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쉽게 씨워진 시

“살아있는 것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도쿄 아사쿠사의 광대, 새로운 문학과 혁명을 꿈꾸었던 시인의 자화상

릴케의 천사

인터뷰어가 인터뷰이다

특집을 기획하며 ①시장 속의 문학 ②“비탄의 시대에 시인들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③미래에 관한 회상 ④살아남기 위한 자들의 언어

빨간 장미 한 송이

최후의 북촌 구식 현모양처이자 최초의 자유 신여성

시인이 안 됐으마 제비가 됐을 꺼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꿈꾸었던 「천체수업」

밤하늘의 투명한 시선들

평양에 갔을 때

불편한 질문을 던지는

‘천의 얼굴을 가진 조선의 천재’ 허균의 『성소부부고』

역사와 예술이 어우러진 ‘바다의 땅’, 통영

문인들의 ‘목뽑기’ 풍경 셋

정의론의 방법에 대한 질문

①진한 노을,초봄 개울에서 ②기러기떼 헛 가위질하듯,한네의 승천

①동전처럼 ② 오샤와 Oshawa

사물놀이

첫 번째|뒤늦게 눈뜬 재능 두 번째|혼자 있는 시간의 고요 세 번째|합포 산호동 옛집 네 번째|매미 오줌 맞기

①제25회 대산문학상 시·소설 부문 본심 대상작 선정 ②우리 문단에 당도한 새로운 감수성

유미리의 한국어

사실의 기록보다 더 무심한 영화, ‘전장’을 온전히 드러내다

소설의 귀환과 그늘

여백을 어루만지고 퇴고하다

낯선 것을 낯설지 않게 옮기기

추리와 역사 사이에서

이 세상은 꿈, 꿈이야말로 진실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

2017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지원대상작 선정 등

단편소설

①동전처럼

박생강 ㅣ 소설가. 1977년생
소설 『수상한 식모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교양 없는 밤』 등

알바생은 통장의 돈을 닥닥
긁은 삼백만 원을 레드캐피탈 계좌에
입금하고 레드코인 삼천 개를 구입했다.
애숙은 언젠가 레드코인의 값어치가
오르면 개당 백 원인 이 물건이 백만
원이 될 날이 올 거라면서 그녀를
다독였다. 알바생의 힘없는 눈에
그때마다 반짝반짝 불이 켜졌다. 그
눈빛을 보고 있노라면 애숙은 이상하게
소름이 끼쳤다.




동전처럼

 월요일 밤 P시의 여성전용 허브한증막 건물 앞에서 누군가 팔짱을 끼고 서성였다. P시는 깊은 밤이면 밤바다의 악취가 종합시장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 낮에는 시장에서 파는 건어물과 생 선, 젓갈에서 풍기는 냄새에 그 특유의 악취가 가려졌다. 하지만 밤이 되면 텅 빈 시장 곳곳에 불 쾌한 냄새가 배어들었다. 포구에서 맡을 때처럼 강렬하지는 않지만 종합시장의 통로를 따라 걷노 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취였다.
종합시장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빠져나오면 바로 허브한증막이었다. 살구색 페인트로 칠해진 건 물 외관의 투명 유리에는 초록색 글씨로 허브, 붉은색 글씨로 한증막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오래된 철물점이 있던 이층짜리 건물을 애숙이 구입해 허브한증막으로 개조한 건 이 년 전이었 다. 마흔 넘긴 나이에 그 작은 건물을 살 때까지 애숙은 긴긴 세월 남들 앞에서 반짝이는 동전처럼 밝게 웃었다.

어둠을 뚫고 시장 쪽에서 한 중년의 남자가 서류가방을 든 채 뚜벅뚜벅 걸어왔다. 다리가 길어 옷태가 좋아보였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어딘지 모르게 절름발이처럼 여겨지는 걸음걸이였다.
“미스 리, 이 건물에는 왜 주차장이 없는 거지. 내가 시장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느라 얼마나 짜증이 났는지 알아?”
“걸어서 오 분이면 충분하지 않나요?”
“아니, 내가 이딴 시장통이나 걸어야 될 사람으로 보여?”
어둠 속에서 장년의 남자가 짜증을 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칭 대학교수라고 소개했다. 경영학이라나 뭐라나? 그러면서 자기가 해외에서 받은 학위를 주르르 읊어댔다.
그때 애숙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남자들은 대개 화장하고 미소 짓는 재주가 없는 대신 자신의 경력을 뻔뻔하게 포장하는 재주 하나는 타고났다. 그래봤자 애숙의 눈치로 볼 때 이 남자는 다이아몬드까지는 못 가고 기껏해야 도금이나 금박지 수준이었다. 말은 잘해서 사람들을 쉽게 현혹시키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교수님, 죄송해요. 여기가 좀 구석자리고 그래서.”
“아니, 그럼 손님들은 어디다가 주차를 해?”
“대부분 시장에서 생선 팔고 채소 파는 언니들이라 여기까지 차를 끌고 오진 않죠.”
“아이고, 그런 여편네들이 내 말을 알아듣기나 하려나 모르겠네?”
애숙은 남자를 바라보며 까르르 웃었다.
‘웃기는 자식. 그런 여편네들이나 던져주는 돈으로 너나 나나 먹고사는 주제에.’
남자와 애숙은 문을 열고 건물 출입구 안으로 들어갔다. 문에 걸어놓은 ‘CLOSED’가 흔들리다말았다.
허브한증막 1층 카운터는 텅 비었다. 애숙은 야간 알바로 일하는 기미 낀 새댁을 자정 전에 일찍 돌려보낸 참이었다.
아무도 없는 카운터 뒤쪽에는 숨겨진 문간방이 하나 있었다. 카운터를 지키는 알바들과 이곳의 여주인인 애숙만이 아는 공간이었다. 따로 사는 집이 있었지만 애숙은 종종 그곳에서 틈나는 대로 눈을 붙일 때가 많았다. 30평짜리 아파트에서 홀로 잠들었다가 새벽녘에 악몽에서 깬 뒤 잠을 설치면 기분이 영 착잡해서였다.
“여성전용 한증막이면 남자들은 못 들어와?”
남자가 애숙의 뒤를 따라 폭이 좁은 계단을 오르다 말고 대뜸 물었다.

“당연하죠, 교수님.”
“그 안에서 여자들이 뭐해?”
“뭘 하긴요. 다 알면서 왜 그러세요. 홀딱 벗고 다들 한증막에서 땀 빼고 있지.”
벌거벗은 여자들이 그곳에서 땀만 빼는 건 아니었다. 땀과 함께 많은 이야기들을 흘려보내고 또 흘려보냈다. 신세 한탄과 돈 걱정과 남편에 대한 원망과 드라마 속 남자주인공에 대한 이야기가 세탁기 속 빨래처럼 빙빙 돌았다. 허브한증막 주인인 애숙은 그 안에서 슬그머니 끼어들어 함께 웃었다. 손님들은 실패한 쌍꺼풀 수술로 우스꽝스러운 눈매를 지닌 그녀를 편하게 생각했다.
사장과 손님 사이의 거리가 허물없이 맨살이 닿을 만치 가까워졌다 싶을 때쯤 애숙은 넌지시 새로운 투자처에 대한 미끼를 그녀들 앞에 내어놓았다.
“혹시 지금도 다들 그러고 있는 건가?”
뒤돌아보니 남자는 속은 다 발리고 검은 비늘만 덩그러니 남은 생선구이처럼 징그럽게 웃고 있었다.
“아까 문 닫아놓은 건 못 보셨나 봐요. 오늘은 좀 특별한 날이잖아요. 다들 교수님의 주옥 같은 말씀만 기다리고 있답니다. 제가 특별히 교수님께 연락드린 건 다 이유가 있어요. 워낙에 투자 사업에 대해 식견이 있으시잖아요.”
남자는 히죽 웃었다. 마냥 바보 같은 늙다리의 웃음은 아니었다. 누군가 터무니없이 불알을 긁어줄 때는 다 이유가 있다는 걸 아는 여우같은 늙다리의 웃음이었다.
애숙은 양말 신은 발로 계단을 올라갔다. 발바닥이 살짝 저릿한 기분에 애숙은 발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2층 넓은 마루에 놓인 접이식 의자에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 중에서 찜질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한증막 안에 들어선 것도 아닌데 어느새 애숙의 겨드랑이와 가슴골에 땀이 고였다. 한증막의 불을 반나절 정도 꺼놓았기에 실내는 서늘했다. 열기는 애숙의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훅 지펴지는 것이었다.
애숙은 긴긴 세월 다져진 친화력 있는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자, 새로운 시대 새로운 투자처인 비트코인에 대해 많은 분들이 다 들어보셨을 거예요. 21세기의 황금이고, 주식투자보다 더 간단한 사이버 투자처죠. 하지만 이미 비트코인은 가격이 많이 올랐잖아요. 그런데 차세대 투자상품으로 중국 정부에서 이번에 새로운 비트코인을 만들었어요.”
“이 여사님, 비트코인은 상품 이름이고 그걸 가상화폐라고 부른다니까.”
옆에 선 채로 서류가방를 뒤적대던 남자가 제법 큰 소리로 퉁을 주었다.
“아이고, 어쩜 좋아. 제가 비트코인, 비트코인이 자꾸 입에 붙어요. 옛날에 쓰던 세제 이름하고 비슷하고 그래서.”

애숙의 넉살에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까르르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 사이에 파르르 흔들리고 있는 종잇장 같은 긴장감을 애숙은 감지했다. 예전에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그때 털어먹은 돈이 얼마더라……
애숙은 강사를 소개하고서 곁눈질로 목례하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입꼬리를 자연스럽게 올리고 제법 믿음직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강연장 앞에서 살집 없는 이 남자는 쭉 뻗은 나무 같았다. 교주까지는 아니어도 교수 흉내까지는 제법 그럴싸했다. 아까 시장통 운운하며 짜증을 낼 때와는 영 딴판의 얼굴이었다. 애숙의 생각으로는 그래서 금박지였다. 쉽게 자기 얼굴을 들키니까.
그녀가 지방대학에 다닐 때 학교 앞에서 만난 그 아저씨도 이 남자와 비슷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고급 클래식 CD 전집세트를 파는 남자였다. 전집 이름은 The Great Golden Classical Music of the world였다. 단돈 30만원으로 바흐에서 시작해 3백년 넘는 서양 클래식의 역사를 단번에 훑을 수 있는 세트라고 했다. 아저씨는 넌지시 요즘 이름 있는 집에 시집가려면 서양 클래식에 대한 교양 정도는 필수라고 속삭였다.
교양, 교양은 언제나 이 사업의 대표적인 포장지 중 하나였다. 남자가 데려온 투자설명회 강사 또한 본격적인 설명 전에 자신이 얼마나 교양 있는 지식인인지 포장하느라 애를 썼다. 그녀가 듣도 보도 못한 미국과 영국의 대학 이름을 들먹이며 경영학 경제학 학위를 자랑했다. 남자는 그러고도 한참을 뜸을 들인 다음 주식회사 레드캐피탈의 주력상품에 대해 떠들어댔다.
“아직은 공식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이 가상화폐 레드코인은 두 달 후 중국에서 공식 런칭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이 딱 투자의 적기예요. 런칭하고 언론에 공식 보도가 나가면 그때는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구치기 시작할 겁니다.”
남자는 중국 국영은행 센트럴후이진은행을 들먹이며 은행 이름으로 시도하는 가상화폐는 처음이기 때문에 금방 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질 거라고도 했다.
“화교들이 벌써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습니다. 화교하고 유대인, 이 두 민족이 돈이라면 들개같이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족속들입니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여러분들은 한발 늦은 거죠. 다행히 한국에는 아직 공식적으로 레드코인에 대한 정보가 들어와 있지 않아요. 제가 외부이사로 참여하고 있는 주식회사 레드캐피탈을 통해서 우선 시험적으로 한국에 소개하는 중입니다.”
레드캐피탈은 중국에서 만든 레드코인을 한국에서 대량으로 거래하기 위해 설립된 자회사였다. 본점은 서울 테헤란로였다. 애숙도 레드코인에 투자하기 전에 그곳에서 투자설명회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남자는 곧이어 레드코인의 가치에 대해 힘을 주어 설명했다. 백 원할 때 구입하면, 한 달 후 천원으로 액면 분할하고, 시간이 지나면 만 원이 십만 원으로 늘어난다는 식이었다. 레드코인에 대 한 투자설명회가 끝나자 애숙은 미리 준비한 프린트물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프린트물에 는 레드코인에 대한 회사 측의 설명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후략)
*본 원고의 전문은 대산문화 <가을호>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