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학기행문

고마움. 촛불만큼. 노래만큼. 불가사의만큼.
글쓴이 : 이자켓 날짜 : 20.04.29|조회 : 970

고마움. 촛불만큼. 노래만큼. 불가사의만큼.

 

 

여행 중에는 음악을 많이 듣지 않았다. 평소에 음악 없인 살지 못하는 나인데, 그곳에서 나는 극소량의 음악만으로도 살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그 이유를 천천히 더듬어보려고 한다.

나는 여행을 두려워했다.

이 문장을 적고 나니 떠오르는 몇 가지 순간들. 비행기를 타기 전 통화를 하며 펑펑 울던 때. 얼어붙은 비행기에서 담요를 뒤집어쓰고 억지로 잠을 청하던 때. 하루 일찍 도착해버린 타국에서 숙소를 구하던 아침. 일을 그만두고 이곳에 왔다고 말할 줄 몰라 택시 기사에게 쩔쩔매던 때.

집을 떠나면 항상 불안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런 내게 여행은 언제나 거대하게 느껴졌다.

자신의 몸을 가누지 못하는 괴수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부수고 싶지 않은 것들을 부수고 사랑하는 것들을 더는 알아보지 못하는 그런 괴수가 된 것 같았다.

일정 시간이 지나자 여행을 기피하게 되었다. 더는 하고 싶지 않았다. 불안감에 압도당하고 싶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지 않을수록 내 몸집은 작아졌다. 그것이 나쁜 일은 아니었다. 괴수의 몸집에서 인간의 육체로 되돌아오는 일이었고, 후에는 인간의 육체에서 요정의 몸으로 변화해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요정이 된 나는 커다란 집을 신나게 돌아다녔다. 집에는 재밌는 것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기 싫었다. 기차를 타기 싫었다. 고속버스를 타기 싫었다. 지하철을 타기 싫었다. 마을버스를 타기 싫었다. 어디로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내게 문학기행이 찾아온 것이다.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은 여행. 그런 마법.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두려웠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예전과 같진 않을까.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진 않을까. 많은 생각이 밀려왔다.

그러는 동안 여행의 시작은 가까워져 갔다.

문학기행 전날 집을 떠날 준비를 했다. 음악을 듣고 담배를 태우고 침대에 누워 있고 친구와 수다를 떨고 밥을 먹고 음료수를 마시고 커튼을 열어젖혔다가 닫고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마지막으로 짐을 쌌다.

캐리어에 짐을 넣을 때마다 내 마음이 무거워져 갔다.

그렇게 문학기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더 이상 펑펑 울지 않았고, 억지로 잠을 청하지 않았고, 하루 일찍 도착해버리지도 않았고, 택시 기사에게 두 문장을 말하지 못해 쩔쩔매지도 않았다.

이제 보니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함께 떠난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있었고, 한국에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기다렸다.

길고양이 같던 내가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 속하고 둘러싸여 있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음악 없이 음악은 시작되었다.

음악을 듣지 않는 순간이 가장 음악적이었다.

숙소를 둘러보며 감탄하던 우리들.

파리의 거리를 걸으며 쳐다보던 간판들.

에펠탑을 등지고 멋진 포즈를 취했다.

하늘이 무척 맑아서 우리도 맑아졌다.

높은 계단을 올랐다.

누군가는 앞서고 누군가는 뒤처졌다.

이국의 소설가를 만났다.

유머와 격려를 들으며 그가 말한 눈물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벼룩시장에 갔다.

까다롭게 물건을 고르다 단 하나의 물건도 사지 못했다.

삶도 그렇지 않을까.

너무 까다롭다 보면 단 하나도 건지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성당에서 초를 팔고 있었다.

기도를 위해 사용하는 초였다.

이미 불이 붙어 흔들리는 초가 있었다.

나무 의자에 앉아 오르간 연주를 들었다.

멀리 보이는 촛불들이 팔 벌려 뛰기를 했다.

숨이 찬 아이는 없나 살펴봤다.

샹들리에가 타올랐다.

뜨거워 보이진 않았다.

아주 밝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를 생각하나 보다.

낯선 언어로 사람들이 찬송가를 불렀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엉성하게 따라 불렀다.

내 노래가 형편없어서 더 좋았다.

항구 도시에도 갔다.

가서 친구들이 우비를 샀다.

우비를 사자 비가 내리지 않았다.

항구 도시의 아침은 고요했다.

뱃고동은 한 번도 듣지 못했다.

수도원에도 갔다.

돌섬에 지어진 수도원이었다.

어떻게 지었을까 궁금했다.

불가사의라고 했다.

불가사의한 것들이 좋다.

그냥 믿으면 되니까.

내 사랑의 섬도 그렇게 지어졌다.

세종학당에 갔다.

세종학당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내 시 한 편을 읽어왔다.

심지어 한 친구는 내 시를 불어로 번역해왔다.

그래서 우리는 같이 시를 읽었다.

슬프고 아름답다고, 친구들이 말했다.

나도 그 순간이 슬프고 아름답다고 느꼈다.

나의 언어가 우리의 언어가 되는 순간.

음악은 시작되었고 멈출 생각이 없었다.

고마운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계속해서 쓰기로 했다.

반복해서 말하기로 했다.

간명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 음악이 됐다.

문장들이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도 그 춤에 맞추어서 노래를 불렀다.

엉성하고 낯선 발음으로 불렀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불가사의해지는 것이었다.

우리의 만남이 우리의 음악이 우리의 사랑이

영영, 돌이킬 수 없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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