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소설 「날개」 이어쓰기 ①사이렌이 울릴 때 ②마지막 페이지 ③1교시 국어영역 ④우리들은 마음대로 ⑤진술에 따르면 ⑥대합실에서
태양이 한 마리 곤충처럼 밝게 뒹구는 해질녘, 세상은 한 송이 꽃의 내부
첫 번째｜마침표 유감 두 번째｜아주 흔한 위로 세 번째｜텍스트와 세계 네 번째｜집을 떠나 집으로
①전후 국가재건 토목사업에 헌신한 ‘후반기’ 모더니스트 ②시대를 풍미한 『얄개전』을 쓴 딸바보 ③시와 후학과 커피를 사랑한 ‘동해안의 시인’
대산초대석
●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인식과 향후 남북 관계, 북미 관계 등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전개되리라는 기대가 국민들 사이에 팽배합니다. 정치적으로 ‘회색 지대’에 있노라며 방관했던 사람들도, 향후 ‘종전선언’ 등 역사적 순간이 오면 난생처음 광장에 서보겠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대감 속 에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하 특보)로서 보다 냉철하게 지난 남북정상회담을 분석한다면요.
_ 판문점 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죠. 성공의 의미는 여러 면에서 측정해볼 수 있을 듯합니 다. 네 차례의 전쟁위기설이 나오면서 겪은 공포감이 국민들 마음속에 있었고, 그 위기와 공포 의 세월을 생각하면 이번 회담은 그걸 말끔히 씻어주었다는 의미가 있겠습니다. 또한 그동안 북 한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고 부인 이설주, 여동생 김여정도 신선 한 충격이었어요. 아마 김정은 위원장이 부질없는 충동적인 젊은 지도자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 적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켰다고 봐요. 김 위원장의 매력 공세(charm offensive)가 먹혔다고 볼 수 있지요.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정상이 함께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 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8,000만 겨레와 전 세계에 천명한 것이죠. 통일보다는 평화가 먼저라 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더욱이 한반도의 운명이 항상 강대국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지도자들이 독자적으로 한반도 의 미래를 모색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지 않았습니까? ‘자주’의 새로운 모멘트를 찾는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아마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점에서 희망을 느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종전이라는 단어의 울림이 컸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상상도 못해봤을 단어인데요. 젊은 세대조차 항 구적인 대치상태가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비관에 젖어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일상 속에 남아 있는 전 쟁의 기억과 분단의 기억(또한 그로 인한 대립)에 휩싸여 살아왔던 것 같은데 그런 것들 역시 종식되리라 는 희망이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_ 우리는 그동안 전쟁과 분단의 문화에 너무나 익숙해진 채 살아왔죠. 한반도 위기, 전쟁 위기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일상이었는데요. 이번에는 우리도 평화의 문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새롭고 파격적인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전쟁의 문화에서 평화의 문화로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 젊은 층에서는 진보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통일 문제는 말하기를 꺼려하거나, 관념적으로만 치부했 던 경향이 있어요. 이번 계기로 오히려 통일 문제를 현안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도 같습니다.
_ 정말 중요한 것은 ‘평화 먼저, 통일 다음’이라는 대목입니다. ‘평화 없는 통일은 허구’에 가 깝지요. 전쟁하며 통일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통일에는 여러 모양이 있습니다. 단일 민족국가, 연방제, 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 하나의 주권을 전제로 한 통일도 있겠고 ‘두 개의 주 권, 두 개의 정부’를 전제로 하는 연합제 통일 방안도 있어요. 한국정부는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제안 이래 중간 단계로서의 남북연합을 강조해 왔어요. 남북이 각자 주권을 가진 상 태에서 정상회담과 각료, 국회회담을 정례화하고 교류 협력, 신뢰 구축, 평화 공존하는 사실상 의 통일을 하자는 것이지요. 그리되면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가고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평 화 상태가 만들어진다고 봐요.
이번에 처음으로 통일우선주의가 아니라 평화우선주의를 내세웠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어 요. 군사적 긴장완화, 신뢰 구축, 그리고 단계적 군축을 통해 전쟁 발발의 요인을 없앤 상태에서 교류하자는 것입니다. 게다가 종전선언, 평화조약, 그리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면서 더불어 북 한을 완전히 비핵화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지요.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담론은 평화이고 평 화를 구축해야만 통일로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 지점에서 젊은이들도 감명을 받았던 것 아닌가 싶어요. 평화로운 상태에서 자유롭게 오가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 이건 젊은이들 이 바라왔던 것이고 옳은 것이었습니다. 흡수통일에 익숙해 있던 기성세대의 생각과는 다른 것 이지요.
● 그런 점에서 1, 2차 정상회담과 구분되는 점도 있다고 보시는지요?
_ 1차 정상회담은 상당히 총론적인 성격, 2차 정상회담은 각론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 번 3차 정상회담은 절충적 성격을 갖지요. 기본적으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군사적 신뢰 구축, 긴장완화, 단계적 군축, 그리고 종전선언을 통해서 휴전협정을 종료시키고 평화조약으로 전환시 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면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가 되어야 하는 거고요. 한반도 평화구축 은 북한 비핵화와 필연적으로 연동되어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평화와 북한의 비핵화를 명시적으로 내세운 것이 이번 정상회담의 요체가 아닌가 합니다. 또한 과거에는 남 북이 의제를 갖고 많이 싸웠습니다. 북은 정치 군사적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경제 사회 문화를 해결할 수 있다, 남은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보다 쉬운 것부터, 경제 사회 문화를 먼저 하고 정 치 군사 나중에 하자, 이런 입장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남북이 어려운 정치 군사적 문 제부터 다루자는 데 합의를 한 것입니다. 그게 앞선 정상회담과 다른 대목이라 하겠지요.
● ‘통일’을 생각하면, 대개 독일 통일을 선례로 떠올리고, 북미 관계에 있어서는 ‘트럼프 타워’와 ‘맥도날 드’라는 단어를 볼 때 소비에트 페레스트로이카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20세기의 문맥과 21세기의 문맥은 물론 다르겠지만, 국민 정서상 가장 친숙한 앞선 역사적 전례들에 비추어 볼 때 향후 남북 관계와 북미, 한중, 북일 관계를 비롯하여 세계정세는 어떤 변동을 일으키게 될까요.
_ 독일 같은 경우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통일이 왔지만, 통일된 독일은 또 하나의 벽 (The Second Berlin Wall)을 만나게 됩니다. 서독 주도의 통일 독일에서 사회적 계층화 현상이 심화되었고 동독 출신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심해졌지요. 그런 점에서 통일은 민족 전체의 열망 이지만 조심스럽고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두 개의 주권이 공존하는 남북이라 할 지라도 자유로운 교류 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가는 통일, 평화 통 일이 중요하지요. 이런 점을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많이 심어두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개성 공단, 금강산 사업, 투자 등이 남북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줄 수 있는 건 사실이고요. 제일 중요 한 건 통일보다 평화가 먼저라는 것이지요.
통일의 모습,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흡수, 무력, 또는 상호 합의에 의한 통일. 과거에 는 흡수통일 프레임을 가장 많이 떠올렸지요. 내부적 요인으로 붕괴된 북한에 개입해서 북한을 접수하고 우리 식 정치경제 시스템을 이식시킨다는 거지요. 그런데 북이 그런 식으로 접수될 상 대가 아닙니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북한의 입장을 고 려하는 통일이 이뤄져야 합니다. 점진적으로 신뢰를 구축하다 보면 언젠가 남북한 주민이 국민 투표로 통일의 궁극적 형태를 결정할 수도 있겠지요.
미국은 북한에 먼저 비핵화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북한이 갖고 있는 모든 핵시설, 핵물질, 핵탄두, 미사일들을 검증 가능하게 먼저 폐기하라는 것입니다. 불가역적으로, 영원히.
그러나 북한은 미국에 대신 우리에게 뭘 해줄 수 있냐고 묻고 있지요. 북한이 예전부터 주장해 온 것은 군사위협, 체제에 대한 위협을 멈춰 달라, 정상국가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미 국 중심의 투자가 북한에 들어가면 북의 지도자와 주민들은 체제에 대한 외부의 위협이 없다고 보겠지요. 베트남도 중국도 시장사회주의인데 우리라고 못 할 것 없지 않느냐는 입장인 것 같아요.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신뢰가 부족합니다. 핵무기야말로 김정은 체제를 유지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인데 북한이 그걸 포기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죠. 경제개발에 역점을 두면 개혁개방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중산층과 시민사회도 생 겨날 텐데 이 모든 것이 부메랑이 되어 김정은 체제를 위협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의 셈법이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개혁개방을 추진해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 섰다는 거죠. 자꾸 진의를 의심하는 것보단 믿어보고 협상을 해봐도 되지 않나 싶어요. 한국의 보수층에서도 이건 위장평화공세 아니냐,라고 하는데, 북한을 보는 시각 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어요. 미국에서는 전문가들의 80% 정도가 6월 12일 예정된 북미 정상 회담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어요. 마키아벨리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정치란 불가능한 것을 가능 한 것으로 만드는 예술”이라고. 외교 역시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희망을 걸어봐야 하죠. 북한 을 설득해서 핵을 포기하도록, 경제에 역점을 두면서 새로운 부국강병을 꿈꾸도록 하면 가장 좋 겠지요.
결국 남북 관계가 정상화되면 북미 관계도 크게 개선될 것입니다. 이미 북중 관계도 개선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남북, 북미, 한미, 한중, 북중 양자 관계가 선순환을 이루게 되면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공헌할 것이라 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제약과 도전에 직면하리라고 봅니다. 그걸 극복해 나가야 하겠지요.
● 어떤 말들은 가장 강력한 비전을 제시하고, 프레임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이번 남북정상 회담에서 나온 말들 역시 추상적 표현보다는 구체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기대감을 선사 했습니다. 특보가 보시기에는 어떤 ‘말’이 그중 가장 중요했을까요.
_ 종전, 전쟁이 끝났다고 하는 말의 무게와 상징. 평화의 담론. 그리고 새 시대. 저변에 깔고 있는 것은 완전한 비핵화. 이런 것들이 구체적인 실감으로 다가왔다는 게 가장 큰 의미일 것입 니다.
● 73년이라는 분단된 시간은 남북 간에 넘어서야 할 유무형의 많은 장벽들(언어, 문화, 정치 등)을 만들 었을 것입니다. 남북 간에 극복해야 할 대표적인 장벽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_ 남북한 모두 오랜 시간 퇴적된 전쟁, 불신, 대립의 문화에 길들여졌지요. 불신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뢰를 통해서 동질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언어, 문화, 사회,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이질성을 느끼고 있지만 차츰 신뢰를 구축해가야 할 겁니다.
● 문화가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와 함께 가는 거니까, 심정적인 신뢰와 더불어 문화교류가 활발해진다 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남북한의 젊은이들은 서로의 문화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요. 가령 제 주변에는 북한을 여행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고, 북한의 건축술이나 이미지, 텍스트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습니다.
_ 문화교류가 중요한 만큼 문화우월주의를 조심해야 하겠죠. K-Pop 같은 우리의 대중문화 가 북에서 환영을 받고 있고, 북의 젊은이들이 우리 문화를 동경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요.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문화적으로 북에 앞서 있다는 생각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전방위에서 남북 문화교류가 이뤄질 테니까, 문화교류는 신뢰 구축과 동질성 회복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봐요. 유엔 안보리 제재에도 위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북 지 도자들이 마음먹으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죠.
● 문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다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인데, 청년기에 읽었던 기억에 남는 문학작품이 있 을지요. 있다면 그 이유를 여쭙고 싶습니다.
_ 청소년기에 헤르만 헤세 작품들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교실에서 하루 종일 『데미안』을 읽다 야단맞은 적이 있어요. 『데미안』을 비롯하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싯다르타』 등을 즐겨 읽었던 같아요. 아마 모두가 청소년기에 비슷한 까닭으로 헤세의 작품을 마음에 품게 되는 것 같아요. 알 수 없는 이유로 항상 고뇌하는 내가 있고, 구원을 찾고자 하고, 구원자 가 나타나고. 나는 독일 작가들을 좋아했습니다. 헤르만 헤세나 토마스 만과 같은 작가들을요.
● 이제 통일이라는 비전을 바라보는 사회는 예전과는 다른 사회일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청년들은 기성 의 보수적인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갈 것이고, 앞으로 세계정세를 바라보는 눈도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데, 특보가 보시기에 어떤 시각, 또는 학습이 필요할까요.
_ 열린 마음과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인식이 중요하지요. 각박했던 역사의 흐름 속에 나를 먼저 챙기는 세태가 만연해졌지요. 우리 젊은이들이 아직도 물질사회의 덫에 갇혀 있는 것 아닌 가 합니다. 그러나 놀랐던 것은 촛불집회의 경험이었습니다. 광장에서 젊은이들을 보고 이 나 라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청년들에게는 야누스의 얼굴이 있는 것 같아요. 닫혀 있고 이기적인 모습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 흔쾌히 자기 몸을 던지 며 광장으로 나가는 모습. 쌈짓돈 털어서 옆 사람 챙기고, 모든 게 자원봉사로 이뤄지고 광장에 쓰레기 하나 안 남기는 모습을 내 눈으로 목격했거든요. 광장의 주축이었던 그 젊은이들에게서 무한한 희망을 봅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우리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 확 신합니다.
“외교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예술”
-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과의 만남
글 박민정 ㅣ 소설가, 1985년생
소설집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아내들의 학교』 등
문정인 ㅣ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 연세대학교 특임명예교수, 글로벌아시아 편집장, 1951년생
The Future of East Asia (공저) 『김대중과 국방』(공저) 『일본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공저) The Sunshine Policy 『중국의 내일을 묻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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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정상이 함께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8,000만 겨레와 전 세계에 천명한
것이죠. 통일보다는 평화가 먼저라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더욱이 한반도의
운명이 항상 강대국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지도자들이
독자적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모색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지 않았습니까?
● ‘남북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인식과 향후 남북 관계, 북미 관계 등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전개되리라는 기대가 국민들 사이에 팽배합니다. 정치적으로 ‘회색 지대’에 있노라며 방관했던 사람들도, 향후 ‘종전선언’ 등 역사적 순간이 오면 난생처음 광장에 서보겠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대감 속 에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별보좌관(이하 특보)로서 보다 냉철하게 지난 남북정상회담을 분석한다면요.
_ 판문점 정상회담은 성공적이었죠. 성공의 의미는 여러 면에서 측정해볼 수 있을 듯합니 다. 네 차례의 전쟁위기설이 나오면서 겪은 공포감이 국민들 마음속에 있었고, 그 위기와 공포 의 세월을 생각하면 이번 회담은 그걸 말끔히 씻어주었다는 의미가 있겠습니다. 또한 그동안 북 한과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게 개선되었고 부인 이설주, 여동생 김여정도 신선 한 충격이었어요. 아마 김정은 위원장이 부질없는 충동적인 젊은 지도자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 적인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켰다고 봐요. 김 위원장의 매력 공세(charm offensive)가 먹혔다고 볼 수 있지요.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정상이 함께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 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8,000만 겨레와 전 세계에 천명한 것이죠. 통일보다는 평화가 먼저라 는 강한 의지를 표명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더욱이 한반도의 운명이 항상 강대국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정상회담에서 남북 지도자들이 독자적으로 한반도 의 미래를 모색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지 않았습니까? ‘자주’의 새로운 모멘트를 찾는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아마 많은 국민들이 이러한 점에서 희망을 느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 종전이라는 단어의 울림이 컸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상상도 못해봤을 단어인데요. 젊은 세대조차 항 구적인 대치상태가 계속되지 않을까 하는 비관에 젖어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일상 속에 남아 있는 전 쟁의 기억과 분단의 기억(또한 그로 인한 대립)에 휩싸여 살아왔던 것 같은데 그런 것들 역시 종식되리라 는 희망이 생기지 않았나, 싶습니다.
_ 우리는 그동안 전쟁과 분단의 문화에 너무나 익숙해진 채 살아왔죠. 한반도 위기, 전쟁 위기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일상이었는데요. 이번에는 우리도 평화의 문화를 추구할 수 있다는 새롭고 파격적인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전쟁의 문화에서 평화의 문화로 패러다임을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 젊은 층에서는 진보적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통일 문제는 말하기를 꺼려하거나, 관념적으로만 치부했 던 경향이 있어요. 이번 계기로 오히려 통일 문제를 현안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도 같습니다.
_ 정말 중요한 것은 ‘평화 먼저, 통일 다음’이라는 대목입니다. ‘평화 없는 통일은 허구’에 가 깝지요. 전쟁하며 통일하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사실 통일에는 여러 모양이 있습니다. 단일 민족국가, 연방제, 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 하나의 주권을 전제로 한 통일도 있겠고 ‘두 개의 주 권, 두 개의 정부’를 전제로 하는 연합제 통일 방안도 있어요. 한국정부는 1989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 제안 이래 중간 단계로서의 남북연합을 강조해 왔어요. 남북이 각자 주권을 가진 상 태에서 정상회담과 각료, 국회회담을 정례화하고 교류 협력, 신뢰 구축, 평화 공존하는 사실상 의 통일을 하자는 것이지요. 그리되면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가고 안심하고 살 수 있는 평 화 상태가 만들어진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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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점에서 1, 2차 정상회담과 구분되는 점도 있다고 보시는지요?
_ 1차 정상회담은 상당히 총론적인 성격, 2차 정상회담은 각론적인 성격이 강했습니다. 이 번 3차 정상회담은 절충적 성격을 갖지요. 기본적으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군사적 신뢰 구축, 긴장완화, 단계적 군축, 그리고 종전선언을 통해서 휴전협정을 종료시키고 평화조약으로 전환시 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려면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가 되어야 하는 거고요. 한반도 평화구축 은 북한 비핵화와 필연적으로 연동되어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요. 그런 점에서 평화와 북한의 비핵화를 명시적으로 내세운 것이 이번 정상회담의 요체가 아닌가 합니다. 또한 과거에는 남 북이 의제를 갖고 많이 싸웠습니다. 북은 정치 군사적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경제 사회 문화를 해결할 수 있다, 남은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보다 쉬운 것부터, 경제 사회 문화를 먼저 하고 정 치 군사 나중에 하자, 이런 입장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남북이 어려운 정치 군사적 문 제부터 다루자는 데 합의를 한 것입니다. 그게 앞선 정상회담과 다른 대목이라 하겠지요.
● ‘통일’을 생각하면, 대개 독일 통일을 선례로 떠올리고, 북미 관계에 있어서는 ‘트럼프 타워’와 ‘맥도날 드’라는 단어를 볼 때 소비에트 페레스트로이카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20세기의 문맥과 21세기의 문맥은 물론 다르겠지만, 국민 정서상 가장 친숙한 앞선 역사적 전례들에 비추어 볼 때 향후 남북 관계와 북미, 한중, 북일 관계를 비롯하여 세계정세는 어떤 변동을 일으키게 될까요.
_ 독일 같은 경우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통일이 왔지만, 통일된 독일은 또 하나의 벽 (The Second Berlin Wall)을 만나게 됩니다. 서독 주도의 통일 독일에서 사회적 계층화 현상이 심화되었고 동독 출신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심해졌지요. 그런 점에서 통일은 민족 전체의 열망 이지만 조심스럽고도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두 개의 주권이 공존하는 남북이라 할 지라도 자유로운 교류 협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가는 통일, 평화 통 일이 중요하지요. 이런 점을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많이 심어두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개성 공단, 금강산 사업, 투자 등이 남북 사이를 가깝게 만들어줄 수 있는 건 사실이고요. 제일 중요 한 건 통일보다 평화가 먼저라는 것이지요.
통일의 모습,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흡수, 무력, 또는 상호 합의에 의한 통일. 과거에 는 흡수통일 프레임을 가장 많이 떠올렸지요. 내부적 요인으로 붕괴된 북한에 개입해서 북한을 접수하고 우리 식 정치경제 시스템을 이식시킨다는 거지요. 그런데 북이 그런 식으로 접수될 상 대가 아닙니다. 북한을 있는 그대로 보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북한의 입장을 고 려하는 통일이 이뤄져야 합니다. 점진적으로 신뢰를 구축하다 보면 언젠가 남북한 주민이 국민 투표로 통일의 궁극적 형태를 결정할 수도 있겠지요.
미국은 북한에 먼저 비핵화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북한이 갖고 있는 모든 핵시설, 핵물질, 핵탄두, 미사일들을 검증 가능하게 먼저 폐기하라는 것입니다. 불가역적으로, 영원히.
그러나 북한은 미국에 대신 우리에게 뭘 해줄 수 있냐고 묻고 있지요. 북한이 예전부터 주장해 온 것은 군사위협, 체제에 대한 위협을 멈춰 달라, 정상국가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미 국 중심의 투자가 북한에 들어가면 북의 지도자와 주민들은 체제에 대한 외부의 위협이 없다고 보겠지요. 베트남도 중국도 시장사회주의인데 우리라고 못 할 것 없지 않느냐는 입장인 것 같아요. 미국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해 아직 신뢰가 부족합니다. 핵무기야말로 김정은 체제를 유지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산인데 북한이 그걸 포기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죠. 경제개발에 역점을 두면 개혁개방을 할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중산층과 시민사회도 생 겨날 텐데 이 모든 것이 부메랑이 되어 김정은 체제를 위협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나는 김정은 위원장의 셈법이 다를 수 있다고 봅니다. 개혁개방을 추진해도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거란 판단이 섰다는 거죠. 자꾸 진의를 의심하는 것보단 믿어보고 협상을 해봐도 되지 않나 싶어요. 한국의 보수층에서도 이건 위장평화공세 아니냐,라고 하는데, 북한을 보는 시각 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어요. 미국에서는 전문가들의 80% 정도가 6월 12일 예정된 북미 정상 회담을 회의적으로 보고 있어요. 마키아벨리가 이런 말을 했어요. “정치란 불가능한 것을 가능 한 것으로 만드는 예술”이라고. 외교 역시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희망을 걸어봐야 하죠. 북한 을 설득해서 핵을 포기하도록, 경제에 역점을 두면서 새로운 부국강병을 꿈꾸도록 하면 가장 좋 겠지요.
결국 남북 관계가 정상화되면 북미 관계도 크게 개선될 것입니다. 이미 북중 관계도 개선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남북, 북미, 한미, 한중, 북중 양자 관계가 선순환을 이루게 되면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공헌할 것이라 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새로운 제약과 도전에 직면하리라고 봅니다. 그걸 극복해 나가야 하겠지요.
● 어떤 말들은 가장 강력한 비전을 제시하고, 프레임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기도 합니다. 이번 남북정상 회담에서 나온 말들 역시 추상적 표현보다는 구체적인 의지의 표현으로 국민들에게 많은 기대감을 선사 했습니다. 특보가 보시기에는 어떤 ‘말’이 그중 가장 중요했을까요.
_ 종전, 전쟁이 끝났다고 하는 말의 무게와 상징. 평화의 담론. 그리고 새 시대. 저변에 깔고 있는 것은 완전한 비핵화. 이런 것들이 구체적인 실감으로 다가왔다는 게 가장 큰 의미일 것입 니다.
● 73년이라는 분단된 시간은 남북 간에 넘어서야 할 유무형의 많은 장벽들(언어, 문화, 정치 등)을 만들 었을 것입니다. 남북 간에 극복해야 할 대표적인 장벽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_ 남북한 모두 오랜 시간 퇴적된 전쟁, 불신, 대립의 문화에 길들여졌지요. 불신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뢰를 통해서 동질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언어, 문화, 사회, 정치 등 모든 분야에 이질성을 느끼고 있지만 차츰 신뢰를 구축해가야 할 겁니다.
● 문화가 정치경제적 이데올로기와 함께 가는 거니까, 심정적인 신뢰와 더불어 문화교류가 활발해진다 면 더욱 좋지 않을까요. 남북한의 젊은이들은 서로의 문화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요. 가령 제 주변에는 북한을 여행하고 싶다는 사람이 많고, 북한의 건축술이나 이미지, 텍스트에 각별한 관심을 갖는 사람이 많습니다.
_ 문화교류가 중요한 만큼 문화우월주의를 조심해야 하겠죠. K-Pop 같은 우리의 대중문화 가 북에서 환영을 받고 있고, 북의 젊은이들이 우리 문화를 동경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요. 아주 바람직한 현상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문화적으로 북에 앞서 있다는 생각은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전방위에서 남북 문화교류가 이뤄질 테니까, 문화교류는 신뢰 구축과 동질성 회복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봐요. 유엔 안보리 제재에도 위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북 지 도자들이 마음먹으면 당장이라도 할 수 있죠.
● 문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다 자연스레 떠오른 생각인데, 청년기에 읽었던 기억에 남는 문학작품이 있 을지요. 있다면 그 이유를 여쭙고 싶습니다.
_ 청소년기에 헤르만 헤세 작품들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교실에서 하루 종일 『데미안』을 읽다 야단맞은 적이 있어요. 『데미안』을 비롯하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싯다르타』 등을 즐겨 읽었던 같아요. 아마 모두가 청소년기에 비슷한 까닭으로 헤세의 작품을 마음에 품게 되는 것 같아요. 알 수 없는 이유로 항상 고뇌하는 내가 있고, 구원을 찾고자 하고, 구원자 가 나타나고. 나는 독일 작가들을 좋아했습니다. 헤르만 헤세나 토마스 만과 같은 작가들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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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통일이라는 비전을 바라보는 사회는 예전과는 다른 사회일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청년들은 기성 의 보수적인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갈 것이고, 앞으로 세계정세를 바라보는 눈도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데, 특보가 보시기에 어떤 시각, 또는 학습이 필요할까요.
_ 열린 마음과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인식이 중요하지요. 각박했던 역사의 흐름 속에 나를 먼저 챙기는 세태가 만연해졌지요. 우리 젊은이들이 아직도 물질사회의 덫에 갇혀 있는 것 아닌 가 합니다. 그러나 놀랐던 것은 촛불집회의 경험이었습니다. 광장에서 젊은이들을 보고 이 나 라에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청년들에게는 야누스의 얼굴이 있는 것 같아요. 닫혀 있고 이기적인 모습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가 그들을 필요로 할 때 흔쾌히 자기 몸을 던지 며 광장으로 나가는 모습. 쌈짓돈 털어서 옆 사람 챙기고, 모든 게 자원봉사로 이뤄지고 광장에 쓰레기 하나 안 남기는 모습을 내 눈으로 목격했거든요. 광장의 주축이었던 그 젊은이들에게서 무한한 희망을 봅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우리보다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 확 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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