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의 말 ①알지 못했던 세계에서 ②레트로토피아, 혹은 세트장으로서의 ‘과거’ ③어느 시대에 살고 싶은데요? ④시인 소호씨의 일일(一日)1)
『칼라 명작 - 소년소녀 세계문학』을 읽는 매혹의 시간
꽃 진 자리에 잎 피었다 너에게 쓰고 잎 진 자리에 새가 앉았다 너에게 쓴다
①『논어』 읽고 듣기 ②아바나 항구에서 ③양파를 까는 마음
①새롭고 대담한 질문을 향하여 ②바이러스 갱단의 유쾌한 언어 사전
‘지혜가 있는 폰’이 일으킨 시장혁명 그리고 새로운 문명
최재붕의 『포노 사피엔스』
도종환｜시인, 국회의원, 1955년생
시집 『접시꽃 당신』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해안으로 가는 길』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흔들리며 피는 꽃』 『사월 바다』, 산문집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등
‘지혜가 있는 폰’이 일으킨 시장혁명
그리고 새로운 문명
- 최재붕의 『포노 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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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노사피엔스라는 새로운 인류의 소비선택이 은행의 지점을 폐쇄하게 하고, 서점과 백화점, 대형마트의 문을 닫게하고, 방송국과 신문사의 광고시장을 장악하고 일자리를 줄이게 하는 원인이라면 이 모든 것을 국가의 규제 강화로 막아낼수 있을까요?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화두입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드론, 자율주행차, 로봇, 사물인터넷 등이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기술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다만 중요하다는 건 알겠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는 게 없다보니 막연하게 느끼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의 변화를 중심으로 혁명을 설명합니다. 지난 2백년간 과학기술의 발전이 혁명적 변화의 핵심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혁명은 시장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달라진 소비자가 시장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점이 6천 개에서 1천8백 개로 줄었습니다. 책 안 읽는 사회가 되었다고 모두 우려합니다. 실제로 독서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걱정입니다. 그런데 많은 서점이 문을 닫은 이유는 온라인 유통 때문입니다.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집에까지 배달해주기 때문에 서점까지 가지 않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할인을 해주니 교통비와 도서구입비가 절약되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다는 판단을 소비자가 한 것입니다.
한국씨티은행은 2017년 127개 지점 중 90개를 폐쇄하고, 광역별로 통합센터를 만들어 80퍼센트의 지점 폐쇄를 단행했습니다. 은행업무가 스마트폰으로 해결 가능하게 되자 소비자들이 은행에 가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2017년부터 2018년 사이, 대형백화점의 3분의 1이 문을 닫았습니다. 미국 백화점의 상징이자 유통혁신의 아이콘이었던 125년 전통의 시어스백화점도 2018년 결국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경기가 호황인데도 대형백화점이 파산한 이유는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온라인유통 때문입니다.
방송산업은 더 심각합니다. 우리나라 지상파 방송사 광고시장은 지난 10년 사이 무려 50퍼센트가 줄었습니다. 미국의 지상파 방송국과 신문사는 거의 주인이 바뀌었고, 100년 전통의 『타임(Time)』도 결국 파산 후 인수되었습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우리나라 종이신문 유료 구독률이 73퍼센트였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종이신문 구독률은 20퍼센트까지 추락했습니다. 물론 신문기사를 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더 많은 기사와 정보를 봅니다. 다만 모바일로 보는 것입니다. 방송은 텔레비전으로 보는 것이라 믿던 인류는 이제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프로그램만 찾아보는 것입니다.
혁명이 시장경제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일상생활에도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혁명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스마트폰 때문입니다. 직접적인 원인은 스마트폰 사용 후 소비행동이 바뀐 탓입니다. 이미 전 세계 36억 명의 인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1인 1스마트폰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시공간의 제약 없이 소통할 수 있고 정보전달을 빠르게 하며 편리하게 살고 있는 사람을 ‘포노사피엔스’라고 합니다. 2015년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호모사피엔스’에 빗대어 ‘지혜가 있는 폰을 쓰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포노사피엔스’라고 부른 데서 나온 용어입니다.
시장경제의 혁명적 변화는 기업 시가 총액의 변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계 10대 기업의 1위는 애플입니다. 현금보유고만 300조가 넘습니다. 2위는 유통기업 아마존입니다. 기존 문명의 상식대로라면 유통은 오프라인 거래가 핵심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많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갖고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런데 아마존은 아예 매장이 없습니다. 앞으로 10년 내에 택배 물건 중 80퍼센트는 드론이나 무인차를 통해 보내겠다는 게 아마존의 전략입니다. 3위는 구글, 4위는 마이크로소프트, 5위는 페이스북입니다. 시가 총액 기준 세계 10대 기업 중 무려 8개가 포노사피엔스를 기준으로 새로운 사업을 성공시킨 기업들입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알리바바와 텐센트가 10대 기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10위는 삼성전자입니다. 2018년 3분기 이익의 77퍼센트를 반도체에서 냈고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사업 부문에서도 큰 이익을 냈습니다. 모두가 포노사피엔스 마켓 관련 분야입니다. 포노사피엔스는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 아니, 장기의 일부로 여기며 삶의 방식을 재정의한 사람들입니다. 말하자면 삼성은 스마트폰을 신체의 일부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세계 최고의 인공장기 판매회사가 된 셈입니다.
포노사피엔스라는 새로운 인류의 소비선택이 은행의 지점을 폐쇄하게 하고, 서점과 백화점, 대형마트의 문을 닫게 하고, 방송국과 신문사의 광고 시장을 장악하고 일자리를 줄이게 하는 원인이라면 이 모든 것을 국가의 규제 강화로 막아낼 수 있을까요? 저자는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택시가 등장하면서 말을 타고 다니지 않게 되고, 철기문명이 등장하면서 청동기 문명이 쇠퇴하는 것 같은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이 혁명적 변화는 위기일까요? 기회일까요? 기존 시스템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는 위기가,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기회가 온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기성세대는 디지털 소비 시대의 부작용을 언급하면서 막아내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다시 새로운 문명을 배우고 익히며 새로운 시대를 리드해야 할 책임 또한 우리에게 있는 건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