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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발표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7.12.14|조회 : 8337


2017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발표
• 시 부문
「극지의 밤」 외 4편_서가진(서재진) / 명지대 문예창작 3년
• 소설 부문
「윈드밀」_박서영 / 원광대 문예창작 3년
• 희곡 부문
「속죄양, 유다」_최현비 / 한예종 극작 2년
• 평론 부문
「경희 그리고 김지영」_이소윤 / 고려대 철학 4년
• 동화 부문
「오, 로라」 외 1편_전여울 / 광주대 문예창작 4년
심사평
• 시 부문
‘새로운 익숙함’과 ‘오래된 낯섦’ 사이에서
세 명의 심사위원은 1천2백여 편의 응모작을 나누어 읽고 그 중 8명이 쓴 40편의 작품을 본심 대상으로 추천하였다. 추천된 작품을 돌려 읽으며 본심 논의에 들어갔다. 한 편 한 편 작품을 되짚으며 상대적으로 단점이 많은 응모자를 배제하는 것으로 최종 논의 대상을 결정하기로 하였다. 그 결과 본심 대상작은 「회복」과 「반지하 해수욕장」, 「토성의 고리」 그리고 「극지의 밤」을 각각 첫 작품으로 보낸 4명의 20편으로 압축되었다.
「회복」 외 4편은 삶의 명제로부터 도출된 순간들을 감각적인 차원으로 무리 없이 바꿔놓으면서도 시가 끝난 곳에서 다시 삶을 돌아보게 하는 드문 재능을 선보였다. 세계를 오래 응시하면서 문득 그 응시를 멈춘 순간에 세계로부터 도래하는 부드럽고 여린 분말처럼 편안한 어법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시들 간 낙차가 있고 단편적이며 따라서 언어가 가진 용적이 넓지 않은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반지하 해수욕장」 외 4편은 수준 높은 언어 세공과 만만찮은 사유가 만난 사례였다. 언어에 충만한 시적 순간들이 삶을 장악하고 조종하고 변형시킨다. 이렇게 시적 순간을 하나의 세계로 바꿔놓을 때, 현실의 기미들은 그 언표들 위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짐으로써 일종의 ‘분위기’로 탈바꿈된다. 문제는 그 ‘분위기’가 언어와 현실을 충분히 녹여내지 못했을 때 어떤 ‘필연성’을 잃고 만다는 데 있다.
 
마지막까지 고심했던 것은 「토성의 고리」 외 4편과 「극지의 밤」 외 4편이었다. 「토성의 고리」 외 4편은 언어와 인식이 유려하게 통합된 상태에서 모르는 새 바짓단에 얹어온 풀씨처럼 도처에 감각적인 질문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극지의 밤」 외 4편은 손쉽게 선택된 듯한 문장을 구사하지만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인 채로 세상과 마주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전자가 관계의 폭력과 난감, 거기서 오는 고통을 환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언어 감각이 오히려 삶과 세계를 불투명하게 가리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면, 후자는 그 언어가 오래고 거친 반면 자신의 세계를 모종의 서사에 실어 보편의 차원까지 밀어붙이려는 가상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듯했다.
심사자들은 이들 시편의 장단점으로 보아 누가 당선되어도 무방하다는 데 동의하고 최종 결정을 위해 긴 시간 논의하였다.
시가 감각의 풍경을 그리는 장르라고 할 때에도 경험이 언어의 질감 속에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감각의 현장이 ‘몸’이며, ‘몸’의 감각은 외부와의 마찰과 충격, 교환의 과정으로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는 언어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진실의 영역이기도 해서 단순히 ‘잘 쓴다’는 말만으로 평가를 완료할 수 없는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삶’이니 ‘감동’이니 ‘충격’이니 ‘새로움’이니 하는 요소를 아무리 대입해도 설명되지 않은 ‘무언가’ 말이다. 어쩌면 시는 그 ‘무언가’를 영원한 미지로 밀어내며 남기는 질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시가 아무리 뛰어난 표현과 인식을 드러내더라도 뜨겁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지 못한다면 그 시가 던진 질문은 곧 식어버리고 말 것이다.
여러 차례 결정을 미루고 뒤집은 끝에, 현재 우리 시가 언어의 매끄러운 표면에 대한 선호를 비교적 높은 수준에서 체화한 만큼, 그에 대한 반성이 새로운 세대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심사에 반영하기로 하였다.
「토성의 고리」 외 4편은 최근 젊은 시들이 보여준 감각적 어법을 많은 부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 도전성이 옅게 느껴지는 반면, 「극지의 밤」 외 4편은 비록 추상의 영역이라고 할지라도 세계와 대면하기를 포기하지 않기에 역설적으로 낯설고 도전적이라 할 만한 여지가 있었다. 더불어 전자의 경우 그 재능이 특정한 미학을 장려하는 매체에 의해 머잖아 수렴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으며, 적어도 ‘대학문학상’에서만큼은 기술과 기교보다 시와 세계에 대한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후자의 시가 기억되기를 바란다는 의견도 있었다. 후자를 당선자로 정하며 모두 기뻤다. 자신의 방법을 세태의 환대와 바꾸지 말았으면 좋겠다.
김이듬 신용목 안현미
• 소설 부문
제16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에는 총 329편의 단편소설이 응모되었다. 이 뜨거운 열기는 거의 관습적이 되어버린 문학의 위기에 대한 청년들의 반기 같아 반가웠다. 물론 중요한 건, 청년세대든 기성세대든 쓸 수밖에 없다는 공동의 마음일 것이다. 어쩌다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응모작을 검토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지만, 쓰는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에 응모작 한 편 한 편을 허투루 읽을 수 없었다. 본심에서는 예심에서 선정된 9편의 작품을 다루었는데, 두 시간에 걸쳐 밀도 높은 논의를 이어간 끝에 제16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 당선작은 「윈드밀」로 의견이 모아졌다.
 
심사위원들은 올해 응모작의 경향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것에 생각을 같이 했는데, 그 중 하나는 현실과 유리된 기발한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불안정한 청년의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의아한 건, 지난 몇 년 간 기성작가뿐 아니라 대부분의 신인 응모작에서 발견된 시대 반영적인 작품이 이번 심사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 시대를 관통한 여러 비극과 정치적인 반동이 소재로 소비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십대 초반의 대학생들이라면 소위 세월호 세대일 것이고 특히나 2017년은 촛불집회의 결실로 새 정권이 들어선 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쉬운 부분이다.
본심에서는 「이상식욕」과 「잠잠한 소란」, 그리고 「윈드밀」이 주로 논의되었다.
「이상식욕」은 일단 서사를 끝까지 밀고 가는 힘 있는 문체에 신뢰가 갔다. 이번 심사대상 작품 중에서 가장 기본기가 탄탄한 작품을 고르라면 분명 「이상식욕」일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갖고 있는 모범성은 아쉽게도 미래의 대한 낙관적인 전망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이 응모자가 앞으로 쓰게 될 소설에 지지보다는 우려가 앞섰다는 의미이다. 치매 아버지에게 비정상적인 재료로 음식을 요리해주는 설정이랄지 식욕과 살부의식이 은유적으로 결합된 결말은 그로테스크하고 자극적인 면이 있는데, 이러한 설정으로 연이어지는 작품들이 어떤 세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열심히 고친 흔적이 역력하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였지만 끝까지 지지하지 못한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주인공의 성장담인 「잠잠한 소란」은 서정적인 문장과 애틋한 시선에 호감이 갔다. 특수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별명을 붙여주는 장면과 점점 고요해지는 세계를 묘사하는 문장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무엇보다 어디에 있든 ‘특수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들 이야기는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을 건드렸는데, 세계와 분리된 채 특수학교를 다니고 그 특수학교를 졸업한 뒤엔 작업장으로 그대로 공간을 옮겨 다시 그들끼리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는 설정이 공감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공간을 옮겨도 고립될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의 이야기가 공동체 의식이랄지 세계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너’를 향한 ‘나’의 욕망과 체념으로 끝났다는 점은 아쉬웠다. 물론 개인으로 수렴되는 고민도 소중하고 충분히 문학적이다. 문제는 응모자가 어떤 특별한 개연성 없이 아이돌 가수인 ‘너’를 서사 안으로 끌어왔다는 인상을 주었다는 점이다. 또한 ‘나’가 열망하고 구체화하는 그 아이돌의 이미지 역시 우리가 쉽게 공유하는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점 역시 아쉬움으로 남았다.
당선작이 된 「윈드밀」은 푸드트럭을 모는 주인공과 그 주인공에 얹혀사는 힙합댄서 혼타의 이야기이다. 푸드트럭과 힙합댄서라니, 이 소재는 이미 신선하다. 그러나 이 작품의 진정한 신선함은 인물들의 태도에서 나온다. 험난한 길 위의 생활에서도 감상에 빠지지 않는 인물들의 건강한 태도 말이다. 또한 사랑이랄지 희망 같은 것을 소박하게 소유한 그들의 여유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등록금이 없어 아빠의 유산인 푸드트럭을 몰며 전국을 다니는 주인공의 상황과 춤을 추다가 다쳐도 검사비 걱정부터 하는 혼타는 충분히 비관적으로 흐를 수 있는 인물들이지만, 이 작품에서 그들이 신세를 한탄하거나 세상을 염오하는 장면은 없다. 두 인물의 대비가 구주절절 설명되지 않고도 전달되었다는 점도 호감을 샀다. 트럭 사고라는 파국적인 결말과 사고 중에 주인공이 윈드밀의 자세를 취하게 되는 인위적인 장면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 곳곳에 배어 있는 그 일관된 건강함을 지지하며 당선작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당선자에게 무한한 축하를 보낸다. 더 정진하여 자기 세계가 뚜렷한 작가로 성장해가길 바란다. 귀한 작품을 보내온 삼백여 명의 응모자들에게도 마음 깊이 응원을 보낸다.
김숨 손홍규 조해진
• 희곡 부문
예년보다 월등히 늘어난 81편의 젊은 희곡을 만날 수 있었다.
인간과 시대를 통각하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졌지만, 무대와 객석간의 거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온 설명적이고 작위적인 작품들이 많아 질적인 발전을 담보하진 못했다. 응모작을 나눠 읽은 후 본심에 오른 작품은 모두 6편이다.
「즐거운 나의 집」은 역할대행이라는 설정을 통해 단절된 가족의 마주보기를 시도하는 발상이 특별했던 반면 가족의 현실에 대한 반복적인 설명, 전형적이며 단순한 캐릭터들이 아쉬웠다. 「청소」는 청소용역업체 직원들이 맞닥뜨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의 연속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어긋나는 관계를 모색하는 시도가 좋았지만 개연성 없는 장면, 기능적인 인물 설정 등이 몰입을 방해했다. 「컬럼비아대학 기숙사 베란다에서 뛰어내린 동양인 임산부와 현장에서 도주한 동양인 남성에 대한 뉴욕타임즈의 지나치게 짧은 보도기사」는 길고 매력적인 제목만큼 새로운 연극적 형식을 시도하고 있는데, 극의 서사가 제목을 뚫고 나오지 못한 채 다소 냉소적인 재현에 그치고 말았다. 「스윕(Sweep)」은 재난 이후 생존자의 삶을 바라보는 독특한 거리감이 매력적인 작품으로, 특히 야구장이라는 공간과 상황설정을 통해 담담히 그들의 현재를 바라보게 하는 미덕이 있었다. 그러나 작품의 목표가 선명하지 못함으로 인해 완성도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대합실」은 리모델링을 앞둔 강원도 평창의 한 버스터미널을 배경으로 기다림과 사라짐의 드라마를 밀도 있게 다룬, 완성도 면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이다. 동시에 지금까지 많이 봐온 익숙한 이야기, 새롭지 않은 주제의식이라는 면에서 망설여졌다. 「속죄양, 유다」는 연쇄살인을 저지른 17세 여고생과 정신의학적 소견을 쓰고자 하는 정신과 의사의 마지막 상담을 통해 구원에 관한 기독교적 세계관의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연쇄살인, 존속살해, 친족간의 성폭행 등의 강력범죄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도약하여 신화를 성취해내는 작가의식이 돋보였다. 그러나 관객에게 도달하는 지점이 모호하다는 측면에서 역시 완성도가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대합실」과 「속죄양, 유다」를 놓고 토론을 거듭했다. 극의 완성도인가, 젊은 작가의 패기인가, 답은 이미 나와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대라는 광활한 시공간을 채우기 위해 젊은 극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익숙한 것을 거부하고 경계를 뛰어넘으려는 서늘한 패기일 것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속죄양, 유다」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다. 새로운 작가의 탄생을 축하하며, 인간과 세계의 이면을 통찰하고 도약하는 작가로 성장하길 바란다.
고연옥 김수미
• 평론 부문
평론은 작품에 대한 안목과 해석의 독창성, 비평적 문제의식 등을 필요로 하는 글쓰기 장르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자습(自習)이 가능한 시나 소설 쓰기에 비해 출발 시기가 늦고, 얼마쯤 지적 훈련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대학생들이 접근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어려운 감이 있다. 평론을 쓸 때 저지르기 쉬운 오류는 ‘요즘 유행하는 것’과 ‘대단한 것’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지적 패기와 현학적 객기를 혼동한 끝에 외화내빈(外華內貧) 격의 글로 치닫게 되는 자의식의 과잉 혹은 균형감각의 부족이 아닌가 싶다. 시류와 이론을 덜어낸 비평 자체의 중량이 얼마나 될 것인가를 냉철히 따져 보아야 하겠는데, 이는 물론 대학생만이 아닌 모든 비평가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문제다.
이런 아쉬움과 기대 속에 총 17편의 응모작 중 본심에서 다룬 작품은 6편이었다. 모두 저마다의 장점과 단점을 가진 평문들이었다. 「테러 시대의 문학 – 정지돈 소설론」은 자신감 넘치는 발언과, 정지돈 소설의 이질성을 ‘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확대하려는 시도가 눈길을 끌었다. ‘유빙적 타자’라는 개념도 주목할 만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비평적 거리가 부족해 정지돈에 대한 옹호로 귀결되어 버린 한계가 분명했다. 「오르토스에 대항하여 – 백민석 장편 『목화밭 엽기전』」은 논지를 이끌어가는 힘은 있으나 결론 부분의 설득력이 약했다. 백민석 소설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벗어나는 미덕도 찾기 어려웠다.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에게 – 최승자 시인과 신영배 시인을 통해 본 여성적 언어의 소통 가능성」은 두 시인의 시적 지향성을 읽어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들의 시가 지닌 자기완결성이 진정한 타자와의 관계를 어렵게 하는 지점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부족했다. 많은 여성 시인들 가운데 두 시인을 비교해야 하는 필연성도 명쾌히 설명하지 못했다. 「“몸속에서 울창해지는” 시옷, 들 – 이혜미론」은 꼼꼼한 해설 위주의 글로, 시를 읽어내는 역량은 비교적 탄탄하나 그것이 현재의 문학과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따지는 비평적 작업이 미흡했다.
마지막까지 저울질한 두 작품은 모두 조남주의 장편 『82년생 김지영』을 다룬 것이었다. 두 글 모두 우리사회의 오래고도 예민한 현안인 페미니즘을 정면으로 돌파하고자 하는 비평적 결기에 비해, 현재 우리문학의 페미니즘 텍스트와 논의에 대한 시야는 넓지 않은 편이었다. 「김지영의 팩트체크 – 2017년, ‘우리’만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은 버지니아 울프를 경유해 『82년생 김지영』의 이야기 형식에서 현재 한국 여성에게 강요되는 삶의 형식을 읽어낸다. 내용과 별개로 소설의 형식 자체에서 여성에게 억압적으로 체화되어 있는 삶의 방식과 글쓰기 방식을 읽어내는 시선이 예리하다. 그러나 울프의 『자기만의 방』(1929)이 소설이 아닌 자전적 에세이라는 점, 현재의 페미니즘 문학 논의에서 울프의 에세이는 비평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는 점, 문학작품은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 현실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경희 그리고 김지영」은 페미니즘 이론을 적용해 작품을 해석하는 강점과 한계를 보여준다. 작품이 이론에 끌려가는 측면이 있지만, 1세기의 시차가 있는 나혜석과 조남주를 맞세워 “경희의 어떤 하루와 김지영의 34년”을 ‘말하기 방식’을 중심으로 분석하는 장면들은 독창적이고도 인상적이다.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 기대어 성녀도 창녀도 아니고 섹스도 젠더도 아니며 타자도 자아도 아닌, 즉 “같지만도 다르지만도 않은” 경계성의 주체와 정치를 피력하는 논리의 흐름도 안정적이다. 앞으로 좋은 평론가로 대성하기를 빌며 당선자에게는 축하를, 미래의 가능성을 계속 열어두고 있는 모든 응모자들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김수이 한기욱
• 동화 부문
동화 부문에는 총 38명이 응모하였다. 우리 어린이 책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흥성했던 이른바 르네상스기는 대략 1990년대 말부터 2010년 즈음이다. 그 시기에는 부모님이나 교사들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좋은 아동문학, 그림책을 어린이들에게 읽혀주는 데 열심이었다. 그 시기 양질의 어린이 책 세례를 받았던 친구들이 얼추 20대가 되었을 터인데 일부라도 그때 먹은 뽕잎을 비단실로 바꿔 토해내주길 기대하는 마음이다. 올해 응모자 수가 많은 것은 아니었지만 아동문학에 대해 자의적인 오해를 범하기보다, 객관적으로 재미난 아동문학을 만들고자 애쓰는 태도들이 많이 보였던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다섯 명의 응모자들도 겹치는 것 없이 각기 다른 개성과 장점을 보여주어 심사 시 토론이 흥미로웠다.
「안녕, 북극곰」은 빙하가 녹아 북극에서 삶의 터전을 잃은 어린 북극곰이 친구들의 도움으로 남극에 가는 이야기이다. 과학적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일지 몰라도 어린이들 마음에서는 북극곰이 남극의 펭귄과 친구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언뜻 ‘뽀로로’ 같은 친근한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이야기는 인간이 야기한 환경오염의 비극과 더불어, 약한 존재를 도태시키는 비정함까지 꽤 묵직한 주제를 건드리고 있다. 재미와 의미를 한 바구니에 담고자 한 대학생다운 의욕이다. 그러나 장편으로 다룰 만한 내용을 단편으로 담는 것은 역시 무리한 의욕이었고 이야기는 다채로웠으나 문학이라는 면에서는 손해가 컸다.
「내 친구, 한별」은 교실에서 왕따를 당하는 친구의 숨겨진 가치를 발견하는 이야기이다. 똥별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이로부터 외계인을 만나게 해주겠다는 말을 들었다가 결국 실망한 화자는 그를 거세게 비난한다. 그러나 왕따는 지구에 홀로 떨어진 외계인과 마찬가지라는 말을 듣고, 더불어 그가 인터넷상의 천문학 은둔고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별명이 똥별이었던 왕따가 본명이 한별인 내 친구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제목부터 본문 내용까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었지만 아이들끼리 오해하고 싸우고 화해하는 과정에서 의미를 만들어 내다보니 작위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화자도 똥별이도 과학과 천문학에 남다른 관심이 있었는데 한 교실에서 공부하면서 그 점을 몰랐을 리 없고, 마지막의 급한 반성과 급한 화해도 석연치 않다. 어린이라고 해서 현실적으로 짧은 시간 동안 오해가 다 풀릴 리 없고, 모두 다 행복할 리도 만무한데, 아동문학은 기성과 신인을 막론하고 오해와 갈등을 단편 안에서 다 해결하려는 강박이 있다. 젊은이라면 이런 관습을 따르기보다 반기를 들어야 했다.
「춤추는 종이나라」는 유치원에서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하루를 그렸다. 특별한 사건 없이 밋밋하다면 밋밋한 이야기지만 취학 전 낮은 연령 아이의 일상과 마음을 상세히 그려낸 점이 돋보였다. 대학생 응모자들의 관심사가 초등 고학년 대상의 이야기로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그래도 역시 아동문학의 핵심과 비밀은 낮은 연령 어린이에게 있다. 대학생이 낮은 연령 아이에게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칭찬할 만하고 격려하고 싶다. 그러나 낮은 연령 아이에게 관심과 사랑을 갖는 것이 자칫 엄마의 마음, 어른이 아이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시선이 될 수 있음은 늘 경계해야 한다. 이 작품도 그런 시선의 높낮이가 느껴졌으니 역시 이 영역은 보이는 것만큼 쉽고 단순하지 않다.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인 것은 두 명이었다.
「꼴찌가 된 은구」는 황순원의 「소나기」의 오마주인가 싶은 이야기이다. 한 학년에 나 혼자 있어 늘 일등만 하던 남학생이 서울에서 전학 온 여학생 때문에 졸지에 꼴찌가 된다. 소년은 일등을 되찾기 위해 학구열을 불태우는데 상대 여학생이 지병으로 학교에 오지 못하자 공정한 경쟁을 위해 소녀의 밀린 공부를 챙긴다. 이 작품은 시골 소년과 서울 소녀의 우정과 사랑을 그리는 동시에, ‘경쟁’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꽤 긴 시간과 여러 사정을 다루면서도 짧은 매수 안에서 요령껏 엮는 솜씨도 발군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발목을 잡은 것은 역시 「소나기」다. 지병이 있는 서울 소녀란 오마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젊은이답지 않게 안이한 설정이기 때문이다.
「오, 로라」 외 1편은 무엇보다 현 시점의 대학생이 어떤 관심사를 지금의 어린 아이들과 공유하고자 하는가 하는 점을 보여주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열띤 관심사 중 하나는 페미니즘, 성평등인데 그 이슈를 아동문학에 적극으로 펼쳤기 때문이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주인공을 두고 두 여학생이 경쟁을 벌이는데 과거라면 두 소녀의 갈등으로 번질 일이 이 이야기에서는 ‘누가 더 예쁘냐’로 귀결되는 남학생들의 빈정거림에 여학생이 반기를 드는 결론으로 향한다. 왕자 역을 맡았지만 전혀 자격 없는 남학생의 칼을 뺏어 스스로 왕자가 되기로 한 여학생의 결단은 나이를 막론하고 이 시대 여성의 한 상징이 될 만하다. 함께 제출된 응모작에서도 같은 연장선의 관심사가 이어짐을 볼 수 있었는데, 같은 반 남학생을 흠모하던 여학생이 우연한 계기로 같은 반 남학생을 흠모하는 남학생의 존재를 알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단지 요즘 뜨거운 이슈를 아동문학에 끌어왔다는 점만으로 이 응모자를 높이 산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 역시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페미니즘, 성 이슈로부터 떨어져 있지 않고, 오히려 이 문제의 향방에 따라 삶이 가장 크게 바뀌는 존재이다. 어른들이 논의한 다음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안에서라도 아이들이 그 문제와 정면충돌하고 고민하게 하는 것은 아동문학과 현 이슈를 접목시키는 가장 올바른 길이자 태도이다. 다소 거친 면은 있었지만 어쩌면 대산대학문학상이 격려하는 바는 이렇듯 세상을, 어린 사람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젊은이의 의욕일 것이라는 생각에 두 심사위원은 「오, 로라」 외 1편을 수상작으로 뽑는 데 기꺼이 동의하였다. 모쪼록 이 시대의 변화에 젊은이와 어린이가 수동적인 수혜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선봉 주자가 되길, 또한 그 변화에 아동문학의 자리도 있기를 바란다.
박숙경 이병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