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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신기한 일들이 많았던 여행
작성자 김채은
날짜 25.03.18 조회 1011

낯설고 신기한 일들이 많았던 여행
글 _ 김채은 / 극작가, 서울예술대학교 극작과 2학년, 제23회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수상자, 1999년생
희곡 「0의 궤도」 등
 
나는 낯선 환경과 낯선 사람을 싫어한다. 여행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데 낯선 사람들과 비행기로 10시간이 넘게 걸리는 낯선 나라로 떠나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첫 해외 여행이라서 정말 시작부터 걱정이 많았다. 여권을 만들면서, 짐을 싸면서 내내 걱정이 됐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해보자면 너무너무 신기한 일들이 많았고 재밌었다!
 
시작부터 신기한 일이 있었다. 비행기에 타서 유튜브 오프라인 저장을 해온 영상과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근데 비행기가 이륙을 위해서 달릴 때, 뮤지컬 <안나 차이코프스키>의 넘버 ‘상처 입은 독수리’가 나왔다. 그리고 이륙하는 순간에 “다시 힘찬 날갯짓을 할 수 있겠지. 상처 입은 독수리, 어디에도 내려앉지 못했던 나는 빛을 향해 날아올라”라는 가사가 나왔다. 마치 독수리가 돼서 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넘버 마지막 가사가 “나의 음악과 함께 아름다운 저 흑해를 가로지른다”인데 정말 흑해를 가로질러서 독일로 갔다. 
 
흑해를 가로질러서 도착한 독일은 정말 강아지들이 많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곳이었다. 나는 강아지를 정말 좋아하는데, 어딜 가도 강아지들이 있어서 행복했다. 지하철에서 만난 어떤 강아지는 주인보다 먼저 일어나서 내릴 준비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카페에서 만난 또 다른 강아지는 얼굴은 골든 리트리버, 몸은 웰시코기처럼 생겼었다. 그 조화가 너무 귀여웠다.
 
독일 음식도 많이 먹고, 감사하게도 매일매일 삼시세끼를 호화롭게 먹을 수 있었다. 먹었던 음식들이 전부 다 맛있었지만, 아침으로 먹었던 프렌치토스트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바닥에는 시럽이 뿌려져 있고, 잘 구워진 두꺼운 식빵 두 개 위에 블루베리 소스와 크림치즈와 아몬드가 뿌려져 있었다. 정말 감동적인 맛이었다. 이 식당에 데리고 와주신 혜리 선생님께 너무 감사했다. 양이 너무 많아서 남기고 왔는데, 밤마다 생각난다. 다 먹고 올 걸 후회가 된다. 지금도 먹고 싶다. 
 
독일은 사람들에게 소시지와 맥주의 나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에게 독일은 하리보의 나라다. 잠시 하리보 매장에 갈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 너무 행복했다. 한국에는 없는 맛들의 젤리를 구경하면서 낯선 것이 이렇게 반가울 수도 있구나. 하는 걸 처음 느꼈다. 한국에서 매일 보던 익숙한 맛들은 눈길이 가지 않았다. 내가 익숙한 존재보다 새로운 존재를 더 반기는 경험은 아마 거의 처음인 것 같다. 
 
바흐박물관에 갔는데, 여기서 정말 신기한 일이 있었다. 박물관을 열심히 돌아다니다가 다리가 너무 아팠다. 그래서 앉아서 바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자리 아무 데나 앉아서 헤드셋을 꼈다. 누군가가 방금까지 음악을 듣다가 방금 자리를 옮겼는지,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근데 노래가 너무나도 익숙했다.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의 “Intro”가 나오고 있었다. 믿기지 않았다. 비행기에서 계속해서 들었던 넘버였는데! 너무 많이 들어서 지금 당장 부르라고 해도 부를 수 있는 넘버인데. 이 노래를 갑자기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듣게 되다니! 매일 듣던 넘버가 바흐의 음악에서 따온 노래였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른 자리의 헤드셋을 하나씩 써보았다. 어떤 건 음악이 나오지 않았고, 어떤 건 완전히 다른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자리마다 저장된 음악 리스트도 다 달랐다. 정말 이 순간에, 이 자리에 앉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너무 신기한 우연의 순간이었다. (J.S. Bach : Mass in B minor - Kyrie eleison)
 
마지막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 신기한 일이 있었다. 내 여권에 입국 도장이 없었다(아마도 독일 입국 때, 입국 심사하신 분이 실수로 안 찍어주신 것 같다). 출국 심사하시는 분이 왜 도장이 없냐고, 어떻게 들어온 거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입국 도장이 안 찍혔다는 이야기를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딱히 확인을 안 했는데, 당황스러웠다. 영어를 잘 못해서 그냥 ‘아이 돈 노, 왓 해픈? 노 스탬프? 와이? 아이 돈 노’ 만 하염없이 말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었더니 감사하게도 선생님들이 오셔서 도와주셨다. 그리고 입국했던 티켓을 보여주고 무사히 출국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출국 심사하시는 분이 입국 도장이 없어서 출국 도장도 못 찍어준다고 했다. 그리고 “너의 여정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라고 서운한 말을 하셨다(지금 내 여권은 독일을 한 번 다녀왔지만 아무데도 안 다녀온 새것 같다! 신기하다). 다희 선생님께서 도장이 없어서 어떡하냐고, 아쉽지 않냐고 물어봐 주셨다. 이런 경험을 누가 해볼 수 있을까 싶어서 오히려 좋았다. 혼자 온 여행이었으면 조금 아쉬웠을 것도 같은데 지금은 상황이 별로 아쉽지 않았다. 이렇게 명확한 기행문은 남는데, 여권에는 도장이 없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정말 처음부터 낯설고 신기한 일들이 많았던 기행이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들을 우연히 많이 만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혜리 선생님, 다희 선생님, 룸메 승민이, 가인이, 예은이, 선재와 함께한 이 낯설고 신기한 여행을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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