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꽃대가리

오후 다섯 시의 로르카 도서관

문학작품은 사랑 아니면 전쟁에 대한 이야기

기획의 말 ①알지 못했던 세계에서 ②레트로토피아, 혹은 세트장으로서의 ‘과거’ ③어느 시대에 살고 싶은데요? ④시인 소호씨의 일일(一日)1)

실패한 사람

국가적 기억상실을 거부한다

튀는 퀴어, 나는 퀴어

“꽃은 지더라도 또 새로운 봄이 올 터이지”

그런 때가 있었다

나를 소설가로 만든 요소들

『칼라 명작 - 소년소녀 세계문학』을 읽는 매혹의 시간

김사량, 사선을 넘어 태항산에 들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1969년 베트남 어느 산기슭에서

가장 독창적인 동아시아의 도원도

그들의 땅, 거기에 깃들기

백화점에서 쇠스랑 닮은 포크로 먹는 ‘난찌’

①20 02 02 14,소녀 가장 ②실물,형식

①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②새 식구

흰 눈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①『논어』 읽고 듣기 ②아바나 항구에서 ③양파를 까는 마음

①새롭고 대담한 질문을 향하여 ②바이러스 갱단의 유쾌한 언어 사전

‘알아서 기지 않는 문학’

‘지혜가 있는 폰’이 일으킨 시장혁명 그리고 새로운 문명

동화가 된 소설, 영화가 될 수 없는 소설

신화의 땅에서 일어난 민족 수난사

사랑을 담아줘

대하소설을 외국어로 번역한다는 것

전후 한국문학 대표작의 사변성과 사회성을 읽다

대산창작기금,대산청소년문학상 등

2020 대산창작기금 및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공모 등

단편소설

①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정지아|소설가, 1965년생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 소설집 『행복』 『봄빛』 『숲의, 대화』 등

    단편소설①

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역시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세상에는 세 번이나 전화를 받지 않는 건 받기 싫다는 의미라는 걸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사촌동생 기택이가 딱 그런 인간이다. 지난겨울 시골로 내려온 뒤 걸핏하면 전화를 해대기에 한동안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다. 친남매처럼 자랐다고는 하지만 스무 살 이후 택이와 나는 각자 살기 바빴다. 명절날 얼굴 보고 입 발린 안부나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삼십 년 넘는 세월을 훌쩍 건너 뛰어 늘 얼굴 보고 살던 옛날처럼 친한 척 구는 게 어색해서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인데 설에 만난 택이는 뭐 흔다고 노상 바쁘대? 라고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진짜 바빠서 전화를 못 받은 것이라 저 혼자 짐작하고 찰떡같이 믿은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네 번째 전화가 울렸을 때 얼마 전 무릎 수술을 받은 큰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서 전화를 받은 것인데 언제나 그렇듯 염려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뭐 흔다고 전화를 인자사 받는가!
  뭐 하느라 전화를 안 받은 게 아니다, 일부러 안 받은 거다, 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그렇게 말해봤자 택이는 아따, 누나, 나 술 묵는다고 미워글제? 너무 글지 마소, 술이 밉제 사램이 밉당가, 하고는 넉살 좋게 웃어넘길 게 뻔했다. 악의 혹은 비틀림 같은, 사람의 복잡한 심사라고는 눈곱만큼도 모르는, 좋게 말하면 천진난만, 나쁘게 말하면 바보천치 같은 택이를 보는 게 어려서부터 나는 늘 답답하다 못해 불편했다.
  집에 있제, 시방?
  응, 이라고 대답하기 무섭게 전화가 뚝 끊겼다. 채점하던 기말고사 답안지를 밀쳐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택이는 말과 동시에 움직이는 놈이다. 곧 들이닥칠 터였다. 창문 너머 시멘트 바른 마당에 뙤약볕이 폭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불벼락 속으로 뛰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냉장고 안에 청양고추가 열댓 개 남짓 남아 있었다. 고추전을 부치기에는 좀 모자라지만 매콤한 호박전을 부쳐낼 만큼은 됐다. 매워서 눈물 쏙 빠지는 고추전은 우리 집안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거였다. 집안에 새사람이 들어오거나 아이가 자라 전을 먹을 나이쯤 되면 집안 어른들은 아무 경고도 없이 매운 고추전을 내놨다. 그걸 맛있게 먹으면,
  워매, 정씨 씨알이 맞그마이. 씨는 못 속인당게.
  터무니없는 이유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고추전을 부치는 건 여간 까다롭지 않다. 고추를 반으로 잘라 일일이 씨를 뺀 뒤, 쪽파 다지듯 다져서 아무 양념 없이 밀가루에 조선간장으로만 간을 하는데, 온 식구가 먹을 만큼 준비하려면 온종일 고추를 다져야 했다. 정씨 씨알이 아닌 어머니는 명절 때마다 눈이 벌겋게 짓물렀다. 눈물, 콧물은 덤이었다.
  기택이는 젖을 떼기도 전에 상 위의 고추전에 덥석 손을 댔고, 이도 다 안 난 주제에 이 빠진 늙은이처럼 오물오물, 고추전을 잘도 먹었다.
  기택이가 어른들 밥상에 일찌감치 맛을 들인 덕분에 나도 큰어머니 젖을 먹을 수 있었다. 어머니 젖이 시원치 않아 늘 굶주렸던 나는 젖탐이 있었다. 큰어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함지박 같은 젖통을 드러낸 채 기택이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이 내 인생 최초의 기억이다. 젖 외에 먹을 것도 없던 시절, 젖조차 제대로 못 먹어 비쩍 말랐던 내가 안타까워 큰어머니가 물었다.
묵고 잪냐?
  입맛을 다시고 있던 나는 큰어머니가 다른 쪽 젖을 옷 밖으로 꺼내자마자 강아지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젖꼭지를 빨아당기자 젖이 순식간에 입 가득 뿜어져 나왔다. 목이 막혀 죽을 것 같아 얼른 젖을 삼켰다. 젖은 식도를 타고 콸콸 흘러들어갔다. 나는 배가 빵빵해진 뒤에야 피를 양껏 빨아먹은 거머리처럼 퉁, 젖으로부터 튕겨져 나왔다. 뱃속 깊은 곳에서 쉰 듯한 젖내가 쉼 없이 흘러나왔다. 그날부터 나는 기택이와 젖동무가 되었다. 그러니까 기택이와 나는, 매운 고추전 좋아하는 정씨 피가 섞인 데다 젖까지 나눠 먹은 남매인 셈이다.
  어른들 밥상에 맛을 들인 기택이가 젖을 본체만체한 뒤로도 나는 일곱 살 때까지 큰어머니 젖을 먹고 자랐다. 큰어머니는 툇마루에 앉은 채 내가 먹지 않은 다른 쪽 젖을 쭉 짜곤 했다. 그러면 젖줄기가 남자들 오줌줄기처럼 뿜어져 나왔다. 포물선을 그으며 마당을 적시던 젖줄기를 나는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모든 게 부족하던 시절, 유일하게 풍요로운 기억이다. 기택이의 탄생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풍요였다.
  짝은어매!
  기택이는 노크도 하지 않은 채 벌컥 문을 열었다.
  와따, 꼬치전 부쳤대?
아마 매운 내가 훅 뿜어졌을 것이다. 귀 어두운 어머니가 용케 기택이 목소리를 알아듣고 안방문을 열고 나왔다. 어머니는 찬바람이라면 질색이었다. 오월부터 삼십 도를 넘은 올해도 거실에 틀어둔 에어컨 바람을 피해 안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아이고, 우리 택이 왔냐? 아가, 바쁠 텐디 워찌 왔냐? 짝은어매 볼라고 왔냐?
웬일로 어머니는 기택이만 보면 말수가 늘었다. 함께 사는 나와는 하루 댓 마디나 할까 말까, 젊을 적에는 꿀 먹은 벙어리 소리 듣던 어머니였다.
  짝은어매 술 한 잔 얻어 묵을라고 왔제. 소주 한 잔 주씨요.
  십 년 전 기택이는 위암수술을 받았다. 2기라고는 했지만 젊은 나이인데다 가족력이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관리가 중요했다. 큰아버지는 쉰 중반에 암 판정을 받았다. 위암 말기였다. 병원에서는 방법이 없다며 손을 놓았고, 큰아버지는 마지막 재산이었던 논 열두 마지기를 저승길 닦는 데 털어 넣었다. 천종삼이고 자라피고, 들인 돈이 무색하게 큰아버지는 석 달을 못 넘기고 세상을 떴다. 일찍 간 큰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던 게 소주였다. 큰아버지는 아홉 살 때 우리 할아버지, 그러니까 당신 아버지와 동네 장정 스무 명이 국군 총에 맞아 죽는 걸, 코앞에서 지켜봤다. 아홉 살 아이는 오줌을 지리며 혼절했다.
  큰아버지는 할아버지 죽음을 목격한 이후 자주 악몽에 시달리고 경기를 일으켰다. 어른이 되어서도 경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경기를 가라앉히려고, 혹은 아무 데서나 경기를 일으키는 게 부끄러워 마시기 시작한 술이 끝내 큰아버지를 죽음으로 인도했다. 기택이가 툇마루를 뽈뽈 기어다니던 시절, 내가 큰어머니 젖을 먹던 시절, 그 툇마루 끝에는 항상 큰아버지가 있었다. 큰아버지는 우리를 보지 않았다. 허공의 어디쯤을 멍하게 바라보면서 대병 소주를 종일 천천히 들이켰다. 언젠가 궁금해서 물은 적이 있다.
  큰아배, 머슬 보요?
  여전히 허공을 응시한 채 큰아버지가 말했다.
  보긴 머슬 봐. 사방이 시커먼 허방인디.
  그때 큰집 마당에는 새빨간 고추가 가득 널려 있었고, 그 위로 뽀송뽀송한 가을볕이 그늘 한 점 없이 골고루 내려앉고 있었다. 눈이 부시게 환한데 대체 어디가 시커멓다는 것인지, 나는 큰아버지를 빤히 쳐다보았다. 큰아버지는 개의치 않고 언제나처럼 멍하게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오래 쳐다봤더니 큰아버지 동공이 점점 커졌다. 시커먼 허방은 거기 있었다. 시커먼 허방 같은 큰아버지 동공 속에서 할아버지가 막 총을 맞고 쓰러지는 중이었다. 눈도 깜박이지 않고 오래 쳐다본 탓에 생긴 환시였을 테지만, 조금만 햇빛 속에 앉아 있어도 이마에 끈끈하게 땀이 차오르는 초가을, 나는 뒷골이 서늘했다.
  기택이의 기억 속, 큰아버지는 늘 술과 함께일 터였다.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술과 친했던 기택이는 일찌감치 술을 배웠고, 배운 것 없어 막일하는 터라 수술을 받은 뒤에도 술을 끊지 못했다. 성질 좋은 제 처와도 늘 술 때문에 싸우는 모양이었다. 군대 다녀온 뒤부터 대구서 터를 잡고 살던 기택은 올 초, 마누라와 자식 모두 대구에 두고 혼자 낙향했다. 그놈의 술 때문이었다. 낙향하기 얼마 전, 기택이 처가 난생처음 내게 전화를 했다.
  고모, 고마 살려주이소. 피를 토했는데 병원도 안 가고, 밥도 안 묵고, 두 달째 술만 처묵고 있어예. 저라다 먼 일 나지 싶습니더. 고모가 말 좀 해주이소. 그래도 고모 말은 듣는다 아입니꺼?
  위암 수술을 한 뒤로 기택이는 병원에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일상으로 복귀해 막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동료들과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 정기검진을 받으라고, 술 좀 줄이라고, 옆 사람들이 아무리 설득해도 쇠귀에 경 읽기였다. 그러더니 급기야 탈이 난 것이었다. 나 또한 볼 때마다 병원에 가라고 말했다. 말 많은 놈이 그때마다 꿀 먹은 벙어리였다. 관리만 하면 평생 재발하지 않을 수도 있는 위암 2기였는데, 병원이라면 왜 질색팔색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전화해봤자 소용없을 줄 알면서도 기택이 처의 간절한 부탁 때문에 곧장 전화를 했다.
  병원을 왜 안 가? 요즘은 위암 말기도 어지간하면 다 완치돼. 제발 병원 좀 가. 왜 혼자 병을 키우니!
  누나는 늙어도 똑같네이. 그놈의 잔소리! 귀에 딱지 앉겄네. 글안해도 구례로 갈랑게 보고 말허세. 구례 가서 살라네.
  대꾸할 새도 없이 뚝 전화를 끊은 기택이는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큰집으로 돌아왔다. 평생 술 마시는 남편을 보고 산 큰어머니는 어지간한 일에는 눈 하나 꿈쩍 않는 여장부였다. 그런 큰어머니가 돌아온 기택이를 보고 대성통곡했다. 살이 어찌나 빠졌는지 꼭 허수아비 같았던 것이다.
암만해도 쟈가 갈란갑다. 쟈 앱씨 갈 직에 똑 저랬잖애. 니도 봤제? 쟈가 시방 똑 지 앱씨 갈 때맹키여.
  그날 평생 울 것을 다 울었는지 큰어머니는 그 뒤로 툭하면 나에게 전화를 걸어 심상하게 소식을 전했다.
  틀렜어. 틀렜구마. 밤낮 술을 마시는디 워치크롬 낫겄어? 똑 지 앱씨랑게.
  나는 마지막 수단으로 알코올중독 치료소를 권했다. 강제입원을 시켜서라도 술을 끊게 하고 몸 상태를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큰어머니마저 고개를 저었다.
  며눌애기가 폴세 글자고 했는갑는디, 그날로 짐 싸갖고 나헌티 와분 것이여. 여그 아니먼 갈 디도 없는디 워쩌겄어. 지 맘대로 살다 가야제. 지 하고자픈 대로 납둬불란다.
  나도 그 뒤로는 손을 놓았다. 살고자 해도 살기 어려운 세상, 저 스스로 손을 놓았는데 남이 뭘 더 어쩌겠는가. 목덜미를 잡아서라도 삶의 영역으로 다시 끌어오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았지만 목덜미가 잡히지 않는 데는 더 이상 도리가 없었다.
  오랜만에 집에 온 기택이는 자리에 앉기도 전에 술부터 찾았다. 아무리 손을 놓았다고 술 때문에 죽게 된 놈에게 술을 줄 수는 없었다.
  술 먹는 사람도 없는데 우리집에 무슨 술이 있어? 이거나 먹어.
  기택이 앞에 청양고추가 반 넘게 들어간 호박전을 내놓았다.
  아따, 누나는. 워치케 꼬치전만 묵는대! 글지 말고 내놓소. 쏘주 쪼깨 묵는다고 나 안 죽네.
없다니까!
  참으려 했는데 목소리에 짜증이 묻어났다. 늙어 귀 어두운 어머니가 짜증을 읽고 가만히 내 팔꿈치를 잡았다. 정작 기택이만 아무렇지 않았다. 벌떡 일어난 기택이가 문을 열고 나가더니 검정 비닐봉지 두 개를 들고 돌아왔다. 제 집인 듯 맘대로 냉장고 문을 열고 봉지 하나를 집어넣은 기택이가 다시 어머니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난번과 달리 배가 벙벙했다. 사지의 살이 다 배로 몰린 것 같았다. 위암 말기 진단을 받을 무렵 큰아버지 몸이 꼭 저랬다. 복수가 차오르고 있는 것일 터였다. 요즘 세상에 저 지경이 되도록 방치하다니, 아무리 머리가 나쁘다고 해도 제 몸 망가지는지도 모를 리는 없을 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가 누나를 모리겄어? 이럴 중 알고 준비해왔제.
  기택이는 잔도 없이 소주를 병째 들이마셨다. 살이 없어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목울대가 울컥울컥 위아래로 움직였다.
  와따, 살겄네.
  소주가 생명수라도 되는 양 거무튀튀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기택이는 호박전을 길게 잘라 볼이 불룩해지도록 입 가득 욱여넣었다. 위 상태야 어떻든 먹는 모습은 어릴 때처럼 보기 좋았다. 예전에 어머니는 기택이 밥 먹는 것을 보면 도망간 식욕도 돌아온다고 했었다.
  고거이 고로코롬 맛나냐?
  하모. 세상서 젤 맛나제. 짝은어매도 한 잔 해볼랑가?
  그르까? 우리 택이 덕에 짝은어매도 쏘주 한 잔 해보까?
  어머니는 술이라고는 평생 입에 댄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할 일 없는 겨울, 동네 여자들이 밤늦도록 화투를 치면서 막걸리잔을 기울일 때도 어머니는 실없이 동치미 국물이나 들이키곤 했다. 어머니가 자청해서 술을 마시겠다고 한 것은 머리털 나고 처음이었다.
  술잔 하나 도라. 우리 택이 술잔도 가져오니라.
  말려도 모자랄 판에 함께 술판을 벌이겠다니 대체 무슨 속셈인지 알 수 없었다. 지난번에도 어머니는 그랬다. 두어 달 전, 기택이가 집에 와 소주를 찾았다. 냉장고에 접대용 소주가 몇 병 있었지만 나는 야멸차게 쫓아냈다. 기택이 얼굴만 봐도 짜증이 치밀었다. 어머니는 그냥 술 한 병 주지 그랬냐고 나를 타박했다.
  그거 한 벵 더 묵는다고 살 놈이 죽겄냐, 죽을 놈이 살겄냐?
  너그러워 그런 건지 독해 그런 건지, 나는 어머니 마음이 헤아려지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술 잔 두 개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워디, 우리 택이 술 함 받아보자.
  기택이 어머니 술잔 가득 술을 따랐다.
  택아, 짝은 어매 술 함 받그라. 첨이제?
  첨은 아닌디. 두 번짼디. 짝은어매도 늙었는갑네. 기억 안 난대?
  오래 묵은 기억이 툭 튀어 올랐다. 대학교 3학년, 추석 연휴 때였다. 추석 전날 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누군가 마당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나지막이 아버지를 불렀다.
  짝은아배! 짝은어매! 나요. 택이요!
  식구들 모두 자다 깨 벌컥 문을 열었다. 덩치가 산만 한 기택이 마당에 선 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맨발로 뛰쳐나간 어머니가 기택이를 안방으로 잡아끌었다. 기택이는 한동안 아무 말도 않고 눈물만 뚝뚝 흘렀다. 아버지가 담배를 연거푸 세 개비쯤 태웠을 때 비로소 기택이가 입을 열었다.
짝은아배. 나 잠 도와주씨요.
  먼 일인동 말을 해야 도와주든 말든 할 것 아니냐?
  나가 사램을 찔렀어라. 아매 죽든 안 했을 것인디…….
  나는 고등학교 시절, 기택이, 그리고 할머니와 한 방에서 삼 년을 살았다. 기택이가 읍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할머니까지 내가 살던 자취방으로 들어온 것이다. 두 학년이 한 반인 고향 분교에서도 꼴찌를 도맡았던 기택이는 읍내 중학에 다니면서 더 기가 죽었다. 기택이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 쓰는 데는 젬병이었다. 기택이는 툇마루 끝이 있다는 걸 철이 들어서도 인지하지 못했다. 냅다 달리다 하루에도 서너 차례 툇마루에서 떨어져 댓돌에 머리를 박았다. 어머니는 그 때문에 머리가 더 나빠졌을 거라고 볼 때마다 혀를 찼다. 기택이는 중학교 입학하기 전, 겨울 내내 알파벳을 삼백 번 넘게 쓰고도 끝내 다 외우지 못했다. 가르치던 나만 속에서 열불이 치솟았다. 하지만 농땡이를 피운 것도 아니고 시킨 대로 하는 데도 외우지 못하니 나무랄 수 없었다. Q까지 외운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자위하며 나는 손을 놓았다.
  중 2 겨울방학을 지나면서 기택이는 키가 이십 센티나 자랐다. 살집도 좋았다. 원래 먹성 좋고 힘 좋던 아이였다.
  또래 중에 제일 크고 힘이 셌다. 그런 기택이에게 동네 깡패들이 눈독을 들였다. 깡패들이 힘세다고 우쭈쭈 해줬더니 기택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길로 달려들었다. 하기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칭찬이었을 것이다. 집안일도 나 몰라라, 평생 술만 마신 주제에 큰아버지는 기택이를 늘 못마땅해했다. 밥 많이 먹는 것도 타박이었다. 큰아버지에게 기택이는 밥만 축내는 식충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를 때려도 도둑질을 해도 큰아버지는 이미 버린 자식이라며 걸음 한 번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내내 학교에 찾아다녔다. 결국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어른들 조직에서 기택이에게 사람 치우는 일을 시킨 모양이었다. 칼빵을 내라고 해서 담을 넘었고, 겁 없이 배에 칼을 찔렀는데 칼끝이 뱃살을 파고 든 순간 할머니가 떠올랐다고 했다.

 

  근디, 할매가 웃고 있드랑게요. 넘의 배에다 칼을 박았는디도 할매가 밥 줄 때맹키 내 새끼, 함시로 웃고 있드랑게요.
  키는 일 미터 구십 가까운 놈이 눈물콧물 범벅을 하고 꺼이꺼이 울면서 그렇게 말했다. 할머니는 기택이의 피난처였다. 기택이는 애기 때부터 한밤중에도 배가 고파 잠에서 깨곤 했다. 불을 켰다가는 큰아버지한테 식충이 새끼 소리나 들을 게 뻔해서 할머니는 컴컴한 어둠을 손으로 더듬어 밥상을 차렸다. 기택이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할머니가 차려온 밥을 먹으며 자랐다. 나와 자취할 때도 그랬다. 기택이는 시도 때도 없이 밥을 찾았고, 할머니는 언제가 됐든 기택이가 밥 달란 소리만 하면 벌떡 일어나 밥을 차렸다. 귀 어두운 할머니가 밥 달라는 소리만은 기가 막히게 알아들었다.
  할머니가 다 받아주니까 애가 뒤룩뒤룩 살만 찌잖아!
  언젠가 내가 짜증을 냈더니 할머니가 그랬다.
  야가 살이 워딨냐? 뻬가 볼금볼금 하그만은. 아가, 더 묵어라.
  기택이가 언제 밥을 찾을지 몰라 할머니는 늘 밥을 많이 했고, 남은 밥은 당연히 나와 당신 차지였다. 멍청하든 말든, 남을 패든 말든, 기택이는 할머니에게 제일 귀한 종손이었다. 그 할머니가 악의 세계로 발을 디디려는 종손을 막아 세운 것이다.
  짝은아배, 나잠 도와주씨요. 오거리파가 나를 가만 안 놔둘 것인디, 워디 숨을 디 없겄어라?
다시는 깡패들과 엮이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고 아버지는 다음 날 기택이를 아버지 친구가 있는 강화도로 보냈다. 그날 밤, 어머니는 오래 전 담가둔 매실주를 꺼냈다. 술독에 빠져 사는 형에게 데인 아버지는 평소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 우리 식구가 같이 술을 마신 건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날, 어머니는 기택이에게 매실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아가, 택아. 니는 천성이 착해빠져서 넘헌티 해꼬지하고는 니 멩에 못 살 것이다. 에레서도 넘헌테 맞으먼 맞았제 때리들 못했어야. 니보다 두 살이나 에린 학성이헌티도 노상 뚜디레 맞았잖애. 긍게 짝은어매 술 한 잔 받고 이 매화맹키 순허게 살어라이. 매화는 이삐제, 출 때 페서 젤 먼첨 봄을 알리제, 열매는 몸에 좋제, 시상에 매화맹키만 살먼 월매나 좋겄냐이.
어머니가 따라준 매실주 덕인지, 결정적 순간에 환시로 나타난 할머니 덕인지, 기택이는 그날 이후 마음을 잡았다.
  강화도에서 일 년 남짓 꽃 하우스 일을 돕다가 군대에 갔고, 제대하자마자 가진 건 없어도 마음 착한 처를 만나 결혼을 했다. 막일이라도 나름 기술이 있어 돈도 궁하지는 않았다. 다만 하나, 술이 문제였다.
  술잔을 입에 댄 어머니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진저리를 쳤다.
  아이고, 오살나게도 쓰다. 이거이 멋이 맛나다고 죽고 못 사까이.
  술이 술술 들어가먼 잊고자픈 것이 술술 날아가 붕게라. 술은 고 맛이지라.
  우리 택이는 멋이 그리 잊고자프까? 그만하먼 잘 살았는디. 새끼들 잘 키웠제, 마누리 잘 건사했제, 그 이상 멋이 있다냐? 니 몸만 성하먼 돼야.
  겨우 소주 한 모금을 넘긴 어머니는 술기운을 못 이기고 끄덕끄덕 졸기 시작했다. 기택이는 제가 가져온 소주 두 병을 순식간에 비웠다. 빈 술잔을 가만히 바라보는 기택의 눈빛이 섬뜩했다. 시커먼 허방뿐이라던 큰아버지 눈빛 그대로였던 것이다.
  술병에 시선을 둔 채로 기택이 물었다.
  참말로 술 없제이?
  기택이 말은 늙은 고막에 가 닿는 재주라도 있는 걸까. 자울자울 졸고 있던 어머니가 눈을 뜨고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우리 택이, 짝은어매가 선물 하나 줘야 쓰겄다.
안방에 들어갔다 나온 어머니 손에 소주 한 병이 들려 있었다. 언젠가 찾아올 기택이를 위해 나 몰래 술병을 숨겨둔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게 어머니의 위로하는 방식인지도 몰랐다. 어머니는 위암 말기의 큰아버지가 술을 찾아 온 동네를 헤매고 다닐 때도 순순히 술상을 차려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내 맘 알아주는 건 짝은어매배끼 읎당게.
  그 새 호박전은 동이 나 있었다. 안주라도 먹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무슨 안주를 내놓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기택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누나는 가만 있소. 짝은어매 젤로 좋아허는 매운탕을 얼릉 대령할랑게.
  괴기가 워딨다고 무신 매운탕을 끓에야?
  짝은어매 줄라고 나가 잡아왔제.
  어머니가 매운탕 좋아한다는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내가 아는 어머니는 비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위가 좋지 않아 매운 것도 금물이었다. 그래서 어머니 모시고 산 뒤로 매운탕을 끓여본 적이 없었다.
  매운탕 좋아해? 엄마 매운탕 먹는 거 한 번도 못 봤는데?
  글제이. 본래는 안 좋아했어야. 근디 그거이 원젤랑가, 나가 속벵이 도져가꼬 암 것도 못 묵고 있는디 택이 쟈가 매운탕을 끓에 왔드라. 쌀뜸물도 못 넹겠는디 매운탕은 넘어가야? 그거 묵고 나가 살았당게. 택아. 그거이 원제끄나?
  냉장고를 뒤지던 기택이 끼어들었다.
  아따, 짝은어매는. 누나가 안기부헌티 쫓게 댕길 때 아니오. 누나는 못 봤제? 그때게 짝은어매, 대꼬챙이맨치 쪼그라들어가꼬 시상 떠날 중 알았당게.
  이십 대의 나는 고향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명절도 건너뛰기 일쑤였다. 어머니가 어떻게 늙어 가는지 알지 못했고, 수배 당한 딸 걱정에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관심 밖이었다. 내가 없는 고향에서 어머니와 기택이는 서로 기대어 그런 시절을 보낸 모양이었다.
  기택이는 남의 부엌이 제 부엌인 양 냉장고며 싱크대며 맘대로 열어젖히며 매운탕을 끓이느라 바빴다. 평생 노동만 하며 살아 그런지 기택이의 동작은 단순하고 산뜻했다. 각이 잡혀 있다고 할까. 남의 집이라 익숙하지 않을 텐데도 동작에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어려서부터 기택이는 머리보다 몸 쓰는 걸 좋아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머리를 쓸 줄 몰랐다. 국민교육헌장도 초등학교 일학년 마치도록 외우지 못했다. 기택이는 방과 후에도 혼자 남아 한 시간씩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다. 나는 독서하는 소녀상 아래서 책을 읽으며 기택이를 기다렸다. 때때로 딱, 딱, 선생이 삼십 센티 자로 머리를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매운 고추전 좋아하는 우리 씨알이 저렇게 무식하다는 사실이, 저렇게 남에게 무시받는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 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 속도 모른 채 한 시간이 지나면 기택이는 누나, 누런 코를 훌쩍이며 말갛게 웃는 얼굴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밤톨처럼 깎은 머리통에 어린애 주먹만 한 혹이 불쑥 솟아 있기 일쑤였다. 나에게 와락 안겨드는 기택이를 나는 매몰차게 밀어냈다. 코가 묻을까봐 싫었고, 저런 멍청이의 누나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 그렇게 밀어내도 기택이는 화를 내지 않았다. 상처 받지도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금세 또 달려들었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집에까지 걸어가는 사십 분 동안 나는 내내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다. 기택이가 조금이라도 빨리 외웠으면 싶어서였다.
  그러나 기택이는 이내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렸다.
  누나, 봤능가?
  멋을?
  참게가 뻐끔, 숨을 쉬었잖애!
  내 눈 앞에는 국민교육헌장 문구만 아른거리는데 정작 외워야 할 기택이는 길 옆 개울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기택이는 책가방을 길바닥에 집어던지고는 첨벙첨벙, 개울로 뛰어들었다.
글다가 손 물린다이!
  대개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택이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참게에 손가락을 물린 채로 기택이는 양 손을 머리 위로 마구 흔들었다. 그러다 참게가 손가락을 놓고 도망치기도 했다. 내가 아무리 다그쳐도 기택이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물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기택이는 책 대신 물고기며 참게, 고동 같은 것으로 책가방을 가득 채웠다. 기택이가 길바닥에 마구 던져놓은 책을 챙기는 건 내 몫이었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 벌써 나만큼 키가 컸던 기택이는 긴 다리로 겅중겅중 뛰어 우리집으로 달려갔다.
  짝은어매! 짝은어매!
  기택이는 책가방에 든 물고기를 대야에 쏟아 부었다.
  워매, 많이도 잡았다이? 우리 택이가 다 잡았냐?
  누런 코를 훌쩍이며 기택이는 자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는 고기를 반 이상 양재기에 담아 기택이에게 다시 주었다.
느그 집에 갖고 가그라. 택이가 애써 잡았는디 느그 식구들도 멕에야제.
됐어라. 식충이가 묵을 거배끼 모린다고 욕이나 한 바가지 묵을 것인디 멀라고요. 짝은 어매 다 잡숫시요.

  물에 젖은 기택이의 가방을 마른 걸레로 닦는 건 내 몫이었다. 멍청이가 젖은 가방 그대로 집에 가면 큰아버지가 다 눈치 챌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빈손으로 보내기 민망한 어머니가 삶은 고구마나 감자, 감말랭이 같은 거라도 손에 쥐어주면 기택이는 신이 났다.
  나가 배 딸끼라, 짝은어매?
  우리 택이가 배도 딸 중 아냐?
  하모요! 반내골서는 나가 쩰로 선순디요? 물괴기 잡는 것도 나가 일등이어라.
  아이고, 우리 택이, 참말로 대단허다이.
  언젠가 기택이는 어머니 칭찬에 입이 찢어졌다가 이내 시무룩해졌다.
  아부지는 식충이 새깽이가 깨골창서 놀기만 흔다고 만날 뚜드레 패는디…… 짝은 어매, 나 여그서 살면 안 되까라? 나는 짝은집서 살고자픈디…… 짝은집이 젤로 좋은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그쯤에서 피식,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머니는 내가 한 문제만 틀려도 회초리를 들었다.
  어머니의 매질은 조금의 온기도 없이 매서웠다. 택이에게 너그러운 것은 순전히 택이가 남의 자식이라서였다.
  택이 니가 우리집서 살잖애? 종아리가 남아나들 안 할 것이다.
  내가 비아냥거려도 택이는 무슨 소리인지도 모른 채 밥 하는 어머니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뺀질뺀질 집에 갈 시간을 늦췄다. 우리집에서 밥을 먹고 가는 날도 숱했다. 더 미룰 수 없이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면 기택이는 눈에 띄게 풀이 죽었다. 어깨가 축 쳐진 채 대문을 나서는 기택이 뒷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 먼 죄여? 고로크롬 태어난 것을 워쩌라고…….
  기택이가 우리집에서 태어났다면 어머니도 큰아버지처럼 고로크롬 태어난 것을 어쩌지 못해 안달할 것이라고, 어쩌면 공부 욕심 많은 어머니는 큰아버지보다 더 때려잡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래서 나는 밥상에 오른 매운탕을 맛있게 먹으며 어머니의 한탄을 내심 비웃었다.
  매운탕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잊고 있던, 그러나 익숙한 냄새였다. 기택이 덕분에 반내골 살던 시절, 사시사철 매운탕이 식탁에 올랐다. 기택이의 물고기가 부족한 단백질과 지방을 보충해준 덕분에 탈 없이 어린 시절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기택이가 매운탕을 국그릇 세 개에 나눠 탁자 위에 올렸다. 고추장과 고춧가루 듬뿍 넣어 방앗잎으로 마무리한 매운탕은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우리집에도 방앗잎이 있는데 혹시나 싶어 챙겨온 모양이었다. 머리도 나쁜 놈이 이럴 때는 제법 머리가 돌아갔다.
  잡숴봐, 짝은어매. 누나도 한 술 떠 보소.
  밥때 아니면 입도 달싹하지 않는 어머니가 웬일로 숟가락을 들었다.
  짝은어매가 매운 거 못 잡숭 게 땡초는 뺐어라. 잡술 만헐 것이요.
  어머니는 기택이의 매운탕을 한 그릇 뚝딱 비웠다. 근래 이렇게 잘 먹기는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그럴 만하게 감칠맛이 났다. 기택이는 제가 끓인 매운탕을 안주 삼아 어머니가 숨겨놓았던 소주 한 병을 천천히 비웠다. 소주가 바닥을 보이자 기택이는 숟가락을 놓았다. 매운탕이 반 넘게 남아 있었다. 세 병이나 비웠는데도 취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멍하게 술잔을 바라보던 기택이가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갔다. 또 소주를 가지러 가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기택이가 사라진 현관문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
  택이, 틀린 성 싶으다. 어쩌끄나, 불쌍해서.
  다 지가 자초한 거야. 그러게 병원을 왜 안 가? 바보야? 저 지경이면 독하게 마음먹고 술도 딱 끊어야지. 술 하나를 맘대로 못해? 그게 사람이야?
  아야, 야멸차게 글지 마라. 사는 거이 다 맘대로 된다디야? 니는 살아봉게 다 니 맘대로 되디야? 그랬으먼 니는 이혼을 왜 했냐? 촌구석으로는 왜 기어들어왔냐?
  속상한 마음에 몇 마디 했을 뿐인데 어머니가 훅 치고 들어왔다. 이혼했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도, 모교에서 자리 잡는 데 끝내 실패하고 고향 인근 대학에 자리를 잡았다고 했을 때도, 잘 했다, 한 마디만 했던 어머니였다. 그래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어머니의 속내는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워쩔 수 없는 일도 있응게 택이 너무 다그치지 말어라. 애기가 맴이 너무 여려서 근다. 쟈는 먼 일만 생기먼 나헌티 달레왔다. 펑펑 움시로 미주알고주알 다 털어놨어야.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지만 어머니는 내 얼굴을 슬쩍 보고는 입을 닫았다. 늘 그랬다. 단호한 얼굴로 서울 유명 사립대학의 합격증을 내밀었을 때도 어머니는 내 얼굴을 슬쩍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또한 등록금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입을 꾹 다물고 세상 끝난 얼굴로 내 방에 틀어박혀 주구장창 책만 들여다보았다. 납부마감이 다가오고 속이 타들어갔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감 전날 밤, 어머니가 내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보자기에 싸인 돈뭉치를 툭 던졌다. 어머니나 나나 생전 처음 만져보는 큰돈이었다. 다음 날 새벽, 돈 보자기를 품에 안은 채 한 시간을 걸어 읍내 나가는 첫차를 탔고, 다시 순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순천 시내 은행에서 납부를 하고나서야 눈물이 핑 돌았다. 어머니는 그날 내가 흘린 눈물을 보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 우리는 지금껏 그런 방식으로 살아왔다. 제 몫의 고통은 알아서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지금 어머니는 무슨 일만 생기면 달려와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았다는 택이를 바로 그런 이유로 감싸고 있는 것이다.
  택이잠 찾아 보그라. 암만 해도 이상허다.
  몸을 일으키려던 어머니가 어지러운지 도로 주저앉으며 말했다. 하긴 차에 열 번도 넘게 오갔을 시간이었다. 차는 마당에 그대로 서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기택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기택이는 집 뒤안, 에이컨 실외기 곁에 털썩 주저앉아 있었다. 발치에 토사물이 보였다. 고추장 푼 매운탕인지 뭔지 토사물은 아예 붉은 핏빛이었다. 쉰 줄에 접어든 기택이 정수리가 훤하게 비어 있었다. 정수리부터 듬성해지는 것도 정씨 집안내력이었다.
들어가자.
  나는 손을 내밀었다. 어린 시절, 기택이는 제가 먼저 내 손을 잡았다. 코 묻었을 그 손 잡기가 싫어 나는 자꾸 걸음을 빨리 했다. 처음으로 내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서려던 기택이가 힘에 부치는지 도로 주저앉았다.
  쪼까 더 있다 갈라네. 먼첨 들어가소.
  기택이는 쌀 한 가마도 번쩍 드는 천하장사였다. 그랬던 녀석이 제 몸 하나 일으킬 힘도 없는 모양이었다. 기택이 곁에 엉덩이를 붙였다. 실외기의 열기가 훅, 온몸으로 달려들었다.
  누나는 똑똑헝게 나맹키는 안 살았겄제이?
  위로를 해야 할지 화를 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얬다. 기택이는 간혹 뜬금없는 말로 할 말 없게 만들곤 했다. 언제였을까. 기택이 군대 다녀와 막일을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전국이 노동조합 건설문제로 시끄러울 때기도 했다. 노조 얘기를 몇 마디 꺼냈는데 정작 노동자인 택이는 아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관심은커녕 이해를 하지 못했다.
  노가다가 멋이 워때서? 일헐 디도 많고 일당도 솔찮애. 오야랑 성님들이랑 막둥이라고 월매나 잘해 주는디.
  계급의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게 답답해서 내가 뭐라고 한소리 한 모양이었다. 내 말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던 택이 웬일로 내 말을 싹둑 잘랐다.
  알았네, 알았어. 나 밥벌이는 나가 알아서 헐랑게 짝은어매헌티나 쫌 신경 쓰소. 통 잡숫들 못하등마.
  내가 노동계급의 권리에 정신 팔린 사이 어머니는 담낭암을 앓고 있었다. 기택이 말이 아니었으면 어머니 살이 내린 것도 모르고 지나쳤을 것이다. 기택이 덕분에 병원에 갔고 어머니는 목숨을 건졌다. 똑똑한 나는 기택이처럼은 살지 않았을까? 기택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 못하니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머리 나쁜 기택이는 어떻게 살았을까? 배운 것 없어 막노동꾼이었던, 일찍 결혼해 나보다 장성한 아들을 둘이나 둔, 나이 마흔에 위암을 앓았던, 늘 소주를 마셨던 기택이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게 전부였다.
  더운 날씨 탓인지 실외기가 쉼 없이 돌았다. 실외기 소음이 금방이라도 멈출 듯 숨 가빴다. 지방 대학에 자리 잡고 시골에 내려와 샀으니 십 년도 더 된 낡은 에어컨이었다. 살 때 최신형이었던 에어컨은 고작 십 년 만에 전기세 폭탄이나 때리는 고물이 되었다. 마흔 중반에 간신히 지방 사립대 교수가 된 내 신세도 에어컨과 별 다르지 않았다. 달리기를 시작하자마자 원하지도 않은 결승점에 도달한 기분이랄까. 정년이 되기 전에 대학이 문을 닫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시골 여고 최초의 명문대 합격생의 말로였다.
  기택이 뜨겁게 달아오른 실외기를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비척비척 차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비틀거리는 게 술 때문은 아닌 듯했다. 배가 불러 바지가 허리에 걸쳐져 있기는 했지만 그 아래로 엉덩이며 다리는 살 한 점 붙어있지 않아 나무 막대기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기택이 운전석 문을 열었다. 급히 다가가 차 키를 빼앗았다. 음주가 문제가 아니라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것 같아서였다. 택이가 웬일로 얌전하게 조수석에 앉았다. 가는 내내 택이는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는데도 과속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택이가 끙, 앓는 소리를 냈다. 어지간해서는 아픈 내색을 하지 않던 아이였다.
  모퉁이만 돌면 반내골이었다. 읍내에서 같이 학교에 다니던 토요일, 택이는 이쯤 오면 저 혼자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턱에 닿게 내달린 택이는 제 집을 지나쳐 우리집으로 먼저 갔다.
짝은어매!
  목청껏 내 어머니를 부르면서. 그 목소리가 제 집까지 들릴 것은 생각지도 못한 채. 그 때문에 번번이 종아리 맞았던 것을 까맣게 잊고. 택이는 어쩌면 그때 같은 심정으로 오늘 어머니를 찾아온 것인지도 몰랐다.
  택아.
  참으로 오랜만에 어린 시절처럼 택이를 불렀다. 택이 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미 간까지 상한 것인지 흰자위가 누리끼리했지만 눈빛만은 예전처럼 순진무구했다.
  술을 왜 그렇게 마셔? 술이 그렇게 좋아?
  반내골이 가까워지고 방지턱을 두 개 넘을 때까지 택이는 입을 열지 않았다. 제 집 앞에 차를 세웠다. 택이는 미동도 없이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뙤약볕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는 허공 어디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시선 가닿는 끝에 어린 우리가 소꿉놀이하던 아름드리 팽나무가 서 있었다.
  눈을 못 감겄어. 눈만 감으먼 있잖애. 온 시상이 시커먼디, 시커먼 것이 똑 목을 졸르는 것맹키여. 무서서 눈을 못 감겄어. 술을 마시먼 나도 모리게 잠을 장게, 무서서, 잘라고 마시는 것이여.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섬망증상일 가능성이 높았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사방이 시커먼 허방이라던 큰아버지 말이 떠올랐다.
  아부지가 암 진단받고이, 방안을 빙빙 돔시로 멋헌티 그러능가 자꼬 가라고, 쩔로 가라고 소리를 소리를 질러쌓대. 글고 나서 메칠 안 있다 가불드마. 요새 나가 그러네.
  큰아버지가 가라고 소리친 대상은 죽음이었을까? 죽음이 무서워 술을 마시고 죽음을 재촉한 인생,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큰아버지와 택이의 인생일지도 몰랐다. 야, 이 멍충아, 라고 나는 평소처럼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
  매미소리에 귀가 따가웠다. 적막한 여름 한낮이었다. 차에서 내린 택이가 허깨비처럼 허청허청 환한 빛 속으로 사라졌다.
  누나.
  택이가 뒤돌아서 나를 불렀다.
  짝은어매헌티 쫌 전해주소. 짝은어매땜시 이때꺼정 나가 살았네.
  빛 속에 선 택이는 실루엣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방금 전에 본, 반쪼가리 된 택이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빛 속으로 허청허청 걸어가는 택이가 점점 작아져 아이가 되고 마침내는 한 점의 빛이 되었다. 나는 택시를 불러놓고 팽나무 아래 앉았다. 어느 땐가 번개를 맞은 팽나무는 반으로 쪼개진 상태였다. 그러고도 반은 여직 살아 예전만은 못하지만 사람 몇은 충분히 쉴 만한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죽은 가지 사이로 햇볕이 온 세상을 태울 듯 따갑게 내리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