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학기행문

성(Castle)
글쓴이 : 이재빈 날짜 : 20.04.29|조회 : 910

성(Castle)

 

 

회색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건축을 전공한 가이드 아주머니의 운전대를 따라 축축하게 젖은 들판이 너울대는 풍경을 계속 따라갔다. 질퍽거리는 푸른 풀밭 위에서 하얗고 까맣고 몇몇은 점박이인 양들이 방방을 타는 아이들처럼 둥둥 떠돌고 있었다. 그 너머로 작은 점 하나가 허공에 콕 박혀 있었다. 회색 행성처럼 보이던 소실점에 가까이 다가갔다. 점이 점점 커져서 성이 되었다. 물론 내가 성에게 서서히 다가가는 것이었겠지만, 성이 천천히 우주선처럼 나에게 날아오는 것 같은 환상이 들었다. 생전 처음 밟아 보는 노르망디의 땅. 북쪽 사람들의 땅. 전투 민족 바이킹이 할퀴고 지나간 영토. 정복왕 윌리엄의 봉토. 불타죽은 성녀 잔다르크와 백년전쟁 동안 하룻밤도 함락되지 않은 성. 가이드 아주머니가 잠결에 들려주셨던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에 거짓말처럼 성이 있었다. 밴에서 내리고 셔틀버스에 옮겨 탔다. 그리고 셔틀버스에서 내려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주변은 온통 뻘밭이었다. 무채색의 물감 여러 통을 잭슨 플록이 공중에서 흩뿌려 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색채 추상은 아직 온전히 감상될 수 없었다. 성을 올라 내려 보았을 때만 비로소 감상되도록 전시된 그림이었고 날아다니는 바다 새들만 관측할 수 있는 풍경이었다. 마치 푸른 지구를 처음 마주한 이는 우주를 유영하고 달을 밟았던 우주인이었듯이. 몽생미셸에서 머물던 수도승들은 중세 시대의 유리 가가린이고 프랑크 왕국의 닐 암스트롱이었던 셈이다.

 

돌계단과 돌계단이 연이어 이어지면서 방과 방이 이어졌다. 대부분의 방은 수도승들의 생활을 위한 공간이었다. 기도를 위한 예배당과 산책을 위한 정원. 그리고 그 일상적인 생활공간에 바로 접하여 몽생미셸을 에두르고 있는 광활한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테라스가 이어져 있었다. 높은 테라스에 기대어 서서 몸이 추락하지 않는 선까지 최대한 기울여 성에 연하고 있는 풍경들을 내려다보았다. 아찔했다. 악의를 가진 이가 실수인 척 내 몸을 툭 치고 지나간다면, 아니면 갑자기 강한 돌풍이라도 불어온다면 그대로 굴러떨어질지도 모른다. 성은 하늘에 떠있는 것 같은 가상현실을 주었다. 온몸이 붕 떠 있는 것 같은 마법 같은 체험. 마법이라고 부르는 것은 불경하고 수도승들은 그 감각을 신앙으로 느꼈을 것이다. 테라스에 서서 성스러움의 밑간이라도 살짝 맛보았을 것이다. 나는 종교가 없으므로 가장 흡사했던 감각이 무엇이었는지를 되새겨 보았다. 극장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푸른 하늘과 양떼구름 사이를 떠다니며 진흙덩이를 선과 면처럼 마주하는 감각. 그것이 극장에서 느꼈던 감각이었다. 아. 나에게는 극장이 종교였구나. 나는 매주 일요일마다 미사를 드리러 성당을 찾는 신실한 수녀처럼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고 영화를 봤었던 것이구나. 아마 8세기나 9세기 즈음에 노르망디의 북쪽 사람으로 태어났더라면, 까만 수도복을 걸치고 묵직한 묵주를 목에 걸고, 몽생미셸의 수도승이지 않았을까. 이 성에서 하룻밤 잠들고 싶다. 서울에서의 삶이 하룻밤 꿈이었던 것처럼. 몽상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몽생미셸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정해진 일정이 있었고 성이 문을 닫고 아무도 받지 않는 고독한 시간이 있었다. 단체 여행이었기에 오후 다섯 시까지 집합 장소로 돌아가야 했다. 몽생미셸에서 하룻밤 잠들기 위해서는 몰래 돌기둥 뒤에서 숨어서, 이름 없는 작은 골방에 숨어서 사라지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도 않았다. 성의 내부는 낮은 입구의 좁은 돌계단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온 동양인 관광객 한 명 자취를 감춘다 해도 아무 일도 없지 않을까? 해묵은 이끼가 낀 오래된 화강암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을 텐데. 백년전쟁으로 수많은 생명들이 촛불처럼 꺼져갔을 때도 화강암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을 테니. 만약 아니라면,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에서 어느 편을 골라 들었을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파리 생제르맹의 축구 경기에서 한 편을 골라 응원하는 것처럼?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을 것이다. 몽생미셸의 화강암도 이방인이기 때문에. 노르망디에는 성을 짓기에 적합한 돌이 없었다고 한다. 적당히 무르면서도 적당히 강인한 돌은 드물었다. 그래서 바다 건너 잉글랜드의 화강암을 캐다가 낯선 땅에 옮겨서 성을 쌓아 올린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가이드 분께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젊은 시절 건축을 공부하러 유라시아 대륙의 한쪽 끝에서 다른 끝 파리로 유학을 오셨던 분이었기 때문이다.

 

몽생미셸에 도착하기 전 잠시 들렸던 옹플뢰르의 카페에서, 아침으로 크루아상 한 조각을 쇼콜라에 듬뿍 찍어 먹으면서, 이런 대화를 나누었었다. 가이드 분께서는 우리가 각자 어떤 분야의 글로 상을 받아서 여행을 온 것인지를 궁금해하셨다.

 

저는 희곡으로 상을 탔어요.

 

희곡이 뭔가요? 연극 대본이라고 보면 되나요?

 

비슷한 개념인데요. 희곡은 극작가가 쓴 원형으로서의 글이고요, 무대 상연을 위해서 매 공연 상황에 맞추어 변형을 가한 게 대본이에요. 그러니까 희곡의 Variation이 대본인 거죠.

 

건축이랑 비슷하네요. 건축에서도 설계도가 있고 설계도면이라는 게 따로 있어요. 실제 현장 공사를 위한 대본이에요.

 

내가 희곡 읽기와 희곡 쓰기의 즐거움에 빠졌던 것은 희곡의 언어가 지니고 있는 수학적이고 기능적인 압축 언어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희곡의 언어는 사건의 진행을 위해 구구절절한 묘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Enter. Exit. 등장과 퇴장만 있을 뿐이다. 그것이 수식과 기호로 구성된 수학의 언어와 흡사해 보였다. 좋은 희곡을 읽으면 언제나 건축의 설계도가 떠올랐다. 뼈대와 골조로 이루어진 입방체의 접붙임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몽생미셸을 만든 사람들도 그랬겠지. 머릿속에 각자의 성들을 떠올리며 저 멀리 바다 건너에서 화강암을 쪼개서 몸에 지고 노르망디로 가져와 쌓아 올렸을 거다. 밀물과 썰물이 오가는 이 위태로운 해안가 위에. 몽생미셸에 평생 머물 수는 없지만, 아니 하룻밤이라도 몰래 숨어서 잠들고 갈 수도 없지만, 희곡을 쓰는 것으로 서울에서도 성을 쌓아 올릴 수 있겠구나. 그리고 그 성에 숨어서 하룻밤 잠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돌았다. 오후 다섯 시까지 거대한 오믈렛을 만들어 파는 식당 앞으로 돌아가야 했다. 모이는 장소였다. 다행히 늦지 않고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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