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푸른 하늘 아래

페르난두 페소아의 『리스본: 관광객이 꼭 봐야할 것들』

삶이란… “괜찮아요. 다 괜찮아”

어지러운 현실의 아득한 출구 글 문광훈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 ①세계의 작가들, 문학의 미래를 묻다 ②문학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펼치는 장 ③세계문학의 거장들, 한국문학과 만나다 ④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는 세계의 작가들

드라마 속 우리 고전 활용법

①구름처럼, 낙조처럼 ②내 기억 속의 유일한 할머니 ③떨리는 손으로 마지막까지 쓴 ‘통일’과 ‘민주화’ ④두 아버지가 남긴 비의(秘意)

전쟁터 죽음보다 두려운 녹슬어가는 삶 글

피폐했던 젊은 날 가슴으로 쓴 시

에릭 블레어의 고립 그리고 독선

선진문물의 수용 무대, 근대 박람회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를 넘어 마을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다들 웃고 있지만 울고 있다

‘시천’의 해오라기

통찰력에 바탕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글쓰기

①고비에 와서,별이 보인다 ②겨울의 말

①하미 연꽃 ②블라인드 케이브 카라신

피어나는 말

첫번째|정치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두번째|슬픔 세 번째|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네 번째|나무가 된 시인

그래서 어떻단 말인가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로 가는 길

영화와 소설, 서로 바꾸어 꿈꾸기

근대 비평사의 대가들을 한자리에

새싹들을 찬찬히 들여다봐야겠다

①진정성, 새로운 상상력 그리고 자신만의 언어 ②범죄소설 바깥을 쓰는 작가 ③이제 없는 당신들에게

새로운 균형의 방향에 대하여

‘시’와 ‘사랑’으로 하는 혁명을 번역하기

원작의 뉘앙스를 살리다

인간 모차르트와 음악가 모차르트의 인물화

대산창작기금,외국문학 번역지원,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제1강, 호사카 유지 교수의 ‘독도, 1500년의 역사’ 개최

대산초대석

삶이란… “괜찮아요. 다 괜찮아”

이상섭 ㅣ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1937년생
저서 『문학연구의 방법』 『문학의 이해』 『문학이론의 역사적 전개』 『말의 질서』
『문학비평용어사전』 『언어와 상상』 『「님의 침묵」의 어휘활용 구조』
『자세히 읽기로서의 비평』 『영미비평사 1,2,3』 『이상섭 안티에세이모음』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연구』 등, 역서 『셰익스피어전집』 등

삶이란…
“괜찮아요. 다 괜찮아”
- 순진과 경험”의 노래,이상섭 선생과의 대화

글 신경숙 ㅣ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부교수. 1960년생
이상섭 ㅣ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1937년생 저서 『문학연구의 방법』 『문학의 이해』 『문학이론의 역사적 전개』 『말의 질서』 『문학비평용어사전』 『언어와 상상』 『「님의 침묵」의 어휘활용 구조』 『자세히 읽기로서의 비평』 『영미비평사 1,2,3』 『이상섭 안티에세이모음』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연구』 등, 역서 『셰익스피어전집』 등

신경숙:
김정매:
양석원
김준환:


설 연휴에 내린 눈으로 미끄러운 길을 걸어올 이상섭 선생이 걱정되어 부인인 김정매 동국대학교 명예교 수와 동석하길 청했다. 때마침 출간된 이상섭 선생의 역서에 대한 인사도 드릴 겸, 내가 재직하고 있는 학 과의 김준환, 양석원 두 동료교수도 함께 했다.
이상섭 선생이 번역한 『셰익스피어 전집』(이상섭 역, 문학과지성사, 2016)의 출판 소식을 듣고 서점에 들 렀을 때, 정작 정해진 서가에서 책을 발견할 수 없었다. 한참 지나 직원이 갖고 온 책은 외관만으로도 온전 한 의미의 노작이었다. 지난 10여 년간 뵐 때마다 셰익스피어를 번역하시던 선생의 일상을 이 한 권의 책으 로 짐작할 수 있었다. 남양주 축령산 아래 30여 년 전 마련한 작은 집에서 농사를 짓고 번역을 하며 단조 로우나 바쁜 일상을 보냈으리라. 읽고 쓰고 또 읽고 쓰고, 소리 내어 가락을 가늠해보았으리라. “존재냐 비 존재냐……”

구정 연휴 다음 날 선생과의 대담은 마침 대학입시가 거의 끝난 터라, 관련된 주변소식, 예컨대 클 라리넷을 불다가 시스템생물학을 전공으로 택한 선생의 맏손자 이야기며, 의사가 되어 호강(?)하기 를 바란 세속적인 엄마의 권유에도 아랑곳없이 물리학을 택한 나의 딸아이 이야기 등, 소소한 일상 의 안부를 나눈 후, 가장 따끈따끈한 셰익스피어 완역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선생님, 정말 겉모양만으로도 위엄이 있는 책입니다. 크기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이 책을 맡아 출판하신 문학과지성사의 윤병무 주간께서 지난여름 그 무더위에 저희 집을 여러 차례 방문하셔서 책의 최종 단계를 함께 의논하시곤 했습니다. 교정만 거의 3년여 걸린 책이지요. 책 옆면에 황금 색으로 저렇게 제목을 표기하는 경우가 국내에는 거의 없다고 하시더군요.

동석한 김정매 동국대학교 명예교수의 말이다. 책의 앞배, 그리고 위아래 부분에는 전작의 제목이 하나하나 인쇄되어 있었다. 책을 출판하는 일조차도 ‘적시에 빨리’라는 경쟁에서 자유롭지 않은 이 시대에, 큰 정성 속에서 태어난 책인 것이 틀림없다.


전작을 번역하시는 데 얼마나 시간을 들이셨는지요?

미련한 질문이었다. 선생은 오래 걸렸다는 말만 반복한다.


셰익스피어를 총 몇 번이나 읽으신 건가요?


이상섭
기억도 나지 않아.

나 같으면 꼬박 몇 년, 몇 번을 읽었으며, 그 번역을 위해 무엇을 했 고 어딜 방문했다는 생색을

낼 것 같은데, 많은 것을 이룬 원로 학자 는 십여 년 공들인 시간을 그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랑하는 대 상을 위해 애정을 쏟는 시간이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기 때문일까?


계획을 세워, 매일 정해진 분량을 번역하셨는지요?


이상섭
아니, 매일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했어요. 어떤 날은 할 수 있는 데까지 많이 하고, 어떤 날은 하고 싶은 만큼 하고 쉬고.

오른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상섭 선생, 김정매 여사, 양석원·신경숙·김준환 교수

정말 좋아서 한 거였다. 외국문학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 영국 르네상스시대를 전공한 학자의 사 명, 이런 것들에서 진정 자유롭게 작품을 읽고 우리말로 옮기는 그 일 자체가 좋았던 거였다. 「햄릿」처럼 잘 알려진 극을 포함한 서른여덟 편의 연극작품은 물론이고, 소네트(이탈리아가 기원 인 14행의 정형시, 주로 사랑을 노래한 시가 많다) 154편과 그 외, 장시까지 모두 번역을 하셨으니 셰 익스피어의 이런 면 저런 면을 다 섭렵하였을 게다. 비극 주인공의 비통한 각성이 담긴 대사, 왕의 현 명한 결기나 정치적 지략의 언어, 광대의 날카로운 익살, 사랑에 빠진 처녀 총각들의 황당한 꿈과 소 동의 언어, 심지어는 소네트라는 시 형식 속에서 다양한 궁리를 해봤을 시인 셰익스피어의 어휘들을 구석구석에서 다 마주하였고, 그 때마다 시인의 입장이 되어 언어를 구하고 택하였을 것이다.


이상섭
다만, 가능하면 주석을 적게 붙이려고 노력 했어요.


버나드 쇼는 산문으로 썼으므로 극작가이지만 셰익스피어는 운문으로 썼기 때문에 시인이라는 말씀 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셰익스피어 극의 사상이나 정치성은 많이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의 언어가 갖는 리듬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민한 학문적인 예는 드물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연극의 대사가 원래 가락을 갖고 있 는 것일까요?


이상섭
셰익스피어의 극은 대부분 운문으로 쓰여 있어요. 운문은 운율이 있는 문장이지. 시는 운율, 리 듬이 아주 중요해요.


고등학교때, 자유시에는 내재율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자유시가 대세인 시대 독자들은 시의 가락에 덜 친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번역에서 내재율도 염두에 두셨는지요?


이상섭
아니, 적극적인 운율과 리듬을 찾았어요. 나는 적극적인 운율을 좋아해요. 셰익스피어 인물들의 대사도 적극적인 운율을 타고 있어요.


이번에 번역하시면서 다시 보신 셰익스피어는 어떤 작가였는지요?

1964년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전 이미 셰익스피어 작품을 원문으로 다 읽은 이력을 가진 선생에 게, 번역을 통해 다시 만난 셰익스피어에 대한 평가를 청했다.


이상섭
아주 두루뭉수리한 사람이에요.

서거 400주년 기념행사가 전 세계적으로 벌어진 작가를 평가하는 가장 간결한 답이었다. ‘대문호’ 나, ‘위대한 시인(a great bard)’같은 상투적인 호칭도 없다. 역사적인 안목과 정치적 식견이 정교했다 든지, 인간 삶에 대한 탁월한 이해가 있는 작가라든지, 은근히 그런 답을 기대한 내게, 선생은 “아주 두루뭉수리한 사람”이라고 요약해주셨다. 존 키츠(John Keats)가 훌륭한 시인은 카멜레온 같은 시 인이라고 한 말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이번에 번역하시면서 어떤 작품이 제일 좋으셨어요?


이상섭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

순간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좋을 대로 생각하라”는 말의 다른 표현인가? 선생의 말을 일종의 pun(중의적 말장난)으로 해석해야 하나, 아니면 「좋으실 대로(As You Like It)」를 일컬으신 건가 어리 둥절하던 참에, 동석한 양석원 교수가 날카로운 질문을 너무나 온화하게 던진다.


선생님, 「좋으실 대로」가 희극이어서 제일 좋으신 거지요?

만면에 웃음을 띤 선생의 답이 돌아왔다.


이상섭
그래요. 희극이 비극보다 좋아요. 삶이란, 괜찮은 거예요. 다 괜찮아.

양 교수가 말을 잇는다. 학생시절 선생의 셰익스피어 강의에서 「좋으실 대로」가 무척 재미있었다고. 함께 한 부인의 말에 따르면, 작년은 두 분의 금혼식이 있던 해였다. 김정매 선생이 보아 온 이상섭 선생의 삶은 긍정과 낙관의 삶이었다. 일찍 기상하여 힘찬 노래로 아침을 맞고, 잠들기 전에는 하루 의 기록을 짤막한 일기로 남기는 일을 지금도 매일 하고 있다는 선생은 마음에 숨겨진 회한 같은 게 전혀 없는 것 같았다. 학자들이 갖고 있을 법한 유별난 기호나, 까칠한 습벽 같은 것 없이, 하다못해 식성까지 무난해서 어딜 가든지 아무거나 잘 먹고 넓게 수용하는 것이다.


영문학을 어떻게 전공하시게 되었는지요?

1956년, 한국전쟁 후 모든 것이 부족하고 척박하던 땅에서 돈벌이도 안 되는 영문학을 공부한 이 유가 늘 궁금했다.


이상섭
집에 영어책이 많았어요. 그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어요. 재미있더라구. 재미나서 계속 읽었지 요. 단어 하나하나 사전 찾아가며 읽은 게 아니야. 어려운 것도 읽다 보면 이해하게 돼요. 우리 형님(작고한 이 근섭 선생은 이화여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정년퇴임하셨다)도 영문학을 전공하셨어.

선생의 공부 방식은 어쩌면 동양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옛날 선비들은 어려서부터 사서오경을 읽었 다. 쉬운 글을 읽다가 성인이 되어 비로소 『사서』를 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대 학시절, 선생이 강의시간에 한 이야기가 있다. 배움에 체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요지의 말이 었다. 역설 같지만 단순한 걸 이해하기 위해 어려운 것을 알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어려운 것 을 알려면 쉬운 것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선생은 이를 넓은 의미의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 circle)에 비유한 적이 있다. 1992년 미국영문학과총회 학술지인 《ADE Bulletin 》의 기사를 선생이 인용한 글이 생각났다. 미국 영문과 교수들의 90퍼센트 정도는 문학 교육의 목적을 묻는 조사에서 주어진 시대의 지성적·역사적 배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 문학을 가르친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들은 주어진 문학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적·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믿음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으니, 이런 순환논리를 어떻게 설명할까. 선생은 이를 해석학적 순환의 한 양상으로 풀이 한 적이 있다(『역사에 대한 불만과 문학』, 문학동네, 2002).

『말의 질서』(문학과지성사, 1976) 같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선생의 학문 이력은 말에서 시 작하여 말로 진행되어 왔다고 해도 좋겠다. 중학생 때부터 말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왜?”라는 질 문에 선생의 답은 한결같다. “그저 좋았어요. 재미났지.” 그 재미를 찾는 일이 사전 편찬이라는, 한국 에서는 선구적인 대작업으로 이어졌다. 용례를 역사적으로 알려주는 『옥스포드영어사전』 같은 사전 을 만들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하곤 했다. 선생의 말이다.


이상섭
우리 사전이란 게 예전에는 일본어나 외국어로 된 사전을 베낀 경우가 많았어요. A라는 낱말을 찾으면 B라는 낱말로 풀이하고, 그래서 B라는 낱말 풀이를 찾아 가면 A로 풀어놓는 식이지. 무슨 사전이 그래?

선생의 사전 편찬작업은 1986년 시작되었다. ‘연세대학교 한국어사전편찬실’(현 언어정보연구원)을 만들었다. 대학에 이런 기관을 만든 것은 국내에서는 연세대학교가 처음이었을 것 같다. 또, ‘말뭉치’ 란 말을 만들고 전파했다. 요즘은 사람들이 코퍼스언어학이란 말도 사용한다. 말뭉치란 말이 처음에 는 생소했다. 선생에게 그 뜻을 다시 정확히 알려주십사고 청했다.


이상섭
말 그대로, 말뭉치예요. 말의 덩어리지.

동석한 김준환 교수가 1930년대 김기림이 ‘말뭉치’란 낱말을 처음 썼다고 말한다.


이상섭
그래요?

모더니스트 시인 김기림과 사전 편찬자 이상섭 선생의 생각이 반세기를 사이에 두고 이렇게 일치 했나보다. 낱말 하나로 뜻이 완결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도, 우리의 언어공부는 늘 독립된 낱말의 뜻을 익히고 외우는 일로 시작한다. 가령, “물을 마시다,” “물을 건너다,” “물이 오르다”란 문장에서 모두 동일하게 “물”이란 낱말이 쓰이지만, 그 뜻과 쓰임새는 각각 다르다. 말뭉치 연구란 낱말을 그것 이 사용되는 문구와 문장을 통째로 수집하여 축적한 데이터 안에서 연구하는 일인가 보다. 이상섭 선생이 세워 운영했던 ‘연세대학교 한국어사전편찬실’에서 나온 『연세초등국어사전』은 스테 디셀러고, 『연세한국어사전』도 완성되었다. 말뭉치 연구를 위해 선생과 사전편찬실의 동료들은 많은 문헌들을 샅샅이 읽었을 것이고, 후학들과 함께 선생이 직접 용례를 만드신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상섭 선생은 한글유공자로 2010년 보관문화훈장을 수상하였다. 이를 기 억한 양석원 교수가 질문했다.


선생님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전편찬학이란 분야를 개척하셨을 뿐 아니라, 용례가 제시된 우리 말 사전 편찬에 오랜 시간을 바치셨습니다. 우리 말 연구와 사전 편찬의 경험이 셰익스피어 번역과 무관하지 않 으리라 생각이 되는데요?


이상섭
잘 모르겠지만 그렇겠지.


그 당시 함께 하신 분들이 계셨지요?


이상섭
남기심 선생이 아주 든든한 동반자였어요.

남기심, 이상섭 두 분은 서울고등학교 선후배 간이고, 연세대학교 문과대학에서 동고동락하신 사 이다. 작가는 뭐니 뭐니 해도 언어의 예술가다(물론 내 생각이지만). 작가의 언어를 옮기는 번역가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선생에게 좋은 번역가의 자질을 질문했다.


이상섭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해요. 넓은 마음으로 번역하는 것이 중요해.


넓은 마음이란 어떤 마음일까요? 두 문화를 모두 잘 이해하는 걸까요?

선생의 답은 의외였다.


이상섭
넓은 마음이란 모든 것을 두루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에요. 각 작가와 작품의 미덕, 그 고 유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살릴 수 있는 마음을 말해요.

어느 에세이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것 같다. 좋은 비평가란 어떤 작품이든지 그 작품의 미덕 을 가려내고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는 비평가라고. 그러고 보면 좋은 번역가는 먼저 좋은 비평가의 덕 목을 가진 사람이어야 할 것 같았다. 김준환 교수가 질문했다.


어떻게 하면 문학을 제대로 즐기고 공부할 수 있을까요?


이상섭
많이 읽어요. 자꾸 읽으면 길이 생기는 거지.


가르치기 위해서는 좋은 작품을 골라야 하는데, 선생님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습니까?

선생의 답은 맑고 명료했다.


이상섭
나는 선택하는 게 없었어. 다 괜찮아요. 다 재미있고 근사해. 그런 재미를 찾으면서 얼마든지 읽 을 수 있어요.

오늘의 모임에서 선생의 삶과 학문을 관통하는 핵심어를 찾은 것 같았다. “좋다, 재미있다”가 그것 이었다. 독서도, 비평도, 연구도, 사전 편찬도, 번역도 모두 선생에게는 즐거운 작업이었다. 1962년 교수로 임용되어 2002년 연세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할 때까지 40년 간의 강의와 연구, 선생이 손수 해 온 요리와 목공, 아버지와 두 아들의 머리를 직접 깎았던 일과 매한가지로 선생이 기쁘게 해 온 일, 선생의 삶 전체를 온전히 지켜 온 재미난 일이었던 것이다. “우리 며느리 둘은 결혼해서 시아버지께 요리를 배웠어요.” 김정매 선생의 말이다. “집안의 벽과 마루, 정원, 모두 선생님께서 손수 하신 작업” 이라는 것이다.


제자일동
다음에 하실 작업을 여쭤봐도 될는지요?

제자들의 질문에 선생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이상섭
요즘은 『서전』(서경)을 읽어요.


예전에 어느 책에서 선생님께서 『맹자』를 좋아하신다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상섭
『맹자』, 참 좋지……

마치 애틋한 과거를 회상하신 듯, 선생의 감탄사는 무척이나 다정했다. 한문을 따로 배운 적이 없 으나 요즘은 이런 책들을 읽으면서 소일한단다. 1937년생이신데도 선생은 일본어를 전혀 모른다. 학 교에 들어가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작고하신 이환신 목사, 연희대학교 사회학과 교수(1945~48년 재임), 기독교대한감리회 감독을 지냈다)가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단다.


이상섭
공부 안 하고, 학교 안 가니 너무 좋았어요. 뒷산으로, 개울로 다니며 개구리 잡아먹고 그랬지. 해방되고 선생은 서울 창천동으로 이사왔다. 창천(현재 연세대 백양로 자리를 지나며 흐르던 개 울, 창천동이라는 이름이 이 개울에서 유래했다)에서 가재를 잡으며 놀 때, 아이들 사이에서 선생은 ‘떼부’(뚱보라는 의미의 일본어)로 불렸단다. 학교 공부 대신 산골에서 개구리나 가재를 잡아먹으며 놀던 선생이 당시 서울 애들보다 훨씬 튼실했던 모양이다.


이상섭
다 지나간 옛날 얘기지.

밖은 세계를 진동시킨 전쟁의 나날이었을 텐데, 이유도 없이 전쟁의 일부가 되었던 변방 나라의 산 천 구석구석에는 이처럼 때 묻지 않은 순진한 세상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 삶의 하찮은 일상 도 역사의 격랑에 흔들리는 것이 진리인 줄 알았는데, 바로 그 역사의 격랑 틈에도 작은 물결들이 평 화롭게 흐르고 있는 것인가. 일제 이야기가 나오니 선생이 자세히 읽으신 윤동주 시인을 빼놓을 수 가 없다.


선생님께서 한용운 시집의 용례색인을 쓰셨습니다. 그런데 윤동주 시인은 용례분석뿐 아니라 자세히 읽기를 시도하셨어요. 그가 기독교인인 것이 관련이 있는지요?


이상섭
그건 여러분들의 판단에 맡깁니다(웃음).

스스로를 크리스천 휴머니스트라고 칭하신 선생은 기독교인이라는 친연성 때문에 윤동주에 관심 이 더 있었을 법 하다. 그러나 또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윤동주 자세히 읽기』(한국문화사, 2007. 이하, 『윤동주』로 약함)의 말미에서 선생은 요절한 시인들에 관해 잠깐 언급하신다. 영국의 토 마스 채터튼(1752-1770), 존 키츠(1795-1821), 퍼시 셸리(1792-1822), 윌프레드 오웬(1893-1918), 그 리고 한국의 윤동주(1917-1945)가 그들이다. 이들의 특징을 순진성으로 요약하셨다. “젊어서 죽은 시인의 순진을 우리는 귀하게 여긴다”(『윤동주』).” 윤동주는 동시도 썼다. “나는 박목월이나 김요섭이 나 영국의 블레익처럼 동시를 남긴 시인을 특별히 사랑한다…… 동시는 시인이 어린 시절부터 시를 지었다는 증거이며 나이가 들어서도 어린 시절의 순진성을 얼마쯤 간직하고 그것을 귀중하게 여긴다 는 뜻이다” (『윤동주』). 깊은 고뇌와 절망이 담긴 「십자가」 같은 시와 동시의 시심을 다 보여준 윤동주 의 시세계를 선생은 “순진과 아울러 경험의 시의 절정”을 보여주는 세계로 읽었다.


제자일동
선생님을 일컫는 호칭이 많이 있습니다. 평론가, 영문학자, 사전 편찬자 등등…… 선생님은 어떤 호칭으로 기억되고 싶으세요?

선생은 테이블 쪽을 가리키며 서슴없이 답했다.


이상섭
나는 이것을 번역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이거 굉장한 작품들인데 내가 그걸 번역한 거야.

선생 앞엔 표지에 W. S.라는 머리글자가 새겨진 커다란 『셰익스피어 전집』이 놓여 있었다. 작품제 목을 세세히 살펴보며 동료들이 말한다.


제자일동
보통 「헛소동」으로 번역되는 「Much Ado About Nothing 」을 선생님은 「괜히 소란 떨었네」로 번 역하셨군요. 영어와 우리 말에 대한 완전한 이해, 그리고 작품을 꿰뚫는 지식이 있어야 나올 수 있는 번역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동의했다. 선생의 모든 것이 그 거대한 책의 낱장마다 녹아들어가 있다는 것에. “두루 뭉수리”한 작가의 전작을 치우침 없이, ‘학자’들의 특기인 ‘평가하기’도 없이 즐겼다. “다 좋아요, 다 재 미있어요”로 표현되는 넓은 마음으로 기쁘게 작품을 한 줄 한 줄 옮기신 지난 십여 년은, 선생의 관심 과 공부를 셰익스피어라는 작가를 베틀로 삼아 다시 직조해낸 그런 시간인 듯했다. 어쩌면 선생은, 배 우고 익히는 것이 새록새록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느끼고 연륜 깊은 학자의 진지함으로 풀어낸 것 아닐까. 선생의 역작이야 말로 “순진과 경험”의 절정을 보여주는 듯 했다.


올해엔 무얼 심을 계획이셔요?


이상섭
배추, 무, 상추, 녹두, 강냉이, 뭐 그런 것들이지.

봄이 오려면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식탁에 오르는 잘 익은 김치를 보며 김장배추 농사가 단 연 으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계절의 절정이 이제 막 지나가고 있었다. 창밖으로 장독이 옹기종기 보이는 연세대학교 알렌관 202호 안 원탁에 앉으신 선생의 모습은 20 여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날 우리 셋 모두 선생의 노작에 압도되어 제대로 축 하 인사를 드리지 못했다. 셰익스피어가 우리 말 가락을 타고 읽히며 인용될 수 있도록 완역한 선생 의 기나긴 노고, 그리고 그 결실에 한 마음으로 축하한다. 덧붙여,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양 해해주신 대산문화재단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