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꽃대가리

오후 다섯 시의 로르카 도서관

문학작품은 사랑 아니면 전쟁에 대한 이야기

기획의 말 ①알지 못했던 세계에서 ②레트로토피아, 혹은 세트장으로서의 ‘과거’ ③어느 시대에 살고 싶은데요? ④시인 소호씨의 일일(一日)1)

실패한 사람

국가적 기억상실을 거부한다

튀는 퀴어, 나는 퀴어

“꽃은 지더라도 또 새로운 봄이 올 터이지”

그런 때가 있었다

나를 소설가로 만든 요소들

『칼라 명작 - 소년소녀 세계문학』을 읽는 매혹의 시간

김사량, 사선을 넘어 태항산에 들다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1969년 베트남 어느 산기슭에서

가장 독창적인 동아시아의 도원도

그들의 땅, 거기에 깃들기

백화점에서 쇠스랑 닮은 포크로 먹는 ‘난찌’

①20 02 02 14,소녀 가장 ②실물,형식

①우리는 어디까지 알까? ②새 식구

흰 눈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을까

①『논어』 읽고 듣기 ②아바나 항구에서 ③양파를 까는 마음

①새롭고 대담한 질문을 향하여 ②바이러스 갱단의 유쾌한 언어 사전

‘알아서 기지 않는 문학’

‘지혜가 있는 폰’이 일으킨 시장혁명 그리고 새로운 문명

동화가 된 소설, 영화가 될 수 없는 소설

신화의 땅에서 일어난 민족 수난사

사랑을 담아줘

대하소설을 외국어로 번역한다는 것

전후 한국문학 대표작의 사변성과 사회성을 읽다

대산창작기금,대산청소년문학상 등

2020 대산창작기금 및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공모 등

글밭단상

③양파를 까는 마음

이다은
희곡작가, 제 17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부문 수상자, 1995년생 희곡 「돼지의 딸」 등

글밭단상③

양파를 까는 마음

 

  엄마가 워터파크에서 토스트 가게를 운영한 지 올해로 십 년째다. 양배추를 쓰는 여느 토스트 가게들과는 다르게 우리 가게의 주재료는 양파다. 잘게 썬 양파를 달걀과 섞어 올리브유에 부쳐내고, 빵 위에 올린 후 케첩과 특제 소스를 뿌리면 완성이다. 이 단순해 보이는 일련의 동작은 지난한 순간을 쌓아 올린 결과이다.
  가장 먼저 양파를 까야 한다. 양파 껍질을 벗기고 헹궈 통에 옮겨 담아 표면을 말린다. 마른 양파를 반으로 한 번 자르고 채친다. 칼날이 비쳐 보일 정도로 얇게. 다시 그러모아 0.5mm 두께로 다지듯 썬다. 바쁜 날에는 하루 만에 십오 킬로그램 양파 두 망을 다 쓴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과정을 문청(文靑) 시절에는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하루걸러 백일장을 나가던 고등학생 때도 그랬다.
  고등학교 3학년 백일장에서 ‘삼각형’이라는 시제가 나왔다. 나는 뻔한 이야기를 써냈고 당연히 낙방했다. 공개된 수상작 중 토스트를 소재로 하는 작품이 있었다. 누군가 그걸 보고 내게 물었다. “왜 너희 토스트 가게 얘기 안 썼어?” 나는 어물쩍 둘러대고 말았다.
  워터파크 건물에 들어설 때의 락스 냄새. 멀리서부터 진동하는 기름 냄새, 무른 양파더미에서 나는 썩은 냄새. 익어가는 빵에서 순간 치미는 날 밀가루 냄새. 다른 친구들은 책을 읽을 동안 장사를 하고 돌아와 지친 몸으로 웃옷을 벗는 순간 물씬 풍기는 달큼한 양파 냄새.
  깨끗하고 조용한 종이에 이렇게 찌든 단어들을 옮겨 적고 싶지 않았다. 그곳에서 노동하는 나는 문학하는 나를 끊임없이 방해하고 괴롭히는 다른 사람일 뿐이었다.
  그냥 도망치면 안 돼? 악을 쓰다시피 손님들을 치러내고 겨우 숨을 돌릴 때였다. 나는 화장실에 가는 척 가게를 나왔다. 반소매 티셔츠에 맨발 슬리퍼 차림으로 도망쳤다. 겨울바람을 맞으며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한참 걸었다. 발가락이 춥다 못해 아파질 즘 뒤를 돌아보니 건물이 거기 그대로 있었다. 올려다본 건물이 어찌나 크고 검은지. 엄마는 왜 하필이면 혼자인지. 몰려드는 손님들 속에서 내 몫까지 허둥지둥할 모습이 선했다. 화단 경계석에 앉아 한참 훌쩍거렸다. 빨개진 눈과 코와 볼과 발가락으로 돌아가니 엄마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와 엄마와 같이 침대에 누웠다. 엄마는 나를 향해 몸을 돌려 말했다. “손님들이 막 몰려들면 콱 도망치고 싶다.” 내가 웃으면서 “엄마도?” 묻고 엄마도 해맑게 웃으면서 “응” 이랬다. 엄마에게서도 푹 익은 양파 단내가 풍긴다는 걸 왜 이제 알았을까?
  나는 익숙한 엄마가 궁금해졌다.
  손이 가는 대로 무심히 양파를 까다 보면 어디까지가 속이고 어디까지가 껍질인지 구별할 수 없어 멈추게 되는 순간이 있다. 한 손에는 칼, 한 손에는 둥글게 여문 양파를 쥔 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양파는 겹겹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줄기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지난한 삶과 문학이 아주 조금이나마 가까워진다. 노동하는 내가 문학하는 나와 온순한 한 사람이 된다. 한 사람으로 멈춰 다른 사람을 본다.
  그때 양파를 까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