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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지를 낯설게 보기
작성자 박승혁
날짜 26.03.11 조회 602

 

_박승혁 / 소설가,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24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 부문 수상자

소설 Drop the ‘B’

 

 

나는 독일어를 할 줄 안다. 그리고 할 줄 안다고 믿어온 대부분의 일들을 잘 못 한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독일어 문장은 이 소시지는 너무 차갑습니다diese wurst ist zu kalt이다. 그것은 듀오링고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가르쳐주었던 예문이다. 독일에 가기로 예정이 잡히고서 이 소시지는 너무 차갑다고 소시지도 없으면서 자꾸만 생각하게 됐다. 독일은 소시지를 많이 먹는 나라라고 하니까 나도 곧 소시지를 빈번히 먹게 될 테고 너무 차가운 소시지를 받는 일도 가끔은 있겠지. 독일에 가면 그 나라의 말을 몇 마디쯤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독일어를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대부분은 잘 못 한다. 나는 독일어를 간신히 안다고 생각하고, 거의 모른다. 아마도 나는 내가 모르는 말을 했으면 좋겠다. 독일에서 맞은 첫 아침에 소시지를 먹었다. 음식은 따뜻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첫 아침에 더럭 귀국 선물을 정했다. 호두까기 인형을 사 가기로 점찍었다. 그곳은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의 잡화점이었다. 선반에 진열된 인형들이 유리창을 통해 보였다. 이른 시간이라 가게는 닫혀 있었다. 혹시 가게가 열려있었더라도 첫날부터 기념품을 챙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여행 내내 짐을 만드느니 나중에 사는 편이 나았다. 광장의 마루지인 구 니콜라이 교회엔 첨탑이 있다. 거기서 종을 울리거나 종과 비슷한 음성의 악기로 앙상한 곡을 친다. 조금 으스스하게 들린다. 종소리는 종말을 신호하는 도상으로 암암리에 익숙했고 명백하게 배운 적도 있다. 이 종소리는 어딘가 무섭다고 맥락도 없이 자꾸만 생각했다. 배운 대로 생각하고 싶어 해서 그런 것 같다. 고딕풍 종이 울리는 광장의 광경을 영상으로 찍었다. 그걸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 주려고 생각하던 사람에게 보냈다. 그는 멋지다고 답장했다. 나도 맞아 멋지다고 답장했다. 무섭기도 하고 멋지기도 했는데 모처럼 멋있으니까 굳이 무섭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광장을 둘러본 후에 프랑크푸르트를 떠났다. 드레스덴에선 호두까기 인형 파는 가게를 찾을 수 없었다.

드레스덴 숙소는 커다란 교회의 맞은편에 있었다. 그곳에서도 종을 친다. 새벽에 종소리를 들으며 깨어나게 된다. 그 커다란 교회는 겉보기에 깔끔하고 호화롭고 새로 지어진 티가 나서 진짜 교회가 아니라 뮤지엄 같은 건지도 모른다고 첫날에 짐작했다. 드레스덴은 여행에서 방문한 세 곳의 도시 중 우리가 으뜸으로 좋아한 곳이다. 그곳에 있는 동안 알테 마이스터 회화관을 갔고 젬퍼 오페라 하우스에서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도 봤다. 궁전도 있고 교회도 있고 궁전교회도 있었다. 거긴 호프 교회라고도 하는데 궁전교회라고 부르는 게 마음에 든다. 왕을 위한 곳인지 신을 위한 곳인지 언뜻 모를 이름이다. 드레스덴의 마지막 날에 내부를 들어가 볼 수 있었다. 궁전교회는 궁전이 아니고 교회였다. 뮤지엄 같았던 숙소 앞 교회도 뮤지엄이 아니고 교회였다. 그 커다란 교회의 이름도 드레스덴의 마지막 날에야 알게 됐다. 그곳은 프라우엔 교회다. 입구 앞에서 가짜 천사가 행인들에게 푼돈을 받고 허그를 해주고 있었다. 프라우엔엔 들어가 보지 못했다. 은지 누나랑 정주와 함께 갔다가 외국어로 출입 거절당했다. 이유는 낯선 말로 이루어져 있어서 알아들을 수 없었다.

베를린 둘째 날엔 예니 에르펜베크 작가님을 만나 대담을 치렀다. 준비해 둔 질문이 많았고 준비한 것 밖에도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와 우리는 말 섞기가 쉬운 사이는 아니다. 말을 전할 방법은 세 가지가 있었다, 한국어로 말하고 통역을 거치기, 또는 통역 없이 영어로 대화하기, 또는 그의 모국어인 독일어로 말해보기. 이왕이면 독일어를 떠올려보려 했다. 그리고 거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독일어로 아는 말이 거의 없었다. 내가 모르는 말을 하고 싶을 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그날 아침 쇼핑몰에 갔었다. 마음에 드는 옷 가게가 있었다. 그곳 점원이 나에게 영어가 편한지 독일어를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나는 독일어를 할 줄 안다Ich spreche deutsch고 독일어로 말할 줄 안다. 그건 듀오링고가 나에게 가장 많이 말하게 시키던 예문 중 하나다. 예문을 어느 정도 응용하는 것도 익숙했다. 그래서, 나는 독일어를 할 줄 모른다Ich spreche kein deutsch고 독일어로 말할 줄도 안다. 그건 언제나 거짓인 거짓말쟁이 문장이다. 동시에 그것은 내가 말할 수 있는 가장 진실한 독일어 문장이다. 점원에겐 그렇게 대답했었다.

베를린 셋째 날엔 학살된 유럽 유대인을 위한 기념물과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을 갔다. 유대인 박물관에서 메시아 테스트라는 걸 해볼 수 있었다. 몇 가지 질문으로 응답자가 영도자에 적합한지 아닌지를 가려보는 거였다. 준서는 첫 질문부터 틀렸댔다. 나도 그랬다. 이미 틀렸지만 나머지 문항을 끝까지 읽어봤다. 문항지는 마지막으로 당신은 남성이냐고 묻고 있었다. 이 날 오후엔 자유시간이었다. 호두까기 인형 파는 가게를 찾아보려다가 그만뒀다. 도보로 삼십 분 거리에 있는 슈불레스 LGBT 박물관을 찾아갔다. 이번 여행에서 유일하게 내 관심과 결정으로 방문한 곳인 셈이다. 호두까기 인형은 구하지 못했어도 만족했다.

여행 마지막 날 인형을 찾았다.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인근 아이 러브 베를린상호의 기념품점에서 팔고 있었다. 흔한 물건일 텐데 간신히 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 첫 아침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에서 처음 본 후로 꼭 두 번째 보는 거였다. 가까이에서 곰곰이 다시 살펴본 호두까기 인형은 도저히 호두를 깰 수는 없을 것처럼 생겼다. 깰 수 있더라도 잘 깨진 못할 것 같다. 너무 차가운 소시지처럼 너무 무른 호두가 필요할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온 것 중 가장 커다란 호두까기 인형에게 호두를 물려본다. 호두까기 인형은 호두를 깰 수 있겠지만 거의 깨지 못한다. 이걸로 무얼 해야 할지 염려할 필요가 없다. 선물 주려던 사람에게 전해주면 된다. 그는 나에게 여행에 관해서 물어볼 테고, 그러면 나는 멋졌다고 대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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