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두 페소아의 『리스본: 관광객이 꼭 봐야할 것들』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 ①세계의 작가들, 문학의 미래를 묻다 ②문학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펼치는 장 ③세계문학의 거장들, 한국문학과 만나다 ④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는 세계의 작가들
①구름처럼, 낙조처럼 ②내 기억 속의 유일한 할머니 ③떨리는 손으로 마지막까지 쓴 ‘통일’과 ‘민주화’ ④두 아버지가 남긴 비의(秘意)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를 넘어 마을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첫번째｜정치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두번째｜슬픔 세 번째｜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네 번째｜나무가 된 시인
①진정성, 새로운 상상력 그리고 자신만의 언어 ②범죄소설 바깥을 쓰는 작가 ③이제 없는 당신들에게
피폐했던 젊은 날 가슴으로 쓴 시
글 박시교 ㅣ 시인. 1947년생
시집 『겨울강』 『가슴으로 오는 새벽』 『독작(獨酌)』 『아나키스트에게』 『13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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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폐했던 젊은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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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이던 1960년대 후반 나는 고향 경북 봉화군 봉성면 원둔리 산촌의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 몇 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여 양쪽 다리를 열세 번에 걸쳐서 수술을 받아야만 했고, 퇴원 후에도 한동 안 목발을 짚어야 했으므로 그 회복기를 고향에서 보 내던 때였다.반세기에 가까운 47년 전 1970년 전후의 등단 시기를 떠올리며 마치 무슨 병처럼 가슴이 저려오는 것은 왜일까. 신체적인 장애와 어려운 환경 등으로 해서 가장 피폐했던 그 몇 년의 이십대 초반 시 쓰는 일이 생의 전부였던 그 시간이, 내게는 바로 소금꽃 같은 짜고 부신 생의 한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당시 신체적인 장애로 해서 산간벽지인 고향에서 내 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농 사를 도울 수 있는 형편도 아니어서 그야말로 무위도 식하는 나날이었는데, 때 맞춰 마을에 재건중학교가 설립되면서 교사를 맡게 되었다.
그러니까 박정희 군사정권 때 일어났던 새마을운동 의 일환으로 당시 진학을 못한 어려운 집안의 청소년 들에게 중학 과정을 가르치자는 취지로 큰 마을 단위 로 야간 중학교가 세워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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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나 자신도 그들 청소년들과 다르지 않은 형편이었다. 한 두 개 신문도 하루나 이틀이 지난 구문을 통해 바깥소식을 겨우 접하게 되 고, 책 구입 등도 쉽지가 않은 형편이었다. 그런 가운데 1969년 말 무렵 내 딴에는 결심을 하고 신춘문예 응모 준비에 힘을 쏟기로 했다. 그 동안의 습 작 가운데서 첨삭을 하고 새로 몇 편을 쓰기도 해서 시와 시조 각각 대여섯 편씩을 묶었다. 이때 시조는 거의 모두가 처음 쓴 작품이었다. 그때까지만 해 도 주로 시만 썼지 시조는 불과 한두 편 정도로 율격에 맞춰 흉내를 내는 정 도였다.
그래서 시는 중앙의 모 신문에 시조는 대구의 매일신문에 응모하였는데, 연말에 큰 기대를 않았던 매일신문에서 전보가 날아왔다. 시조 「온돌방」이 당선되었으니 급히 당선소감과 사진을 우송하라는 내용이었다. 전화도 없던 산간벽지이다 보니 당시로서는 가장 빠른 전달수단이 전보였던 것이다.
새해 벽두에 내 작품이 실린 신문을 펼쳤을 때 덜 마른 신문지 잉크 냄새 와 함께 가슴을 스치던 전율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젊음의 재질이 돋보였 다’는 심사평도 스물두 살 당시의 내게는 피를 끓게 하는 힘이 되었다.
머언 먼 선사(先史)의 땅 질 고운 항아린가
할아버지 엄한 육성 시렁 위에 얹혀 살고
풍속은 알맞게 데워 아랫목에 누워라
밀폐와 집념 속을 기거하는 가난이여
잔잔한 주름마다 원죄(原罪)는 강이 되고
대대로 생명의 근원 굵은 올을 매누나
슬픈 역정(歷程) 인종하며 안으로만 피운 지혜
성문(城門) 밖 돌바람에 몸 사려 고통 함을
지각(知覺)은 불을 더 밝혀 가슴 앓는 한(限)의 방
아껴 누릴 유산인가 지친 육신 쉬는 자리
절약의 문틈마다 가득한 햇살이여
오늘은 밀알 더 익는 따사로운 이 은총
역서(歷書)여, 한 평 지도는 아늑한 꿈의 노을
때 절은 벽지 속을 옛날은 살아오고
피와 피 곤욕 이기고 안식(安息)하는 주소여
- 「온돌방」 전문
시 부문보다 작품에 자신이 없어 기대하지 않았던 시조가 정작 당선이 되자 기쁨 못지않게 당혹스러웠던 것도 당시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얼떨결에 등단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것에 안주할 수가 없었다.
그 당시는 문학전문지의 추천을 받는 또 다른 등단 과정이 있었다. 내친김에 그 제도를 거치기로
하여 신춘당선 그해 1970년 5월 《현대시학》에 「노모상(老母像)」으로 초회 추천을 받았다. 추천은 3회 완료제였는데, 신춘문예 당선을 1회로 간주해 주어서 그해 10월 「접목(接木)」이 다시 추천됨으로써 완료하게 되었다.
어느 먼 이승 길을 밟아가는 아픈 소리
젖줄대어 맞부비면 열려오는 파란 남천(南天)
내요 네 아스라이 잊고 더욱 벅찬 이 생성(生成)
혈맥을 찔러보라 송송송 뽑는 선혈(鮮血)
아픔을 서로 나눠 한 하늘 간직하고
정교(情交)는 일곱색 무지개 고운 꿈을 엮는가
알맞춤 내린 금비 온몸으로 달게 받아
진초록 손들마다 은총으로 담는 햇빛
바람도 소슬한 바람 불어와서 쌓인다
마른 우레 기침 소리 귀 밖으로 넘겨듣고
작은 영지(領地) 외로 지켜 탑으로만 섰는 자세
섞은 피 하나로 붉어 빗질하는 생명이여
따라서 1970년 신춘 당선과 같은 해 10월이 정확한 등단 연월이다. 그런데 그 이듬해 여름 통일원 에서 광복절 기념행사로 문예작품 현상공모를 하였다. 시 부문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인정을 받고 싶다는 미련을 떨치지 못했는데 바로 그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으로 가는 길」이란 제목에 무려 80여행, 내 시작(詩作) 태도로는 상당히 호흡이 긴 작품이었는 데 마치 직전 신춘문예 낙선의 고배를 보상이라도 하듯이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동안 묶 어낸 어느 시집에도 수록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등단 이후로 자유시는 거 의 쓰지 않아서 시조집에다 생뚱맞게 끼워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굳이 데뷔작을 가려야 한다면 신춘문예 당선작 「온돌방」을 들 수밖에 없는데, 정작 문단 약력을 쓸 때는 《현대시학》 추천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제까지 등단과 작품을 서로 다르게 쓰고 있었던 셈이다.
반세기에 가까운 47년 전 1970년 전후의 등단 시기를 떠올리며 마치 무슨 병처럼 가슴이 저려오 는 것은 왜일까. 신체적인 장애와 어려운 환경 등으로 해서 가장 피폐했던 그 몇 년의 이십대 초반 시 쓰는 일이 생의 전부였던 그 시간이, 내게는 바로 소금꽃 같은 짜고 부신 생의 한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읽어보면 율격과 시어(詩語) 선택 등에 지나칠 정도로 집중하여 시적 성과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 감이 없지가 않지만, 그러나 습작기나 다름없는 젊은 날의 열정을 담아내고자 한 내 초기의 민 낯임에 틀림이 없다.
하여 그때를 그립다는 말로 적당히 수식해서는 안 된다. 내 안 깊은 곳에 한 컷 흑백사진으로 담 아두고 아주 가끔씩 들춰보면서 오늘을 살아가는 힘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