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학기행문

없어진 사람들의 도시와 사람들의 겉옷들
글쓴이 : 남의현 날짜 : 20.04.29|조회 : 920

없어진 사람들의 도시와 사람들의 겉옷들

 

 

1

없어진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서 생각했다.

왜 죽은 사람에게 경어를 쓰게 되는 걸까?

페르 라셰즈의 협소하고 굴곡이 아름다운 묘 앞에서 우리 중 누군가가 말했다.

이 분의 심장은 폴란드에 있어요.

페르 라셰즈는 최초의 정원식 공동묘지로, 제1차 세계대전의 추모공원이기도 하다. 묘지 근처에는 집처럼 보이는 작은 구조물들을 세워놓은 경우도 있었는데, 때문에 그 영지 전체가 이제 죽고 없는 사람들의 작은 도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음악가의 묘 앞에서 생각했다. 이 분의 심장이라니, 왜 죽은 사람에게 경어를 쓰게 되는 걸까? 그 사람들은 이제 나이도 동생도 제자도 몸에 살짝 걸쳐놓을 수 있는 얄팍한 코트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는 많은 성당에 들렀다. 어떤 성당은 생기가 범람했고 어떤 성당은 창백했다. 우리는 생 퇴스타슈 성당에서만 미사를 드렸다. 오르간 연주를 들으면서, 내가 손에 쥔 희고 긴 단 하나의 양초를 바라보면서, 자신이 무언가를 믿는다고 믿는 사람들 곁에서 높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아름답지만 창백한 건축물이었다. 스테인드글라스 안으로 빛으로 가장한 어둠이 들어오고 있었다. 안쪽 높은 곳에 설치되어 있는 테라스에서 누군가 그림자를 벗어 난간에 걸쳐놓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우리를 제외한 모두가 성가를 부를 동안 나는 그것만을 믿었다. 테라스의 그림자가 서서히 미끄러져 낙하하고 있다고 말이다.

퐁피두의 크리스티앙 볼탄스키 전시에서는 모든 것을 오해했다. 이유는 단순히 작품의 캡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벽면 전체에 죽은 사람들의 얼굴을 확대해서 보여주는 액자가 수납장처럼 붙어있었고 사진 하나하나에 가까이 붙여 설치된 조명들이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어떤 얼굴은 벽지처럼 보였고 어떤 얼굴은 벽 없이 천장 없이 공중에서 공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들은 계속 벽을 따라 이어졌고 이윽고 검은 코트들이 바닥에 산처럼 쌓여있는 공간이 나왔다. 나는 바닥에 득실거리는 코트들을 테라스에서 떨어진 그림자로 오해했고, 그것들을 한참 바라보고 난 후에야 공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2

우리 중 몇 사람은 때때로 담배를 피우기 위해 눈치를 봤다. 파리에 가기 전까지 나는 간헐적 흡연자였고 흡연의 순간을 얻기 위해 그렇게나 고전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것을 하나의 게임처럼 여기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지위 있고 건축적으로 아름다운 몇몇의 공간들을 재미없고 지루한 공간이라고 여기면서 도망치듯 뛰쳐나오기도 했다. 담배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피우기 위해 말이다.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경험이었기 때문에 정말로 나쁜 짓을 하는 기분이었다. 기분을 만끽했다.

우리가 묵었던 아름다운 집에서는 열쇠와 재떨이만 있으면 언제든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 우리 중 몇몇은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으니까 임시로 만든 작은 재떨이에 ‘미니모’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두 번째로 만든 조금 더 큰 재떨이에 ‘미니마니모’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마지막 날 그것들을 영영 보내주면서 다시는 어떤 것에게도 같은 이름을 붙여주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영영 그것들을 그리워할 수 있도록 말이다.

 

 

3

우리는 한국어를 배우는 프랑스인들과 만났다. 나는 주로 한 여성이랑만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녀는 성실한 은행원이었다. 성실함과 은행원이라는 직업은 전혀 상관이 없었는데, 그녀는 퇴근 직후 바로 세종학당으로 와 한국어를 배우는 시간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직업보다도 말이다. 그녀는 나에게 ‘당신들을 만나서 정말로 행복해요!’하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에요!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나는 행복이라는 표현을 좀처럼 쓰지 않고 어떤 정도 이상의 기쁨을 만끽하는 게 어렵고 또 모두가 그럴 것이라고 믿으니까. 그래서 나는 잠시간 그녀를 아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의심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한국어 발음인 것 같았고 나는 당신의 발음이 정말로 끝내주게 근사하다고 대답할 수 있었다.

나는 사실 여행을 좋아하지 않고, 풍경을 좋아하지 않고, 여행 풍경의 아름다움을 즐기지 못한다. 하지만 종종 ‘저것을 보아서 나는 기쁘다! 저것이 몹시 아름답다!’하는 거짓 제스처를 수행할 때가 있고 그건 정말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이걸 말했더니, 그러니까 가면을 쓴다는 거죠? 이렇게 말했다. 나는 가면을 쓰는 나를 마주할 때 건강이 몹시 나빠지는 것을 느낀다.

내가 보기에 아름다운 것들도 많았다. 오르세의 아르 누보 가구들과 건축 양식들. 벽기둥을 기어오르는 장미 문양과 그 옆에 오크나무로 만들어진 책상. 그런 것들을 보면서, 이제는 없어진, 누군가의 할머니가 쓰던 방을 내가 다시 파헤치고 또 소유하게 되는 것을 상상했다. 오페라 가르니에의 천장 그림과 샹들리에들. 그곳의 크리스털들은 벽 없이 천장 없이 허공에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흰 바닥에 가볍게 침을 뱉는 것처럼 반사광을 떨어뜨리면서.

 

 

4

아름다운 것들을 본다고 해서 특별히 뭐 건강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파리에 머무는 내내 사람들에게 건강해지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썩 거짓말이라고도 할 수 없었는데, 나는 겉옷을 살 때마다 건강해졌기 때문이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겉옷을 많이 샀다. 나는 백화점에서 총 세 벌의 겉옷을 샀다. 내 옷을 한 벌 샀고 동생들 옷을 두 벌 샀다. 이제는 없어진 사람들이 입을 수 없는, 그 차가운 옷들이 동생들의 불그스름하게 차오른 볼에 스칠 것을 기대하면서. 나 역시 서서히 체온이 상승하는 것을 느끼면서.

파리 근교의 항구도시에서는 노란 우비를 샀다. 이것을 한번 입어보아도 괜찮겠냐고 주인에게 몇 번을 물어보았고 주인 역시 몇 번을 알아듣지 못해 되물었다. 어쨌든 우비는 내 손에 들어왔지만, 우비를 산 이후 파리에서는 내내 비가 오지 않았고 현재까지는 한국 역시도 그렇다. 파리에 다녀온 뒤 나는 세 끼를 열심히 먹게 되었고, 어느 때보다도 건강한 몸이 되었다고 느낀다. 내일모레에는 비가 올 것이라고 하고, 별 일이 없다면 나는 노란 우비를 입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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