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서시序詩

“내 소설의 장점은 시간을 모험적으로 다루는 것”

「운수 좋은 날」 줄거리 ①죽은 아내와 하룻밤 ②그날의 심증 ③치삼과 소년 ④개똥만 한 사람이 ⑤운수 좋은 날 ⑥휴가

문학교과서와 친일문제, 그 해결점을 찾아서

악당을 구분하는 능력

“신문물의 능동적 수용과 수평적 인간관계가 내 실학정신의 핵심”

읽다 접어둔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여원』 편집장 시절의 좌담회

파도그림, 여름에 즐기는 한기(寒氣)

11미터

운동장에서 펼쳐진 상상의 공동체

①별을 내던지고 전업 시인을 택하다 ②향학열, 반골정신 그리고 북청사람 ③가난과 고독을 동반 삼은 시조의 길

①적당한 사람,정적이 흐른다 ②말을 잇지 못하는,빛은 어둠의 속도

무구

①예술가의 독창성 ②하쿠나 마타타 ③빽

거꾸로 할머니와 바이올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머리 위로 은총

한 권의 책이 작품 세계의 원형이 되기까지

아시아 시인들이 함께 만든 계간 『시평』의 마지막 가을

뒤죽박죽 나의 데뷔작들

허블

소설은 상상하게 하고, 영화는 선택하게 한다

시는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는가

허무맹랑한 공상? 지금 여기, 가장 핍진한 상상력 ‘SF’

논어와 탈무드

20세기 초 프랑스 여성주의 문학의 고전

시어의 미묘한 의미들 사이에서 주석의 역할을 생각하다

등장인물들이 일본어로 말하게 하는 작업의 즐거움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등

수요낭독공감 6월 행사

인문에세이 - 길을 묻다

문학교과서와 친일문제, 그 해결점을 찾아서

글 홍정선 ㅣ 평론가,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명예교수, 1953년생
저서 『역사적 삶과 비평』 『신열하일기』 『카프와 북한문학』 『프로메테우스의 세월』 『인문학으로서의 문학』 등

1998년 2월 말 김대중 대통령이 제1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을 때 한 일 관계는 몹시 불편한 상태에 있었다. 한일 관계는 양국의 정치 지도 자들이 독도와 과거사 문제를 두고 남발한 수많은 막말들과, 조선총 독부 건물 철거에서 자신을 얻어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라는 말 투로까지 발전한 김영삼 대통령의 고압적 태도로 말미암아 감정적 대 립이 한껏 고조된 상태에 놓여있었다. 그래서 일본 우익의 정치행태와 역사인식에 대해 김영삼 대통령보다 훨씬 비판적인 김대중 대통령이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기왕의 불편한 한일 관계가 더욱 불편해 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그해 10월 초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 는 사람들의 그러한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우리의 핵심 명 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과거의 우리 정치 지도자들이 보여준 방식 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행동했다. 그는 수난과 고통을 당한 피해자 의 입장에서 소리 높여 가해자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향해 편견 없이 이해와 포용의 길을 걸어가는 파격적 행보를 조용히 선보였다. 주목받는 정치적 이벤트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소한 행보를 통해 “우리 한국 사람은 언제까지나 피해자의 원한에 사로잡혀 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라는 메시지를 일본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 나갔 다. 개인적인 일처럼 보이는 사소한 행동을 통해 자신이 말하는 화해와 포용의 메시지를 일본 사람들이 생생하게 느끼게끔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있었다.
당시의 보도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은 목포상고 시절의 은사인 모쿠모토 이사부로 선생을 59년 만에 다시 찾아 가르침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연로한 선생에 게 한국어가 아니라 “센세이 와타시데쓰. 아노 다이주데쓰요(선생님 접니다, 그 대중입니다)”라 고 직접 일본어로 말하는 정성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의 대통령이 식민지 시절의 일본 인 선생을 찾아 일본어로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과거의 아픈 기억이 아로새겨진 이름, 도요타 다이주(豊田大中)라는 창씨개명한 일본식 이름까지 사용했다는 것은 분명히 놀라운 일이다. 김 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자신을 일본식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을 80대의 은사에게 일본어로 인사 하는 속 깊은 인간적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한국인은 고마운 일을 고맙게 여길 줄 아는 예 의 바른 사람이란 이미지를 일본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아니 일본 사람들이 지닌 뿌리 깊은 혐 한의 감정과 불신의 마음을 수정하는 작업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시작했다. 단순한 개인이 아니 라 한국의 대통령인 그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우리 한국인의 다양한 감정을 잘 알고 있 는 그가, 자신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반대파들에 의해 엄청난 친일적 행태로 증폭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그가 참으로 자연스럽게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우리 한국에 대 한 신뢰의 감정을 구축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1945년 해방 이후의 한일 관계는 순탄할 때보다는 불편할 때가 훨씬 더 많았다. 국교정상화가 이뤄지지 못해서 불편했고, 평화선 문제로 불편했고, 조총련 문제로 불편했고, 재 일교포 지문날인 문제로 불편했고, 독도 영유권 문제로 불편했다. 임나일본부 문제로 불편했고, 식민지 지배와 사과 문제로 불편했고, 위안부 문제로 불편했고,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로 불 편했고, 기생관광 문제로 불편했고, 일본 자본의 노동 수탈 문제로 불편했고, 친일잔재 청산 문 제로 불편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불편함의 목록에 다시 현재의 한국 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해방전후사의 인식』 세대들의 등장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미국과 결탁한 이승만 반공 세력과 해방 직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친일파 문제로 말미암아 한국 현대사의 왜곡과 파행이 만들어졌다고 스스로를 교육한 세대들이기 때문이며 최근 이곳저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한일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건들의 든든한 배후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현재 진행형인, 친일 혐의가 있는 사람이 작곡한 교가와 공공기관의 노래를 폐지하 자는 운동이 그렇고, 얼마 전 경기도 의회 일부 의원들이 발의한, “대한민국은 이제라도 제대로 된 문제의식을 통해 역사적 자주권을 찾아와야” 한다며 초·중·고교가 보유한 일본 ‘전범기업’ 제품에 스티커를 붙이자는 조례안을 발의한 사건이 그렇고, 문재인 정권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특별하게 강조하면서 TV 방송이 일제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여러 편 내보낸 일이 그렇고, 금년 신학기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대부분의 국어와 문학 교과서들이 이 전에 비해 친일파 배제를 강도 높게 시행하고 있는 사실이 그렇다. 왜냐하면 이러한 일련의 사건 들 배후에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행위, 적폐를 청산하는 정의로운 작업을 하는 것이란 시각이 숨어있는 까닭이다.
일본은 오랫동안 한일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인의 하나가 한국의 교육현장에서 조직적으 로 이루어지는 반일감정 주입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면서 한국의 교과서와 교육정책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일본의 이러한 주장은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일까? 우리의 문학 교육에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킬 배타적 민족주의가 음험하게 작동하고 있 는 것일까? 이번에 새로 개편된 국어와 문학 교과서를 중심으로 이 문제의 일단을 잠시 검토해 보자.
금년 3월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와 국정에서 검인정으로 바뀐 국어 교과 서에는 친일파 문인들의 작품을 본문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최남선, 이광수, 김억, 김동 인, 주요한, 임화, 서정주 등이 바로 그러한 경우인데, 이들의 작품은 금성출판사에서 펴낸 문학 교과서가 서정주의 시 「신선 재곤이」를 본문에 수록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든 교과서가 본문에 서 이들의 작품을 배제하고 있다. 개편된 교과서가 보여주는, 이전과 놀랍게 달라진 이런 모습 은 분명히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다. 교과서의 집필자들이 이들의 작품이 수준 미달이라서 배 제한 것이라기보다는 교육부에서 친일파 배제라는 편찬의 지침을 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정확할 것이다. 아마도 교육부가 이들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데 방해가 되는 문 인, 학생들에게 가르치기에는 그 행적이 올바르지 못한 문인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 가 빚어졌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의 문학교육은 오랫동안 카프(KAPF) 계열의 문인들을 이데올로기 문제로 말미암아 교육대상에서 제외했으며, 그 결과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문학교육은 실상과 거리가 있 는 교육, 불구가 된 교육이 될 수밖에 없었다. 70년대 이후 민주화를 외친 세대들이 카프 계열의 문인들의 해금과 복권을 주장한 것은 이들이 망령처럼 떠 돌고 있는 한 우리의 문학교육은 허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 금, 그러한 왜곡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외친 사람들이 현실 정치의 주역이 된 지금 이들이 우리의 문학 교과를 다시 불 구의 교과서로 만들어 놓고 있다. 우리의 문학교육을 육당 최남선을 배제하면서 근대 자유시의 형성에 대해 이야기하 고 춘원 이광수를 배제하면서 한국 근대소설의 시작을 이 야기하는 교육, 미당 서정주를 배제하면서 식민지 시대 한 국시의 발전과 성취를 가르치는 교육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이다. 친일 혐의가 있는 문인들을 교과서에서 배제함으로써 우리의 문학교육을 카프 계열의 문 인들을 배제했던 시절과 마찬가지 상태의 교육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근대문학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태생적으로 친일적이었다. 일본과 가까운 것을 ‘친 일’이라 한다면 우리 근대문학은 친일을 원죄로 안고 태어난 문학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예 술, 학문, 움직일 수 없는 진리……/ 그의 꿈꾸는 사상이 높다랗게 굽이치는 동경(東京),/ 모든 것을 배워 모든 것을 익혀,/ 다시 이 바다 물결 위에 올랐을 때,/ 나는 슬픈 고향의 한 밤,/ 홰보 다도 밝게 타는 별이 되리라”라고 노래하는 임화의 모습에서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다. 이 시에 서 보듯 뒤처진 우리를 계몽하기 위해 일본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태도에서 이광수와 임화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으며 이 점에서 두 사람은 모두 친일적이었다. 또 이광수와 주요한이 도산 안 창호의 교육구국운동을 충실하게 실천하면서 우리의 독립을 당장 실현 가능한 일이 아니라 제 대로 실력이 갖춰진 미래의 일로 보았다는 점에서 이들은 마찬가지로 친일적이었다. 이들의 친일 에는 이처럼 나름의 고뇌와 이유가 아로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개편된 국어와 문학 교과서에서 우리가 빈번하게 마주치는 용어의 하나는 ‘일제 강점기’라는 말이다. 이 말은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식민지 시대에 생산된 문학작품의 시대 배경을 드러내는 말인 동시에 작품의 의미와 가치를 규정하는 말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교과서에서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라는 폭력적 시대에 쓰였기 때문에 이런 의미로 읽어야 한다든가 그런 시 대였기 때문에 이 같은 표현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식의 설명을 자주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예 를 든다면 이상의 시 「거울」을 수록하고 있는 교학사의 국어 교과서가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의 지식인이 당대현실에 대한 인식을 형상화한 현대시라고 설명하면서 학생들에게 화자의 상황을 통해 현실의 상황을 짐작해보는 방식으로 감상해보라는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런 경우 라 할 수 있다. 이상의 「거울」이 보여주는 자의식의 분열과 내면의 성찰에 대해 전통적인 우리 시 에서 볼 수 없었던 근대적 인간의 새로운 모습을 읽어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라는 시대가 민족적 자긍심을 지키며 사는 것을 어렵게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그런 모습을 찾아 보라고 하는 데에는 분명히 무리가 있다. 일제강점기가 이중적 삶을 사는 사람들을 양산했고 그 모습을 형상화한 시가 「거울」이라는 식의 설명에서 우리는 이 작품에 대한 올바른 설명이라는 느낌을 받기보다는 작품의 모든 의미를 일본의 폭력적 지배로 귀납시키는 나쁜 태도만을 읽을 수 있는 까닭이다.
우리의 교과서가 문학작품에 대한 설명을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배경과 지나치게 관련시키는 방식은 학생들이 한국문학작품을 올바르게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을 가로막는 일일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이 보았을 때 조직적 반일 교육이란 인상을 줄 우려가 다분히 있다. 여러 교과서가 이 육사의 「광야」에 대해 “일제 강점기의 절망적인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미를 표현한 시”라고 설명하 는 것은 그래도 이육사의 행적을 감안할 때 이해하며 넘어갈 수 있는 경우지만 미래엔에서 편찬 한 문학 교과서가 김소월의 「초혼」을 본문에 수록하면서 이 작품의 제목 바로 위에 “일제강점기 의 시대 상황과 시에 나타난 정서의 깊이를 고려하여 작품을 감상해보자”라는 말을 붙여놓고 있 는 것은 너무나 지나쳐서 이해하며 넘어가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 시를 지배하고 있는 목소리는 삶의 영역을 넘어 죽음의 영역에까지 미치는 목소리이며, 그런 애절한 목소리를 우리의 망부석 설화와 전통적 ‘초혼’의식이 뒷받침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는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 상황과 관련된 것이니 그런 모습을 이 시에서 찾아 읽으라고 가르치는 것은 교과서가 보여주어 야 할 문학교육의 참모습이 아니다. 식민지 시대에 고착된 왜곡된 의식의 소산이거나 문학을 시 대와 정치에 종속된 부수물로 여기는 태도의 소산일 따름이다. 이런 식의 문학교육은 친일 혐의 가 있는 문인을 일방적으로 배제해 버리는 태도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문인과 그렇지 못한 문인,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의 구별에 혼란을 가져오는 교육이며, 학생들에게 특정한 방향으로 증오 와 편견을 심어주는 교육이며, 우리 근대문학의 정확한 실상을 안갯속에 묻어버리는 교육이다.

필자는 이 글의 첫머리에서 현재의 교과서가 보여주는 안타까운 모습 때문에 김대중 정권 하 의 한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는 김대중 정권 시대에 아키히토 일본 천황이 공식석상에서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고통’과 ‘사과’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사과하는 모습과, 오부 치 게이조 총리가 공동선언문에서 ‘통절한 반성’,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표현을 명기하여 읽 는 모습을 보았다. 또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 의회에서 양국의 나쁜 관계는 짧았고 좋은 관계는 길었다는 사실을 애써 강조하면서 미래의 우호적 관계를 열어나가는 모습도 보았다. 이처럼 김대 중 대통령은 우리의 선도적 태도와 노력에 따라 한일 관계가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식민지 시대에 대한 고착으로부터 벗어날 때 일본의 변화 역시 용이하게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사실도 구체적으로 확인해주었다.
우리의 문학교육은 식민지 시대의 문학에 대해 친일은 나쁘고 항일은 좋다는 식의 단순한 도 식을 별다른 고뇌 없이 적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민족의 뛰어남을 보여준 인물로 생각하는, 당나라에서 활동한 고선지와 흑치상지는 민족의 배신자들로 보아야 마땅하지 않은가. 자기 나 라를 멸망시킨 당나라를 위해 일한 그들을 위대한 인물로 생각한다면 일본군 중장으로 처형당 한 홍사익 역시 위대한 인물로 간주되어야 마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선지와 흑치상지 는 훌륭한 인물로 홍사익은 나쁜 친일파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이처럼 우 리는 역사를 가깝게 볼 때와 멀리 볼 때 다르게 생각한다.
문학교육은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다르게 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교 육이다. 다르게 읽는 사람을 존중하고, 다르게 읽을 권리를 기꺼이 인정해 주는 교육이다. 그러 면서 왜 다르게 생각하는지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태도를 키워주는 교육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을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평화롭게 경쟁하며 공존하는 장 으로 만드는 것이 문학교육의 중요한 목적이다.
식민지 시대는 우리를 보호해줄 수 있는 국가가 사라진 시대였다. 우리 모두가 법적으로는 일 본인으로 살아야 했던 시대였다. 중국군 장교였던 소설가 김학철이 일본군에 포로로 잡혔을 때 포로 대접을 받은 것이 아니라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재판에 회부된 것은 그가 일본인으로 간주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시대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일본인으로 생각하 며 살아야 했던 사람의 고뇌를 포용하고 이해해야 한다. 배제와 청산을 외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윤동주가 부끄러운 이름이라고 말한 히라누마 도주, 그런 식의 이름을 가졌던 수많은 사 람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보여준 것처럼 우리 스스로 그렇게 상처를 보듬어 안는 변화와 용기를 가질 때 오랫동안 지속된 불편한 한일 관계도 새로운 전기를 맞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