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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발표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4.12.16|조회 : 13360


 

2014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 발표

 

2014년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와 심사평을 발표합니다.

응모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부문

이름

소속

작품명


김종연

서울예대

미디어창작 1

리사이클 4

소설

신윤희

서울예대

문창 3

사람이 서 있다

희곡

고정민

서울예대

극작 2

초상, ()

평론

염동규

고려대

국문 4

고통을 지키는 방패

시나리오

이현우

경희대

아동가족 3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

동화

김지혜

경인교대

초등교육 1

사라진 안경은 어디로 갔을까 1


 

 

심사평

 



 

수사의 과잉이 사물과 현실을 왜소하게 한다. 문장들은 매끄러우나 빈혈을 앓고 있고, 이미지는 넘치나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전반적으로 삶과 시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보단 장황한 요설과 실험실에서 배양된 듯한 인위적인 표현들이 서로를 감염시키며 유사한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반적인 예심 인상을 교감하며 심사진은 각 3편 씩을 뽑아 모두 9편을 본심에서 논의하였다. 이 가운데 6편을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먼저, 「다정한 중력」 외 4편의 응모자는 형식적 완결미에 대한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었고, 드물게 현실적 발화를 하고 있는 「시대의 인문학」 외 4편의 응모자는 언어 미감에 대한 예각화가 요청되었다. vintage」 외 4편의 응모자는 「팝콘」 같은 뛰어난 작품이 있었으나 전체적인 수준이 고르지 못해 안타까웠다. 각별히, 투고할 때 작품의 배열순서도 유념하길 바란다. 나머지 「올바른 독서 습관 기르기」 외 4편의 응모자는 소박한 질감의 언어에 뜻밖의 경이로움을 담을 줄 아는 장기가 있었다. 자신의 개성에 좀 더 집중한다면 성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최종에 남은 작품은 「레코더」 외 4편과 「리사이클」 외 4편이었다. 「레코더」 외 4편은 세련된 감각과 날렵한 솜씨 속에 여백을 다루는 힘이 돋보였다. 이 응모자는 무엇보다 상황을 연출할 줄 알고, 시적 부력을 활용할 줄 알았다. 그러나, 행과 행 사이의 비약이 모호하다는 점, ‘혼잣말이 울리는 형식으로’나 ‘약속이 유전되는 형식’과 같은 유사한 구문 남발이 흠이었다. 이에 비해 「리사이클」 외 4편은 체험에 충실하면서도 자기만의 호흡으로 시적 직관이 살아있는 표현들을 쓰는 힘이 있었고, 다듬어지기보단 응원되어야할 어떤 열기를 아이러니한 화법으로 구체적 삶속에 착근시킬 줄 알았다. 비문들이 문제적으로 다가왔으나 가능성의 영토 속에선 그마저 생산적인 리듬에 봉사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전혀 다른 두 개성 앞에서 팽팽한 장고에 들어간 심사진은 결국 「리사이클」 외 4편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합의하였다. 당선자엔겐 축하를, 낙선자에겐 응원을 보낸다. 선에 들지 못한 분들 가운데도 정진하면 진경을 펼쳐나갈 수 있는 동량들이 없지 않았음을 따로 기억해두고자 한다.

 

손택수 이영광 조용미

 

 

소설

 

올해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에는 총 284편의 작품이 투고되었다. 응모작 대부분이 일정한 소설적 기본기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 예심 심사를 마친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중에서도 본심에 올려 논의한 9편의 소설들은 모두 나름의 수준과 독특한 개성을 지닌 작품들이었다.

본심에서 집중적으로 논의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빨래」는 신선한 발상과 감각적인 문장이 돋보였다. 그러나 재기발랄한 하나의 장치에 지나치게 의존하다보니 서사를 끝까지 진행시키지 못하고 중간에서 힘이 빠진 느낌이 들어 아쉬웠다.

「우리 아버지 공장 닫혔네」는 현대 가족의 붕괴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별다른 사건 없이도 가독성 있게 소설을 전개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러나 더 좋은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엇, 이를테면 가족 제도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 등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얼음의 기로」와 「미드나잇 블루」는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을 의도적으로 탈색하여 이국적 공간에서 서사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이즈음 신인들의 작품에서 자주 드러나는 하나의 경향을 대표한다 할만하다. 이런 작품들은 우리 문학의 상상력을 넓히려는 하나의 시도라는 면에서는 분명히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이국적인 배경이 소설의 전부인 경우도 적지 않다. 왜 그렇게 썼는지에 대한 명확한 이유를 소설 내부에서 밝히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소설의 현실이 실제의 현실을 환기시키지 못한다면 그 작품은 하나의 공허한 제스처에 머물 우려가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화이트 니」는 담담한 문체로 ‘코끼리-아버지’의 삶을 기술해가는 소설이다. 안정적으로 잘 짜인 소설이라는 인상을 준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기시감이 느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환상적으로 처리된 결말 부분의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나무라다」는 마지막까지 선자들을 고심하게 만든 소설이다. 발상과 전개 모두 흠잡을 데 없이 좋았으며 문장도 유려했다. 진짜 같은 허구의 세계를 무리 없이 잘 구축했다. 다만 주제의 확장성 측면에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미 완결된, 혹은 닫힌 하나의 세계가 아니다. 미숙하더라도, 열려 있는 것. 그리하여 언젠가는 무한한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가능성이다.

「두 사람이 서 있다」는 그런 면에서 당선작이 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휴머노이드 프로젝트’에 의해 만들어진 두 개의 상반된 휴머노이드 타입인 ‘나’와 ‘B’의 이야기이다. 설정 자체가 작위적이고 어설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초반의 우려가 깨끗이 지워진다. 세심하게 배치된 문장과 대화 너머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만만치 않은 주제의식이 도사리고 있다. 완독 후, 가슴에 오래 남는 것은 따뜻함과 슬픔, 인간이 인간이므로 느낄 수 있는 바로 그 감정이다. 그것이 소설의 본령이라는 데에 심사위원들은 어렵지 않게 합의했다. 당선을 축하드리며 앞으로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백가흠 성석제 정이현

 

 

희곡

 

응모작 수는 69편으로 작년의 67편과 비슷했다.

심사위원 둘은 약 2주에 걸쳐 응모작을 나누어 읽으며 예심을 진행했다.

「우리 집 맥스」 「초상, 화」 「18」「계단 두 개짜리」 「숲이 등을 떠밀어 나는 걸었네」 「조부모 지침서」 「귀도의 대학살」 일곱 작품을 후보작으로 선정해 최종심에 임했다.

「숲이 등을 떠밀어 나는 걸었네」 는 서정성 강한 대사가 돋보였다. 지금의 현실과 과거의 연극이 유기적으로 잘 묶여진 구성도 강점이었다. 그러나 바깥으로 나오지 않는 남편의 심리가 설득력을 갖기에는 부족했다. 부부의 사랑, 그 이상의 이야기로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아쉬웠다.

18」 은 재밌게 잘 읽혔다. 생생한 캐릭터와 짧고 리듬감 넘치는 대사가 매력적이지만 열여덟 고등학생들이 느끼는 분노, 좌절감이 심화되지 못하고 뒤로 갈수록 이야기의 힘이 약해졌다. 중요한 오브제로 등장하는 지혜의 ‘칼’이 연극적으로 확장되지 못하고 사소한 소품이 되어 사라진다. 이 희곡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다시 질문을 던져보기 바란다.

「우리 집 맥스」 는 잘 쓴 우의극이다. 집을 지키는 노인을 ‘늙은 개’로 등장시켜 우리사회의 가족과 교육에 대해 꼬집고 있다. ‘목줄’을 상징적 도구로 배치시킨 점도 흥미로웠다. 문제는 너무 도식적이라는 점이었다. 상투적인 전개와 결말을 넘어 자신의 개성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더 거침없이 썼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크다.

마지막까지 논의된 「계단 두 개짜리」 는 사회적인 문제를 비판적으로 담아낸 유일한 작품이었다. 고시원 지하에서 익사한 명훈과 그의 삶과 죽음을 둘러싼 이웃들의 냉대와 무관심은 지금 한국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사건의 편집자 역할을 해줘야 할 명호의 극적 배치가 너무 허술했다. 11호 남자와의 대화로만 정보가 나열되는 단선적인 구성으로는 명훈의 죽음을 치밀한 연극으로 끌어올리기에 역부족이었다. 빈약한 문장력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는 당선작을 「초상, 화」 로 결정했다. 이견은 없었다.

「초상, 화」 는 가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장례식장에 모인 가족의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자본에 찌들고 멍든 사회가 인간의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는지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잃어버린 인간성을 어떻게 회복해야 하는가에 대한 따뜻한 고민도 함께 담겨있는 수작이다.

고인의 마지막 편지가 자살 직전에 남긴 ‘유서’가 아니라 작업장에서 틈틈이 써내려가던 ‘시’였음이 밝혀지는 극 후반부에서 우리는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대사에 담긴 연극성과 문학성이 응모작 중 단연 탁월했다. 작가가 진지하게 문학과 만나고 있으며 연극도 열심히 보는 학생일 거라는 기대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다만 주제가 드러나는 3장이 1, 2장에서 펼쳐진 서사적 흐름과 단절된 상태로 급하게 마무리 되다보니 비약적인 후일담으로 맺어지고 있다는 점, 문장에 대한 과시욕이 드러나는 불필요한 대목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부디 지금 보다 더 좋은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기를 바란다.

 

김은성 이성열

 

 

평론

 

총 투고작 11편을 통독하고 1차로 4편을 골라냈다.

김경주의 첫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를 꼼꼼히 읽은 「불가능한 꿈을 꾸다」는 단순한 작품론이 아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이 한국사회에 던진 충격을 집합적 단계 이후, 개인이라는 심층 차원에서 다시 성찰한 이 글은 화두가 살아있다. 그런데 정작 본론은 성글다. 우선 2006년에 출간된 김경주의 첫 시집을 왜 지금 세월호와 연관하여 문제삼는지가 분명하질 않고 해석들도 맞춤하지 않은 데가 더러더러 보이기 때문이다.

최제훈의 근작 장편 『나비잠』(2013)을 중심으로 그의 소설세계 전반을 미장아빔(mise en abyme)을 열쇠말로 분석한 「미장아빔의 서사」는 우선 일관된 탐구력이 돋보인다. 그런데 좀 즉물적이다. 왜 지금 최제훈의 소설이 문제인지를 드는 서론다운 서론이 부재한 데다가, 최제훈 안에만 갇혀있다. 인간세상은 상대적이어서 다루는 대상의 앞과 뒤 그리고 옆을 살펴야 그 특성이 더 잘 드러난다는 점에 유의했으면 싶다.

박솔뫼의 첫 단편집 『그럼 무얼 부르지』(2014)와 김사과의 장편 『천국에서』(2013)를 묶어 분석한 「이것이 이야기다」는 양극화의 덫에 치인 한국의 20대에 초점을 둔다. 화두를 꺼내 걸맞게 문제를 설정하고 다룰 대상들을 고르는 서론이 그럴듯하다. 그런데 분석의 과정을 드러낸 본론이나 그 결과를 도출한 결론은 기시감이다. 문제나 방법이나 대상이나, 어느 대목인가에는 더 새로운 점이 눈에 띄어야 할 터이다.

「고통을 지키는 방패」 역시 세월호로부터 부풀어 오른 글이다. 이 사태를 우려하고 분석하고 비판하고 전망한 글과 말 들이 사태(沙汰)인지라 좀체해서는 지나칠 법한데 이 글은 읽는이의 마음을 움직인다. 남의 기쁨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남의 슬픔에 진심으로 슬퍼하기만큼 쉽고도 어려운 일이 없거니와, 이 글은 성찰적이다. 외국이론들을 조자룡 헌 창 쓰듯 휘두르는 요즘 평론들과 달리 수행(修行)하듯 그 고통의 행로를 따라가면서 그 사이에 흩어지는 말들을 겨우겨우 수습하는 모양새가 미쁘다. 다만 대상 작품인 황정은의 장편 『야만적인 엘리스씨』가 성찰의 먹이로만 드러난 점이 걸린다. 문학비평이란 어디까지나 문학/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란 점을 망각해서는 아니된다.

4편을 다시 읽으며, 화두와 자세 그리고 안정된 문장력 등이 돋보이는 「고통을 지키는 방패」를 당선작으로 삼았다. 축하한다. 대성하기 바란다.

 

최원식

 

 

시나리오

 

내가 시나리오를 처음 보았을 때가 26세였다. 그 때는 단편 시나리오를 본 것이었고, 장편시나리오는 충무로에서 연출부 생활을 하던 31세가 되어서야 처음 볼 수 있었다. 소설이나 시는 시중에서 책을 구해 읽을 수도 있고, 희곡은 초중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나마 접할 수 있었지만 시나리오는 영화과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접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년에 대산대학문학상 시나리오부문을 처음 심사하면서 많이 놀랐다. 일반 사람들이 시나리오를 접하기 어려운 이유가, 아직은 시나리오가 문학으로 유통되기 보다는 영화제작을 위한 작업용 문서(?)로 유통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 대학생들이 장편시나리오를 이토록 척척 써내는 것을 보고 어찌 아니 놀랄 수 있겠는가. 여기에는 시나리오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정진이 숨어있는 것이다.

작년에 처음 대산대학문학상 시나리오부문을 심사를 했을 때는 앞서 말한 이유로 '감탄'했고, 올해 두 번째 심사를 했을 때는 시나리오 자체로 '감동'했다. 수상작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의 신부의 기도부분을 읽을 때는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 시나리오는 세련되게 쓰인 시나리오는 아니다. 투박하고 단선적인 전개, 어설픈 내레이션 등이 단점으로 드러나지만 이를 압도하는 힘이 있다. 헬리&휘트 버넷은 작가의 자질을 언급하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에 대해 말한 바 있다. 작가는 고통 받고 있는 영혼에 기꺼이 동감하여 그들의 내부로 들어가 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려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를 쓴 사람은 주인공의 고통을 알고 있다. 그의 분노와 고독을 알고 있다. 고통 받고 있는 영혼에 기꺼이 동감하고 그의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너에게 가는 길」을 읽을 당시만 해도 아마도 이 시나리오가 수상작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추후 시나리오를 더 읽어보아야 하겠지만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를 읽기 전까지는 이만한 작품이 나오기 어려워 보일만큼 매혹적이었다. 「너에게 가는 길」은 영화 「네버 렛미고」와 같이 복제인간을 다루면서도 한국의 군대문제와 결합시킨 독특한 SF영화 시나리오다. 더욱이 「이상한 나라의 ‘엘리트’」보다 상업영화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 마지막까지 수상작을 결정하는데 고민을 안겨주었다. 이 시나리오의 아쉬운 점은 인물들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다소 낭만적이고 피상적으로 그려진 점이다. 군대에 쉽게 순응하지 못하는 개인성을 유약함이나 자유분방함으로 한정짓는 것은 너무 협소한 시각이다.

「베드로의 계절」도 인상 깊은 시나리오였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무리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신실한 한 개인을 배신하고 죄의식을 겪는 이야기를 여성적인 시각으로 그려낸 시나리오다. 사건의 스케일이 장편에 담기에는 약소한데 인위적으로 현재부분을 추가하여 장편시나리오로 확장한 것 같아 수상작으로 선택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사람들은 일상대화에서도 시나리오란 말을 쓴다. 예컨대 ‘그 일은 시나리오대로 잘 마무리 되었어’라고. 현실에서는 시나리오가 제대로 성취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영화는 시나리오대로 온전히 만들어지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시나리오의 백미라고 여겨지는 부분도 배우의 연기 및 장면화가 미흡하면 편집단계에서 가차 없이 버려지기도 한다. 현실은 시나리오대로 되기도 하는데 영화는 시나리오대로 되기가 어렵다. 여기서 영화 시나리오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우문이 든다. 시나리오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비전(vision)이다. 시나리오는 그 자체로는 실체가 아니다.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그 속에 무형으로 실재하는 것이 시나리오다. 그 자체로는 뽐낼 것이 없는데 맹아와도 같이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것이 시나리오다.

전반적으로 올해 응모한 시나리오들이 작년에 비해 더 참신하고 무게감이 있고 다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도 이토록 비전이 높고 맹아가 튼튼하니 앞으로 한국영화가 좀 더 재미있어질 모양이다.

 

박찬옥

 

 

동화

 

어린이는 질문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몇 겹의 의장을 두른 채 거만하게 무게 잡고 있는 세상을 향해 그들은 태연하게 묻는다. 저기요, 그런데 왜 벌거벗고 서있지요? 동화 장르의 매력은 이처럼, 완강한 세계의 방어막을 ‘허걱’하면서 해체하게 만드는 어린이의 투명한 눈, 유연한 질문법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어린이 독자와의 소통을 위한 글쓰기는 주도면밀하고 노련하지 않으면 실패하기 쉽다. 기존의 장르 관습을 익히는 동시에 저항하려는 노력 없이는 지금의 어린이 독자들을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한정된 소재와 뻔한 서사적 흐름으로 비슷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작품들과 만나는 것은 아무리 착하고 순진한(?) 독자라고 해도 견딜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동화 장르의 매력을 살려내는 동시에 동화적 글쓰기에 대한 막연하지만 강력한 선입견들에 맞서는 패기 있는 작품을 만나기를 고대했다. 이른 바 ‘대학문학상’에 기대하는 바는 그런 것들이 아니겠는가. 동화 부문에 응모한 작품은 작년과 비슷한 70여 편이었다. 두 명의 심사위원이 나누어 읽고 여섯 편을 추려냈다.

 

먼저 비밀글씨를 그리다 혼자만 아는 비밀 ‘비밀’로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의 갈등을 토대로 이야기의 긴장을 만들어 낸 작품들이었다. 비밀글씨를 그리다 사건을 전개해 가는 솜씨가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관찰하였으며, 친구들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긴장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혼자만 아는 비밀 중학교 2학년 교실에서 일어난 왕따 사건을 소재로 한 이야기다. 왕따 문제는 식상할 만큼 많이 다루어진 소재라고 할 수 있지만, 비밀을 매개로 나름 새롭게 만든 흔적을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서사적 상황과 긴장은 큰 무리 없이 구현되었으나 문제 해결의 방식이 예상을 벗어나지는 못한 점이 한계로 보였다.

 

고백의 순간 할머니가 사랑에 빠졌대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한 작품으로 ‘사랑’을 소재로 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고백의 순간 그야말로 초등학교 사춘기 아이들의 밀고 당기는 연애 감정을 발랄하고 상큼하게 그려내었다. 할머니가 사랑에 빠졌대 제목 그대로 할머니의 연애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다. “공부할 나이, 연애할 나이, 결혼할 나이”가 다 정해져 있다면서 할머니의 연애를 인정하지 않는 아빠를 향해, ‘나이는 무슨 나이. 그렇게 정해진 게 어디 있어.’라고 중얼거리는 나의 마지막 대사가 통쾌하다.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답게 두 작품은 모두 인물의 감정 묘사에 장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인물 간의 관계와 대사가 주는 실감이 부족했고, 사건 전개의 짜임도 탄탄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마지막으로 갱상도에 악어가 왔다! 사라진 안경은 어디로 갔을까 ‘공상’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이었다. 우리는 마법사의 모자에서 토끼가 사라지고, 손수건에서 금붕어가 나타나도 놀라거나 속았다고 화내지 않는다. 두 작품은 환상과 현실, 논리와 넌센스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들락날락하면서 독자를 뒤락펴락하는 입담을 보여주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갱상도에 악어가 왔다! 입을 쩍쩍 벌리며 장독을 깨뜨리고 다니는 ‘된장 맛’을 좀 아는 유머러스한 악어가 등장하며, 사라진 안경은 어디로 갔을까 코끼리 열차를 타고 짜릿한 환상의 폭풍우 속을 다녀오는 사건이 펼쳐진다. 두 작품 모두 독자를 즐겁게 했지만, 갱상도에 악어가 왔다 호방한 상상력에 비해 문장이 거칠고 불안정했다는 단점이 두드러졌다. 이에 비해 사라진 안경 오래 연마한 듯한 안정적 문장력, 어린이 편에서 세상을 읽고 그려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에서 믿음이 갔다. 이에 사라진 안경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축하와 응원의 마음을 전한다.

 

김제곤 조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