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탄실이와 주영이

라다크, 네 눈물은 신의 발등 위에 떨어질 거야

한 아웃사이더의, 이야기 만들기에 대한 홀림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깎이’는 것을 읽어내는 것이 문학

특집을 기획하며 ①고양이 사냥의 추억 ②최초의 반려묘 까맹이부터 이백 살 사이보그 고양이까지 ③펫은 실전이다 ④해방촌의 반려종들을 위하여

텍스트에 대한 경의

자파(自派)의 탄생

한 사람이 곧 하나의 우주이다

『반노』는 ‘인간’을 지키자는 처절한 투쟁기였다

하루 2천640번 금형을 드나든 손의 기록

아름다움에 다다르려는 맹렬한 노력

홍진에 묻힌 분내……

추운 날의 벗, 세한삼우(歲寒三友)

노을바다의 장엄

양요리루 의자에서 커피를 압음하니 문명개화 이 아닌가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제2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리뷰-시 부문 수상작 리뷰-소설부문 수상작 리뷰-번역부문

얇아지는 장편, 환영할 일인가

①소각,저작 ②외경,당신은 시를 쓰는 사람인가요

①30년의 끝 ②양들의 침묵

새(NEW)

거울의 미로

①녹색문명(綠色文明) 시대의 숲 ②새끼 ③재와 유리의 미래

소설답지 않은, 그래서 더 공감하는

이광수, 일본에서 크게 취하다

머릿속에 쌓인 문제를 풀 수 없을 때

불안과 행운 사이에서

엘리엇 업데이트하기

‘더듬더듬 먼 길’을 가는 시와 번역

경계없는 예술 향한 10년여의 노정

대산창작기금,대산세계문학총서

대학생 아시아 대장정 3차 리더십 캠프 및 아시아프론티어클럽(AFC) 발대식 개최

내 문학의 공간

노을바다의 장엄

글 김명인 ㅣ 시인, 1946년생
시집 『동두천』 『파문』 『기차는 꽃그늘에 주저앉아』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등

 

내 시의 문맥들은 이런 경계로 천지간을 부조해 놓기도 한다. 실재의 공간이라도 작품에서는 알게 모르 게 왜곡되기 마련이다.

“저녁이 와서 하는 일이란/ 천지간에 어둠을 깔아놓는 일/ 그걸 거두려고 이튿날의 아침 해가 솟아오르기까지/ 밤은 밤대로 저를 지키려고 사방을 꽉 잠가둔다”

- 「천지간」 부분 (시집 『꽃차례』, 문학과지성사, 2009)



어스름으로 지워지는 해안선에 두 사내가 나타나 마주앉는다. 한밤의 모래톱에서 나누는 사내들의 대화에는 이 세상의 이야기 같지 않은 분위기가 풍긴다. 그들의 이야기는 공간과 시간을 무너뜨리며 밤새도록 뒤섞인다. 경계의 시간이 흐르는 곳은 해안선이어서 어느새 아침이 오고 허옇게 파도가 부서진다. 여름밤은 속절없이 짧고 사내들에겐 도달이 없다. 그리하여 온몸으로 부딪혀오는 파도 앞에 선 존재는 영원히 고독할 뿐이다. 다함없는 하루가 천지간에 변주되지만, 인간의 유한함으로 저 무궁을 어찌 감당하랴!
내 시의 상상세계를 관류하는 바다에는 성장기의 허기가 음영처럼 드리워져 있다. 나는 영동의 한적한 바닷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태백산맥이 외줄기 해안선을 이어가며 동해와 맞댄, 7번 국도의 어름에 자리잡은 작은 마을이 내 고향이다. 한낮이 기울면 어느새 산 그림자가 해안선을 덮어버려서, 사람도 땅도 거친 생존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는 곳. 어릴 때 살던 집에서 보면 긴 해안선이 반짝이는 은(銀)모래밭을 끌고 십 리나 펼쳐져 있어서, 수평선의 눈금 안쪽은 언제나 출렁이는 파도와 가파른 산맥으로 아뜩했었다. 그리하여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의식에 스며든 것은 온통 바다였다. 일망무제의 수평선은 이곳에 내가 갇혀 있음을 오롯이 하면서, 망망대해 너머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는 세계와 운명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바다를 품고 사는 내 속의 소년은 이미 가득했으므로 더는 자라지 않았다. 저 일망무제를 누가 더 넓힐 수 있을까. 처음부터 무한한 까닭에 바다는 우주적 공간이었다. 물은 물이되 마실 수 없는 물! 바다는 그리움과 탈출에의 욕망을 부추기는 삶과 죽음의 밑자리이자 그 원형이었다. 스며들어도 닿을 수 없는 너머로의 의식이 노을바다의 장엄을 노래하게 하는 것이다.

“홀로 바치는 노을은 왜 황홀한가 / 울음이라면 절량(絶糧)의 울음만큼이나 사무치게 / 불의 허기로 긋는 성호(聖號)!/ 저녁거리 구하러 나간 아내가 / 생시에 적어둔 비망록이 다 젖어버려 / 어떤 경계도 정작 읽을 수가 없을 때”

- 「장엄미사」 부분 (시집 『파문』, 문학과지성사, 2005)


 

내 시의 ‘장엄미사’는 그렇게 태어난다. 그 속에는 노을 위에 뛰노는 핏빛 맹목이 있고, 황홀한 죽음이 있다. 끼니를 다 내주고 채우는 허기란 애절량(哀絶糧)의 곡조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너머를 모르는 오늘의 삶이 노을바다의 장엄을 두렵게 바라보게 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생은 찰나를 장사지내는 여홍(餘紅)처럼 순간을 물들이다 가는 것일까.
캄캄한 어둠에 가려지는 실존에는 두서가 없다. 거기 죽음이 똬리 틀었다 해도 사방은 이미 지워졌다.
사라지는 시간을 살아낸다는 자각은 슬프다. 그리하여 천지가 저물고 철썩거림만으로 무궁한 밤바다가 내 앞에 있다. 온갖 소요가 파도소리에 잠겨드는 시간, 그 어름에 내 평생의 시들을 부려놓고 싶다.
오랜만에 부두에 서니 노을을 배경으로 배가 돌아온다. 어둠을 견딘 배들은 만선이다. 배들은 부둣가에 닿아 싣고 온 아침 해를 부려놓고, 이내 하루가 되어 저녁의 어로(漁撈)로 나아간다. 모든 만선은 기항지의 한낮으로 비워지는 것이다. 그런데 내 시는 왜 아직도 절량(絶糧)의 순간만을 의식하는지. 닿은 적이 없기에 너머가 없다는 것일까. 바다는 철썩거리는 소리만으로도 저렇게 다함이 없는 바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