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창작기금

사업결과

2019년
수상작
수상작
부문 수상자 작품명
강정아(강주) 「홀수의 새벽」 외 50편
황유원 「당나귀와 나」 외 52편
황인찬 「피카레스크」 외 50편
소설 우다영 「해변미로」 외 6편
이수경 「자연사박물관」 외 5편
희곡 김민수 「여자의 등장」 외 3편
평론 신샛별 「프레카리아트 페미니스트의 탄생」 외 17편
아동문학 박경임 동시 「입맛」 외 50편
박상기 동화 『도야의 초록리본』
심사위원
- 시 : 송재학 장석남 최정례
- 소설 : 김이정 최인석 한창훈
- 희곡 : 김나정 장우재
- 평론 : 권성우 오형엽
- 아동문학 : 김제곤 박상률 함기석
심사평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는 것

세 사람의 심사위원은 창작지원금 응모작 중에서 아홉 분을 주목했다. 이분들은 당연히 우리 시의 첨단이자 최근의 성과이다. 더 많은 시인들이 최종심에 올라야만 했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 사람만 선택되었다. 모든 작품들이 돌올했기에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러니까 우리의 결과물은 익숙한 편애일지도 모르겠다. 예심 기간 동안 읽었던 시와 최종심에서 다시 읽었던 시편들에 감사도 덧붙인다. 어떤 문학상의 심사보다 더 신중했고 더 즐거웠다.

‘「피카레스크」 외 50편’ 중에서 오래 논의되었던 작품은 심사위원 모두를 매혹시킨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이다. “밤의 천사는 밤에 찾아와 / 사람의 뺨을 만지며 축복하는 천사입니다”라는 도입부가 있다. 천사/시 쓰기에 대해 방황하는 시인이 있다. 천사/시 쓰기가 “그저 형편없는 시”이거나 “시가 아닌 것 같”을지도 모른다고 회의하는 시인은 간단치 않은 시 쓰기의 호흡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 흔히 그러하듯 서사의 결말은 “방금 누군가를 죽이고 왔다고 생각”하게끔 하는 비극적 표정이 엔딩 크레디트이다. 그의 시는 연과 연이 서로 상관없는 것들 / 혹은 상관없고자 하는 욕망으로 이어지는데, 겉으로는 상관없는 정황들이 그 저류에서는 이상한 관계를 이루며 이어지고 동시에 세계가 확장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젊은 시인들의 시가 변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라는 확신이 그의 시에 있다. 또한 발화 방식들이 감정을 직접 드러내지 않기에 절제된 정신력을 온전히 보여주기도 한다. 다음 연 혹은 다음 장에서 무슨 말을 할지 예측할 수 없어서 자꾸 따라 읽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이어지는 새로운 말들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지루하지 않은 가독성과 신비를 유지한다는 데 이 시인의 장점이 있다.

‘「홀수의 새벽」 외 50편‘을 보여준 시인은 미학 교실의 순수 멤버가 아닐까. 사물과 은유 사이를 진자 운동할 때의 감수성을 정확하게 분배한다. 사물이 은유가 되는 건 누군가의 호명이나 시선이 필요할 터, 예컨대 “찢어진 낱장으로 이해해요. 눈송이 하나와, 하나의 눈송이와, 또 다른 눈송이 하나의 이야기는 폭설. 깊이는 눈부시죠”(「a의 사물함」)라고 했을 때, 눈송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손쉽게 찾아간다. 그럴 때 사물은 소란스럽지 않다. 모더니즘이 이 시인에게 최적화된 것. “모서리를 완성하기 위해 서로를 모을 것 / 서로를 도래하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 사라진 사람들은 / 던지기에 알맞은 미지수였다”(「큐브의 경우」)라 했을 때 사물들 또한 주인공의 배역을 쟁취하여, 무대 위에서 스스로 발광한다. 잘 짜인 극본을 읽을 때의 감정이 솟구친다. “서쪽은 오른손에서 멀고 / 마지막 빛을 주워 서로에게 던졌을 때 / 결국 빛에 관한 이야기만 남았다 / P의 빛은 시가 될 수 있을까”(「P의 배경」)라는 구절에서 P라고 불리는 혹은 P라는 이질적인 세계를 받아들이는 완충력의 높낮이에 공감할 수 있다. 낯섦을 낯설지 않게, 불편하지 않도록 이끌고 가는 시인의 대자적 세계관이 찬찬하다.

시의 리듬이 내재율만이 아니라는 데 동의를 한다면 ‘「당나귀와 나」 외 52편‘ 전체 시편 중에서 「눈사람 신비」를 천천히 낭송하여 들려주고 싶다. 평이한 언어, 헐렁한 서사 사이에서 시의 미학은 언어와 진술 사이의 관계라는 것을 언어가 실천하고 있다. 「눈사람 신비」에서 생각과 진술 또는 생각과 몸 사이의 거리가 강약 조절되는 탄력은 낯선 행위가 아니다. “한밤중에 뜨거운 물 끼얹으면 / 좋은 생각이 나는 것 같다”라는 시작은 시인의 말처럼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 생각은 “눈사람이 자기 몸에 뜨거운 물 끼얹어 / 아래로 평등하게 고이게 된 물이 / 잘 정리된 생각인 것만 같다”라는 외연으로 바뀐다. 생각이 몸/물질을 획득하게 된 낯익은 고백이 명쾌한 논리를 얻게 되는 과정이다. 다시 되돌아가면 눈사람은 욕조 속에서의 뜨거운 물이라는 물질과 좋은 생각이라는 물질의 교집합이다. 자신을 녹여 버린 눈사람이야말로 생각의 완전함이라는 이 과정은, 물론 생각의 정체성에 대한 탐구이겠지만, 생각과 몸에 대한 생생함을 받아들이는 영혼의 공감각 때문이기도 하다. 신뢰할 만한(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시적 가정이야말로 이 시인이 움켜쥔 개성이다.  열거한 시인들의 사유가 비범하다는 데 공감을 하면서 다시 축하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