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을 기약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글 _ 최선재 / 평론가, 숭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3학년, 제23회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자, 2000년생
평론「소음에서 고요로 향하는 존재의 발소리 - 황유원론」 등
만약 당신이 베를린에 온 경험이 없거나 또는 차후 베를린에 올 계획이 있다면, 나는 당신이 베를린에서 놓치지 않길 바라는 여러 풍경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다.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서 보낸 시간들은 곧 당신이 생각하는 독일의 전부로 남을 것이다. 당신이 독일의 다른 지역을 방문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또한 당신이 방문하는 베를린의 극히 일부 구역들 또한 당신이 생각하는 베를린의 전부가 될 것이다. 당신은 “할로Hallo”라고 웃으며 말하는 친절한 베를린의 사람들을 만날 수도, 다짜고짜 “고 홈Go home”이라 소리 지르며 얄팍한 경멸을 표하는 베를린의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베를린 사람들은 당신과 아무 접촉 없이 지나갈 것이다. 당신이 누구를 얼마나 만나게 될지는 우연에 달려 있다.
숙소에서 나온 당신은 베를린의 큰 거리를 돌아다니며, 거대한 대리석 기둥과 신화 속 존재들을 형상화한 조각상으로 장식된 ‘유럽풍’ 건물들을 마주할 것이다. 도시 전체가 미술관 같다는 생각에 잠겨 있던 당신은, 건물의 창문과 외벽 곳곳에 사람의 얼굴이 조각된 것을 보곤 섬ㅤㅉㅣㅅ한 느낌을 받을지 모르겠다. 이미 죽은 자들의, 혹은 실존하지 않았던 자들의 얼굴은 단단한 돌에 새겨져 여전히―관습적으로나마―이 도시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다 당신은 그래피티를 발견할 것이다. 문 닫은 상점의 슬레이트, 우체통과 쓰레기통, 당신이 머무는 숙소의 외벽, 심지어 동네 한복판의 작은 교회에까지 그려진 그래피티를 본 당신이 아름다움을 느낄지 추함을 느낄지 궁금하다. 당신도 스스로에게 궁금해할 것이다. 고대 유럽을 숭상하는 고전미와 근대 유럽의 전성기를 과시하는 옛 건물들 사이에서 그래피티는 형형색색의 얼룩으로 우선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 궁금증을 안고 시내를 걷던 당신은, 어쩌면 낯선 골목의 입구로 들어섰다가, 사방이 그래피티로 화려하게 장식된 구역에 들어설 수 있다. 그곳은 베를린의 거리 예술가들이 모이는 곳으로, 지나간 과거가 아닌 현재의 베를린 사람들이 갖는 감정과 생각, 경험과 가치관을 응축한 소우주가 그들의 그래피티임을 당신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골목의 끝에서 당신은 어느 건물의 좁은 계단을 타고 올라가, 거리 예술가들의 작업물과 인터뷰가 수록된 책을 진열한 작은 상점에 들어설지 모른다. 그 책을 당신이 살지는 나도 모른다.
당신이 만약 과거 동독 치하에 있던 동베를린 지역에 있다면 당신은 신호등의 빨간불과 파란불 속에서 모자를 쓴 꼬마 신사를 발견할 것이다. 귀여운 모습에 잠깐 정신이 팔려 있다가, 당신은 파란불이 켜진 지 5초 만에 빨간불로 변하는 베를린의 신호등에 당혹을 금치 못할 것이다. 첫째 날에 횡단보도를 허겁지겁 달리던 당신은, 사흘 정도가 지나면 빨간불이 켜졌어도 느긋하게 걸어갈지 모른다. 베를린의 지하철에 탑승한 당신은 왜인지 지하철이 거칠게 움직인다는 인상을 받고, 베를린의 지하철은 내릴 때 승객이 직접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야 한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워할 것이다. 다행히 열차가 완전히 서지 않는다면 버튼을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으니 당신은 또 안도할 것이다. 베를린 지하철역은 호선과 상관없이 저마다의 외벽 문양과 색깔을 갖고 있으며, 기념품 가게에서는 각 역의 현판을 뱃지로 팔고 있으니 당신은 귀국하는 길에 그 뱃지를 살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베를린의 트램을 한 번쯤 타볼 것이다. 좌석에 앉아 창밖으로 베를린의 풍경을 바라보던 당신은, 문득 스스로가 이 풍경에 익숙해져 있음을 자각할 것이다. 어떤 이국적인 세상이든 사흘이 지나면 익숙해진다.
당신은 베를린의 여러 명소에 방문할 것이다. 당신은 프로이센 왕국 시절에 지어져 지금은 베를린의 상징이 된 브란덴부르크문을 둘러볼 것이다. 또는 도시 한복판에 우뚝 서 화려함과 웅장함을 뽐내는 베를리너 돔에 들어설 것이다. 또는 베를리너 돔과 함께 ‘박물관 섬’에 들어서 있는 두 개의 박물관을 관람할 것이다. 또는 과거 베를린장벽을 따라 길게 늘어선 이스트사이드갤러리에서 <형제의 키스>를 발견할 수도, 하케셔 회페를 돌아다니다 길가에 세워진 자전거 하나를 사진으로 남겨둘 수도, 그러다 이름 없는 비석들이 작은 언덕처럼 모여 있는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을 걸어볼 수도 있다. 어쩌면 당신은 이중 단 한 곳도 방문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이 모든 곳을 방문할지 모른다. 무엇이 됐든 당신은 베를린의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인데, 당신은 베를린의 흰 뭉게구름이나 잿빛의 먹구름과 마주할 것이며 밤에는 달토끼가 선명하게 새겨진 달과 주변의 별들 아래서 베를린의 밤바람을 맞을 것이다. 당신이 고국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힐지 아니면 베를린 역시 사람 사는 곳이라며 친밀감에 젖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신은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 베를린의 모든 것을 경험하지 못한 채, 그 커다란 공백을 남기고 떠날 수밖에 없다.
하나의 세계를 경험하는 일은 주변의 다른 세계를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다. 당신이 베를린에 가 있는 동안 한국에서는 여러 사건과 풍경들이 생겨났을 것이고, 그것들은 당신이 경험하지 못한 채 사라질 것이다. 한 사람의 세계관을 넓히기 위한 작업은 다양한 세계와의 접촉을 요구하지만, 그 ‘다양한 세계’란 언제나 선택을 동시에 요구하며 선택받지 못한 ‘나머지 다양한 세계’는 사그라들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우리는 결코 ‘모든 세계’에 발을 뻗지 못한다. 당신이 베를린에 머문 시간은 다른 모든 세계에서의 시간을 희생하여 주어졌으며, 당신이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베를린의 시간은 다시 당신에 의해 희생된다. 그 막대한 희생과 공백에 비해, 베를린에서의 시간은 당신에게 얼마만큼의 크기를 가질까. 당신은 고작 그 정도의 시간을 근거로 베를린이라는 이국의 장소를 정의할 것이다. 이는 오독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당신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게 전부다. 당신은 영원히 이 세계(들)에 대한 오독자로 남을 것이다. 당신이 놓쳐버린 것들을 아쉬워하며, 놓칠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상상하며, 당신만의 세계관을 넓히면서 좁혀갈 것이다.
나는 당신이 베를린에서 놓치지 않길 바라는 여러 풍경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놓친 풍경과 경험에 대해, 당신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