만연에 대해 질의하고 큰소리를 낼 수 없다면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양심과 용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이 야만일 수 있겠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말없이 망각하는 것은 야만일 뿐만 아니라 더 무서운 야만일 것입니다.
  리원량(李文亮)처럼 먼저 호각을 불 수 없다면 호각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큰소리로 말할 수 없으면 귓속말을 하면 됩니다. 귓속말을 할 수 없으면 기억력과 기억을 가진 침묵자가 될 수 있지요. 우리는 이번 신종 코로나 감염증의 발생과 충격, 만연에 이어 머지않아 이른바 전쟁승리를 경축하는 만인의 합창이 들려올 때, 말없이 한쪽 구석에 서서 마음속에 무덤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억의 낙인을 갖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언젠가 이런 기억력이 개인의 기억을 생성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2020년 2월 20일 베이징에서 씀
[번역 : 김태성]




1) 1955년 중국 우한에서 태어난 토박이 작가로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발생, 확산되자 ‘우한일기’라는 제목으로 우한의 상황을 매일 위챗에 올려 알렸다가 중국 당국으로부터 유언비어 날조로 비판 받으며 2월 14일 위챗에 올린 모든 글과 계정이 삭제되었다.


经此疫劫,让我们成为有记性的人



同学们:
  今天是我们科大研究生班网络授课的第一讲。开讲前请允许我说些课外话。
  小时候,当我连续把同样的错误犯到第二、第三次,父母会把我叫到他们面前去,用手指着我的额头问:
  “你有记性吗?!”
  当我把语文课读了多遍还不能背诵时,老师会让我在课堂上站起来,当众质问到:
  “你有记性吗?!”
  记性是记忆的土壤,记忆是这土壤上的生长和延伸。拥有记性和记忆,是我们人类与动物、植物的根本之差别。是我们成长、成熟的第一之需求。我以为,许多时候它比吃饭、穿衣、呼吸更重要。因为当我们失去记性、记忆时,我们会失去做饭、耕地的工具和技能;会一夜醒来,忘记衣服放在哪儿了;会确真以为皇帝不穿衣服要比穿着好看得多。今天为什么要说这些?因为新冠肺炎这场举国、举世之灾难,它还没有真正被控制,传染还远远没有过去和消失。然而这时候,湖北、武汉乃至全国别的省市和地区,家破人亡、满门绝去的哭声都还不绝于耳时,我们已经听到、看到因为统计数字的向好,就开始自上而下、左左右右地准备欢庆的锣鼓和高歌的亮嗓了。
  一边尸骨未寒的哭声还未落下去,另一边,凯歌在即,英明、伟大的呼声已经响起来。
  自新冠肺炎一步一步地走进我们的生活始,到今天,我们并没有真正弄清因为新冠肺炎一共死了多少人——死在医院是多少,死在医院之外有多少。甚至都还未来及去调查、叩问这一些。也甚至,这样的调查和叩问,会随着时间的移去而终结,而永远是个迷。是我们留给后人的一笔忆之无据的生死糊涂册。我们固然不该在疫情之后如同祥林嫂,每天都在念叨着:“我单知道下雪的时候野兽在山墺里没食吃,会到村里来;我不知道春天也会有。”但我们也不该一而再、再而三地像阿Q那样儿,在挨打、羞辱和死至临头时,还依然相信自己是汉子,自己才是胜利者。
  在我们的人生里,在我们所处的历史和现实中,无论是个体或家庭,还是社会、时代、国家的悲劫和灾难,为什么总是一个接着一个呢?为什么历史、时代的坑陷和悲劫,总是由我们成千上万百姓的死亡和生命来承担和填补?在诸多、诸多我们不知道、不追问、不让追问就不问的因素里,有一点,就是我们作为人——我们千千万万的百姓或蝼蚁——我们自己太没记性了。我们的个人记忆被规划、取代和抹杀了。我们总是人家让记住什么的就记什么,让遗忘什么的就忘什么;让沉默时沉默,让歌唱时歌唱。个人记忆成了时代的工具,集体和国家记忆成了个人失忆或记住的分配和承包。试想一下,我们不去讨论那些已经更换了封面、书号的历史和久远,单是最为眼前的二十年,和你们一样,八零、九零的孩子都经过、记得的几乎是举国之灾的艾滋病、非典和新冠肺炎,它们到底是人祸之灾难,还是如唐山、汶川地震样的人类还难以抗逆的天谴之劫难?在前者的举国之灾里,人为的因素为什么又几乎如出一辙呢?尤其17年前的SARS和今天新冠肺炎的蔓延和肆掠,如同同一导演将同一悲剧的再次复排和出演,作为我们这些如尘埃一样的人,我们既不能追问导演是谁,也没有专业知识去还原编剧的念想、构思和创作。那么当我们再次站在复排的死亡之剧面前时,我们至少可以问一问,属于我们的上次悲演留下的记忆去哪了?
  我们的记性被谁抹去、挖走了?!
  没有记性的人,从本质上说,就是田野、路道上的土。皮鞋愿意把我们踩成啥样儿,由那只皮鞋的牙痕说了算。
  没有记忆的人,从本质上说,就是和过去生命割断的木头和板材,它们的未来是什么物形和东西,由锯子和斧头说了算。
  对于我们来说——对于我们这些因为热爱写作而让生活有了意义的人,一生要靠方块字活着的人——在线的科大研究生班的同学们,也包括人大创造性写作研究生班已经毕业和在读的作家们,如果连我们都放弃了属于我们个人的、来自血与生命的记忆和记性,那么写作到底还有什么意义呢?文学还有什么价值呢?我们这个社会还要作家干什么?你笔耕不辍、勤奋努力、著作等身,这和被人不断牵线、调动的木偶有什么差别吗?记者不写他亲眼看到的;作家不写他个人记忆、感受的;在社会舆论中,能说话和会说话的人,总是用纯正抒情的国家腔调在念、在读、在朗诵,那么还有谁能告诉我们我们活在这个世界上,作为个体的真实、真相和存在的血肉生命是什么?
试想一下子,如果今天的武汉,没有作家方方的存在和记录,没有方方用文字写下她个人的记忆和感受,没有成千上万如方方那样的人,通过手机传递给我们的生死哭唤和呼救声,那么我们会听到一些什么呢?会看到一些什么呢?
  在巨大的时代洪流中,个人记忆往往被视为是时代多余的泡沫、浪花和喧嚣,会被时代剔除、扔掉或甩到一边去;会让它无声、无言如同从未存在过,从而在一个车轮流水的时代过去时,巨大的遗忘到来了。有灵魂的血肉没有了。一切都安泰静好了,能够撬动地球那个小而有小的真实支点不在了。如此着,历史就成了无依无据的传说、遗忘和想象。从这个角度说,我们长有记性,拥有个人不被改变、磨灭的记忆,是多么重要的一件事。是讲一点真话最低的真实和证据。尤其我们写作班的同学们,我们绝多都注定是要一生用记忆来写作、求真、活着的人,如果有一天,连我们都没有了那点儿可怜的真实和记忆,那么这个世界上,到底还有没有个人和历史的真实和真相?
  实在说,我们拥有个人的记性和记忆,即便不会改变世界和现实,那么只少在面对统一、规划的真实时,我们也会在心里呢喃到:“情况不是这样啊!”只少在新冠肺炎的拐点真正到来时,在巨    大、欢庆胜利的锣鼓中,我们还能听到、记住那些来自个体、家庭、边缘的哀嚎和哭泣。
  个人记忆改变不了世界,但它可以让我们拥有真实的内心。
  个人记忆不一定能成为改变现实的力量,但它只少可以在谎言到来时,帮助我们在心里打出一个问号来。只少说,某一天又有大跃进、大炼钢铁的时代了,我们相信沙子炼不成铁、亩产不能达到十万斤,是人类最基本的常识之常识,而非意识创造物质、空气生产粮食的奇迹吧。也只少,某一天又有十年浩劫那样的革命了,我们能保证自己不把自己的父母送进监狱和断头台。
  同学们,我们都是文科生,我们可能一生都是要靠语言去和现实、记忆打交道的人。于记忆言,我们不说成千上万的个人记忆,就是集体记忆、国家记忆和民族记忆那样的话,因为在我们的历史上,国家记忆、集体记忆总是覆盖、改变着我们个人的记性与记忆。在今天,就现在,新冠肺炎还远远没有凝结为记忆时,而我们的身边和四周,都已经开始响起高歌颂圣、大肆欢庆的锣鼓了。正是因为这一点,希望同学们、希望我们经过了新冠肺炎劫难的人,经由此一劫,都能成为长有记性的人;能让记性生出记忆的人。
  在可预知的不久后,在锣鼓喧天、诗文横飞,开始喧天闹地地歌颂打赢了新冠肺炎这场国家战争的胜利时,希望我们大家不是那些空洞高歌的写作者,而仅仅是拥有个人记忆的实实在在的人。在铺天盖地的盛大演出到来时,希望我们不是舞台上的演员和朗诵者,不是为出演而鼓掌的人;而是站在舞台的最远处,默默看着演出而眼含热泪的一个柔弱无奈的人。我们的才华、勇气和心力,如果不能让我们成为方方那样的写作者,那么只少在猜忌、嘲讽方方的人群里,要没有我们的身影和声音。在最终要回归、到来的静好盛世里,在海洋般的歌声中,面对新冠肺炎的根起和蔓延,如果我们不能把疑问大声说出来,而小声的嘀咕也是良知和勇气;在奥斯维辛之后写诗是野蛮的,但一味地不言、不说和忘记,则不仅是野蛮的,而且是更为野蛮、可拍的。
  不能做李文亮那样的吹哨人,就让我们做一个听见哨音的人。
  不能大声地讲,就做一个耳语者;不能做一个耳语者,就做一个有记性、记忆的沉默者。让我们因为这次新冠肺炎的缘起、肆掠和蔓延,在即将到来的被称为战争胜利的万人合唱中,默默的站到一边去,成为一个心里有坟墓的人;有记性烙印的人;可以在某一天把这种记性生成个人记忆传递给后人的人。

2020年20日 北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