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깎이’는 것을 읽어내는 것이 문학
특집을 기획하며 ①고양이 사냥의 추억 ②최초의 반려묘 까맹이부터 이백 살 사이보그 고양이까지 ③펫은 실전이다 ④해방촌의 반려종들을 위하여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제2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리뷰-시 부문 수상작 리뷰-소설부문 수상작 리뷰-번역부문
자파(自派)의 탄생
글 곽효환 ㅣ 시인, 대산문화재단 상무, 계간 『대산문화』 주간, 1967년생
시집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 『너는』, 저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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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가까이 광화문 인근에서 근무한 덕분인지 광화문이 타고난 역사적이고 필연적인 운명에 대해 종종 생각하곤 한다. 조선의 도읍으로 서울이 정해진 이래 광화문 사거리는 지배 권력과 피지배층이 처음 만나게 되는 접점이자 이 두 힘이 만나고 부딪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서의 운명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크고 작은 문제들과 엇갈리는 주장과 이해가 쏟아지고 첨예하게 충돌하는 현장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인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지금의 정부가 들어서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 몇 년 동안 광화문에서 일어난 혹은 일어나고 있는 변화무쌍하고 불가해한 일들을 마주하면서 드넓은 광장에서 종종 길을 잃게 된다. 특히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새 정부의 근간에 질문을 던진 지난여름부터 가을까지 아니 지금까지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충돌과 그것이 만들어 낸 후유증은 어디서부터 수습하고 정리해야 할 지 난감하고 막막해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광화문광장은 촛불혁명의 성지에서 오히려 촛불혁명이 탄핵한 대상을 옹호하고 촛불의 힘으로 들어선 정부를 성토하고 심판하자는 보수 세력의 집결지로 뒤바뀌었다. 뿐만 아니라 법무장관의 퇴진과 수호를 둘러싸고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잇따라 개최된 대규모 집회는 나라를 둘로 동강냈다는 탄식과 함께 ‘진영’이라는 새로운 이념을 등장시켰다.
진영에 갇혀 모든 것을 진영논리에 꿰어 맞추려는 광풍을 우려하며 궁극적인 가치와 진실을 공유하고 지향하면서도 개개의 진실과 정의에 대해 세심하게 귀 기울이고 개인의 양심과 정의에 입각해서 개별적으로 판단하고 입장을 표명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자파(自派)의 탄생’이 필요하다는 말이 오고갔다.
양비론은 위험하고 때론 무책임하다는 것을 알지만 법무장관의 퇴진이 왜 대통령 하야로 이어지는지, 반대로 법무장관 수호가 왜 검찰개혁의 동의어가 되는지는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 거칠고 상식을 벗어난 양단의 논리 외에는 우리 앞에 다른 선택지가 없는지도 의문스럽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서초동과 광화문 집회에 참석했던 사람들로부터 듣게 된 이야기이다. 서초동 집회에서는 ‘소위 진보를 대변하는 언론들도 없어져야 할 매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고, 반대로 광화문 집회에서는 ‘이른바 보수언론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
다고 했다. 그런데 양쪽에서 공통적으로 “이제 믿을 수 있는 것은 유튜브 뿐이고 하루에 10분씩만 유튜브를 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이른바 ‘진영’의 탄생이다. 큰 틀에서 공동체가 나아갈 바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 지금 자신이 속한 진영이 당면한 현안과 입장만이 옳고 진실이고 생각이 다르면 적으로 간주되는, 즉 자신들이 원하는 이야기만 듣고 필요한 논리만 선택적으로 믿고 일반화하겠다는 ‘진영논리’와 ‘진영언론’이 등장한 것이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그래서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현상을 고민하던 차에 만난 몇몇 선배 시인과 평론가들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진영에 갇혀 모든 것을 진영논리에 꿰어 맞추려는 광풍을 우려하며 궁극적인 가치와 진실을 공유하고 지향하면서도 개개의 진실과 정의에 대해 세심하게 귀 기울이고 개인의 양심과 정의에 입각해서 개별적으로 판단하고 입장을 표명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자파(自派)의 탄생’이 필요하다는 말이 오고갔다.
문득 이 같은 상황에서 문학의 자리가 궁금해졌다. 우리의 손으로 이룬 촛불혁명의 시대 이후 벌어지고 있는 극단적인 진영논리의 등장과 대립, 그로 인한 분열과 갈라진 틈새를 문학은 어떻게 관찰하고 매만져야 하는지가 알고 싶어졌다. 문학은 엄혹한 시절에서부터 가치중립적이면서도 약자와 그늘진 곳에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음으로써 그 자리를 지켜왔다. 그렇다면 공동체가 타협해서는 안 될 공공의 가치를 밝혀주는 동시에 개별적 진실과 정의에 대해서도 면밀하게 밝혀주는 문학작품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기다리는 ‘위대한 개인의 언어’의 탄생이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